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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본 죽음 1 죽음의 민낯을 마주하다 죽음을 지켜볼 기회 / 죽음을 판정한다는 것 / 포인트 오브 노 리턴 / 임종케어의 예절 / 죽음을 맞이할 때의 ‘의식’ / 죽음의 세 가지 종류 / 뇌사에 대한 이중잣대 2 다양한 죽음의 패턴 난생처음 임종케어 / 비참한 연명치료 / 연명치료는 필요없다는 사람들에게 / 연명치료의 도움 / 마치 에도시대의 임종처럼 / 재택임종 실패 사례 / 바람직한 임종 / 재택임종에 대한 불안과 장애물 /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 3 ‘죽음’ 견문록 삶에서 일어나는 우연 / 외무성 의무관으로의 전직 / 사우디아라비아 의사와의 대화 / 예멘에서 죽음을 애도하는 법 / 오스트리아 빈 〈죽음의 초 상〉 / 죽음과 친숙한 도시 / 오스트리아의 암 진단 고지 / 헝가리의 말기 의료 /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국민성 / 발전된 의료가 초래하는 불안감 / 주술사가 아는 죽음의 순간 4 죽음에 대한 공포 사람은 어떤 일에든 익숙해진다 / 15세 소년의 고민 / 죽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그래도 두려운 건 두려운 것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환상 / 죽음의 공포, 죽음의 고통 5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 임종 지키기, 인간의 도리 / 잔인한 심폐소생술의 이유 / “선생님, 늦었어요!”라는 외침 / 마지막 처치, 엔젤케어 / 임종에 대한 오해 / 임종을 꼭 지키게 해주고 싶었지만 / 임종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 / 죽음의 순간을 중시하는 것의 폐해 6 미디어는 불쾌한 사실을 전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불편한 진실은 전하지 않는다 / ‘인생 백세시대’의 의미 / ‘핑핑코로리’를 실천하려면 / 후지 마사하루의 죽음 / 암, 인기 1위의 사망 원인 / 암으로 죽는다는 것의 효용 /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7 암에 대한 세간의 오해 기대여명의 의미 / 새로운 전략, 암과의 공존 / 암 완치 판정에 대한 오해 / 일본에서 암 진단 고지가 가능하게 된 이유 /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암 용어 / 부정하기 힘든 ‘유사암 이론’ / 암 진단은 인상 판단? / 금기의 질문 8 안락사와 존엄사를 둘러싼 이모저모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점 / 찬성파와 반대파의 주장 / 안락사와 존엄사에 숨겨진 폐해 / 외국의 사례 / ‘자비’로운 살인 사건 / 일본에서의 안락사, 존엄사 사건 / 비단벌레의 날개처럼 모호한, 안락사의 네 가지 요건 / 안락사법 혹은 안락사 금지법 / 안락사가 아닌 고뇌사의 현실 / 예측불가, 죽음의 현장 / 뒤틀린 인간관계에 의한 발각 / 획기적인 NHK 다큐멘터리 / 방송에 대한 강한 반발 9 ‘좋은 죽음’을 맞이하려면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 병원이 아닌 집에서의 죽음 / 메멘토 모리의 효용 / ACP, 임종을 향한 사전 준비 / ‘인생회의’ 포스터의 실패 / 구급차를 불러야 할 때와 말아야 할 때 / 위영양관 삽입의 장단점 / ‘신 노인력’을 권하다 / 코로나 팬데믹으로 드러난 안심에 대한 갈망 / 구하지 않는 힘 / 자기 긍정과 감사하는 마음 나가는 말 | 이상적인 최후 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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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Kusakabe,くさかべ よう,久坂部 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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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바란다. 마지막 순간만큼은 고통 없이, 평온하게,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말하며 눈 감기를. 한 남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90세까지 건강하게 살던 그는 오랜만에 나간 골프 라운딩에서 좋은 스코어를 내고 돌아와 아내와 아들, 손주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저녁 식사를 즐기고, 느긋하게 목욕을 한 후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침대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생의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나도 이런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 p.9 결국, 의료는 인간의 행위이지 신의 조화가 아니다. 질병은 자연 현상이다. 물론 의료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의 종류는 늘어났지만,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칠 수 있는 병은 고치면 되지만, 고칠 수 없는 병을 억지로 고치려고 하면 비참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의도치 않은, 비참한 상황의 원인은 전적으로 의료의 발전 때문이다. 첨단의 의료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비교적 ‘깔끔하게’ 사망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살릴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진 대신, 살릴 수 없음에도 비참한 연명치료를 이어가는 경우가 생겼다. (…중략…) 죽음을 억지로 억누르려는 의료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려지면서 무리한 연명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가끔 ‘나는 연명치료를 거부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해서 비참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처음부터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 치료를 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는 가망이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을 보고 할 수 있는 처치를 모두 다 했는데도 살리지 못하면 그게 ‘비참한 연명치료’가 되는 것이다. --- p.53~54 소중한 가족이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하물며 생명을 단축시키는 약을 투약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내가 임종케어를 맡았던 환자 가족들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사전에 상태를 여러모로 살피면서 최대한 정중하게 설명해두었기 때문이다. 임종을 맞이할 때 정맥주사 따위는 지양하고 생기를 잃어 자연스레 죽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다. 암성 통증에는 최대한 빨리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여 통증을 줄여주는 것, 그리고 고통이 심할 때는 생명을 단축시킬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의식을 없애주는 것이 좋다. 마음의 준비만 잘 되어 있다면, 평온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일단 틀림없는 사실이다. --- p.75~76 인간의 죽음은 삶에서 일어나는 엄숙하고 중대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나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접할 기회가 적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과거에는 가족의 죽음이 가까이에 있었다.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죽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겪어가면서, 여러 가지 죽음을 배우고 익숙해질 기회가 많았다. 어느 집이든 다 비슷한 상황이었으므로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테고, 받아들이는 기준 또한 낮았다. 세월이 흘러 의료가 발전하고 죽음이 병원 안으로 숨어들면서, 죽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되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사람들은 삶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죽음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게 되었다. --- p.124~125 무엇보다 죽기 직전의 그 급박한 순간에 필사적으로 말을 건넬 정도라면, 왜 평소 의사소통이 가능했을 때 미리 대화하지 않았을까? 감사한 마음과 애정을 충분히 전해놓았으면, 죽음이라는 생명체에게 있어 최악의 비상 상황에 애써 그 마음을 강조해서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전달되는지, 안 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타이밍에 굳이 마음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 그전까지 준비가 부족했다는 반증이다. 비꼬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의사로서 여러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간혹 이상할 정도로 감정이 격앙된 가족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반대로 앞서 소개한 Y씨의 남편처럼 소중한 가족의 임종을 차분하고 엄숙하게 지켜보는 가족도 많았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 역시 평소 대응과 마음의 준비 차이일 것이다. 임종의 날은 반드시 찾아오는데도 거부하고, 생각하지 않으려다가 ‘일상’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대충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이 오면 이성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며 깊은 슬픔에 시달리는 것이 아닐까. --- p.165~166 젊은 시절부터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팽팽함과 씩씩함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가다가 비틀비틀 기진맥진 되는 것이다. 의료기술의 혜택을 받으면 그야말로 쉽게 죽음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죽지 못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노년의 고통을 품은 채로 인생의 말년을 보내게 된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판단하는 것 역시 개인의 자유다. 다만 내가 의료 현장에서 노인들을 접하면서 받은 인상은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과 죽는 편이 낫다는 것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 p.180~181 죽음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닌데, 스스로 이것저것 조건을 붙이면 붙일수록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요소가 늘어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죽음에 대해 가능한 한 희망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노자의 《도덕경》 글귀 가운데 ‘도상무위 이무불위道常無? 而無不?’라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못 하는 것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거꾸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즉, 무언가를 하려 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게 생긴다는 뜻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이건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죽음을 맞이할 때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 또한 자신의 죽음이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죽기 전에 왜 나만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지 한탄만 하다가 죽는 것만은 피할 수 있다. --- p.194 ‘바람직한 마지막’을 알기 위해서는 ‘원치 않는 마지막’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무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죽지 못하는 상태로 시간을 끌다가 맞이하는 임종을 원치 않을 것이다. 의료용 마약이나 진정제를 사용하는데도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느냐면, 억지로 생명이 연장당하기 때문이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데도 시행되는 연명치료 때문에 계속 살아 있으면서 마약성 진통제나 진정제도 듣지 않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튜브와 카테터를 꽂고 의식도 없이, 몸 여기저기서 출혈이 발생하고 부종과 황달로 육체가 썩어가는 듯한 상태로 기계에 의해 억지로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 역시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 또한 생명을 연장하려는 의료적 처치를 받았을 때 발생한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임종을 맞이할 때는 고도의 의료 장비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다. 거듭 말하지만 의료는 죽음 앞에서 무력하다. --- p.266~267 가족들은 의사로부터 “위루술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곧 돌아가실 겁니다”라는 말을 듣고, 위루술을 거부하면 마치 소중한 가족을 굶겨 죽이는 것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위루술을 진행한다. 하지만 위루로 인해 언제 생이 끝날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아도 후회하는 가족이 있는 것 같다. 서양에서는 고령으로 식사를 못하게 된 사람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는 것을 학대라고 판단한다. 가족들이 선의로 노인에게 음식을 먹이려고 하는 일본과는 정반대의 발상이다. 위루술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재택의료 클리닉에 몸 담고 있던 나 같은 의사들은 정맥주사로 환자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고, 영양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고, 쓴 약도 위루를 통해 투여할 수 있어서 기뻐했다. 다른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위루에 신중해야 한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다른 연명치료와 마찬가지로 일단 한 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p.286~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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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대신 준비가 필요하다 나의 죽음, 마지막의 마지막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생각해본 적은? 먼 훗날의 일이니까, 또 무섭고 불길한 일이니까 미뤄두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눈앞에 닥친 일이 산더미라 그럴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 『안녕한 죽음』의 저자 구사카베 요는 그 마지막을 ‘지금’ 생각해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죽음은 탄생과 함께 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탄생이 지켜보는 이에게 벅찬 기쁨을 주는 것처럼, 죽음 역시 지켜보는 이에게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선사한다. 누군가의 삶이 끝나는 순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은 실존적인 공포와 마주한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목도하는 과정이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 이제껏 이뤄놓은 나의 노력과 업적을 허망하게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다시는 누군가와도 감정을 나눌 수 없다는 외로움,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실존적 공포가 한꺼번에 몰아치는 순간이 죽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외면하려 한다. 의료기술의 발전에 기대면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자위하면서. 텔레비전만 틀면‘백세시대,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 같은 번지르르한 말이 넘쳐나지만, 말 뒤에 숨은 진실은 은폐되고 있다. 백세시대는 백 세까지 건강하게 산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병 때문에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백 세까지 죽지도 못하고 계속 고통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죽음과 마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오랫동안 가가호호 방문하여 재택의료와 임종케어를 시행하면서 수많은 환자의 마지막을 돌보았던 저자의 이야기라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병원에서 의료의 힘을 빌려 죽음과 싸우는 것은 ‘좋은 마침표’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 의료는 무력하기만 하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어떤 죽음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 말이다. 『안녕한 죽음』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저마다의 답을 찾으라 일깨우는 책이다. 죽음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그리고 안녕한 죽음 이 책에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죽음이 등장한다. 90세까지 건강하게 살던 남자가 오랜만에 골프를 치러가서 좋은 스코어를 내고 돌아와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긴 후,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 자신도 모르게 숨을 거두는 죽음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이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드물다. 반대편에는 누구나 손사래를 치는 죽음도 있다.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기, 정맥주사, 위루줄, 소변줄 등 각종 연명장치와 튜브가 주렁주렁 달린 채 죽지도 못하고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로 오래도록 고통받다가 생의 마지막을 비참하게 마무리하는 경우다. 정말 이런 죽음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듯싶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비참한 죽음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과거(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에는 대부분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죽음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객지에서 외로이 죽는 것을 불쌍하다고 여겨 ‘객사(客死)’라는 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누웠던 침상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 시절 누군가의 죽음은 모두의 몫이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과 함께 오늘날의 죽음은 병원으로 숨어들었다. 대부분 병원에서 각종 의료 장비와 튜브를 달고 외로이 생을 마감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순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호흡이 어려워 숨을 헐떡이는 가족 곁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 일어날 일들을 설명한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환자가 식욕이 없어졌을 때 가족들이 어떻게든 정맥주사를 놓아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정맥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장과 신장에 부담을 주고 폐에도 물이 고여(즉, 서서히 익사하는 것과 같음) 환자를 괴롭힐 뿐이다. 이런 내용을 미리 설명해두면 식욕이 없어져도 가족들이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산소마스크 역시 마찬가지인데, 죽기 전이라면 답답하고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실질적인 의미는 거의 없고, 단순히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_ (68~9쪽) 의학기술의 발달로, 고칠 수 있는 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죽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탄생처럼 죽음도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죽음과 싸우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순간에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의 다양한 양상들을 미리 알아두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 손에 나의 존엄과 마지막을 내맡겨야 할 수도 있다. 죽음을 이야기할수록 삶은 더욱 또렷해진다 저자 구사카베 요는 다양한 임종 현장을 목격해온 의사이자,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의료계의 그늘을 섬세하게 포착해온 소설가다. 그는 의사로서, 소설가로서 이중의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며, 현실과 감정을 모두 꿰뚫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그는 ‘죽음을 정확히 알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는 곧 삶을 더욱 찬란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안녕한 죽음』에서 저자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삶 자체를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필수적인 단계임을 강조한다. 그는 책에서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가족과의 구체적인 임종 계획 수립, 집에서의 임종 준비 등 실제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또 외무성 재외공관 의무관으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국가에서의 임종 사례와 문화를 폭넓게 소개하며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도 제공한다. 오스트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파푸아뉴기니에서의 경험을 통해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단순히 임종을 맞이하는 준비가 아니라 삶의 남은 시간을 더욱 충실하고 깊이 있게 살아가도록 돕는 과정임을 분명히 한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연결된 하나의 흐름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들과 함께 죽음의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독자들이 막연한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삶을 더욱 적극적이고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격려한다. 두려움을 넘어 죽음을 직시하고 준비한 사람만이 남은 삶을 진정으로 빛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실천 의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함께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각주를 추가했다. 번역자의 의료 및 사회복지 분야의 전문지식과 감수자의 의학 전문지식에 현장의 사실과 의견을 반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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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미래는 예정되어 있다. 죽음은 실패도, 형벌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시체’가 된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게 고작 관 종류나 수의 따위뿐이라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거 아닐까? 완화의료 전문가인 저자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다. 살리기 위한 의학의 결정이 때로는 죽음보다 더 잔인한 상황으로 환자를 밀어넣는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의학적 처치는 방법의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라서 때로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고치겠다거나 살리겠다는 의료진의 다짐은 익숙하지만 ‘삶의 질’까지 담보하지는 않는다. ‘좋은 죽음’은 현실적인 각오와 준비로 완성된다. “연습할 수도, 반복할 수도 없는” 일이 죽음이라, “듣기 싫거나 불쾌한 정보” 역시 가감 없이 담았다. 덕분에 독자는 《안녕한 죽음》이라는 훌륭한 가이드북을 얻게 됐다. - 장일호 (《슬픔의 방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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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터놓고 말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도 나 역시 죽음을 이야기할 때는 조심스러워진다. 죽음은 한 사람의 역사가 끝나는 순간으로 엄숙하고 숭고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가치판단을 내리기도 어렵다. 그러나 의사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좋은 죽음’에 대해 거침없이 말한다. 재택의료를 다니며 수많은 죽음을 보아온 만큼 주저하지도, 에둘러 말하지도 않는다. 요제피눔박물관에 장기를 드러낸 채 전시된 밀랍인형처럼, 오늘날의 죽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물론 그가 말하는 좋은 죽음이란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에 이르는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나의 죽음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는 죽음을 계획할 수 있다. 이 책은 언젠가 다가올 생의 마지막을 담담히 상상하도록, 안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 남유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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