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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덕행(德行)
2. 언어(言語) 3. 정사(政事) 4. 문학(文學) 5. 방정(方正) 6. 아량(雅量) 7. 식감(識鑒) 8. 상예(賞譽) 9. 품조(品藻) 10. 규잠(規箴) 11. 첩오(捷悟) 12. 숙혜(夙惠) 13. 호상(豪爽) 14. 용지(容止) 15. 자신(自新) 16. 기선(企羨) 17. 상서(傷逝) 18. 서일(棲逸) 19. 현원(賢媛) 20. 술해(術解) 21. 교예(巧藝) 22. 총례(寵禮) 23. 임탄(任誕) 24. 간오(簡傲) 25. 배조(排調) 26. 경저(輕?) 27. 가휼(假譎) 28. 출면(黜免) 29. 검색(儉嗇) 30. 태치(汰侈) 31. 분견(忿?) 32. 참험(讒險) 33. 우회(尤悔) 34. 비루(?漏) 35. 혹닉(惑溺) 36. 구극(仇?) 해설 산정자(刪定者)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王世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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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혜(謝?)는 함부로 사람들과 교유하지 않아서 집에 잡된 손님이 없었다. 그는 때때로 혼자 취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 집에 들어오는 것은 그저 맑은 바람이고, 나와 마주하고 술을 마시는 것은 오직 밝은 달이다.”
왕방경(王方慶)이 정부(政府)에 있을 때, 그의 아들이 미주(眉州)의 사사참군(司士參軍)이 되었다. 무후[武后 :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일찍이 물었다. “경은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어찌하여 아들을 멀리 보냈소?” 왕방경이 대답했다. “여릉왕[廬陵王 : 중종(中宗) 이현(李顯)]은 폐하의 사랑하는 아드님인데도 지금 오히려 멀리 계시거늘 신의 아들을 어찌 감히 가까이 둘 수 있겠사옵니까!” 양경원[羊敬元 : 양흔(羊欣)]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과묵했으며, 담소에 뛰어나고 행동거지가 훌륭했다. 그의 부친 양불의(羊不疑)가 오정현령(烏程縣令)으로 있을 때, 왕헌지(王獻之)는 오흥태수(吳興太守)로 있었다. 양경원은 당시 열두 살이었는데, 왕헌지는 그를 알아보고 아껴 주었다. 왕헌지가 한번은 여름철에 오정현으로 들어갔는데, 양경원이 새 명주 속옷을 입고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의 속옷 몇 폭에 글씨를 써 놓고 떠났다. 양경원은 본래 글씨에 뛰어났는데, 이 일로 인해 글씨가 더욱 훌륭해졌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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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시대 현종실록자본 ≪세설신어보≫(연세대학교 소장)를 저본으로 해 번역한 위의 ≪세설신어보≫ 완역본 중에서 ≪하씨어림≫에서 채록한 고사 575조 가운데 321조를 수록했다. 따라서 이 책은 ≪세설신어보≫의 선역(選譯)이면서 ≪하씨어림≫의 선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설신어≫와 그의 속서 ≪하씨어림≫ 중국 위진남북조 송나라의 문인 유의경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는 후한 말에서 동진 말까지 실존했던 700여 명에 달하는 인물의 독특한 언행과 일화를 수록해 놓은 필기소설집이다. 당시의 문학·예술·정치·학술·사상·역사·사회상·인생관 등 인간 생활의 전반적인 면모를 담고 있어, 중국 중고시대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하다. 그 결과 후대의 여러 작가들이 본받는 지표가 되어 당나라 때부터 민국 초까지 역대로 속서들이 많이 지어짐으로써, 중국 지인소설사상 이른바 ‘세설체 문학’이라는 영역을 형성했다. 명대 하양준의 ≪하씨어림(何氏語林)≫은 ≪세설신어≫의 주요 속서 가운데 하나다. 체재는 ≪세설신어≫를 답습하되 <언지(言志)>와 <박식(博識)> 두 편을 추가했다. 그 시대 범위는 양한대부터 송·원대까지며, ≪세설신어≫에 수록된 고사는 제외되어 있다. 또한 ≪세설신어≫의 유효표(劉孝標) 주를 모방해서 각 조 밑에 다른 책의 기록을 인용해 주를 달아 해당 인물의 생평과 그와 관련된 고사를 소개함으로써, 본문의 내용을 보다 폭넓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각 편 앞에는 소서(小序)를 두어 편목의 함의와 편집 의도 등을 밝혀 놓았으며, 일부 고사의 뒤에는 자신의 논단(論斷)을 끼워 넣어 찬자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의 결합-≪세설신어보≫ ≪세설신어보≫는 명대 왕세정이 유의경의 ≪세설신어≫와 하양준의 ≪하씨어림≫ 중에서 각각 일부분을 삭제해 합쳐 놓은 형태로 산정했다. 처음에는 산정된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이 합각(合刻)한 형태로 있다가 나중에는 두 책이 혼합한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세설신어보≫의 판본은 20권본과 4권본이 있는데, 20권본이 먼저 간행되고 4권본이 나중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20권본은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을 산정해 조합해 놓은 것으로 별행본(別行本)으로 간행되었으며, 4권본은 거의 대부분이 ≪세설신어≫와 합각한 형태로 간행되었기 때문에 ≪세설신어≫의 고사를 다시 수록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산정한 ≪하씨어림≫의 고사만을 수록해 놓았다. ≪세설신어보≫의 편목은 ≪하씨어림≫에서 추가된 <언지>와 <박식> 두 편이 다시 삭제되고 ≪세설신어≫의 본래 편목에 따라 36편으로 되어 있다. 각 편에 수록된 고사는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그 시대 범위는 양한에서 원대까지다. 또한 ≪세설신어≫의 유효표 주와 ≪하씨어림≫의 하양준 주 역시 약간의 산정을 거쳐 그대로 활용했다. 따라서 ≪세설신어보≫에 수록된 고사의 시대 범위가 한·위·진대에서 송·원대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1500년간에 실존했던 700여 명의 인물 정보와 역사 지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명대는 ‘세설체 문학’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서, ≪세설신어≫의 속서가 가장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세설신어≫ 정신의 통시적 구현을 의도로 편찬된 ≪세설신어보≫는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이 조선에 온 시기는 조선 선조(宣祖) 39년(1606)이고 ≪세설신어보≫는 명 가정 35년(1556)에 처음 간행되었으므로, 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국내에 수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세설≫에 대한 국내 문인 학자들의 수요가 그만큼 많았음을 말해 준다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세설≫의 중국 판본이 집중적으로 수입되었는데, ≪세설신어보≫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20권본과 4권본이 고루 수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직접 ≪세설신어보≫를 간행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