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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곳이나, 그러나 여기
2. 현실은 역사의 패총이다 3. 혼자 하는 게임 4. 슬픈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5. 심해 속의 불꽃 6. 찬란한 아침 |
尹靜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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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양 소년들은 동양 여자를 조그맣다고만 생각했을까. 혜나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데 …. 어쨌거나 그때 그는 남자 품에 안겨 흥얼거리는 동양 여성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났다. 혜나의 손바닥이 그의 허벅지 털을 비끼듯 쓰다듬는다. 그의 터럭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전에 그 털은 언제나 그에게 외로움만 알려왔다.
남자들은 섹스 없이 35일을 넘기게 되면 거의 미친다고 한다. 한달이 지나면 자신의 몸은 털에게 말을 시킨다. 쓰다듬어줄 손이 필요해. 일이 없을 때, 극도로 초조할 때 그는 거의 날마다 수음을 했다. 섬으로 모의 훈련을 나갔을 때 저격수 대장은 말했다. 남자는 평생토록 수음에서 벗어날수 없어. 여자와 살아도 그래. '임무 수행 도중에도 그런 충동을 느낍니까? ' '때때로.' '주로 언제?' '내 경우론 방아쇠를 조준하고 있을 때, 상대방은 아무것도 모른채 내 조준망으로 들어올 때 ….' '그땐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던대요? 상대는 모르는데 혼자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 '그 감정이 비슷해. 똑같이 혼자 처리하는 일이니까.' 혜나의 손이 마침내 그의 등을 감아 조인다. 그는 더 참지 못하고 서둘러 혜나의 몸 속으로 파고든다. 둘이서 하는 일은 외로움이 없어서 좋다. --- p.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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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속의 슬픈 사람들, 그들의 찬란한 아침
작가 윤정모는 지금까지 여성 문제, 분단 현실, 농촌 문제, 노동 문제 등의 사회 현실에 천착해 왔다. 그 연장선 상에서 작가는 역사적 공간을 아일랜드로 옮겨놓았다. 지구상에 아직까지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두 곳, 아일랜드와 한국. 800년 동안의 영국 식민지배에 이어 종교와 민족 문제로 남북이 분단된 아일랜드의 역사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라는 우리의 역사와 너무나 닮아 있다. 게다가 처음 북한의 기근 사태가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아일랜드 대기근에 비유한 글들을 쓰거나 한반도를 일컬어 '동양의 아일랜드'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아일랜드에는 한국처럼 이산가족이 많으며, 얼싸안을 듯 사람을 환대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도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1921년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영국의 통치 하에 있는 북아일랜드에 대하여 통일 공화국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아일랜드 공화군(IRA). 그 IRA 요원인 테러리스트 '숀'이 우연히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영국 유학생 '혜나'가 강간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녀를 구출해 주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이후 혜나는 조금씩 자신의 심리적 고통과 방황으로부터 탈피해 역사 문제에 눈떠가고, 그림자 같기만 하던 숀에 대한 혜나의 집착은 서서히 구체적인 사랑의 실체로 모아진다. 한편 10년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한 바 있는 아일랜드 출신의 신부이자 숀의 사촌인 '오닐'은 이들을 도우며 소설에서 한국과 아일랜드의 역사를 연관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혜나가 잠깐 다녀간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오후일'은 혜나의 역사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는 이 소설 속에서 다시 <깊은 강 저쪽>이라는 소설을 쓰는데, 자신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독립운동 당시 중국에서 한국의 독립투사들을 지원했던 아일랜드인 조지 L. 쇼와 그의 후손의 자취를 좇고 있었다. 혜나가 오후일의 작업에 조금씩 말려듦과 동시에, 숀은 차츰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어쩌면 조지 L. 쇼라는 과거의 인물이 그녀에게 숀이라는 현재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혜나는 오후일의 일을 돕는 한편, 위기에 빠진 사랑하는 숀의 피신을 수행하기 위해 로마 바티칸을 거쳐 중국으로 입국하게 된다. 그곳에서 숀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혜나가 디자인한 방한용 점퍼들을 가지고 어느 독지가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고, 혜나는 그들을 기다리며 새 천년 초하루 이른 아침 압록강 단교에서 북한 땅 산봉우리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이 소설의 긴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북한 땅 그 산봉우리에서 피어오르던 "해는 긴 햇살을 내뻗쳐 끊어진 다리에 철썩 걸쳐놓는다. 순식간에 다리가 이어진다. 이쪽과 저쪽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가고 달려온다. 남녘과 북녘 아이들, 모두가 귀여운 알몸들이다. 마침내 햇살이 강 전체에 마당으로 깔리고 아이들이 그 위에서 공놀이를 한다. 아이들의 손끝에서 오고가는 그것은 해,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해다." 혜나가 맞은 새 천년 찬란한 아침은 이제 그 현실에서 무르익은 화해와 새 천년 겨레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일랜드에도 평화적 해결이 도래하기를, 지구상의 분단의 아픔과 폭력이 자취를 감추기를 기다리는 작가의 염원을 이 책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