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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리커버)
정치인류학 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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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장 코페르니쿠스와 야만인
제2장 교환과 권력: 인디언 추장제의 철학
제3장 독립과 외혼
제4장 아메리카 인디언의 인구론적 요소들
제5장 활과 바구니
제6장 인디언을 웃게 만드는 것
제7장 말하기의 의무
제8장 밀림의 예언자
제9장 여럿이 없는 “하나”에 대하여
제10장 원시사회에서의 고문
제11장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부록: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저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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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피에르 클라스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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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Clastres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인류학자이다. 그는 파리에서 태어나 소르본느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그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알프레드 메트로의 영향을 받아 인류학(남아메리카 민족학)을 전공하였다. 클라스트르는 1963년에 구아야키 인디언에 대한 현지조사에 나선 이후 1960년대의 대부분을 파라과이와 베네수엘라 등에서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연구하였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 그는 1971년부터 파리의 고등연구원(EPHE) 제5분과에서 연구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그동안의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정치인류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국가에 대항하는 사회』(19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인류학자이다. 그는 파리에서 태어나 소르본느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그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알프레드 메트로의 영향을 받아 인류학(남아메리카 민족학)을 전공하였다. 클라스트르는 1963년에 구아야키 인디언에 대한 현지조사에 나선 이후 1960년대의 대부분을 파라과이와 베네수엘라 등에서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연구하였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 그는 1971년부터 파리의 고등연구원(EPHE) 제5분과에서 연구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그동안의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정치인류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국가에 대항하는 사회』(1974)를 내고, 자신도 창간 멤버인『리브르Libre』지에 새로운 연구 주제인 ‘원시사회의 전쟁론’을 발표하기 시작한 직후인 1977년 7월에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과 당시를 풍미하던 맑스주의 인류학을 극복하고 원시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1970년대 프랑스 지식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힌다. 지은 책으로는『구아야키 인디언 연대기』(1972),『위대한 말하기』(1974) 가 있고, 사후에 유고집으로 나온『폭력의 고고학』(1980)이 있다.
역자 : 홍성흡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동경대학 문화인류학연구실의 연구원을 거쳐 1998년부터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일본문화, 농민, 조직과 개인, 전통과 정체성 등이다. 저서로는?시화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공저),『한일사회조직의 비교연구』(공저),『지역전통과 정체성의 문화정치』(공저) 등 여러 권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일본 산촌의 지역 활성화운동에 나타난 전통의 재생 양상」, 「벼에서 국화재배로―산업농 체계하에서의 일본 전업농의 적응 전략」, 「유통시장의 새로운 분화와 중소상인의 대응―광주 말바우시장의 사례를 중심으로」, 「지방 정기시장의 변화과정과 지역사회―장성 황룡장을 중심으로」 등 여러 편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324g | 147*215*15mm
ISBN13
9788987350813

책 속으로

앞에서 본 것처럼 삼림 지역의 인디언 공동체는 정치적 독립을 핵심적 특징으로 하는 자율적 단위이다. 그렇다면 이 광대한 지역에 상호관계가 매우 부정적인, 다시 말해 전쟁이 잦은 다수의 조직이 병존하고 있다는 것을 상정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두 번째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원시사회에 대해 오직 정치적 차원에서만 나타나는 “원시성”의 징표인 분산된 사회라는 부당한 평가가 내려지는 것 외에도, 열대림이 인디언 부족 집단들에 대해 민족학은 또 다른 하나의 추가적인 특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 p.69 '제3장 독립과 외혼‘ 중에서

출판사 리뷰

원시사회는 ‘결여’의 사회인가? 서구의 편견의 산물인가?
우리는 원시사회를 문자도, 역사도, 국가도 없는 사회이며 구성원들이 겨우 먹고살 정도의 식량을 확보하고 있어 그야말로 근근이 버텨나가는 소위 ‘생계경제’ 사회라고 알고 있다. 바로 정복자인 서구인들이 원시사회를 바라본 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원시사회를 서구의 부정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원시적인primitif’이라는 말은 그 사회가 진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류의 최초 단계에 정지해서 머물러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서구인들은 원시사회를 서구인이 결정적으로 뛰어넘어버린 역사 단계의 시대착오적 잔재로밖에 생각하지 않으며, 서구의 문화야말로 원시사회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문화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서구인은 원시사회를 부정적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원시사회에 대한 이러한 서구 사회의 부정적이고 편향된 잣대를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 이것이 바로 클라스트르가 정치인류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서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1934~1977)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과 당시를 풍미하던 맑스주의 인류학을 극복하고 원시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1970년대 프랑스 지식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힌다. 그는 1960년대부터 서구의 편견을 극복한 논고들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에드워드 사이드의『오리엔탈리즘』(1978)에 앞서는 선구적인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천개의 고원』(1980)에서 국가 장치에 대해 논의하면서 ‘피에르 클라스트르를 기리고’ 있다. 또한『오늘의 프랑스 사상가들』(1985)에서 장 프랑수아 스크립차크는 클라스트르를 원시사회에 대한 관찰자이자 진정한 철학자―연구 대상에 자신의 선험적인 도식을 투사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연구 대상으로부터 출발해 그것을 존중하고 놀라워하며 자신에게 질문했다는 점에서―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클라스트르는 1963년에 구아야키 인디언에 대한 현지조사에 나선 이후 1960년대의 대부분을 파라과이와 베네수엘라 등에서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연구하였는데, 클라스트르는 이러한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정치인류학의 본질적인 문제, 즉 국가로 표상되는 정치권력의 문제를 원시사회를 대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클라스트르는 경험적으로 기술된 자료를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그것들이 선입관을 갖고 제시되었다는 것을 논증한다. 그는 우리에게 원시사회의 문화를 우리 자신의 가치에 근거해서 보지 말고, 그 문화 자체에 입각해서 볼 것을 권고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세워온 것은 모두 선험적으로 우월하다고 판단된 자신의 문화에 입각해서 다른 문화를 판단하는 자민족 중심주의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의 첫 논문인 「교환과 권력: 인디언 추장제의 철학」(1962, 본서의 제2장)에서부터 그가 이 책을 발간하기 위해 쓴 논문인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1974, 본서의 제11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10여 년에 걸친 연구의 종합으로, 서구의 자민족 중심주의에 의해 원시사회에 부과된 불완전함, 미성숙함, 결여라는 낙인을 지우려는 클라스트르의 치밀한 논리와 끈질긴 의지가 일관되게 드러나고 있다.

클라스트르의 논의를 따라가보자.

1. ‘문자 없는 사회’가 아니라 ‘불평등한 권력을 거부하는 사회’이다
서구 사회와 원시사회를 비교할 때 가장 일반적인 척도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문자의 유무이다. ‘문자 없는 사회’의 열등성과 ‘문자를 가진 사회’의 우월성이라는 아주 익숙한 대비. 그러나 문자 없는 사회가 문자 사회보다 덜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클라스트르는 “그들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만큼 깊고,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들이 자신들의 경험에 대해 숙고하고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으리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더 나아가 원시인에게 문자가 없다는 사실을 클라스트르의 지속적이고도 근본적인 물음과 연결시켜 다음과 같이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원시인에게 문자가 없다는 것은 불평등한 권력을 자기들 내부에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과가 아닌가? 그것은 사회를 문자를 알아서 명령하는 자와 문자를 몰라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로 나누지 않겠다는 거부의 표시가 아닌가?

2. ‘역사 없는 사회’가 아니라 ‘또 하나의 다른 역사’이다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보하며 모든 사회는 야만 상태로부터 문명 상태로 나아간다는 뿌리 깊은 자민족 중심주의적 편견은 영구적으로 ‘야만 상태’에 머물러 있는 원시사회에 대해 ‘역사 없는 사회’라는 또 하나의 ‘결여’의 표지를 새겨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처음부터 서구적 모델의 보편성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역사는 다양한 의미로 설명될 수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에 따라 변화한다. 클라스트르는 레비스트로스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진적 문화와 정태적 문화 사이의 대립은 무엇보다도 초점을 맞추는 방법의 차이로부터 생긴다.”

3. ‘생계경제’가 아니라 ‘최초의 여가 사회’이다
서구 사회는 ‘생계경제’라는 용어로 원시사회의 경제구조를 설명하면서, 원시인들에게 기술적인 낙후함과 천성적인 게으름으로 인해 끊임없이 식량을 구하지만 잉여를 생산할 수 없어 기아에 허덕인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리고 원시사회가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능력이 없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대부분의 지역은 수렵, 어로, 채집을 생업으로 하였고 수렵과 어로를 통해 식량을 얻는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동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높은 사망률, 열악한 기후 조건, 곤충과 야생동물과의 싸움, 희소한 식용식물 등으로 인해 많은 인구가 유지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사실 원시인들의 기술 수준은 그들의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발전되어 있었고,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게으름’은 에너지의 필요를 완전히 충족시키고 나면 그 이상의 것을 생산할 필요가 없었던, 달리 말해 어떤 목적도 없는 노동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하거나 스스로를 소외시키도록 강요받지 않았던 원시인들이 누리는 자발적 특권이었다. 그리고 클라스트르는 남아메리카 열대림에 많은 인구가 “거주할 수 없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터무니없는 것이며, 오히려 이곳의 급격한 인구 감소는 서구의 정복에 의한 노예사냥과 세균 감염 때문임을 세밀하게 논증하고 있다.
클라스트르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예는 경제에 관한 인디언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돌도끼에 비해 철제 도끼가 여러 이점을 지닌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똑같은 시간을 들였을 때 후자는 전자의 거의 10배의 작업을 할 수 있고 거꾸로 같은 일을 전자의 10분의 1의 시간에 마칠 수 있다. 그리고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도끼가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탐낸 이유는 같은 시간에 10배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10분의 1의 시간에 끝마치기 위한 것이었다.”(본문 242~243쪽) 원시인들은 살아가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지 생산하기 위해 살지는 않는 것이다.
‘생계경제’라는 용어에서 서구에 의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그 의미를 순수하게 시장이 없고 잉여 생산이 없는 경제라는 데에만 한정한다면, 우리는 원시사회를 “최초의 여가 사회이자 풍요로운 사회”라고 표현한 살린스M. Salins의 말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사회는 보다 많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지 않는 시간을 유지하거나 늘리기 때문에 진정으로 “여가 사회”인 것이다.

4. ‘국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이다
원시사회는 국가 없는 사회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옳은 이 사실판단은 하나의 가치판단을 은밀히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원시사회가 모든 사회와 마찬가지로 갖추고 있어야 할 것, 즉 국가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시사회는 불완전하고, 국가로 질서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사회가 아니며, 국가의 결여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국가를 이룰 수 없는 사회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러나 클라스트르는 원시사회는 국가를 이루지 못한 사회가 아니라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 즉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바로 클라스트르 사상의 핵심이 있다. 원시사회는 사회?문화?정치?경제 조직적인 모든 측면에서 국가를 항구적으로 거부하는 사회이다.
우선 원시사회에서는 국가의 본질인 명령과 복종,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강제적 위계질서를 찾아볼 수 없다. 원시사회의 우두머리인 추장은 우리가 말하는 통상적 의미에서의 ‘우두머리’와는 다르다. 즉 그는 “명목상의 추장”, 즉 전시를 제외하고는 권력을 지니지 않는 추장이다. 추장에게 주어지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위신뿐이다. 이러한 위신은 권력으로 전화될 수 없으며, 만약 그가 권력을 추구한다면 사회는 그를 제거한다. 원시사회는 사회 자체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집단의 의지로 평등 사회를 유지한다.
원시사회는 사회 구조적으로 불평등이 출현하는 것을 금지한다. 수많은 원시사회에서는 사회의 젊은 구성원이 성인이 되었음을 허가하는 통과의례 제도에서 입문자의 신체에 고문을 가하는데, 이러한 고문은 사회 구성원의 모든 신체에 똑같이 다음과 같은 각인을 새겨 넣는다.

너희들은 우리와 같은 무리에 속한다.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와 같고 너희들은 서로 같다. [……] 너희들 각각이 우리들 사이에서 똑같은 공간과 장소를 차지한다. [……] 너희들 중 그 누구도 우리보다 못하지 않고 낫지도 않다. 그리고 너희들은 그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너희들의 몸 위에 남긴 동일한 각인이 그것을 너희들에게 계속 기억시킬 것이다.(본문 230쪽)

이것이 바로 불평등을 뿌리내리고 보장하는 법, 즉 국가의 법에 대항하기 위한 원시사회의 법이다.
이렇듯 명령과 복종이라는 강제가 없는, 불평등을 금지하는 사회에서는 남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가지며 더 낫게 보이고 싶은 욕망, 즉 권력의 욕망인 소유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불가능해진다.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불평등의 금지가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불평등의 금지로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클라스트르는 자신의 본질적인 명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시사회에서 경제적인 것이 확연히 구별되고 자율적인 영역으로 정의되며, 생산 활동이 그 노동의 성과를 향유하는 자들에 의해 강제되고 계산되어 소외된 노동이 되는 것은 사회 자체도 이미 지배자와 피지배자, 주인과 하인으로 분화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며 원시사회를 파괴하게 될 요소들인 권력과 권력에 대한 경의가 작동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본문 245쪽)

이렇게 해서 우리는 원시사회에 대해 정치권력의 결여라는 무능력함으로 지적된 것이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권력을 갖지 못하게 해서 타인의 노동력을 강탈하지 못하게 하려는 원시사회 자체의 정치적 의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편견의 극복, 야만인에서 우리로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사회적 힘들 사이의 투쟁 없이 정치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맑스주의를 부정하고, “권력은 노동에 선행하며, 경제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의 파생물”(본문 246쪽)임을 밝힘으로써 원시사회에 대한 분석에 진정한 전환을 가져왔다. 이로써 맑스주의가 역사상에 나타난 사회구성체 모두를 설명하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우리에게는 정치권력의 기원에 관한 문제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상이한 문화에 대한 관찰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사회를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는 서구의 편견이 만들어낸 원시사회에 대한 오래된 선입관(고대성을 정의하는 기준)이 어떻게 극복되고, 또한 그러한 선입관이 무너진 자리에서 드러나는 원시사회는 어떤 모습인지가 다양한 각도에서 비춰진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문화의 기초와 가치를 비판적으로 더 잘 평가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클라스트르의 논의는 최근 우리나라의 인문사회과학계의 중요한 관심 영역으로 부각된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에 대한 논의, 아시아적 근대에 대한 논의, 탈식민성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우리로 하여금 한층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천착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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