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섬 / 그건 착각이어라 /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 / 구름의 증식 / 침윤 / 저만치 / 파두 / 자수 / 마음 / 문 2부빈방 / 애월 / 것 / 숨바꼭질 / 침묵 / 꿈꾸는 생 / 동경 / 나는 차가운 심장으로 / 팥죽 / 토마토 먹고 싶다는 생각 / 이 나무 / 나비를 꿈꾸는 얼굴로 / 침잠하는 빛들의 고요를 마신다 / 꿈은 어디 있습니까 / 서커스 / 시를 쓰다 잠든 밤 3부독심술 / 파리지옥 / 통증 / 아이리스 / 침묵 / 백송 / 물보라 / 균열 / 밑 / 내게 무슨 말인가를 / 그를 기다린다 / 흐리고 진눈깨비 / 폭염 / 묵호 / 달의 형벌 / 악어의 눈물 /눈동자 / 독 4부환멸 / 너의 붉은 손처럼 / 섬 / 그것으로부터 / 마치 고양이처럼 / 귀향 / 탈피 / 목월빵집 / 셀리아의 유령 / 북극에서 온 답장 10해설 익사 | 이정현 (문학기고가)
|
|
다만 이야기로 남은 마음의 폐허, 무한으로 넘어가려는 몸짓과 포즈무한으로 넘어가려는 몸짓이 등단 이후 네가 쓴 대부분의 시에서 아른거린다. “신의 계시”를 “옮겨 적는 일” 따위는 네 시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너는 세계의 틈을 무언가로 메울 수 있다고 가끔 착각에 빠진다. 네가 말했듯, ‘착각’은 때로 오해의 비를 부른다(「구름의 증식」). 물론 네 시 안에서 ‘착각’은 증식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곧바로 침묵에 빠지기 때문이다(“착각이” “오해의 비를 뿌리고/ 우리는 침묵했다”, 「구름의 증식」). 무한으로 넘어가려는 네 몸짓은 사실, 대수롭지 않다. 그저 포즈일 뿐.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탈출을 꿈꾸는 언어감옥의 수인들을 보라! 시인들은 그곳에서 “못다 한 이야기”(「숨바꼭질」)를 속으로 속으로 공글리는 자들인데 어리석게 오촉짜리 희미한 알전구 아래 앉아 오늘도 이것을 꿈꾼다. 잠도, 꿈도, 그녀도 우물 같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면” 우물 밖, 다시 눈감으면 우물 안, “어떤 날엔 눈을 감아도/ 보이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퍼렇게 멍들곤 했는데// 계속 걷다 보면 달라진 널 만날 수 있었고 (……) 그러다 갑자기 사라진 길을 보고/ 이것이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백송」). “그런데 나는 왜 아직/ 여기에 머물러 있을까// 왜 자꾸 물보라 일으키며/ 혼자 하얗게 부서지는 것일까”(「물보라」). 스톱! 「붉은 손」 ‘사랑시’편 주해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죽은 줄 알았던 은줄팔랑나비가 강물 위를 난다”(「그건 착각이어라」). 퍼렇게 멍들고(「백송」) 하얗게 부서질지라도(「물보라」) 은줄팔랑나비가 나폴나폴 허공을 향해 난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 한 짝”(「그건 착각이어라」) 찾으러 너울너울 은줄팔랑나비가 난다. 멍들겠지요, 부서지겠지요, 잊혀지겠지요, 사라지겠지요. 우물로 뛰어든 익사 직전, 당신의 얼굴을 본다. 아니, 우물에서 건진 사랑하는 당신 얼굴을 본다. 그래, “영영 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며”(「그를 기다린다」) 이 글을 쓴다. 알고 있는지, 네가 쓴 ‘사랑시’들을 우물에 장사 지내고 남은 건 열망과 동경뿐. 우물은 닫혀 있고 연인들은 드물게 하늘을 본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준비한 빵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시집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 「붉은 손」 파트1의 키워드가 ‘유년’과 ‘사랑’임을 명토 박은 이상, 파트2 해석이 제한적일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상당한 은유를 내포한 ‘불가사리’는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추측건대 첫 시집 후반부에 위치한 「다른 기차」에 누군가 아무도 몰래 비밀파이프라인을 설치한 것처럼 보인다. 복기해 보면 그것은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고(2023년) 아직은(2017년) 아무도 모른다. 너는 지금 2017년에 가 있다. 은유인 줄 알았던(“섬은 멀리서 빨갛게 꿈틀거린다 섬은 미지의 세계를 품고서 유혹하는 아름다운 불가사리”, 「다른 기차」) 그것(“아름다운 불가사리”)이, 은유가 아닌 미래의 당신이 바다에 띄워 보낸 ‘실재하는 불가사리’(“모래톱 위/ 꿈틀거리는 불가사리 하나”, 「붉은 손」)임을 알게 될 때 독자들은 혼란스럽다. 과거를 향해 “열어 놓은 바닷속”(「다른 기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알 수 없어라. 미래에서 과거로 역진(逆進)하는 시간을 보라. 시간은 은유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은유하는 실재’(‘빨갛게 꿈틀거리는 섬’)가 꿈틀거린다. (……) 먼 미래에서 온 당신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걸 주워 다시 바다로/ (과거 속의 당신에게) 잠잠히 띄워 보내는 일”, 그게 다예요. 미래의 해변을 서성이는 당신이 보인다. 당신은 조금 전 아무도 몰래 비밀파이프라인에 실어 바다로 ‘그것’(“불가사리”)을 부쳤다. 내가 읽은 「붉은 손」 파트2의 전모다.■ 시인의 말 어릴 적 벚나무에 올라 버찌를 따 먹던 기억이 기억은 지금까지 날 따라다닌다기억을 오르다 보면 헛디딜 때도 있다왜곡되거나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기억을 밟았기 때문이다그러나 허방 가지들에도 검붉은 열매는 달리고쬐그만 이 황홀경을 음미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내게 시 쓰기란 나무 오르기와도 같은 것몇 번을 미끄러져도 다시 오를 수 있는 것오르고 올라도 그 끝자락엔 영영 닿을 수 없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