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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자아, 기억, 서술: 삼중의 위기와 그 대응
1. 자아 2. 기억 3. 서술 II. 기억과 정체성 1. 역할정체성 비판과 정체성의 미학적 실험 2. 막스 프리쉬의 『몬토크』 3. 마르틴 발저의 『일각수』 III. 흔적기억이론과 이미지 기억의 해방적 힘 1. 문화적 기억매체의 역사적 변천 2. 프로이트와 초현실주의 3. 페터 바이스 IV. 구성주의 기억이론과 기억의 허구성 1. 구성주의 기억이론 2. 마르틴 발저의 『솟구치는 샘』 V. 잊혀지지 않는 과거. 나치시대의 회상과 문학적 형상화 1. 아우슈비츠의 문학사 2. 나치시대와 독일문학 VI. 현대매체 비판과 신화에 대한 회상 1. 현대매체의 발전과 신화의 급부상 2. 현대매체, 신화 그리고 기억에 관한 보토 슈트라우스의 일반적 입장 3. 슈트라우스의 글쓰기 방식에 대한 일반적 고찰 4. 보토 슈트라우스의 『젊은 남자』 VII. 포스트모더니즘과 기억 1. 포스트모더니즘: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2. 마르틴 발저의 『어느 비평가의 죽음』 3.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멸』 참고문헌 인명색인 |
鄭恒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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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및 순간의 체험을 가장 잘 인식시켜주는 매체는 피부이다. 기억이 주로 두뇌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정으로 과거와의 연관성을 보인다면, 피부는 현재적인 순간만을 인식하는 매체이다. 마르틴 발저는 그의 소설 『일각수』에서 피부와 기억의 관계를 아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안젤름은 보이크만의 축제에 다녀온 후 어느 여인의 가슴을 만진 것과 관련, 인간의 기억능력에 관한 성찰을 시도한다. 그는 기억이란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기만의 과정일 뿐이며,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던 것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고 단지 그 내용만을 추상적으로 전달할 뿐이라고 말한다. 반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육체적 접촉은 단지 현재의 것만을 지각할 뿐 과거에 있었던 것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그는 어느 여인의 가슴을 만졌다는 추상적 사실만을 기억하지, 그녀의 가슴을 만진 그 느낌은 그것을 만진 순간에만 존재할 뿐 그것을 기억하는 현재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70-71
현재란 항상 우리가 그것을 체험하는 순간 이미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현재가 과거로 변했을 때, 우리는 과거가 마치 지금 존재라도 하는 양 떠들어대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과거의 상은 실제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일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사건을 체험한 (현재에 위치한) 사람도 더 이상 그것을 체험할 당시의 그가 아니며, 따라서 체험하는 과거의 나와 기억하는 현재의 나 사이에는 항상 낯설음이 존재한다. --- p.167 발저가 소위 순수한 기억의 서술방식을 이용하여, 나치시대를 형상화한 기존의 문학작품들에서 서술되지 않은 역사의 다양한 단면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발저가 유년기 인물의 시점을 이용해서 역사의 민감한 부분들의 서술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언론이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에 대한 기억을 도구화하고 있다는 발저의 주장은 발저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자신의 자유로운 양심과 독일인의 자유로운 양심을 구해내려는 발저의 현재적 의도가 독일 역사의 특정부분에 대한 기억의 회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 p.269 모더니즘 문학이 아직까지 새로운 사건의 고안에 집착하고 있는데 반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들을 문학작품 속에 끌어들이며 그것들을 새롭게 결합시켜 새로운 문학작품을 창조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서는 상호텍스트성이 중심적인 개념으로 떠오른다. 이제 새로운 텍스트는 기존의 텍스트들에 대한 반응 및 그것과의 새로운 관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전의 텍스트들이 반복해서 다시 인용될 때 현재(텍스트)는 과거(텍스트)를 포괄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용은 과거를 단순히 현재의 시점에서 불러내어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텍스트는 이러한 과거의 텍스트를 패러디하거나 반어적 거리를 두며 그것을 과거의 맥락에서 끄집어내어 새로운 연관 속에 집어넣는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과거를 단순히 재현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되 그 과거의 연관망을 ‘잊고’ 새로운 연관망을 창조함으로써 창조적이 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나타나는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은 인터넷의 네트워크와 유사한 모습을 띠는데, 이것은 문학이 새로운 매체현실에 어떻게 적응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p.363-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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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이것은 20세기 미적 현대에서 비롯되어 포스트모더니즘에 정점에 이른 자아의 위기 문제가 왜 기억의 위기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소설의 가장 주된 표현형식인 서술은 회상을 통한 과거의 서술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억의 위기는 다시 전통적인 연대기적 서술방식의 위기로 이어진다. 따라서 현대에 자아, 기억, 서술의 위기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존의 연구에서 자아의 문제는 철학, 기억의 문제는 기억심리학이나 신경과학, 서술의 문제는 문학의 영역에서 각각 분리되어 다루어졌고, 이들 간의 연관성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며 그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바로 이러한 연관관계를 조명하고, 이러한 삼중의 위기에 직면하여 각각의 해당 대상들의 차원에서 어떤 새로운 대응방식이 나타나고 있는지 그 반응양상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1장은 현대에 나타나고 있는 자아, 기억, 서술의 위기현상 및 이에 대한 새로운 대응을 개괄적인 차원에서 조명하고 있다. 2장에서는 개인에게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역할정체성을 비판하고 미학적 실험을 통해 다원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문학의 역할을 살펴본다. 한편으로 미학적인 허구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이 억압적인 현실의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자아의 진정한 정체성은 자유로운 미학적 상상 외에 현실체험에 대한 회상이 곁들여질 때만 획득될 수 있음을 프리쉬의 『몬토크』와 발저의 『일각수』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2장이 주로 사회학과 미학의 관점에서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3장과 4장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론들이 구체적인 문학작품의 예와 함께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3장에서는 인간의 기억을 시간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 영원히 기억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프로이트의 기억이론과 초현실주의 이론이 문화적 담론의 차원에서 소개되고, 이러한 인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페터 바이스의 작품들이 분석된다. 4장에서는 기억은 결코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적으로 구성할 뿐이라는 구성주의 기억이론의 주장 및 철학자 료타르와 작가 슈트라우스의 유사한 견해들이 소개되고 이와 함께 이러한 기억의 구성적 성격을 문학적 형식으로 차용한 발저의 작품 『솟구치는 샘』이 분석된다. 5장에서는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역사적 기억, 특히 ‘나치과거’를 둘러싼 회상의 문제가 다루어진다. 1980년대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나치과거를 둘러싼 다양한 역사논쟁과 문학논쟁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이를 통해 나치역사에 대한 독일의 과거청산이 완결되었다는 주장의 허구성이 드러나며, 독일의 과거가 여전히 현재의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음이 폭로된다. 그 밖에도 이 장에서는 문학사적인 차원에서 시대적 변화와 함께 역사적 기억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변화하며, 그것이 역사적 사건의 문학적 형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있다. 6장에서는 현대에 나타나는 매체와 신화에 대한 관심증대 현상을 기억이라는 문제를 통해 설명한다. 특히 시대적으로 대치되는 현대매체와 신화 사이의 구조적 연관성 및 차이점을 보토 슈트라우스의 관점을 빌려 명쾌하게 해석한다. 여기서 기억이 연대기적인 순차적 기억으로부터 순간 속에 영원을 내포하는 신화적인 ‘근원기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토 슈트라우스의 이러한 경향은 특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7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문학과 기억 간의 연관성을 살펴본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및 문학논쟁을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기억과 망각에 양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상호텍스트성에 기반을 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혁신과 추월을 이상으로 삼는 모더니즘 및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생기 없는 반복의 현실을 주장하는 탈역사주의 모두에 거리를 두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과거의 텍스트를 인용하며 기억하되 그것을 패러디하거나 반어적 거리를 둠으로써 과거의 맥락을 잊고 그것을 새로운 연관 속에 집어넣는다. 이로써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창조적인 기억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