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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Yoon-ki,李潤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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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셔. 누가 말려. 형은 상행선 나는 하행선, 좋다, 이거여"
나는 문학동네 바깥사람들이 쓴 글에 관심이 많다. 명배우 김명곤(지금은 국립극장장)의 책 《꿈꾸는 퉁소쟁이》는 내 손으로 만들기까지 한 책이다. 하지만 김명곤은 외국문학을 공부하고 잡지 기자를 지낸 사람이니 문학동네 바깥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수 양희은의 책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과 조영남 형의 《놀멘놀멘》정도는 되어야 문학동네 바깥 사람들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런 책에 관심을 가지는 데엔 까닭이 있다. 아무 까닭도 없이 쌍나팔 불로 나서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느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히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의 글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것은 그가 구어체 문장을 쓴다는 점이다. 그의 책은 내용이 어려운데도 술술 읽힌다. ---p.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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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뵐 때보다 좀 더 여위신 것 같네요. 이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추수라는게 있는데 아세요? 늦가을이 되면 산은 그 몸속에 품고 있던 물을 밖으로 내보내는데 이걸 '추수'라고 한대요, 초가을이 되었으니 내 몸이 추수 내보낼 준비를 하나봐요.
오동잎이 떨어진다. 천하의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낙엽은 추수의 다른 이름이다. 나무의 가지는 대체로 그 나무의 우듬지 모양을 그대로 그리는 것 같다. 가지의 모양은 대체로 그 나무의 잎에서 재현되는 것 같다. 임자 잃고 구르는 낙엽의 엽맥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그 나무의 우듬지를 바라보는 일이다. 이렇듯이 부분으로써 전체의 모습을 어림짐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프렉탈 이론'은 주장한다.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론이다. ---p.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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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화학자,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윤기(58)의 신작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작가의 오랜 지적 사유의 대상이었던 신화는 물론 사람과 사람, 발자취를 남긴 여행지, 자연에 이르기까지 그 지평을 활짝 넓혀 보인 ‘교양산문집’이다. 작가의 지적 편력은 정평이 나 있듯이 전방위적이다. 신화와 사람과 장소와 문학과 일상의 편린들을 응시하는 시선 또한 그 경계가 없이 전방위적이다.
작가의 오랜 관심의 대상인 신화는 물론 33년 전 참전군인으로 다녀왔던 베트남에서의 사무치는 기억들, 몽골과 중국과 미국에서 머물던 당시의 잊을 수 없는 기록들, 그리고 딸과 아들과 고향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이야기, 그림과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 등 그의 관심은 경계가 없다. 고향으로 돌아와 텃밭을 조용히 일구면서도 그 사유는 몽골의 광활한 초원을 내달리는 이가, 자식들에게 기꺼이 고래를 잡으러 떠나라고 등을 두드려 주는 이가, 작가 이윤기다. 전방위적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번 산문집에 실린 53편의 산문들에서 작가가 일관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징하게 드러난다. 눈부신 사유의 자유! 바로 유목민의 정신이다. 과거와 오늘과 미래가 공존하는 시제 속에서 건져 올린, 열린 언어들로 엮어낸 산문들이기에 이번 산문집은 더욱 빛난다. 작가에게는 어느새 일곱 번째 산문집이다. 시간의 경계와 공간의 경계를 넘어선 사유 그 중심에서 피어나는 ‘고운’ 정신 ‘시간의 눈금’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윤기의 사유는 지금의 이 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가의 산문 제목을 빌어 말하자면, 시간의 경계와 사유의 경계를 풀어놓았을 때 비로소 “진화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네모난 틀에 갇힌 사고와 삶의 진화이다. 시간과 사유의 ‘넘나들기' 속에서 비로소, 화분 속의 분재된 매화를 기꺼이 방생(傍生)하는 ‘고운’ 정신이 피어난다. “매화나무는, 키는 50센티를 넘지 못해도 굵기는 내 팔뚝보다 굵었다, 나무의 가지는, 어느 것 하나 나무의 본성대로 자란 것이 없었다. 전정 가위질이 만들어낸 퍽 인상적인 가지들이었다. 그래도 보기에는 참 좋았다는 것은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그 모양이 그 정도 나기까지 그 나무가 당했을 가위질을 생각하니 가슴이 퍽 아팠다. (…) 4월이 왔다. 분재의 아름다움을 포기했다. 매화를 바깥, 울 밑에다 옮겨 심었다. 분재 식물의 방생. 이거 내가 오래 전부터 꾸어오던 꿈이다.” ―본문 “‘방생매’라고 아시는지요” 중에서 이윤기는 글로써, 좁은 화분 속에 뿌리가 갇히고 철사로 가지들이 친친 감겨 있는 영혼들을 방생하려 한다. 한없이 드넓은 초원 위에. 관념의 고깔을 벗고 세계 앞에 나설 수 없는가. 유목민처럼! 작가는 우리의 먼 고향이기도 한 몽골의 초원에서 알랑 고아의 이름을 부른다. 알랑 고아…… 알랑 고아…… 알랑 고아……. 초원에 부는 바람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무수한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몽골의 초원은 금기의 땅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잃어버린 관념의 자유를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없는 관념의 자유를 느끼며 진정한 유목민을 꿈꾼다. “초원에는 길이 없다. 초원은 모두 길이다. 세 갈래의 길 앞에 섰다. 동쪽으로 가야 할 것인가. 서쪽으로 가야할 것인가? 나는 몇 차례 더 몽골의 초원에 설 것이다. 몽골의 경제 같은 것을 나는 묻지 않는다. 마른 말똥을 주워 불을 피우고 밥을 데워 먹어도 나는 조금도 초라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땅 몽골에서 나는 나의 오래된 미래를 만난다. 옛 여인 같기도 하고 곧 만나게 될 여인 같기도 한 알랑 고아를 만난다.” ―본문 ‘알랑 고아를 찾아서’ 중에서 나무를 심는 사람이 들려주는 노동 예찬 작가는 어느 새 원경으로 물러나 자리에서 고요하게 세상을 응시할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섰다. “이승만 대통령은 나의 할아버지뻘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아버지뻘이다. 그런데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거의 동년배이다”라고 고백하며 서글퍼해야 하는 나이에 이른 것이다. 3년 전부터 작가는 양평의 시골집 텃밭에 농사를 짓는다. 맨 손으로, 얼굴을 까맣게 그을려가며, 농약 한 번 안 쓰고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 “나는 천 년 전 혹은 이천 년 전 이야기를 읽어야 행복감을 느끼듯이 천 년 혹은 이천 년 전 사람들처럼 농사를 지을 때만 행복감을 느낀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작가의 뇌리 속에서 이제는 작가가 여행했던 무수한 나라들과 도시들이 흐릿하게 지워지고 있지만 그곳에 고향의 선산 자락이 들어섰다. 신화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선산 자락도 변하지 않고 또한 흙도 변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의 중심에서 작가는 “회초리 같은 묘목”이지만 은행나무를 심고 산수유와 구상나무와 느티나무와 목련과 메타세콰이어와 단풍나무를 천 여 그루가 훨씬 넘게 심었다.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하고 보낸 지난 30년 세월”을 “회환의 눈물 없이는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작가는 된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세상에서 이것만은 유일하게 확실한 것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는 논밭 노릇을 거의 그만둔 땅을 지금 숲으로 되돌리고 있다. 나는 그 숲속에다 나의 ‘소쇄원’을 숨겨두려고 한다. 수천 그루의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는 날, 나는 이 세상에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우리의 대를 이은 새 세대가 그 숲에서 삼림욕을 즐길 확률 또한 매우 높다.” ―본문 ‘한 소인배의 항소 이유서’ 중에서 작가는 그래서 오늘도 노동을 멈추지 않는다. “시간 혹은 세월을 느끼는 일에 좀 둔해지고 싶었다. 나이 같은 것은 숫자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산문집 묶어내려고 그 동안 여기저기에다 쓴 글들을 모아놓고 보니 나는 아무래도 세월 느끼는 일에 둔해지는데,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못한 것이라고 믿는 데 실패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20년 전, 30년 전, 40년 전, 이런 말들 자주 쓴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그래서 제목도 ‘시간의 눈금’ 되어버린 것인가.” ―‘작가의 말’ 중에서 이윤기의, 이윤기만의 시선으로 담아낸 사진들 본문에 실린 사진들은 서너 점을 빼놓고 모두 이윤기가 직접 찍고 기록한 사진들이다. ‘동 몽골 초원을 흐르는 코호르강의 광대한 전경’뿐 아니라 ‘양평 시골집 앞의 연못 풍경’ ‘태치기를 하고 있는 농부 홍씨 ’ ‘16년의 세월동안 작가와 세상 곳곳을 뒤지고 다닌 구두’ 등등 이윤기만이 포착해낼 수 있는 다채로운 사진들이다. 무엇이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이 사진으로, 글로 남겨두고야 마는 것이 작가 이윤기의 “고질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