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체로금풍
『벽암록』 풀이
김흥호 저
사색 2025.08.20.
베스트
불교 top100 2주
가격
22,000원
22,0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김흥호사상전집 불교사상

이 상품의 시리즈 알림신청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머리말: 동양인과 자연
일러두기

1. 달마와 무제(무無 ㆍ 비非 ㆍ 불不)
2. 조주의 큰 길(지도무난至道無難)
3. 마 대사의 임종(마대사불안馬大師不安)
4 덕산과 위산(덕산도위산德山到?山)
5 설봉의 모래 한 알(설봉진대지雪峰盡大地)
6 운문의 좋은 날(일일호일日日好日)
7. 법안과 혜초(법안혜초문불法眼慧超問佛)
8. 취암의 눈썹(취암미모翠巖眉毛)
9. 조주의 사 대문(조주동서남북趙州東西南北)
10. 목주의 얼간이(목주약허두한睦州掠虛頭漢)
11. 황벽의 술찌끼(황벽당주조한黃檗?酒糟漢)
12. 동산의 베 서 근(마삼근麻三斤)
13. 파릉의 흰 눈(파릉은완리巴陵銀椀裏)
14. 운문의 입장(운문대일설雲門對一說)
15. 운문의 회심(도일설倒一說)
16. 경청의 계란 쪼기(경청초리한鏡淸草裏漢)
17. 향림의 품은 계란(향림서래의香林西來意)
18. 충 국사의 무봉탑(숙종청탑양肅宗請塔樣)
19. 구지의 외손가락(구지지두선俱?指頭禪)
20. 용아의 얻어맞기(용아서래의龍牙西來意)
21. 지문의 연꽃(지문연화하엽智門蓮華荷葉)
22. 설봉의 독사뱀(설봉별비사雪峰鼈鼻蛇)
23. 보복의 산놀이(보복묘봉정保福妙峯頂)
24. 철마와 위산(유철마도위산劉鐵磨到?山)
25. 연화봉의 지팡이(연화암주부주蓮華庵主不住)
26. 백장의 높은 산(백장대웅봉百丈大雄峯)
27. 운문의 가을(운문체로금풍雲門體露金風)
28. 남전의 진리(열반화상제성涅槃和尙諸聖)
29. 대수의 불길(대수겁화통연大隋劫火洞然)
30. 조주의 큰 무(조주대나복趙州大蘿蔔)
31. 마곡의 지팡이(마곡진석요상麻谷振錫?床)
32. 정 상좌의 큰절(임제불법대의臨濟佛法大意)
33. 진조의 먼 눈(진상서간자복陳尙書看資福)
34. 양산의 산놀이(앙산문심처래仰山問甚處來)
35. 문수 앞의 세 사람(문수전삼삼文殊前三三)
36. 장사의 꽃놀이(장사일일유산長沙一日遊山)
37. 반산의 빈 마음(반산삼계무법盤山三界無法)
38. 풍혈의 도장(풍혈철우기風穴鐵牛機)
39. 운문의 볏짚 울타리(운문금모사자雲門金毛獅子)
40. 남전의 꽃나무(남전여몽상사南泉如夢相似)
41. 조주의 큰 죽음(조주대사저인趙州大死底人)
42. 방 거사의 흰 눈(방거사호설편편龐居士好雪片片)
43. 동산의 추위(동산한서회피洞山寒暑廻避)
44. 화산의 북 치기(화산해타고禾山解打鼓)
45. 조주의 옷 한 벌(조주만법귀일趙州萬法歸一)
46. 경청의 빗소리(경청우적성鏡淸雨滴聲)
47. 운문의 마음(운문육불수雲門六不收)
48. 왕 태부의 화로(왕태부전다王太傅煎茶)
49. 삼성의 물고기(삼성이하위식三聖以何爲食)
50. 운문의 자유(운문진진삼매雲門塵塵三昧)
51. 설봉의 진리(설봉시십마雪峰是什?)
52. 조주의 돌다리(조주석교약작趙州石橋略?)
53. 백장의 물오리(마대사야압자馬大師野鴨子)
54. 운문의 두 손(운문근리심처雲門近離甚處)
55. 도오의 문상(도오점원조위道吾漸源弔慰)
56. 흠산의 화살(흠산일촉파삼관欽山一鏃破三關)
57. 조주와 촌놈(조주지도무난趙州至道無難)
58. 조주도 모르는 것(조주시인과굴趙州時人?窟)
59. 조주의 절대계(조주유혐간택趙州唯嫌揀擇)
60. 운문의 지팡이(운문주장자雲門柱杖子)
61. 풍혈의 티끌(풍혈약립일진風穴若立一塵)
62. 운문의 보물(운문중유일보云門中有一寶)
63. 남전의 고양이(남전양당쟁묘南泉兩堂爭猫)
64. 조주의 신발(남전문조주南泉問趙州)
65. 철인의 질문(외도문불유무外道問佛有無)
66. 암두의 칼(암두십마처래巖頭什?處來)
67. 부 대사의 금강경(양무제청강경梁武帝請講經)
68. 앙산의 이름(앙산문삼성仰山問三聖)
69. 남전의 동그라미(남전배충국사南泉拜忠國師)
70. 백장의 입 없는 말(위산시립백장?山侍立百丈)
71. 백장의 말 없는 말(백장병각인후百丈倂?咽喉)
72. 백장의 입 있는 말(백장문운암百丈問雲巖)
73. 마조의 진리(마대사사구백비馬大師四句百非)
74. 금우의 밥통(금우화상가가소金牛和尙呵呵笑)
75. 오구의 몽둥이(오구문법도烏臼問法道)
76. 단하의 눈(단하문심처래丹霞問甚處來)
77. 운문의 호떡(운문답호병雲門答?餠)
78. 보살이 본 물(십육개사입욕十六開士入浴)
79. 투자의 모든 소리(투자일체성投子一切聲)
80. 조주의 갓난애(조주해자육식趙州孩子六識)
81. 약산의 큰 사슴(약산사주중주藥山射?中?)
82. 대룡의 뿌리(대룡견고법신大龍堅固法身)
83. 운문의 기둥(운문노주상교雲門露柱相交)
84. 유마의 사랑(유마불이법문維摩不二法門)
85. 동봉의 호랑이(동봉암주대충桐峯庵主大蟲)
86. 운문의 빛(운문유광명재雲門有光明在)
87. 운문의 약(운문약병상치雲門藥病相治)
88. 현사와 장님(현사접물이생玄沙接物利生)
89. 운암의 한 손, 한 눈(운암문도오수안雲巖問道吾手眼)
90. 지문의 지혜(지문반야체智門般若體)
91. 염관의 코뿔소(염관서우선자鹽官犀牛扇子)
92. 석가의 설법(세존일일승좌世尊一日陞座)
93. 대광의 춤(대광사작무大光師作舞)
94. 능엄의 눈(능엄경약견불견楞嚴經若見不見)
95. 장경의 알맞이(장경유삼독長慶有三毒)
96. 조주의 세 마디(조주삼전어趙州三轉語)
97. 금강경의 공덕(금강경경천金剛經輕賤)
98. 천평의 잘못(천평화상양착天平和尙兩錯)
99. 숙종의 부처(숙종십신조어肅宗十身調御)
100. 파릉의 푸른 칼(파릉취모검巴陵吹毛劍)

벽암록 주요 선사 법계표
벽암록 해제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황해도 서흥에서 출생 평양고보 졸업 와세다 대학 법학부 졸업 미국 버틀러 대학 종교사학 석사 미국 인디아나 주 감리교회에서 정목사로 안수 받음 이화여대 명예철학박사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선생을 만나 6년 만에 깨달음을 얻고 스승으로부터 현재鉉齋라는 호를 받음 국학대학 철학교수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종교철학 교수 이화여대 교목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 이화여대에서 학생, 교수, 일반인을 상대로 평생 성경과 고전 강의를 함

김흥호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148*210*35mm
ISBN13
9788993994308

책 속으로

부처란 별것이 아니다. 깨끗한 것이다. 돌부처를 보고 절을 한다. 얼른 보면 우상숭배 같지만 우상숭배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숭배다. 석가를 보고 절하는 것이 아니고 돌을 보고 절을 한다. 돌은 깨끗하기 때문이다. 동양은 깨끗한 것을 신神으로 삼는다. 태백산이 신이 되고, 백두산이 신이 되고, 태양이 신이 되고, 태음이 신이 됨도 모두 깨끗하기 때문이다. ‘깨끗’, 아침에 깨고 저녁에 끝을 맺는다고 ‘깨끗’이다. 깬 사람, 끝을 낸 사람, 이런 사람이 부처다. 부처는 우리말로 각覺이라고 번역한다. 깬 사람이다. 깬 사람만이 깨끗한 사람이요, 끝을 낸 사람이다. 모든 애착에서 끝을 낸 사람이다. 깨끗한 땅이 정토요, 깬 사람, 끝낸 사람이 불타佛陀다.

이것이 무아無我의 불교다. 불교는 무아를 좋아한다. 내가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유아有我’의 불교가 나 없는 ‘무아’의 불교로 바뀌는 것, 이것이 인도의 종교로부터 동양의 불교로 오는 과정이다. 동양 사람은 죽어서 천당 갈 생각도 없고, 죽어서 사람이 될 생각도 없다. 어떤 스님에게 죽어서 무엇이 되겠냐고 물었다. 자기는 죽어서 소가 되어 가난한 농부 집에 태어나 일생 농부를 위해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가 되어 농부를 돕는 것, 이것이 자비요, 보살행이다.
--- 「머리말」 중에서

한번은 어떤 중이 찾아와서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차나 한 잔 마시고 가지(끽다거喫茶去)” 하고 대답했다. 또 다른 제자가 와서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차나 한 잔 마시고 가지” 하고 같은 대답을 했다. 모두 어쩔 수 없이 차나 한 잔씩 마시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조주가 글 가르치기가 귀찮아서 그러는지 혹 차를 한 잔씩 마시라는 데 무슨 뜻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하여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모두 떠나가는 것이었다. 한번은 수제자가 “선생님은 오는 사람마다 차나 한 잔씩 마시고 가라고 하시니 그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조주는 웃으면서 “그대도 차나 한 잔 마시고 가지”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결국 그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어도 한 놈도 아는 놈이 없었다. 참으로 차나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일 텐데 차를 제대로 마신 놈이 없어 밤낮 근심걱정으로 세월이 모자랄 정도라는 것이다.
--- 「2」 중에서

마조는 땅위에 엎드려 이마를 조아리고 부처가 되는 비방을 물었다.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남악은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 소가 끄는 달구지가 있다고 하자. 달구지가 나가지를 않을 때에 소를 때려야 하느냐? 달구지를 때려야 하느냐?”
젊은 마조는 이 말에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달구지를 때리고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구지를 때려서 달구지가 가는 것이 아니다. 소를 때려야 한다. 엉덩이가 뭉그러지도록 참선을 했다고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란 별것이 아니다. 깬 정신이다. 즉심성불卽心成佛이다. 뜰이 더러우면 쓰는 것이 부처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는 것이 부처요, 할 일이 있으면 하는 것이 부처지 가만히 앉아 있다고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짐을 끌 것이 있으면 끌고, 태울 사람이 있으면 태우고, 뛸 때는 뛰고, 먹을 때는 먹는 것이 망아지인 것뿐이다. 망아지가 뛸 때 망아지인 것처럼 마조는 남악 밑에서 오랫동안 지성을 다하여 배운 결과 자기의 본질을 발견하고 도일道一 선사로서 그의 도명道名을 떨치게 된다.
--- 「3」 중에서

불은 베 서 근, 정말 친절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불속에 떠밀어 넣지 않고 불이란 베 서 근이라고 정말 따뜻하게 말해주는 동산의 친절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동산이 언제부터 저렇게 의젓하게 나이가 들었나. 동산은 본래 일일호일의 운문의 제자다. 동산이 운문에게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에는 운문은 동산처럼 그렇게 부드럽지 않았다. 운문은 불이 무엇이냐고 묻는 동산의 손가락을 꼭 잡고 불속에 가서 떠밀어 넣었다. 불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끌려간 동산은 그만 소리를 지르며 불의 뜨거움을 가슴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그것이 처음을 지킨다(수초守初)는 것이다. 아마 동산은 그때 어지간히 뜨거웠던 모양이다.
--- 「12」 중에서

대승大乘이 어떻고, 소승小乘이 어떻고, 참선이 어떻고, 염불이 어떻고, 즉심시불卽心是佛이냐, 즉심성불卽心成佛이냐 하고 이러쿵저러쿵하지만 그것은 지知의 세계이지 도道의 세계는 아니다. 도는 한 길뿐이다. 그저 사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 「16」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자기 속에서 불성을 찾아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계란에서 병아리를 보는 사람이 누구랴. 그러나 진짜 스님이 되면 제자들 속에서 잠자고 있는 불성을 꿰뚫어보고 그 마음을 개발하여 계란에서 병아리를 만들어간다. 10년이고 20년이고 땀을 빼며 앉아 있는 스승의 모습이 그립다. 오로지 부처를 깨우기 위한 일편단심으로 황무지를 개척하여 은밀한 전토田土를 개발하고 나무를 심고 곡식을 심어 근농勤農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좌구성로坐久成勞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체 중생이 실유불성悉有佛性임을 믿고 금강보검으로 일도양단一刀兩斷, 계란 속에서 병아리를 끄집어내는 산파가 좌구성로坐久成勞다.
--- 「17」 중에서

손가락 하나를 위로 올렸다는 말은 달을 보라는 말도 되고, 올라가라는 말도 되고, 참을 찾으라는 말도 되고, 억만 가지로 해석해도 다 맞아 들어갈 것이다. 선에서는 그것을 일좌一坐라고 해석할지 모른다. 달마는 엉덩이가 물크러지도록 앉았으니 너도 앉아보라는 것이다. 앉아보든지 서보든지 요는 가장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다. 어려움 속에 참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길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여 그 길을 가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일단 깨달은 후에는 사는 것 자체가 진리이니 손가락을 들든 발가락을 들든 그것은 문제가 안 된다. 본문은 “구지화상俱?和尙 범유소문凡有所問 지수일지只竪一指”, 이것이 전부다.
--- 「19」 중에서

내가 나를 이겨야 한다. 나를 이기면 자유요, 나를 못 이기면 노예다. 어느 때는 그것이 선생이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그것이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그것이 신이 되기도 한다. 선생을 이기고, 아버지를 이기고, 신을 이긴다. 물론 복종으로 이기지만 이기기는 이겨야 한다. 운명에 복종하고, 진리에 복종하고, 자연에 복종함으로써 이긴다. 하여튼 진리에 복종하려면 진리에 저항하는 나와 싸워야 한다. 싸워 이겨야 한다. 여기에 고행이 필요하고 수도가 필요하다. 행 없이 어떻게 자기와 싸울 수 있을까.
--- 「22」 중에서

운문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하나님을 믿고 선지식善知識을 믿는 그에게는 자기의 생사는 문제도 안 된다.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다. 영원한 생명과 통한 이들에게는 일시적인 생사는 문제가 안 된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면 으레 바위가 드러나고 골짜기에는 찬바람이 몰아칠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나무가 없어졌다고 산이 없어질 리는 없지 않은가. 현상계가 없어졌다고 실재계까지 없어질 이치는 없지 않은가. 물고기가 죽었다고 바다가 없어질 이치는 없지 않은가. 지구가 없어졌다고 허공이 없어질 리는 없지 않은가.
‘수조엽락시여하樹凋葉落時如何 체로금풍體露金風.’
좋은 말이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질 때에야 바위가 드러나고 바람이 빛날 걸. 독좌대웅봉獨坐大雄峯이다. 자기가 앉을 자리에 뿌리를 박고 앉은 사람은 수조엽락이라고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눈앞 대웅봉에 체로금풍이 보이지 않느냐. 하나님을 본 사람에게는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진다고 걱정할 것이 없지 않느냐. 나를 본 자는, 자기의 본체를 본 사람은, 내 목숨이 끊어진다고 걱정할 것이 없지 않느냐. 바람을 본 사람이면 숨이 끊어졌다고 걱정할 것이 없지 않느냐. 산을 보아라.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질 때 산을 보아라. 눈앞의 푸른 바위(벽암碧巖)를 보라. 「벽암록」이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벽암뿐이지 또 무엇이 있겠는가. 벽암을 본 사람은 나무가 시들고 잎이 진다고 서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산이 있다. 나무가 있기 전, 잎이 트기 전에 산이 있다. 산을 보라. 산을 보면 나무는 문제도 안 되지 않느냐? 누가 자기의 얼굴을 보았나. 누가 자기의 본체를 보았나. 누가 자기의 벽암을 보았나. 보면 한마디로 체로금풍이다.
--- 「27」 중에서

그리고 새삼스럽게 불도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들고 나왔다. 거창한 질문이라면 거창한 질문이다. ‘우주의 본질이 무엇이냐’라든지, ‘하나님의 속성이 무엇이냐’라든지 책으로 쓰면 몇 만 장을 써도 다 못 쓸 굉장한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글을 쓰고, 연구하고, 그 글을 사보고, 그 글을 베끼고 하는 얼간망둥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얼이 간 망둥이들, 얼빠진 망둥이들, 임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서 멱살을 잡고 한 대 갈기고 밀쳐버렸다. 얼간망둥이는 하등 쓸 데가 없다는 것이다. 얼이 간 생선, 변질된 고기는, 썩은 과일은, 얼빠진 인간은 아무 쓸 데가 없다. 먹으면 독이요, 두면 냄새요, 이제 갈 곳은 쓰레기통이나 땅속뿐이다. 탁 밀쳐버린 임제의 솜씨가 근사하다. 썩은 굴비야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무엇에 쓰냐는 말이다.
--- 「32」 중에서

진리는 수와 관계없다는 이야기 같다. 엉터리 교사들이 계율을 지키면 복 받는다며 그럴듯한 방법을 내걸면 사람들이 삼백 오백씩 우우 몰린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사람 기운에 또 사람들이 모인다. 길가에서 약장수 연설에 속는 줄 알면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여나 무슨 신비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사람들은 모이게 마련이다. 세상에 사이비 종교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석가의 수제자 문수가 와서 설법을 해도 모이는 것은 어중이떠중이, 앞에 두셋, 뒤에 두셋, 한두 사람이 모이는 정도다. 옛날부터 진리는 한두 사람에 의해 계승되는 수가 태반이었다. 대중은 진리보다도 욕심이 앞서기가 일쑤다. 그런 대중을 위해 얼렁뚱땅 넘어가면 교세는 얼마든지 확장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큰 절을 짓고, 큰 교단을 만들고 일체의 자유를 빼앗고 독재를 하면 군중들은 더욱 끌려가기를 좋아한다. 눈알을 빼고 밥을 굶기면 더욱 끌려오기가 일쑤다. 이래서 독재자들은 인간을 허수아비로 만들어서 제멋대로 꼭두각시 춤을 추게 한다.
이것이 유사 종교라는 것이다.
--- 「35」 중에서

육체적인 탄생보다도 정신적인 탄생이 더욱 중요한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는 것은 강아지도 할 수 있으나, 아들이 아버지를 낳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정신만이 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이지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정신이다. 정신만이 부모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자는 적고, 자모慈母는 많다. 달 속에 이슬은 많지만, 이슬 속에 달은 적다.
--- 「45」 중에서

운문도 젊은 중처럼 수없이 매를 맞던 때가 있었다. 누구나 수없이 실수를 거듭하면서 자라게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듯이, 나비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지고 있기에 인류에게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자유가 나온다. 이것이 6년 고행이요, 참선이요, 수도다. 수영을 배운 사람과 수영을 못 배운 사람 사이에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는다. 사는 이는 사자요, 죽는 이는 사슴이다. 배우면 토끼가 호랑이가 되고, 못 배우면 토끼는 여전히 토끼다. 진리를 깨달으면 부처가 되고, 진리를 못 깨달으면 여전히 중생이다. 부처라고 해도 중생이 부처가 된 것이지 부처라는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배우면 부처요, 못 배우면 중생이다. 목숨을 걸고 물에 뛰어들어 출가 고행 끝에 부처가 되는 것이지, 하는 것 없이 빙빙 돌아다니는 녀석이 부처가 될 수는 없다.
--- 「54」 중에서

불도佛道란 별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를 다스려보라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면 아무 문제가 없다. 자기를 자기가 다스리지 않고 남에게 끌려 다니니 안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좋다느니, 저 선생이 좋다느니 하며 끌려 다니다 보니 선생이 하나의 함정이 되고, 조주가 함정이 되고, 불도가 함정이 되고, 일체가 함정이 되어 꼼짝도 못하는 얼간망둥이가 되어버린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 어려운 일부터 시작하지 말고 쉬운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아무리 약하고 바보라도 살아 있는 동안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밥 먹는 일부터 시작해보고, 잠자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밥 한 번 바르게 먹고, 잠 한 번 바로 자면 거기에서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병이 왜 나는가. 밥을 잘못 먹는 데서 난다. 늙음이 왜 오나. 잠을 잘못 자는 데서 늙음이 온다. 사람이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생사는 벗어날 수 있다. 생사를 벗어나면 거기가 열반이요 불도지, 불도가 따로 있겠느냐.
--- 「58」 중에서

자, 하늘에 태양이 보이느냐? 내 마음속에 지혜가 보이느냐? 나가면 태양이요, 들어오면 지혜다. 내 속에 진리를 보느냐? 내 밖에 진리를 보느냐? 내 속에 진리가 보이기까지 파고 생각하라. 그리고 내 밖에 진리가 보이기까지 지키고 지키라. 오늘도 태양의 영광靈光은 홀로 비치고 있지 않느냐(영광독요靈光獨耀). 풀뿌리와 나무를 훨씬 넘어서, 생사와 유무를 훨씬 넘어서(형탈근진泂脫根塵), 이글이글 타는 태양이 하늘에 빛나고 있지 않느냐(체로진상體露眞常). 이성과 경험을 넘어서야지, 학식과 견문을 넘어서야지(불구문자不拘文學). 내 마음이 곧 부처인데(심성무염心性無染), 내가 곧 부처인데(본자원성本自圓成), 깨면(단리망연但離妄緣) 일체가 부처뿐인데(즉여여불卽如如佛).
--- 「62」 중에서

어떻게 자유를 얻을 것인가. 나비가 되는 수밖에 길이 없지 않은가. 어떻게 나비가 되는가. 고치가 되는 수밖에 길이 없지 않은가. 어떻게 고치가 되는가. 벌레가 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알에서 벌레로, 벌레에서 고치로, 고치에서 나비로 가는 길밖에 없다. 성문聲聞에서 연각緣覺으로, 연각에서 보살菩薩로, 보살에서 불타佛陀로, 이 길 외에 또 있을까. 말을 하려면 말을 듣고, 말을 보고, 말을 쓰고, 말을 하게 되는 길 밖에 또 있을까. 외도는 물었다. 해방의 길을, 자유의 길을, 성불의 길을 물은 것이다. 유언의 성문도 아니고, 무언의 연각도 아니고, 제삼의 계단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석가는 보살의 참선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이 석가양구良久다. 깊은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석가도 출가하여 스승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 때가 있었다. 석가도 고행을 하여 6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49 일 동안 깊은 사색에 들어간다. 지금까지 배운 것과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날로 하고 씨로 하여 거기에 자기를 집어넣어 하나의 체계를 구성해가는 것이다.
--- 「65」 중에서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불성은 없다. 그곳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란 별것이 아니다. 자기를 이긴 것이다. 자기를 이기면 자유요,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노예다. 자기를 이기면 세계를 이기고, 자기를 구원하면 세계를 구원한다. 암두와 설봉은 이미 자기를 이기고, 세계를 이기고 있었다. 어느 돌중이 그 모가지를 자를 수 있으랴. 그가 자르기 전에 그들은 먼저 자기 목을 잘라서 열반에 가져다 보관해두었을 것이다. 4년 후에 암두는 진짜로 자기 목을 황소에게 내어주고 자기는 열반에 들어가 보관했던 모가지를 찾아서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암두의 껄껄대고 웃는 소리가 쨍쨍하게 들리고 있지 않느냐.
--- 「66」 중에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남모르는 기쁨이 있다. 그것을 ‘법열’이라고 한다. 밥을 먹어도 기쁘고, 옷을 입어도 기쁘다. 일상생활이 그대로 기쁘고, 그대로 즐겁다. 그것을 신통유희라고 한다. 어린애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즐거워하듯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밥을 먹으며 기뻐하고, 춤을 추며 즐거워한다. 어린애는 기운이 통해서 그렇고, 어른은 신령이 통해서 그렇다. 사람에게는 신령이 통해야 한다. 어린애가 바람의 아들이듯이 어른은 브라만의 아들이다. 아이가 기운에 통하는 것이 자연이고, 어른이 신령에 통하는 것이 자연이다. 신령에 통했다는 말은 말씀에 통했다는 말이요, 진리에 통했다는 말이다. 진리에 통하는 것 이외에 다른 신령은 없다. 말씀이 곧 신령이기 때문이다. 옛날 방거사龐居士는 “신통묘용神通妙用, 운수반시運水搬柴”라고 하였다.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은 물 긷고 장작 패는

--- 「67」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번 출간된 『체로금풍: 벽암록 풀이』는 현재 김흥호 선생의 통쾌하고 명료한 필체로 선불교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현재 김흥호 선생의 불교에 대한 책은 이미 3종이 나와 있다. 그 책들은 다음과 같다.
『화엄경 강해』 전 3권, 불교사상 3(사색출판사, 2006)
『법화경 강해』 불교사상 2(사색출판사, 2004)
『원각경 강해』 불교사상 1(사색출판사, 2003)

우선 먼저 나온 『원각경 강해』는 1999년 9월부터 12월까지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에서 강의한 것을 2003년에 출판한 것이다. 선생은 이 원각경을 “나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오랜 숙원을 밝힌” 경이라고 했다. 원각경에서 “삼마디, 삼마파티, 디야나” 하는 것은 “정신의 통일과 정신의 독립과 정신의 자유를 부족함 없이 원만하게 깊이 자각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가르쳐주는” 용어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원각경은 〈고린도전서 강해〉를 부록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원각경 강의를 한 시간 하고 둘째 시간에는 고린도전서를 강의해서 그 연결성을 살리기 위해 한 권으로 출판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이 책을 가를까도 생각했지만 나름 불교와 기독교의 관점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다는 의견이 있어서 계속 재판을 거듭해오고 있다.

다음 『법화경 강해』는 2000년 3월부터 11월까지 두 학기를 강의한 것이다. 출판은 2004년이다. 법화경의 본명은 ‘묘법연화경’이다. “인간의 언어와 생각을 뛰어넘는 신비를 묘라고 한다. 그리고 법에는 존재, 진리, 교법, 만물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우주만물을 만물이게 하는 절대존재를 지적하는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 하고 주역에서는 도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법이라고 한다. 묘법은 조화의 근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혜를 강조하는 것이 화엄경이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법화경이다.” “법화경은 어머니의 사랑을 강조한다.”

『화엄경 강해』는 2001년 11월부터 2003년 3월까지 강의한 것을 2006년 3권으로 나누어 냈다. “화엄경을 보면 높은 히말라야 산을 연상하게 된다. 만년설에 뒤덮인 높고 큰 히말라야의 설산은 숭엄하기 짝이 없다. 아침해와 저녁놀에 붉게 물들어 금빛으로 빛나는 봉우리들은 이제 막 피어나는 연꽃이라 할까. 그리고 산을 뒤덮은 눈과 얼음이 녹아내려 흘러가는 수많은 강물들은 드넓은 대륙을 푸른 물결로 수놓아 간다. 그 속에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뛰놀고 있다. 빛 힘 숨, 이것이 화엄의 모습이다.” “의상은 화엄 80권을 210자로 간추리고 원효는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이라는 한마디로 덮어버린다. 일도一道는 화요, 출생사出生死는 엄이요,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은 경이라는 것이다. 일도는 유심연기요, 출생사는 불이요, 일체무애인은 이실법계理實法界를 말한다. 선에서는 이것을 간단히 심불물心佛物이라 한다.”

이번 출간하는 벽암록 풀이의 제목, ‘체로금풍’은 벽암록 제27칙의 본문 중에 나온다. 그리고 벽암이란 말은 원오가 벽암록의 주석을 마쳤을 때 그의 방에 걸려있던 액자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제27장에 나오는 본문은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수조엽락시여하樹凋葉落時如何)? 몸이 드러나고 바람이 빛나겠지(체로금풍體露金風)”이다. 선생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이 드러나겠지. 산을 보아라.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질 때 산을 보아라. 눈앞의 푸른 바위(벽암碧巖)를 보라. 벽암록이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벽암뿐이지 또 무엇이 있겠는가. 벽암을 본 사람은 나무가 시들고 잎이 진다고 서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산이 있다. 나무가 있기 전, 잎이 트기 전에 산이 있다. 산을 보라. 산을 보면 나무는 문제도 안 되지 않느냐. 누가 자기의 얼굴을 보았나. 누가 자기의 본체를 보았나. 누가 자기의 벽암을 보았나. 보면 한마디로 체로금풍이다.”
벽암록 100칙 하나하나가 각각 공안이요, 화두인데 모두 선의 정수를 매우 고차적인 비유, 상징 등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이런 암시의 비밀을 저자와 함께 추적해가는 것은 흥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본다.

현재鉉齋 김흥호 선생은 불교를 좋아하였다. 선생은 기독교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원효를 사랑했고, 불교신자들보다 자신이 조금 더 석가를 사랑한다고 했다. 기독교에 가장 가까운 것이 이 선불교이고, 여기에는 특히 우상숭배가 없어서 좋다고 하였다. 선생의 불교공부는 1948년 스승 다석 유영모 선생을 만난 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스승을 만난 지 6년 후 1954년 3월 선생은 진리를 체득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12년이란 긴 시간을 계획하여 불교 3년, 노장사상 3년, 유교 3년, 기독교 3년을 공부에 매진한다. 불교공부 3년 동안에는 참선도 하면서 경전들과 선사어록들도 공부하는데 이 『벽암록』도 그때 파고든 것이었다.

또한 선생은 자신의 개인 철학지, 월간 『사색』을 1970년 11월부터 1982년 10월까지 12년 동안 144호를 발행하였는데, 이 『벽암록』 100칙의 풀이를 42호부터 105호(1974년 4월~1979년 7월)까지 연재하였고, 이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거듭 출간이 되어온 것이다.이 책은 선생의, 평생공부의 익고 익은 결실로서 선불교의 요체가 들어있는 소중한 글들이다. 『벽암록』 100칙 하나하나가 모두 선의 진수를 드러내주는 공안들인데 그것을 선생의 명쾌한 필체로 독자들의 정신을 시원하게 풀어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생의 벽암록 풀이는 단순히 학술적인 번역이 아니다. 보다는 선생의 선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이 마음공부에 힘쓰는 일반인을 비롯하여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 불교신자, 혹은 전공자, 진리를 찾아 떠나는 사문沙門들을 위한 입도지문入道之門의 안내서가 되리라 확신한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사락 별점0

혜택 및 유의사항

첫번째 별점을 남겨주세요.

첫번째 밑줄을 남겨주세요.

22,000원
총 1개 2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