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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45주년 기념 뉴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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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의 이유

Part 1 _ 왜 고통이 존재할까?

2. 필요하지만 아무도 원치 않는 선물
3. 고통이 없기 때문에 힘든 사람들
4. 하나님의 확성기로서 고통의 가치
5. 가장 깊은 차원의 고통과 즐거움의 관계
6. 변덕스럽고 불공평해 보이는 하나님

Part 2 _ 고통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7. 고통에 반응하는 서로 다른 태도
8. 기적을 굳게 믿는 확고한 믿음
9. 고통 너머의 새롭고 놀라운 삶
10. 고난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사람들

Part 3 _ 어떻게 고통에 대처할 수 있을까?

11. 절망으로 인도하는 두려움과 무력감
12. 두려움과 무력감을 없애는 특별한 방법
13. 결코 혼자가 아닌 고통의 순간들
14. 실수투성이 인간을 끝까지 믿는 믿음
15.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저자 소개1

필립 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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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Yancey

휘튼칼리지와 시카고대학교에서 영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예리한 관찰력과 필력을 지닌 작가로, 무엇보다 그의 저술에는 하나님과 영혼들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특히 그의 글은 경계선 신자들, 회의의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보는 이들이 품고 있는 의문들을 잘 헤아리며, 수많은 이들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도록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초기에는 《몸이라는 선물》(두란노),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IVP),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생명의말씀사)와 같은 책을, 이후에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주제에 천착해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놀라운 하
휘튼칼리지와 시카고대학교에서 영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예리한 관찰력과 필력을 지닌 작가로, 무엇보다 그의 저술에는 하나님과 영혼들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특히 그의 글은 경계선 신자들, 회의의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보는 이들이 품고 있는 의문들을 잘 헤아리며, 수많은 이들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도록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초기에는 《몸이라는 선물》(두란노),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IVP),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생명의말씀사)와 같은 책을, 이후에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주제에 천착해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상 IVP), 《기도하면 뭐가 달라지나요?》(포이에마)와 같은 책을 저술했다. 미국 ECPA(복음주의출판협의회)에서 골드메달리언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그의 책들은 지금까지 전 세계 40여 개 언어로 총 1,500만 부 이상이 인쇄되어 사랑받고 있다. 20여 년간 미국 시카고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총 편집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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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5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42g | 140*210*15mm
ISBN13
9788904169191

책 속으로

이 책을 준비하면서 나는 우리 대부분이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고통보다 훨씬 더 심각한 단계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 중에는 고통이 삶 그 자체인 경우도 있었다. 고통은 아침에 그들을 반기는 최초의 감각이요, 그들이 잠으로 떠밀려 들어가기 전에 느끼는 최후의 감각이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그들을 깊이 있게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나는 한센병 환자들과도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생리적 감각 면에서 고통을 느낄 수 없기에 도리어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이들이었다. 혹여 내가 병에 걸린다면, 그때는 지금 나누는 고통에 대한 이 모든 말이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시려는지를 헤아려 보는 일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분노와 비통함은 왜 그분이 상처받아 피 흘리는 이 세상을 허용하시는가를 깨닫게 되었을 때 가라앉았다.
--- 「1.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의 이유」 중에서

고통 감각 기관들은 정확하게 활동한다. 그것들은 다가오는(아니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위험을 경고해 준다. 고통스런 감각이 내 몸으로 하여금 문제 지점에 집중하여 거기에 반응하도록 작용한다. 때로 이 반응은 거의 무의식적이다. 예를 들면, 검사를 받으러 의사에게 갔을 때 의사가 고무망치로 무릎을 탁 치면 다리가 세차게 앞으로 뻗쳐지는 식이다. 의사의 자극이 어떤 위험을 내포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그러한 자동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의사의 고무망치는 만일 내가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무릎이 꺾인다면 영향을 받게 될 바로 그 신경을 때린다. 내가 넘어져서 더 큰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내 몸은 급히 대처한다. 이 반응은 너무도 무의식적이고 빨라서, 두뇌로 하여금 ‘실제로는 넘어질 위험이 없다’는 사실을 추리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을 해석하는 법을 정말 모르고 있다. 만일 그들을 어느 순간에 궁지에 몰아넣어 다그친다면, 아마도 대다수가 “고통은 하나님이 행하신 실수”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은 좀 더 노력해서 세상의 위험들에 대처할 더 나은 방법을 발명하셨어야 했다고 말이다. 나는 고통이 악평을 받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을 통한 유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한가? 그것은 현미경 아래 놓여 있는 고통망(pain network)이 완전히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고통망은 창조의 천재가 만든 걸작이다. 고통에 대한 나의 의견은 인간의 몸을 살펴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왜 나의 몸에는 고통이 필요할까? 내가 다쳤을 때 고통은 내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돌리기 전에, 먼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관찰하며 시작해 보겠다.
--- 「2. 필요하지만 아무도 원치 않는 선물」 중에서

특히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위험 요인은 그 아이가 고통 신호를 쾌감 신호로 잘못 알고 자신을 더욱더 해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부모는 이제 막 이가 네 개 자란, 선천적으로 감각을 모르는 딸아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괴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옆방에서 아이가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노는 소리를 들은 엄마는 ‘아이가 뭔가 새로운 놀이를 찾았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아이에게로 갔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흘러나온 핏방울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고통이 없기 때문에 자기 보호라는 고유의 감각을 상실했던 것이다. 이 같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칼이나 면도날의 위험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은 마취제 없이도 수술을 받을 수 있으며, 손가락을 핀으로 찌르는 것과 같은 묘기로 친구들을 감동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은 매우 위험해진다.

어떤 부인은 자기 병의 경계 신호인 두통을 느끼지 못하고 병을 더욱 악화시켜서 거의 생명을 잃을 뻔했다. 그들 대부분은 ‘남용’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뼈를 크게 상하게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목을 삐고 나서, 큰 상해를 입기까지 계속 손목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 난 한 소녀는 이 같은 부주의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선천적으로 무감각한 이들은 어떤 단서들을 익혀서 그것에 의존해야 한다. 그들은 예를 들어 간지럼 같은 감각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반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문제 부위에 주의를 집중해야만 한다. 우리 대부분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겠지만, 그들은 어떤 동작을 취해야 할지를 오래 집중해야만 알 수 있다. ‘고통 없는 지옥’의 실례들은 수없이 많고 비참하다. 그 실례들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고통이란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피해야 할 불쾌한 것’이라는 일반 개념을 버리도록 만든다. 일반적으로 고통은 생을 슬프게 만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고통은 지구라는 이 행성에서 우리가 적절한 상태를 즐길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 준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가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다는 의식도 없이, 미지의 위험들을 당면하면서 불균형적이고 병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3. 고통이 없기 때문에 힘든 사람들」 중에서

잘못된 삶이라고 해서 항상 고난 가운데 있지는 않듯이, 선한 삶이라고 해서 잔인한 고통을 면제받지는 않는다. 사실 성경, 특히 신약성경에는 좀 덜 고통스럽고 평안하게 살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이 거의 없다. 적어도 이생에서 그리스도인의 운명은 위협적인 쪽으로 결정이 났다. 야고보와 베드로의 서신들 그리고 히브리서는 모두 그리스도인에게 “고난받을 준비를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전당’에는 매 맞아 죽은 사람, 채찍에 맞은 사람, 옥에 갇힌 사람, 돌에 맞은 사람, 광야에서 굶어 죽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 특히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를 강조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대치되는 성경의 이러한 부분들로 인해 당황한다.

“왜 성경 시대에 하나님은 좀 더 많이 개입하지 않으셨을까? 왜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고쳐 주지 않으실까?” 이러한 질문들은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고통을 피해 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치유 은사를 특집으로 다룬 잡지나 TV 프로그램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믿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빈번히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다. 병 고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믿음이란 초자연적인 현상도 포함하지만, 또한 결과가 어떠하든지 매일매일 의존하는 신뢰도 포함한다. 진정한 믿음은 확고한 증거가 없는 믿음, 곧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히 11:1). 하나님은 그저 단순한 마력 같은 힘이 아니다.

최근에 나는 TV에서 시청자가 전화로 참여하는 치유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한 참여자가 자신의 다리를 절단하기로 한 일주일 전에 그 다리가 치유되었다고 말하자 큰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청중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고 사회자는 이렇게 선포했다. “이 일은 오늘 저녁 우리가 본 가장 큰 기적입니다!”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많은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슬픈 마음으로, 어디서 자신들의 믿음이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며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든 사람이라고 신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성경 그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보다 더 쉽고, 더 유쾌하고, 더 안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다.
--- 「6. 변덕스럽고 불공평해 보이는 하나님」 중에서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는 나머지 부분의 고통을 보살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상이 우리의 노력 없이는 복음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관심을 집중하고 치유의 대행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때 온전한 몸이 되는 것이다. 폴 브랜드 박사는 이 개념을 자신의 개인 철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발전시켰다. 개개의 세포들은 효과적인 다세포 기관들이 생산되어 존속하기까지 개인 행동을 포기하고 서로 고통을 나누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동일한 설계자께서는 새롭고 더 높은 목적을 염두에 두시고 인류를 창조해 내셨다. 개인 속에 있는 세포들이 서로 협동할 뿐 아니라 인종 가운데 있는 개개인들도 이제는 더 나아가 공동체적 책임의 새로운 수준으로, 서로 간의 그리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까지 이르도록 하셨다.

몸 안에서와 같이 이 새로운 관계 안에서도 역시 성공의 열쇠는 고통의 감각에 달려 있다. 우리 모두는 인간의 몸의 조화 있는 활동을 보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인간 서로 간의 관계를 볼 때 우리는 슬퍼할 수밖에 없다. 인간 사회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세상 가운데 있는 고통의 대부분은 단지 바로 옆에 있는 기관이 고통받을 때 관심을 갖지 않는 주변 기관의 이기주의 때문이다. 만일 하나의 세포나 세포들의 모임이 그 옆의 세포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성장하고 번성할 때, 우리는 그것을 암이라 부르며, 만일 그 암이 몸에 퍼지는 것을 허용할 때는 몸이 끝장난다는 것을 의식한다. 그러나 암에 걸리지 않는 유일한 방도는 모든 세포가 몸, 즉 머리에 완전히 충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가 더 낮은 창조물로부터 배워서 더 높은 수준에까지 나아가며, 세상의 구원을 위해 그분이 준비하고 계시는 이 공동체 안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 「14. 실수투성이 인간을 끝까지 믿는 믿음」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설명보다 동행을 제시하고
해답보다 회복을 이끌며
고통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현대 고전이자 필독서


고통.
어느 날은 견딜 만하다가도 어느 날은 절망적이고
어느 날은 분노하다가도 어느 날은 무력하다.

괴로움 가운데 있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 무엇일까?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많은 독자의 고통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저자는 신학자가 아닌 고통받는 자의 언어로, 그 어떤 설명보다도 더 가까이서 우리의 아픔을 껴안는다.

육체적 고통부터 정신적 고통까지….
그 가운데서 필립 얀시는 어떤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했을까? 회복은 설명이 아닌 동행에서 시작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의 고통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다.

추천합니다!

- 설명되지 않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그리스도인
-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는 성도를 돕기 원하는 교회
- 오랜 고통으로 지친 지인에게 선물할 책을 찾는 그리스도인
- 고통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

추천평

처음에는 고통에 관한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했지만, 읽고 나니 고전을 읽은 느낌이었다. 이 책은 C. S. 루이스도 다루지 않은 고통의 측면을 탐구하며. 고통받는 성도의 삶을 조명한다. - 윌리엄 피터슨 (「이터니티」 전 편집자)
내가 읽은 악의 문제에 대한 가장 유익한 접근 중 하나다. 실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추천할 책을 찾는다면, 바로 이 책이다. - 버넌 그라운즈 (덴버신학교 전 총장)
이처럼 심오한 질문에 걸맞지 않은, 피상적인 이론서일 거라는 내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당신은 진심으로 이렇게 외칠 것이다. "하나님, 고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폴 하비 (라디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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