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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_김수환 추기경
서문을 대신하여_'나'를 찾아가는 도정 제1부 군사독재의 시작과 유신시대 1. 30년 정치적 밤의 시작 2. 긴급조치시대 3. 전태일과 김상진 4. 유신정권의 개신교 탄압 5.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탄생 6. 인권변호사 그룹의 형성 7. 구속자가족협의회의 탄생 8.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탄생과 활동 9. 민주회복국민회의의 탄생 10. 자유언론, 내릴 수 없는 깃발 11. 김지하의 양심선언 12. 강제추방당한 선교사들 13. 원주선언 14. 3·1 민주구국선언사건 15. 민주구국헌장 발표 16. 감방 이야기 17. 가톨릭농민회와 함평고구마사건 18. 독재와 풍자 19. 시인들의 수난 20. 리영희 교수의 수난 21. 「우리의 교육지표」사건 22. 해직교수협의회의 활동 23. 동일방직 노조의 외침 24. 윤보선과 공덕귀 25. YH사건과 김경숙의 죽음 26. 크리스챤아카데미사건 27. 남민전 사건 28. 오원춘의 양심선언 29. 유신의 종말을 향하여 30. 잃어버린 역사---부마항쟁 31. 10·26 제2부 제2기 군부정권과 87년 6월항쟁 1. YMCA 통대선거저지대회 2. 1980년, 서울의 봄 3. 1980년 사북노동항쟁 4. 광주민주화운동 5. 1980년 언론대학살 6.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지식인 134인 선언 7. 학림·부림 용공조작사건 8. 한울회·금강회·아람회 사건 9. 오송회사건과 이광웅의 절규 10.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11. 창작과비평사의 수난과 시련 12. 김영삼 단식에서 2·12 총선까지 13. 삼청교육,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14. 점거농성투쟁과 학원안정법 파동 15.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 16. 민청련의 활동과 김근태의 투쟁 17. 노학연대와 민중민주운동 18. 불교계의 민주화운동 19. 민중운동의 폭발, 5·3 인천사태 20. 부천서 성고문사건, 그 처연한 투쟁 21. 세상에 공개된 보도지침 22. 공작정치와 건국대사태 23. 아아, 박종철 24. 6월항쟁, 그 장엄한 승리 25.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26. 교육민주화선언에서 전교조까지 27. 전향에서 준법서약서로 28. 김영삼과 김대중의 배신 29. 창조적 변혁의 주체로 30. 언론자유를 향한 도정 31. 민변의 탄생, 그리고 시민운동의 성장 32. 86·88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저자 후기 주요 사진 출처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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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전문 잊었는가 타는 목마름의 기억을 앞의 시는 1975년 봄 김지하의 원주 집에서 발견되었는데, 당시에는 아직 정서되지 않은 상태로 잡기장에 적혀 있었다. 그때 김지하는 감옥에 있었다.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지 27일 만에 또다시 투옥된 것이다. 아마도 김지하는 유신체제의 암흑이 온누리를 짓누르고 있던 어느날 갑자기 시상(詩想)이 떠올라 단숨에 이 시를 써내려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절절하다. 필경 이 시 역시 '남 몰래 숨죽여 흐느끼면서' 씌어졌을 것이다. 이 시는 1970년대 이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집회 때마다 낭독되었고, 언제부터인가 노래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이 시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때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기도 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비장한 결의를 다지게도 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하고 또 절규하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꾼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이 '한때''잠깐'이 아니라 30여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먼 옛날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빨리 그때 그시절을 잊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록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 타는 목마름의 기억을…… 누군가의 말처럼 용서할 수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 과거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연 민주화는 되었는가 1993년 2월 25일, 김영삼은 제14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오늘을 맞이하기 위하여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라고 자못 감격적으로 얘기했다. 그로부터 5년후 김대중도 비슷한 감회를 피력했다. 과연 문민정부 또는 그 이후 국민의정부 출범으로 민주화가 완성되었는가. 문민정부나 국민의정부 출범은 민주화의 결과였을 뿐 민주화의 자랑스런 결실도 민주화의 완성도 아니었다. 김영삼은 1990년 이른바 3당합당을 하면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그는 호랑이굴에 들어가 호랑이 등에 업혀 나왔다. 그것은 김대중도 마찬가지였다. 50년 만의 수평적인 정권교체라고 하지만, 실상은 유신본당을 자처하는 김종필과의 야합에 의한, 그리고 망국적인 지역구도를 이용한 집권이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자기한계와 정략 때문에 그 누구도 민주화가 민족사의 정통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선포하지 못했다. 반민주독재, 반민중특권의 편에 섰던 사람들에게 "그때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공개적으로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들 무리 또한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그동안의 죄과에 대하여 통회(痛悔) 한번 없이 민주화된 사회에 편승할 수 있었다. 용서하고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어물쩡 그렇게 된 것이다. 거꾸로 그들이 이 나라 이 공동체의 주류로 자처하면서, 오히려 민주화운동 세력을 제척(除斥)하려는 갖가지 음모까지 획책했다. 용공음해는 그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전가의 보도였고, 지금도 그들은 틈새만 생기면 그 칼을 들이밀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조국의 현실을 끌어안고 한번쯤 울어본 적도 없는 너희들이 과연 조국의 현실을, 공동체의 내일을 얘기할 자격이 있느냐."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는 아직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역사와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고 자식 앞에 떳떳하며 민족정기에 부합하는 삶인지 명시적으로 확인되거나 국민의 삶 속에 각인된 것이 없다. 어떤 것이 참다운 인간의 길인지가 대낮처럼 분명해야 하는데도 어물쩡 그렇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길을 내며 달려온 발걸음, 민주화 민중의 피와 땀과 눈물로 헤쳐온 것이 이 나라 민주화의 과정이었고, 또 그 길이었다. 그런 점이 이 나라 민주화가 더욱 빛나고 값진 이유이다. 0.75평 감방 안에서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신문이나 잡지를 구독할 수 있게 된 것은 정치권력의 시혜 때문이 아니라,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정치범과 양심수들이 피흘려 싸워왔기 때문이다. 법전에 조문으로만 남아 있는 인권보호조항들이 저절로 지켜져서 인권상황이 개선된 것이 아니다. 그 인권조항 하나하나가 살아숨쉬는 인권조항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피나는 투쟁이 있었던가.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 없이는, 법에 보장된 재판부기피신청조차도 힘이 들었다. 재판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쪽의 진실을 알리는 수단으로 개발된 것이 모두진술권(冒頭陳述權)이었다. 그 모든 것이 험한 수풀을 헤치고 길을 내며 달려온 민주화의 과정이었다. 정치권력과 그 앞잡이가 되어버린 재판부를 향하여 얼마나 많은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있었던가. 그렇게 하면서 인권의 길, 민주화로 가는 길을 내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사실을 사실대로 외칠 수 있는 권리가 아닌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양심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회, 할말 하며 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갈망해온 민주주의 사회이다. 할말을 했기 때문에, 진실을 외쳤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난과 희생을 겪었던가. 그런 점에서 민주화 30년의 역정은 '말'을 찾아나선 도정이기도 했다. 종국적으로 민주주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삶의 환경을 말한다.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각 부문의 사람들이 스스로 운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떨쳐일어나 싸워온 과정이 또한 민주화 30년이다. 그 싸움이 너무 길었고 또 치열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깊은 불신과 분열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요 길을 내준 것도 아닌데, 우리 민중이 스스로 길을 찾고 길을 내며 험한 수풀 헤치고 걸어온 길이 곧 민주화 30년인 것이다. 그것은 길고도 먼 길이었으며, 동시에 장한 길이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길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민족의 역사를 '나'와 '나 아닌 것'의 투쟁의 역사라고 설파한 바 있다. '나 아닌 것'으로부터 '나'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곧 올바른 민족의 역사라는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민족·민주·민중·통일을 추구하는 한 축과 반민족·반민주·반민중·반통일의 편에 서는 세력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전자가 '나'라면 후자는 '나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민주화의 역사는 투쟁을 통하여 '나 아닌 것'으로부터 '나'를 되찾아오는 역사인 것이다. 민주화와 함께 그 투쟁은 종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도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민주화투쟁의 과정은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첨예한 투쟁이었지만, 민주화 이후의 과제는 '더 큰 나'를 지향해나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 큰 나'는 무엇인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결구도 속에서의 자기소모를 하루속히 끝내고 세계평화, 인류의 진보와 행복을 위해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우리 민족이 기여, 헌신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독재 30년이 저지른 과오와 폐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인류진보와 세계평화를 위해 기여, 보비(補備)해야 할 이 나라의 유능한 인력을 '민주 대 반민주'라는 소모적인 내전상태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공동체는 너무도 오랫동안 자기소모를 거듭했고, 그 결과 내부분열과 갈등이 심화되었다. 어떻게 보면 투쟁은 쉽고 건설은 어렵다. 저항은 쉽지만 참여와 창조는 힘들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민주화는 되었지만 새로운 조국을 누가 어떻게 개혁하고 창조해나갈 것인지는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이제까지 민주화를 향해 달려온 저항의 에너지를 참여와 창조의 에너지로 치환해내야 한다. 이제 이 나라 이 공동체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되어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놓고 창조적인 고뇌를 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가 가졌던 '나 아닌 것'들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포용과 사랑으로 바꿔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미워한 사람들보다 품이 더 크고 가슴이 더 따뜻해야 한다. 그것이 개인적으로건 전체적으로건 '더 큰 나'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민주화는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초심의 기록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민주화운동이라고 해야 할지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외형상 민주화를 부르짖던 사람이 집권한 문민정부 이후를 민주화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국민의정부를 거쳐, 지금 우리는 참여정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는 동안 국민 사이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일정한 인식도 형성되었다. 솔직히 말해 국민 일반의 평판이 그렇게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폄훼는 대체로 무능, 부패, 분열, 부박(浮薄), 무책임, 무경륜 같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과 평판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그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의 열등감과 의도적인 질시도 배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평을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민주화만을 위하여 좌빙우고(左騁右考)하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시야가 좁고 경륜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그런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무엇보다 도덕성을 의심받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민주화운동의 기본정신이랄까 가장 내세울 수 있는 덕목은 도덕성이 아닐까 한다. '영광은 국민에게' 돌리고, '고난은 내가' 떠맡는 도덕성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나라를 걱정하고, 그다음에 나를 생각하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의 마음가짐이 이제까지 민주화운동 세력이 걸어온 길이 아니던가. 우리의 민주화운동은 무슨 반대급부 같은 것을 바라고 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점차 민주화운동 세력의 도덕성이 퇴색하거나 아예 없어지고 있다. 부패에 연루된 몰골을 보면 모골이 송연하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민주화운동 관련 보상법을 제정해놓고 재빨리 제가 먼저 보상금을 타먹는 것이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투어 보상금을 찾아먹는 것을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을 빌미로 현직(顯職)에 오른 사람들이 그럴 때는 더 눈꼴이 시리다. 내몫 찾아먹기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한다. 대개의 경우 그런 사람들이란 민주화운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것이 거의 없거나, 기회주의적으로 약게 처신한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에는 민주화가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을 때 막차로 편승한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사회와 국민의 존경은 사라지고 있다. 존경은커녕 손가락질을 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실제로 민주화운동 세력의 행태가 자신들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것이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한 자신들의 헌신과 수난을 헛되이 만들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을 때의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초심을 지킬 수 있다면 어찌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랴. 자성하고 또 자성할 일이다. 이 기록은 바로 그 초심의 기록이다. 초심을 되찾아오는 데 이 기록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 p.6~14 '서문을 대신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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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더 늦기 전에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기록을 정리해보라는 권고를 받아왔다. 사실 그것은 권고라기보다는 성화에 가까웠다. 가장 최근에는 우리시대의 가장 탁월한 시민운동 지도자이자 내가 경외하는 박원순 변호사로부터 ‘꼭 써야 한다’는 당부를 받았다. 그럼에도 한번도 그러마고 대답한 적은 없었다. 엄두가 나지 않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물어오면 “이건 이렇게 된 것이고, 저건 저렇게 된 것”이라고 대답해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톨릭 계통의 잡지 『생활성서』에 민주화운동의 역사라고 할까, 그런 글을 실어보라고 권고한 것도 그런 뜻에서였다. 그것이 거꾸로 내게 부담으로 돌아와 나는 1999년 2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역정, 민주화 30년」이라는 글을 연재했다. 이렇게 연재한 글을 한 권에 묶은 것이 이 책이다. 연재한 글 가운데서 몇 편을 뺐다. 그 대신 몇 편을 새로 추가했다. 뺀 것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이라는 보편성에 비추어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었고, 새로 써넣은 것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큰 흐름을 함께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30년 동안의 한국 민주화운동을 빠짐없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더구나 통사(通史)가 아니라 사건 중심으로 쓰다보니 그 경중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기억력은 쇠퇴한데다 자료는 부실할 수밖에 없으니 더욱 그랬다. 나름대로는 균형을 맞추고 민주화의 큰 흐름을 기록하려고 노력했지만, 여기저기 구멍이 많고 엉성하기 짝이 없다.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보완할 생각이다. 내친 김에 가능하다면 ‘내가 겪은 민주화운동’이랄까 민주화운동에 얽힌 이야기들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끝으로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안타까웠던 것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바로 이분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글을 잡지에 연재하는 동안에도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많은 분들이 타계했다. 한분 한분 작고하시는 것을 보면서 인생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굳이 바친다면, 이 작은 책을 민주화운동에 희생하고 헌신하신 먼저 가신 분들께 바치고 싶다. 2005년 5월 김정남 근지 --- 저자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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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그 역정의 기록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꾼 시절이 있었다. 30여년이나 계속된 군부독재의 시대는 한편으로는 민주화운동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진실, 광장에 서다』(부제: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는 5·16 군사쿠데타부터 6월항쟁까지의 군부독재와 민주화운동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듣고 참여해온 당사자가 그 시대를,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인생 역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와 비사 저자는 이 책에서 민주화운동 30년의 통사를 기록하기보다는 좀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 시대에 접근한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증언, 시위에서 외친 구호, 그때 발표된 성명과 선언문, 재판 관련 기록(상고?항소이유서, 최후변론, 모두진술) 들을 충실하게 모아 그때의 시대 상황을 그려낸다. 우리는 권인숙의 증언을 읽으며 저들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분노하고, 광주민중항쟁의 기록을 읽으며 우리 자신을 자책하고, 6월항쟁의 진행과정을 읽으며 벅찬 감동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김지하의 양심선언 발표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조작 발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에서 김현장의 자수에 얽힌 뒷이야기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사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의 온갖 뒷바라지를 다했던 저자이기에 가능한 내용이다. 여기에 당대를 상징하는 시와 시조들을 곁들여 딱딱한 역사서를 넘어 시대의 자서전을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화운동에 이바지한 사람, 군부독재에 앞장선 사람들을 가능한 한 꼼꼼히 기록하여 시대와 역사의 준엄함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민주화운동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사람들을 그려냄과 동시에 역사의 뒤편을 묵묵히 지켜온 이름없는 이들을 재조명했다. 구체적인 접근 방식과 재미난 뒷이야기, 그리고 이를 힘있게 서술한 저자의 문체로 인해 『진실, 광장에 서다』는 민주화운동 시대를 살아온 중장년층뿐 아니라 과거사에 관심이 적은 젊은 세대들까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사실이나 문건들은 민주화운동의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재야민주화운동의 대부, 김정남 '해위 윤보선의 뒤에 있었다. 김영삼의 뒤에도, 이돈명?홍성우 변호사의 뒤에도, 함세웅 신부의 뒤에도, 창작과비평사에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에도 항상 있었다. 찾을 수는 없지만, 그는 있어야 할 때, 있어야 할 곳에 항상 있었다.'(고은 「김정남」, 『만인보 12』, 창작과비평사 1996, 190면 참조) 재야진영에서는 그를 '윤신부'라 불렀고, 가톨릭에서는 '남선생'이라 불렀다. 군부독재가 끝난 후,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재야민주화운동의 대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의 전과정에서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고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자신을 앞에 내세우지 않고 익명의 삶으로 만족했다. 여기서 말하는 그가 바로 김정남 선생이다. 저자는 1964년 6·3 사태 때 배후의 인물로 구속된 이래, 30여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막후에서 주도했다. 민주화운동단체 결성에 참여했으며, 각종 성명서 작성, 구속인사에 대한 변론자료 준비와 구명운동, 구속자 가족들에 대한 지원, 해외 지원세력과의 연대, 수배자에 대한 은신처 마련과 수발 등으로 민주화운동을 뒷받침했다. 민주회복국민회의와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의 결성과 활동, 양심선언운동의 제창,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사건과 인혁당사건의 진상조사 및 폭로, 김지하 양심선언 발표, 민주구국헌장 작성과 발표, 보도지침의 폭로를 주도했다. '김대중·김영삼 8·15 공동성명', 1987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발표한 성명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 김지하 시인을 비롯해 수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변론요지서 등을 작성했다. 6?29 선언 이후에는 평화신문의 창간을 주도하고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김영삼정부 때 대통령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그밖에도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의 일본어판 출간을 주도했고, 평화신문에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태의 『남부군』을 기획했다. 책의 주요 내용 (1) 이부영이 교도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다 당시 경찰은 빗발치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진상조사 요구에 못 이겨 두 명의 경찰관에게 그 죄를 덮어씌웠다. 이런 와중에 저자는 이부영으로부터 두세통의 편지를 한꺼번에 받았다. 그 편지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범인이 조작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었다. 고문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두 경찰관은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그들이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있다는 소식을 당시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이부영이 듣게 되었다. 기자 출신이었던 이부영은 교도소라는 제한된 상황 속에서 집요하게 취재했다. 이사람 저사람에게서 들은 얘기를 취합해 편지를 쓰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또 편지를 썼다. 그렇게 쓴 편지를 교도관 전병용이 수배중인 저자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얼마 뒤 전병용은 검거되었다. 저자는 편지 내용의 사실 여부를 다방면으로 조사했고, 결국은 전후상황을 모두 확인했다. 그리고 나서 고영구 변호사의 부인 황국자 여사와 딸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과 함세웅 신부에게 그 사실을 발표해주십사 부탁했다. 그렇게 그 성명이 발표된 것이다.(본문 563~84면 참조) (2) 교도관 전병용이 빼낸 김지하의 양심선언 김지하는 1975년 2월에 석방되었다 27일 만에 다시 구속되었다. 아마 김지하가 인혁당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었고, 인혁당사건 진상보고서를 작성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구속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정희정권은 인혁당 관련자 여덟명을 전격적으로 처형했고, 공소장변경을 신청해 김지하마저 재판이라는 형식을 빌려 죽이려는 낌새를 보였다. 이때 찾아낸 묘수가 바로 재판부기피신청이었다. 김지하를 담당한 판사가 바로 인혁당 관계자들을 재판한 판사였다. 그래서 모든 채널을 동원해 김지하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재판부기피신청을 성사시켜 위기의 순간을 한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시간을 벌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김지하의 양심선언을 국내외에 공개해 광범위한 구명운동을 벌여 김지하를 보호하자는 계획이었다. 이때 교도소 내에서 김지하에게 종이와 필기구를 건내준 사람이 교도관 전병용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김지하는 양심선언을 무사히 작성할 수 있었고, 전병용을 통해 그 초고가 저자에게 전달되었다. 이렇게 작성된 초고를 조영래가 정리하고, 정리된 원고는 또다시 김지하에게 전해졌다가 되돌아나왔다. 그리고 작성과 반출의 경위를 짜맞추었다. 작성경위는 김지하의 옆방에 수감되어 있던 학생이 항소이유서를 쓰다 남은 종이와 필기구를 김지하에게 전달한 것으로 하고, 반출경위는 김지하가 수감된 사동(舍棟)의 청소를 담당하던 기결수가 반출하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연출했다. 양심선언은 일본 '가톨릭 정의와 평화 협의회'를 통해 국내외에 발표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지하 어머니의 반대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그해 8월 4일 '가톨릭 정의와 평화 협의회'에서는 김지하의 양심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본문 119~34면 참조) (3) 위기에 빛난 묘수, 재판부기피신청과 모두진술권 법에 보장된 인권보호조항조차 희생과 투쟁 없이 얻어진 것은 아니다. 재판부기피신청의 경우 김지하의 재판을 연기시키기 위해 생각해낸 묘수였다. 모두진술권도 마찬가지였다. 증인채택과 증거보존신청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정에서 김근태의 고문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찾아낸 형사소송법상의 규정이 바로 모두진술권이었다. 이 규정을 들어 김근태의 고문폭로 모두진술이 이루어졌고, 이 땅에 더이상 고문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각성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4) 광고해약사태에 맞서 시민들이 동아일보에 게재한 격려광고 동아일보를 위해 성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떳떳해지기 위해서 성금을 낸다.(일용직 노동자) 배운 대로 실행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이렇게 광고한다.(서울법대 제23회 동기생) 동아, 너마저 무릎 꿇는다면 진짜로 이민갈 거야.(이대생 S) 직필은 사람이 죽이고, 곡필은 하늘이 죽인다.(부산의 어느 기자)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여백을 삽니다.(밥집 아줌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돈명 변호사) 진실, 광장에 서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지금 외형상으로는 민주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민주화는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진실, 광장에 서다』는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민주화운동 30년을 되돌아보는 초심의 기록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추천사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런 때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에게는 그때의 그 절실하고 순수했던 초심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 이 책은 1999년 2월부터 2004년 8월까지 가톨릭잡지 『생활성서』에 연재된 「역정, 민주화 30년」을 수정·보완하고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본문 486~94면)과 6월항쟁 이후 부분(본문 585~661면)을 새롭게 집필해 완성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