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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길러보기로 했어
노광희
별꽃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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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시

책소개

목차

제 1부

민들레 노랑물
나의 아름다운 창
손톱을 길러 보기로 했어
저녁 숟가락에 앉아
해당화 피고 지면
나의 어린 왕자에게
수요일 오전을 기록하기
지문의 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검은 발톱
나를 잃어버리는 중
유쾌한 버스를 타고
4월에 내리는 눈

제 2부

안부가 따뜻해서
오전 11시의 행복
강화도 세탁소에는
맨드라미
그 사이에 벌어지는 일
모든 것의 함수관계
탱자 돌아오다
붉은 꽃을 얹어 먹다
파꽃
감자를 캐다가
동백꽃 아래서
냉이꽃이 피면
나중에 조금씩 울어줄게

제 3부

바람 들다
오늘은 기우뚱하다
새들의 문자
폐가
조문
라스트 댄스
멸치똥
타인의 숨을 데리고
씩씩한 남자
천개의 흰
파를 다듬다가
새들의 우주
고마워 코미디

제 4부

끌어당김의 법칙
행복을 찾아서
홍학이 있던 자리
여름이 붉어 있었다
우기를 견디는 법
나의 그림자
완벽한 한 잔의 커피를 위하여
당신에 관한 편지
시옷의 항거
어느 남자 이야기
엄마를 베어 먹다
너 그거 아니
봄에 내리는 눈

제 5부

기침과 기침 사이의 계절
종이를 접다가
봄 편지

우기를 건너는 중
생일 즈음에
나의 이름을 불러줘
상사화에 부쳐
꽃들에게
가위 바위 보 게임
막차를 기다리며
공중전화
모래무덤
산다는 것은 소금기처럼

저자 소개 1

월간 순수문학(2001)에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한국 문인협회, 용인 문인협회에서 활동하며 종자와 시인 박물관에 시비 선정 수혜(상처에 대하여) 시비가 있다. 시집『따뜻한 남자의 손은 두 개다』, 『상처에 대하여』,『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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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25*205*20mm
ISBN13
9791194112112

책 속으로

손톱을 길러보기로 했어

청명이 지나자
아파트 단지 내에 나무 제거 작업을 시작했나봐
가지가 잘려버린 나무들이
떨어진 꽃송이 위로 추락하는
내가 함부로 자른 손톱 같은 것들

오늘따라 손가락이 아팠어
손톱에 적립되는 날들이 불편해서
수없이 잘라내고 팽개쳐 진
못생긴 것들
삐죽이 자란 기억을 자르려다 스며든 미안함으로
때 늦은 말 대신 붉게 반짝이는 매니큐어를 칠했어
저 잘린 나무를 보듯

마음에 힘이 없어서
스스로 잘려 나가고 뜯겨졌던 살점들
너무 순하게 살았나 봐 패싸움이라도 벌일 걸
뭉툭해진 손톱을 보다가
파란 물살이 밀려 나가듯 손끝에서 빠져 나간
이름 없는 냄새를 맡았어
그 쓸쓸한 진물

어두운 온기를 끌어안고
손톱을 들여다보고 있어
자라지 못하게 수 없이 자르고
아무렇게나 팽개쳐서 쪼그라진 것들
온 천지 야생을 누비며
자신을 죽이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네

꽃을 피워 주기로 했어
눈이 매워서 긴 속눈썹을 손질하듯
마음이 요란해지기 전 다시 건드리지 않게
마디 굵어진 손가락에
반짝 윤기 나는 리본도 달린 포장을 할 거야

이제 슬펐다고 아팠다고 기척을 해줘
네가 나의 무기여서 견딜 만 했으니
붉은 빛 화려한 손가락으로 펼쳐줄게
--- 「손톱을 길러보기로 했어」 중에서

안녕 나의 어린 왕자
안녕이란 말은 왠지 훅하고 불길 같은 것이
가슴에 안기지
꼬옥 안아 봐도 될까
가을 냄새 번져가는 어느 들판에 서서
유언장처럼 사용한 말들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는지

나와 마주한 적 없어서
부스럭 거릴 때 까지 한참을 기다렸어
찔레에 맞아 퍼래진 등허리에
뛰쳐나가는 무게를 실고 따라가던 얼룩들이
꽃을 피웠네

아직도 그 별들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지
하늘이 낮아지면 생기는 별똥별
오래 갇혀있던 너를 업고 부서지듯 던진 기원
처음 지나간 빛을 기억해
꼬리를 물고 떨어지는 시간은 순간이라서
저문 밤 몸살로 며칠을 앓던

무릎에 얹어진 슬픔이 따뜻해져서
하루 한 페이지씩 넘기는 날에
조금씩 너의 얘기로 한 걸음씩 걸어가
어느 작은 목섬 기슭에 자는 파도 같은 푸른 옷깃을 입고

죽는 날까지 처음인 날 것들이 많은 날
하품에 눈물 나는 듯 여름 장마에
천천히 흔드는 일은
껍질도 꽃잎인 양 이젠 꼭 안아볼까 하는데
--- 「나의 어린 왕자에게」 중에서

채소를 씻다가
물에 풀어낸 먹물처럼 희미한
죽음의 단계를 지난 색을 보았다

내게
강화도의 꽃들은 왜 화려하지 않았는지
높고 낮은 꽃들 상관없이 왜 처연했는지
불현듯 스님의 옷자락처럼 흐르던 물에서 손을 빼니
스치며 지나던 바람에 처음 눈길이 멈춘 곳
강화도 세탁소에 차례로 걸린 장삼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삶의 무게를 지닌 듯
옷걸이에 걸린 채 예수처럼 팔 벌려 매달려있던
강화도 세탁소의
꽃도 아닌 장삼이 내 눈에 핀 까닭이다
그 채색 없는 옷 하나로도 모든 영혼을 끌고
인간세계를 횡단하는
별자리도 없고 지구의 궤도도 없는 묵음의 색

나는 얼마나 많은 욕심을 부렸던가
옷장을 여니 알록달록 많은 옷들이 비리도록 쳐 박혀
내가 모르는 시간까지 저장을 한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악어 같은 4월 마지막 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버려야 할 때
처음 만난 것들에 대해 말을 줄였다
수런거리는 것들을 자르고 목을 꺽은 달을 비웠다
여기저기 상처들이었다
--- 「강화도 세탁소에는」 중에서

새들의 암호가 새겨진 눈밭

밤새 내린 눈 위로 찍힌
그 문장을 누가 읽는지
가끔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난다

전생에 이들은 선비였을까
내려앉은 저 눈밭이 모두 갱지라니
바람도 읽고 가는 저 바닥

흰 가슴의 새가 새긴
발목 한자루 발자국마다
수묵화 한 점이 또 바람에 넘겨진다

나의 시간은 지금 갱지 한 바닥
오래 닫힌 이 작은 눈밭에 보낸 문자는
아직 아무도 읽지 않았다
새들이 없는 시간인가 보다
--- 「새들의 문자」 중에서

봉당 위에 찌그러진 소금 한 자루
신안에서 왔다는 팻말을 두르고
퉁퉁 불은 몸뚱이 흔들어 간수를 낸다

사는 것이 짠물 내는 일인 듯
밤새 비틀어 뒤척인 까닭은
오늘은 이 집 두부 쑤는 날

가마솥에 노란 콩을
눈물 나도록 삶아 곱게 갈아도
간수가 없으면
두부는 완성되지 않는다
소금은 온몸 녹여 낼 의무가 됐다

우리의 등에
한지의 번지는 물감처럼
흐르는 땀의 짠 내가 진하게
선명한 간수를 내야 하는 오후

음식의 간을 맞추듯
인생의 맛을 굳힐 때
소금기 풀어 온몸이 통과할 때가
사는 것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 「산다는 것은 소금기처럼」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누가 물었다.
지금 당장 시 한 편 지을 수 있냐고.
어쩌면 그 말은
온도 차이이거나 견해 차이이지만
시는 고통 속에 허물을 벗는 것,
당장 아이 하나 낳으라는 말,
당장 피 한바탕 쏟아내라는 것이다.
나를 건지는 묘약
삶을 바꾸지 못해서 대신 시를 쓴다.
시를 짓는다는 것은 위태롭고 아름다운 것
인생처럼 살아남는 것들의 시간을
문장으로 건지는 일이다.
그리고 벌어진 뼈가 제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처음처럼 머리를 씻는 일이다.

2025년 8월에
노광희

추천평

노광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우리에게 따뜻한 안부와 위안을 묻는 시이다. 사물이 우리에게 귓속말로 건네는 시점, 그 너머의 그늘까지도 빛으로 승화시키는 은유의 세계로 초대하는 시다. 삶에서 적나라하게 건져 올린 한 바가지의 찬물을 시인은 정수리에 쏟아 부었다. 단단하면서도 곰삭은 밥상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마주 앉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어가 뜨겁다. 어떤 사물을 불러 세워도 미끄러지지도 않고 모난 데 없이 잡아채서 흐르게 하는 삶의 시어, 장마에 황토물이 지나간 자리, 퍼덕거리며 강물마저 삼키는 문장, 징검다리 위로 나는 검고 푸른 나비이다. - 박수자 (시인)
잘려 나간 손톱, 가지 잘린 나무, 무심히 지나온 기억들. 노광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손끝에서 시작된 미세한 통증을 따라간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외면해왔는지를 되짚고 있다.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고 외침은 아득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한다. ‘돌봄’이라는 말이 낯선 사람들에게, 이번 시집은 무너진 감정의 조각들을 조용히 쓰다듬기를 제안한다. 특히 「손톱을 길러보기로 했어」라는 시에서 매니큐어를 칠하는 행위는, 아픔을 감추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 이은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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