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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밤섬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내 고향 밤섬 배 목수들의 마을 반만 섬인 밤섬 식수로 쓴 한강 물 밤섬을 지켜 주는 부군당 소나무 숲 대피 훈련 짚 더미에 숨긴 쌀 해방의 총소리 밤섬에서 겪은 전쟁과 평화 전쟁이 터지다 피란 호기심에 본 끔찍한 장면 북한군과 수류탄 밤섬에 울려 퍼진 비명 배 목수가 되다 한강 개발 속의 밤섬 사라진 밤섬 와우산 5계단 마을 재개발 속에서도 보존된 부군당 다시 살아난 밤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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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지도로 복원된 밤섬 마을
밤섬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는 자료는 희미한 사진 몇 장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일용 할아버지는 떠난 지 50년 가까이 된 밤섬 마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덕분에 배 짓던 너믄둥개, 빨래하던 돌방구지, 부군당이 있던 당잿말 등 주민들의 기억 속에만 있던 밤섬 곳곳이 그림 지도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봄가을에는 배 만들고, 겨울에는 얼음 뜨고 밤섬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주로 배 만드는 일을 했지만, 겨울에는 꽁꽁 언 한강에서 얼음을 떠내 팔았습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잠실에서 생산된 배추나 열무를 배로 옮기는 일도 했답니다. 그 밖에도 얼음낚시, 모래채취, 장어잡이 같은 많은 일거리들이 있었습니다. 밤섬 사람들의 주업인 배 짓기 밤섬에는 대대로 배 목수들이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배 목수이면 아들도 직업을 물려받아 배 목수가 되고는 했지요. 배 만드는 데 필요한 나무는 강 건너 마포와 용산 목재소에서 가져 왔습니다. 나무판을 자르고 이어 붙여 배 몸통을 만들고 나면 얇게 떠 낸 나무 껍질로 배의 틈새를 메워 물이 새지 않게 했습니다. 배를 다 짓고 나면 물가로 끌고 가 띄웠습니다. 이때 큰 밧줄로 배를 묶어서 끌었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함께 줄을 당겼습니다. 밤섬 폭파하던 날 밤섬은 모래밭인 여의도와 달리 단단한 암반으로 된 섬이었습니다. 여의도 개발을 위해 엄청난 양의 돌과 자갈이 필요했던 서울시는 밤섬을 폭파하고 거기서 나온 석재를 이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오랜 세월 이어진 밤섬과 밤섬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살아난 밤섬 밤섬이 폭파된 후 그 자리에는 상류에서부터 모래와 흙이 떠내려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땅에 온갖 식물들이 자라고 철새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밤섬은 매년 평균 4,400제곱미터씩 넓어져 원래보다 6배나 큰 섬이 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람사스 습지 위원회에서 밤섬을 세계에서 하나뿐인 도심 습지로 지정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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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밤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이 살았던 밤섬 한강 한가운데에는 밤섬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철새들이 찾아드는 도심 속 습지이지요. 그런데 이곳은 원래 오래전부터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밤섬 마을에는 4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고, 그 중에는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배 목수들이 많았습니다. 잊혀 간 밤섬 마을 그런데 이 밤섬은 1968년 여의도 개발 과정에서 폭파되어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그곳에 살던 주민들도 부근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지요. 새로 개발한 여의도에 아파트와 여러 건물이 화려하게 들어서는 동안 밤섬은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습니다. 마지막 밤섬 배 목수 이일용 할아버지 이 책의 저자 이동아 선생님은 2005년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 열린 밤섬 부군당 굿을 보러 갔습니다. 부군당 굿은 밤섬 주민들이 옛날부터 매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 온 마을 행사였습니다. 이곳에서 저자는 배 목수였던 이일용 할아버지를 만났고,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밤섬 마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주민들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사라졌던 밤섬 마을이 이일용 할아버지가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 서서히 다시 나타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