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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교황 제도의 여러 얼굴
초기 교황 제도 64/8~604년 성 베드로 리노 ~ 엘레우테리오 빅토리오 1세 ~ 리베리오 다마소 1세 시라치오~식스토 3세 레오 1세 힐라리오 ~ 실베리오 비질리오 펠라지오 1세 ~ 펠라지오 2세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의 등거리 외교 및 동서 교회의 분열 604~1054년 사비니아노 ~ 호노리오 1세 세베리노 ~ 스테파노 4(3)세 하드리아노 1세 ~ 레오 3세 스테파노 5(4)세 ~ 실베스테를 2세 요한 17세 ~ 레오 9세 십자군 원정과 아비뇽 유수 1055~1492년 빅토리오 2세 ~ 그레고리오 7세 빅토리오 3세 ~ 우르바노 2세 파스칼 2세 ~ 에우제니오 3세 아나스타시오 4세 ~ 클레멘스 3세 첼레스티노 3세 ~ 인노첸시오 3세 호노리오 3세 ~ 그레고리오 10세 인노첸시오 5세 ~ 클레멘스 5세 요한 22세 ~ 그레고리오 11세 우르바노 6세 ~ 인노첸시오 8세 영욕의 세월 1492~1769년 알렉산데르 6세 ~ 비오 3세 율리오 2세 레오 10세 ~ 클레멘스 8세 레오 11세 ~ 그레고리오 15세 우르바노 8세 인노첸시오 10세 ~ 클레멘스 13세 다시 처음으로 1769~1997년 클레멘스 14세 ~ 비오 9세 레오 13세 ~ 비오 10세 베네딕트 15세 ~ 비오 11세 비오 12세 ~ 요한 바오르 2세 옮기고 나서 참고문헌 도판ㆍ사진 출처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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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한가운데서 갈등과 분쟁의 구심점이자 조정자 역할을 해온 264명 교황들의 생애, 교황청과 교황 제도에 관한 총체적인 탐구 !
교황 한 사람 한 사람의 출신, 교육, 경력 등에 대한 자세한 신상명세가 실린 개인 정보표와 연표, 유적 및 예술작품 등 다채로운 화보 300여 컷이 말해주는 생생한 역사 ! 교황의 등장과 교황 제도의 성격 교황 제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어온 제도다.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자로서의 역할과 기능이 역사상 이보다 더 강력하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적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히틀러, 무솔리니 같은 몇몇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교황 제도를 모범으로 삼으려 했다고 한다. 교황 제도의 출발점은 예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성 베드로)이다.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직계 후계자로서 로마 교회의 사법, 입법, 행정 전반에 관한 최고의 권위를 행사한다. 베드로의 권위는 성서에 근거한 것으로, 교황제의 초기 역사는 베드로 론(論)의 발전사이자, 이후의 역사는 그리스도교 사회에 대해 교황의 영적 권위뿐 아니라, 세속적인 권위까지도 주장해나가는, 이른바 ‘확장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제한 뻗어나가는 듯했던 교황의 권위와 교회 권력은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과 더불어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후 교황의 세속권은 더욱 약화되어 1870년에는 많은 교황령이 이탈리아령으로 돌아갔고, 그 뒤 1929년 라테란 조약의 체결과 함께 바티칸이 시국(市國)으로 독립하면서 교황은 바티칸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교황은 본연의 자리인 ‘영적 지도자’의 역할로 돌아갔다. 비오 12세를 비롯해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교황들은 바로 이러한 영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고 평가된다.(281쪽 ‘옮기고 나서’ 참조) 3. 이 책의 구성과 개요 《교황의 역사》는 서기 64/68년부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중이었던 1997년까지 크게 다섯 시기로 나눠 서술한다. 1) <초기 교황 제도 64/8~604년> 성 베드로가 죽은 뒤부터 604년 대(大)그레고리오 1세까지 총 64명의 교황들을 소개한다. 이 시기의 교황들은 로마 황제들의 혹독한 박해와 이단의 난립, 특히 대립교황(정당한 권위 없이 교황직을 주장하거나 수행한 이들)의 등장 등 초기의 혼란한 상황을 겪으면서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을 유지하고 세속 권력과 조화를 이루는 데도 애를 써야 했다. 이 과정에서 로마의 주교들(훗날 교황)은 불가피하게 점점 세속적인 통치자가 되어갔다. 주요 교황으로는, 로마 교황의 수위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이단에 대한 강한 배척 의지를 실행한 다마소 1세와 레오 1세, 그레고리오 1세를 들 수 있다. 사료에 따르면, 유혈 충돌까지 일으키면서 교황이 된 다마소 1세는 강압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치스러운데다 간통 혐의까지 받은 교황으로, 그에 대한 당대인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그리고 레오 1세는 magnus(大)라는 칭호를 받은 단 두 명의 교황 가운데 한 사람으로(나머지 한 사람은 그레고리오 1세),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와 본성을 둘러싼 논쟁에서 단호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로 인해 결국 서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로마 속주 내에서 교황의 우위권을 인정하는 칙령을 반포했다.(445년) 그레고리오 1세는 주변 민족과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외교 관계도 개선했으며, 성직자들을 위한 규범서도 저술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주요 역사적 사건으로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들 수 있다.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 니케아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이단을 단죄하고 신앙고백서를 채택함으로써 교회를 통일시키고 분열된 제국의 안정을 꾀했다. 2) <교황의 등거리 외교 및 동서 교회의 분열 604~1054년> 이제 7세기에 이르러 교황의 위상은 매우 커졌지만, 아직도 동로마 황제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교황들은 교황좌의 수위권을 역설했고 동로마 제국의 통제권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했다. <교황의 등거리 외교 및 동서 교회의 분열>에서는 604년부터 1054년, 동방과 서방의 교회가 서로를 파문하기까지 87명의 교황을 소개한다. 교황들은 동서 제국과 등거리 외교를 펼치는 등 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귀족의 알력 싸움에 휘말리고, 샤를마뉴 대제, 루트비히 황제 등 서유럽의 황제들에게 충성서약까지 하는 등 황제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주요 교황으로는 에우제니오 1세, 자카리아, 하드리아노 1세, 레오 3세, 그리고 위대한 개혁가라 불리는 레오 9세 등이 있다. 3) <십자군 원정과 아비뇽 유수 1055~1492년> 세 번째 장에서는 황제와 교황의 반목이 극에 달했음을 본다. 황제는 카노사에서 교황에게 사죄하는 굴욕을 당하고, 또한 교황은 아비뇽으로 귀양살이를 가게 된다. 또한 성직 매매와 대사(면죄부) 판매의 횡행으로 인해 이제 교황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다. 흔히 이 시기를 이른바 ‘암흑기’라 부르지만, 교황과 교황청은 학문과 예술을 장려하고 대학을 세우며 십자군 원정을 추진하고, 황제의 권력에서 빠져나오려는 등 나름의 노력도 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도미니코 수도회, 베네딕투스 수도회 등이 설립되면서 타락해가는 가톨릭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강한 개혁 의지를 지녔던 니콜라오 2세, 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는 강수를 둔 그레고리오 7세(카노사의 굴욕 사건), 엄격한 도덕가이자 외교술과 행정에도 능통한 인노첸시오 3세, 학문과 예술을 장려한 보니파시오 8세, 성직 매매로 악명이 높은 보니파시오 9세, 뇌물 공세를 펼쳐 교황에 선출되어 노골적인 족벌주의를 드러내고 외관 치장 사업에 열중했던 식스토 4세, 인기는 있었지만 유약하고 무능력했던 인노첸시오 8세 등을 만나볼 수 있다. 4) <영욕의 세월 1492~1769년> 교회의 세속화와 권력은 그 끝을 몰랐고, 성직 매매와 대사(면죄부) 판매도 극단으로 치달았다. 급기야 마틴 루터 등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불을 당겼고, 이에 놀란 교회는 반종교개혁 운동(가톨릭 부흥 운동)으로 자체 정화 운동에 나섰다. 이어 17세기에는 광포한 종교 전쟁들이 유럽을 휩쓸었고, 교황은 서유럽 열강들의 손아귀 속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갔으며, 결국에는 세속 권력을 손에서 놓아야 했다. 여러 정부와 많은 사생아들을 둔 알렉산데르 6세, 오랜 세월 교황좌를 꿈꾸다 마침내 교황이 된 율리오 2세(줄리아노 델라 로베레 추기경), 지나친 사치로 교황청 재산을 탕진한 레오 10세, 네 번 출마해 결국 교황이 된 클레멘스 8세, 갖은 계략을 동원해 교황에 당선된 우르바노 8세 등이 이 시기를 거쳐갔다. 5) <다시 처음으로 1769~1997년> 종교개혁이라는 최대의 도전장, 그리고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 유물론을 비롯 점점 거세게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의 물결과 맞서기 위해 19세기의 교황들은 그나마 남아 있던 세속 권력까지 모두 떨치고 “내 양을 먹이라”는 목자의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게 되었다. 18세기 교황들은 나폴레옹과의 관계,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 노선 등이 부른 난국을 타개해나가기 위해 노력했으며,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인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전쟁, 빈곤, 죽음 등으로 신음하는 영혼들을 치유하는, 교회의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는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폴레옹에 의해 감금까지 당했지만 교황령을 되찾는 등 교황청의 난국을 타개해나간 비오 7세, 철도를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며 철로 개설을 강력히 반대했던 보수적 성향의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무류성(無謬性)’을 주장한 비오 9세, 아프리카 노예 제도 폐지를 강력히 주장한 레오 13세,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처음 출연한 교황인 비오 12세, 사제의 독신생활을 강력히 주장한 바오로 6세, 그리고 얼마 전 서거한 요한 바오로 2세 등을 만날 수 있다. 4. 흥미로운 요소들 1) 교황들의 면모와 특징 이 책에서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교황의 다양한 면모와 흥미로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다마소 1세(재위 366~384년)는 자신의 독특한 매력을 여인들을 사로잡는 데 활용하는 바람에 간통 혐의로 기소되는 망신을 겪었다.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년)는 레오 1세와 함께 마그누스(大) 칭호를 받은 교황으로 역사, 문학, 음악에 걸쳐 해박한 인문적 지식과 열정으로 《설교집》, 《사목자 규범서》 등 여러 권의 저서와 유명한 성가 <그레고리안 찬트>를 지었다. 예술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레오 10세(재위 1513~1521년)는 교황에 선출되자 “하느님이 나에게 교황직을 주셨다. 그러니 마음껏 즐기자”라고 했다 한다. 요한 12세(재위 955~964년)은 원래 방탕한 성정을 지녔는데, 교황이 된 뒤에도 호색을 일삼아 교황청이 매음굴로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27세에 정사를 벌이던 중에 사망했다. 니콜라오 4세(재위 1288~1292년)는 한여름에 여러 추기경이 죽어나간 뒤 중단된 선거 회의장에 불을 때 병균을 없애는 등 선행을 한 추기경으로 두 차례나 교황에 당선되었으나 고사하다 결국 교황에 즉위했다. 스테파노 (2세)(재위 752년)는 나흘 만에 뇌출혈로 사망해서 그를 교황 인명록에 넣는 것은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로 인해 이후의 교황명 스테파노는 3세(2세), 4세(3세)식으로 붙여진다. 우르바노 8세(재위 1623~1644년)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점성가를 데려다가 교황궁에서 거대한 마법 의식을 거행했다. 요한 21세(재위 1276~1277년)는 연구 도중 서재 천장이 무너져내려 사망했다. 그레고리오 6세(재위 1045-1046년)는 스스로 교황직을 양도했다. 이 과정에서 돈이 오고갔다고 전한다. 요한 바오로 1세(재위 1978년)는 처음으로 두 개의 교황명을 택하고 겸손의 표시로 대관(戴冠)을 거절함으로써 관례를 깨뜨려 주목을 받았으나 재위 3주 만에 서거했다.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년)는 456년 만에 선출된 비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최초의 폴란드인 노동자, 학자 출신 교황이다. 현대 교황으로는 드물게 라틴어와 다양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비오 8세(재위 1829~1830년)는 “명예가 사람을 바꾼다”는 속담이 틀림을 입증하는 사람이라 평가받는다. 왜냐면 그는 교황이 된 뒤에도 추기경 시절 좋아했던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날마다 주막을 찾아갔기 때문이라 한다. 2) 극단적인 통제 속에 이루어진 교황 선거 회의(콘클라베) 이 책에는 교황 제도와 관련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이 교황 선출 과정인 교황 선거 비밀 회의, 즉 콘클라베에 관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를 마친 바티칸을 비롯 전세계는 이제 누가 다음 교황이 될 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려 있다. 오는 18일에 엄격한 교황 선거 회의를 통해 교황을 선출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런 비밀 회의를 통해 교황을 선출하는 일이 예전에는 기나긴 시간 동안 고통, 심지어는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고, 선거 회의장은 온갖 음모, 부정, 계략이 꿈틀댔던 무대였다. 원래 ‘자물쇠로 잠그는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콘클라베conclave’에 얽힌 믿지 못할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8월의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 낡은 건물 안에 갇혀 있었다.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도 교회법이 규정한 참가자 3분의 2의 찬성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8월이 지나가고 9월이 되자 무더위에 탈진한 영국 추기경이 죽고 이탈리아 추기경도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마침내 10월 25일, 늙고 병든 밀라노 출신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첼레스티노 4세(재위 1241년)라는 교황명을 택했다. 하지만 그는 길고 힘든 비밀 회의로 더욱 쇠약해졌던지 선출된 지 17일 만에 세상을 따나고 말아 교황 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138쪽) “(……) 이 규정에 따르면 추기경단은 교황이 죽은 후 열흘 내에 교황 서거지에 모여야 하고, 외부와 완전 격리된 상태에서 비밀 회의를 열되 회의 기간 동안 들여보내는 음식량을 점점 줄이는 등 생활 여건을 점차 열악하게 만들어 교황을 빨리 선출하도록 압박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진작에 실행했어야 하는 조치였다.”(143쪽) 호노리오 4세(재위 1285~1287년) 이후 추기경들이 무려 11개월이나 교황 선출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영국인 연대기 저자 토머스 와이키스Thomas Wykes는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꼬집기도 했다. “꼴사납고 천박한 논쟁으로 인해, 그리고 교황좌를 탐내는 추기경 개개인의 야심 때문에 (……) 교회는 지도자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148쪽) 3) 대립교황들 이밖에도 이 책은 각 시기마다 적법한 교황들에 맞선 39명의 대립교황들에게 짧게나마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가톨릭 교회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도록 했다. 대립교황이란 교의(敎義)가 다르거나 때로는 세속 세력의 개입 등의 이유로 인해 적법한 선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교황을 자처하거나 그 직을 수행한 사람들이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교황좌에 올랐거나 무능력한 기존 교황에 맞서 추기경단이 대립교황을 세우거나, 혹은 황제와 교황이 날카롭게 대립할 경우에는 황제가 대립교황을 내세워 정통 교황들에 대적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클레멘스 7세, 베네딕토 13세, 알렉산데르 5세, 요한 23세 등을 들 수 있다. 4) 교황사의 흥미로운 통계 교황사에는 여성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허구의 인물이지만 ‘여교황 요안나’(111쪽)도 교황사의 한 장을 차지하면서 전승되어 오고 있다. 그레고리오 11세와 우르바노 6세에게 조언을 해주고 큰 영향력을 미친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뛰어난 미모 덕에 알렉산데르 6세의 연인이 되었던 줄리아 프라네세 등이 있다. 현대로 와서는 비오 12세의 가사를 돌보았던 파스콸리나 수녀가 있었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즉위하자마자 동정녀 마리아의 첫글자인 ‘M’을 교황 문장(紋章)에 포함시킴으로써 성모 마리아에 대한 추앙을 분명히 했다. 2천 년간 수많은 교황이 있었기에 그에 관해 통계를 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역사상 264명의 교황과 39명의 대립교황이 있었고, 그 가운데 78명의 교황과 2명의 대립교황이 성인으로 추증되었고, 8명의 교황이 시복(복자로 추증)되었다. 출신지별로는, 이탈리아 출신이 177명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 14명, 그리스 11명, 독일 2명, 아프리카 2명, 영국 1명, 스페인 2명, 폴란드 1명..... 등이다. 직분상으로는 수사 출신이 22명, 탁발 수도사 출신이 16명, 평신도가 2명, 은둔자가 1명..... 순이다. 또한 4명이 사퇴하고 5명이 투옥되었고., 4명이 살해, 1명이 암살, 1명은 면직되었고, 1명은 대중들에게 몰매맞아 죽었다. 그리고 천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죽은 교황도 있었다. 5. 이 책의 특징 저자는 서양사라는 방대한 흐름 속에서 한 개인과 시대의 유기적 관계, 공적 ? 사적 생애와 업적, 과오 등을 하나 하나 언급하고, 매 시기마다 새로운 교황의 등장과 퇴장의 순간들을 생생히 설명하며 관련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정확히 짚어낸다. 또한 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인물 정보표에는 264명 교황들의 출신지, 출신 배경, 경력 사항, 본명, 재위 기간, 사망일, 당시 대립교황 등 총체적인 사항들을 모두 싣고, 시기별 연표를 게재해 일목요연하게 시대적 변화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특정 사항에 대한 보충 설명과 방대한 시각 사료(300여 컷)와 서지 자료들의 적절한 인용, 관련 지도, 방대한 사진과 그림 등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