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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1부. 사람 사는 곳에서는 늘 사건이 끊이질 않으니 명량 바다에서 이순신의 진짜 모습은?/ 어우동은 왜 공공의 적이 됐는가?/ 홍순언은 어떻게 외교의 달인이 됐을까?/ 조식은 왜 자꾸 지리산에 올랐을까?/ 김만덕이 여성 CEO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왜 허균은 ‘천지 사이의 괴물’로 불렸을까?/ 선죽교의 핏자국, 그 진실은 무엇일까?/ 조선 시대의 애서가는 누구였을까? 2부. 기록한 것과 기록된 것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왜 조선은 자꾸 역사를 남기려고 했을까?/ 최초의 세계지도는 어떻게 조선에서 나왔나?/ 『택리지』에서는 어떤 곳을 살기 좋다고 했을까?/ 조선의 풍물을 기록한 인문지리서는 무엇일까?/ 왜 할아버지는 손자의 성장과정을 기록했을까?/ 박지원의 눈에 비친 청나라의 모습은?/ 조선이 실록을 보관했던 방식은?/ 오희문이 기록한 임진왜란의 피난길 모습은? 3부. 담배를 피며 한양을 거니는 하루하루 정약용은 왜 5일에 한 번씩 개고기를 먹자고 했을까?/ 조선의 르네상스는 어디서 꽃 피웠을까?/ 경복궁은 왜 ‘경복궁’일까?/ 조선에도 신고식 문화가 있었다?/ 왜 조선 시대의 그림에는 담배가 자주 등장했을까?/ 한양 한복판의 무릉도원은 어디였을까?/ 조선의 지식인들은 어디에서 공부했을까?/ 조선 최고의 교육 기관인 성균관을 설립했던 이유는?/ 문익점의 목면은 어떤 혁명을 갖고 왔을까? 4부. 조선의 왕으로 살아간다는 것 정조가 매일 일기를 썼던 이유는?/ 광해군은 어떻게 세금 정책을 바꿨을까?/ 세종은 왜 5개월 동안 궁민투표를 실시했을까?/ 영조의 반값 군포는 과연 성공했을까?/ 왕비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왕실의 비서실에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까닭은?/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한 논리는 무엇일까?/ 정도전이 주장했던 왕의 최고 역할은?/ 왜 조선의 왕들은 활자를 개발하려고 했을까? 5부. 백성들의 괴로움이 내 아픔이고 조광조의 답안지는 어떻게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조선은 왜 헌법 제정에 공을 기울였을까?/ 예치를 지향한 조선의 국가 이념은 무엇이었나?/ 이지함이 백성 속으로 들어간 까닭은 무엇일까?/ 조식이 백성을 두려워하라고 한 이유는?/ 이산해는 왜 자꾸 소금을 굽자고 했던 것일까?/ 후계자 계승을 둘러싼 당파 분열의 결말은?/ 조선의 내시들은 어떤 일을 했는가?/ 조선이 지진에 대처했던 방식은? 찾아보기 인물/ 책 |
申炳周
신병주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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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을 죽음으로 몬 것은 성종의 의지였다. 본격적으로 성리학의 이념을 전파하려던 시대에 나온 ‘어우동’이라는 돌출 인물은 성리학의 이념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캐릭터였다. 시범적으로라도 어우동을 처형해서 조선의 모든 여성에게 반면교사로 삼게 하자는 뜻이 피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우동이 처형된 1480년 10월은 성종의 왕비인 윤씨가 1479년 폐위되었다가 1482년 죄인을 대우하여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한 시기와도 묘하게 맞물린다.
왕실에서 왕의 권위에 도전했던 폐비 윤씨와 민간에서 남성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죽음을 맞이한 어우동의 모습에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 두 사람을 처형한 인물은 성종이었고, 성종 시대는 성리학의 이념을 국가와 사회 곳곳에 전파하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우동과 폐비 윤씨는 이러한 시대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 p.23~24 「어우동은 왜 공공의 적이 됐는가?」 『택리지』에서는 어떤 곳을 살기 좋다고 했을까? (중략) 셋째 조건은 ‘인심’이다. 이중환은 “그곳 풍속이 좋지 못하면 자손에게도 해가 미친다” 하여 풍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팔도의 인심을 서로 비교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서민과 사대부의 인심이나 풍속이 다른 점을 강조하면서, 당쟁의 원인과 경과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해 인심이 정상이 아님을 통탄했다. “오히려 사대부가 없는 곳을 택해 살며 교제를 끊고 제 몸이나 착하게 하면 즐거움이 그중에 있다”라고 한 대목에서도 보이듯 이중환에게 집권 사대부의 권위주의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마지막 조건으로는 ‘산수’를 들면서 “집근처에 유람할 만한 산수가 없으면 정서를 함양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산수의 경치가 훌륭한 곳으로는 영동을 으뜸으로 삼았다. --- p.112~113 「『택리지』에서는 어떤 곳을 살기 좋다고 했을까?」 정도전은 태조의 명을 받고 『시경』의 「주아」편을 인용해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으로 정했다. 그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궁궐 건축이 백성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넓은 집에 편안하게 거주할 때는 추위에 떠는 선비 덮어줄 것을 생각하고, 서늘한 전각에 살면 시원한 그늘을 나누어 줄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런 후에야 만민의 받듦에 대해 저버림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대목에서 왕도정치와 민본 정치를 국가의 이념으로 설정한 사대부 출신 학자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이런 이념이 반영되어 건립된 경복궁은 광화문에서 강녕전까지 390여 칸의 전각으로 구성된 소박한 규모였다. 1868년 흥선대원군 때 중건한 경복궁의 전각이 7,400여 칸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었다. --- p.162 「경복궁은 왜 ‘경복궁’일까?」 『일성록』의 모태가 된 것은 정조가 세손 때 쓴 일기인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다. 정조가 세손 시절 경희궁의 존현각에 머물면서 일기를 썼기 때문에 ‘존현각일기’라고 불렀다. 정조는 중국 노나라의 유학자 증자曾子가 말한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나는 매일 세 가지 일로 나를 반성한다)”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일찍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이는 정조가 『일성록』 편찬을 명하면서 증자의 이 글귀를 인용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1785년(정조 9) 정조는 그가 탄생한 후부터 『존현각일기』에 이르기까지의 내용과 즉위한 후의 행적을 기록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을 기본 자료로 하여, 중요 사항을 정리해 왕의 일기를 편찬할 것을 명했다. 규장각의 신하들이 실무를 맡았고, 책의 제목은 증자의 말에서 따와 ‘일성록’으로 정해졌다. 『일성록』은 조선이 멸망하는 1910년까지 151년에 걸쳐 이어졌다. --- p.199 「정조가 매일 일기를 썼던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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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저널 그날〉,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진행자
‘우리 시대의 역사 선생님’ 건국대 신병주 교수의 신작! 조선사의 크고 작은 이야기 45편을 한 권에 담은 역사 입문서! 2014년 흥행에 성공한 영화 〈군도〉, 〈명량〉, 〈해적〉 그리고 인기리에 방영중인 TV 드라마 〈야경꾼 일지〉, 〈비밀의 문〉의 시대적인 배경은 모두 ‘조선’이다. 현재 조선은 여러 매체와 출판물을 넘어 각종 문화 행사에서 꾸준히 다뤄지고 있는 소재 중 하나이며 당분간 이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우리는 세종, 정조를 비롯해 이순신, 어우동, 정도전, 허균 그리고 화성, 성균관까지 조선의 이모저모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유독 조선에 많이 머물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기의 이야기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기록을 중시했던 조선이 남긴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등이 당시 상황을 풍부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세종, 영조, 정조가 지녔던 능력과 태도에서 배울 만한 점이 많다는 것도 계속 조선의 왕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조선에는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까? 『조선과 만나는 법』은 조선사 500년을 넘나들며 조선의 크고 작은 45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임진왜란, 명량대첩과 같은 굵직한 사건부터 세종, 영조, 정약용, 조광조, 조식 등과 같은 사람들, 그리고 일상 문화들까지 조선사를 장식한 여러 기록들을 넘나들며 해설과 함께 소개하는 ‘조선사 입문서’인 셈이다. 저자 신병주는 ‘역사저널 그날’,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등을 진행하며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특히 조선사에 관심이 많아 조선의 문화, 인물, 왕실 등을 주로 연구하고 가르쳤다. 최근 조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면서 조선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도 자연스럽게 많아졌고 독자들과 직접 만날 일도 잦아졌다. 그러면서 독자들의 관심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가늠해보게 됐다. 조선에 대한 담론은 넓고 깊게 풍부해져가고 있으며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나 드라마 혹은 해설자의 입을 통해 역사를 접하는 경향이 강하다. 조선의 기록물들을 직접 읽으며 조선과 직접 대화하는 방식이 필요해 보였다. 또한 특정 인물과 사건에만 주목하기보다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의도를 담아 선정한 45편의 이야기는 조선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크고 작은 역사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특히 조선 시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해 조선사에 입문해보고 싶은 독자, 조선의 재미있는 미시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왜 조선 시대의 그림에는 담배가 자주 등장할까? 왜 경복궁은 ‘경복궁’일까? 홍순언은 어떻게 외교의 달인이 됐을까? 왜 세계지도 〈혼일강리도〉는 사각형일까? 조선사에는 얼마나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까? 『조선과 만나는 법』은 신병주 교수가 한국고전번역원의 ‘고전의 향기’ 코너에 2년간 연재했던 글들을 바탕으로 수정, 보완해서 꾸려졌다. 연재 당시 기획 취지는 조선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면서 역사의 뒷모습을 밝히는 기록들을 소개해보자는 데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으면서도 일반 독자들이 직접 찾아 읽기 힘든 글들을 수록하려고 애썼다. 『통문관지』, 『청구야담』, 『남명집』 등에서 글들을 추려냈고, 선정된 글들은 정확하고 현대적인 번역이 될 수 있도록 번역원의 연구원들이 여러 번 확인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여기에 저자 신병주의 구성진 입담이 덧붙여졌다. 과거와 현재가 만날 수 있도록 애썼다. 현재 이슈가 되는 사회문제들을 거론하기도 했고,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이야기들의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려고도 했다. 낯선 조선의 모습도 함께 담았다. 가령 정치계의 성추문 문제가 대두됐을 때는 어우동에 대해 쓴 글을 읽어보고, 여성의 정계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을 보며 『정조실록』과 『번암집』에 수록된 김만덕의 기록들을 다뤘다. 또한 선죽교의 핏자국이 정말 정몽주의 것인지,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던 논리는 무엇인지와 같이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역사의 진실도 밝히려고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조선의 기록물들을 풍부하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선이 남긴 자료들과 기록물들에 기반을 두고 서술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조선이 역사를 접하는 데 있어 사료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사람과 사건', '글과 기록', '문화와 공간', '왕과 왕실', '정책과 정치' 조선을 만나는 다섯 가지 방법 『조선과 만나는 법』은 조선의 사람, 사건, 글, 기록, 문화, 공간, 왕, 왕실, 정책, 정치 등 조선사 전반을 훑는다. 그리고 이것들을 다섯 가지 방식으로 조리 있게 정리했다. 1부 ‘사람 사는 곳에서는 늘 사건이 끊이질 않으니’에서는 이순신, 최부, 홍순원, 조식 등 조선의 사람들과 그들 주변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다룬다. 2부 ‘기록한 것과 기록된 것’에서는 『택리지』, 『양아록』 등 조선이 남긴 긴 글과 책, 그리고 집필 배경 및 내용을 담았다. 3부 ‘담배를 피며 한양을 거니는 하루하루’에서는 개고기 먹기, 담배 피기 등과 같은 조선의 문화와 ‘백사실’, ‘성균관’ 등 지금도 남아 있는 조선만의 공간들을 한 곳씩 살펴본다. 4부 ‘조선의 왕으로 살아간다는 것’에서는 왕과 왕실 속으로 들어가 본다. 매일 일기를 썼던 정조의 모습이나 5개월이나 걸려 국민 투표를 실시했던 세종의 치밀함 등을 만나며 조선 왕들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5부 ‘백성들의 괴로움이 내 아픔이고’에서는 조선에서 실시했던 정책들을 살펴본다. 조선 시대에는 대동법, 군역법, 헌법 등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여러 정책들이 시행됐다. 5부에서는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조광조의 답안지, 소급을 굽자고 거듭 제안했던 이산해의 정책, 이지함이 백성들의 곁에 머물었던 이유 등을 함께 보면서 각종 민본 정책들이 어떤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리 잡아갔는지 살펴본다. 이 책이 열어 보인 조선을 읽는 다섯 가지 문은 조선 시대에 관심은 많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한 독자들에게 유용한 틀을 제공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