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긴이의 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위대한 유산 작가 소개 작가 연보 책 속의 역사 문화 산책 작품 해설 판권 |
|
서평
욕망이라는 이름의 유산, 그 거대한 그림자의 시작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1』을 펼치며 우리는 왜 백수십 년 전 영국 작가의 소설을 지금, 여기에서 읽어야 하는가? 찰스 디킨스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위대한 유산』은 한 소년의 성장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허상과 진정한 가치의 의미를 묻는 디킨스의 대표작이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된 『위대한 유산 1』(1~29장)은 원작의 묵직한 주제의식과 디킨스 특유의 입담을 생생하게 되살려내, 마치 우리가 19세기 런던의 뒷골목을 직접 걷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핍이 스스로를 ‘핍’이라고 부르게 된 사연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본명은 필립 피립. 그러나 어린 혀는 그 이상을 발음하지 못했다. 고아로 태어나 성마른 누나와 무던한 대장장이 매형 조 가저리 밑에서 자란 핍의 유년은 어둡고 불안하다. 디킨스는 핍의 눈을 통해 당대 영국의 비참한 현실, 특히 소외된 아동의 삶을 냉정하게 그려낸다. 이 번역본은 디킨스의 이러한 시선을 한국 독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다. 가령, 1장에서 핍이 묘지에서 탈옥수와 맞닥뜨리는 장면을 보자. "시끄럽게 굴지 마!" 교회 현관 옆 무덤들 사이에서 갑자기 일어선 남자가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조용히 해, 이 녀석아, 안 그러면 목을 따버릴 테다!" 공포 그 자체였다. 남자는 온통 거친 회색 옷을 입고 다리에는 무거운 쇠고랑을 차고 있었다. (…) 그는 절뚝거리며 떨고 있었고, 눈은 사납게 번득이며 으르렁거렸다. 내 턱을 잡아챌 때, 그의 이가 공포에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번역문은 짧고 긴박한 문장으로 원작의 긴장감을 살리면서도, 묘사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아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 장면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절박함과 어린 핍이 감당해야 했던 세상의 무게를 동시에 보여준다. 디킨스는 이러한 극적인 설정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사회 구조의 폭력성과 개인의 취약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핍의 삶은 두 번의 결정적인 만남을 통해 전환점을 맞는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탈옥수와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기괴한 노부인 해비샴 양과 그녀의 아름다운 양녀 에스텔라와의 만남이다. 해비샴 양의 '사티스 하우스(Satis House)'는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결혼식 날 버림받은 후, 평생 웨딩드레스를 입고 폐허가 된 저택에 갇혀 사는 해비샴 양의 모습은 그 자체로 빅토리아 시대의 억압된 여성성과 병든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읽힌다. 번역가는 이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이후에 놓여진 것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해비샴 양을 이 의자에 태우고 밀어드리는 일을 정기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녀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걷는 것에 지칠 때면, 그녀의 방 안을 빙빙 돌고, 계단참을 건너, 다른 방을 한 바퀴 도는 식이었다. 우리는 이런 여정을 끝없이 반복했고, 때로는 한 번에 세 시간씩 계속되기도 했다. 핍은 이 멈춰버린 공간에서 아름답지만 차가운 에스텔라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에스텔라의 경멸 어린 한마디, "얘는 그냥 평범한 일하는 소년인걸요!"는 핍의 가슴에 깊은 상처와 함께 ‘신사’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심는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유산’을 향한 핍의 첫걸음이자, 순수했던 세계와의 단절을 예고하는 복선이다. 그는 자신의 거친 손과 투박한 장화를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사랑으로 돌봐준 조 가저리의 세계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디킨스는 핍의 이러한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추적하며, 계급 상승 욕망이 인간의 가치관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정착할 수만 있었다면," 나는 비디에게 말했다. 마치 한때 머리카락에서 감정을 뽑아 양조장 벽에 차던 것처럼, 손이 닿는 짧은 풀을 뽑으며. "내가 정착해서 어렸을 때처럼 대장간을 조금이라도 좋아할 수 있었더라면, 그게 나에게 훨씬 더 좋았을 거라는 걸 알아. (…) 그 대신에," 내가 더 많은 풀을 뽑아 한두 개의 풀잎을 씹으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봐. 불만족스럽고, 불편하고, 그리고?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천박하고 저속하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핍의 내적 갈등은 비디와의 대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비디는 핍의 허영심을 꿰뚫어 보며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지만, 이미 에스텔라와 ‘신사’의 삶에 매혹된 핍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이 번역본은 인물 간의 대화 속에 숨겨진 미묘한 감정선과 심리적 긴장감을 잘 포착하여, 독자들이 핍의 선택과 그 결과를 더욱 깊이 있게 고민하도록 이끈다. 『위대한 유산』의 매력은 개성 넘치는 조연 캐릭터들에게서도 빛을 발한다. 순박하고 우직한 대장장이 조 가저리는 핍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인물이다. 그의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말들은 각박한 세상 속에서 인간적인 온기를 느끼게 한다. "핍, 사랑하는 옛 친구야, 인생은 내가 말하자면 수많은 이별로 엮인 결과물이야. 한 사람은 대장장이고, 한 사람은 백장장이고, 한 사람은 금장장이고, 또 한 사람은 구리장장이지. 그런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생기면 맞서야 해. (…) 자네는 다시는 나를 이런 옷을 입은 모습으로 보지 못할 거야. 나는 이 옷이 맞지 않아. 대장간과 부엌, 또는 갯벌에서 벗어난 내 모습은 어울리지 않지. 내가 대장간 작업복을 입고, 망치를 든 모습, 또는 파이프를 든 모습을 생각한다면 내 잘못을 반도 못 찾을 거야." 조가 런던의 핍을 방문했다가 떠나면서 남기는 이 말은, 신분 상승에 대한 헛된 꿈을 꾸는 핍에게,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노동의 가치와 분수에 맞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번역가는 조의 어눌하면서도 진솔한 말투를 살려 그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반면, 허풍쟁이 펌블추크는 핍이 '위대한 유산'을 받게 되자 태도를 180도 바꾸며 아첨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속물근성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이러한 풍자와 유머는 디킨스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며, 이 번역본에서도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1부의 말미에서 핍은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런던으로 떠나 신사 교육을 받게 된다. 그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지만, 독자들은 이것이 과연 진정한 ‘위대한 유산’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핍이 얻은 것은 물질적 풍요일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그는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만난 변호사 재거스와 그의 괴팍한 서기 웸믹, 그리고 새로운 친구 허버트 포켓 등 또 다른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단순한 성장 소설을 넘어, 산업혁명기 영국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 그리고 진정한 행복의 조건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번역본은 디킨스 특유의 생생한 묘사와 박진감 넘치는 서사, 다층적인 인물들의 매력을 한국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문장은 유려하면서도 힘이 있고, 각주를 통해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특히 1부는 핍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열망과 그 과정에서 겪는 혼란, 그리고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앞으로 펼쳐질 2부의 이야기에 대한 강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핍과 함께 웃고 울며, 그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과연 핍이 꿈꾸던 ‘신사’의 삶은 그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의 ‘위대한 유산’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고전이 주는 묵직한 감동과 함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