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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과거에서 지금 ‘우리’를 찾다 1. 학교와 책 성균관과 학생 향교와 서원 공부와 독서 문헌의 나라 출판과 유통 금지된 책 2. 응시와 부정 좁은 등용문 급제의 염원 수종, 협서와 차술 시험관과 짬짜미 3. 벼슬과 정치 벼슬길과 인사 신고식을 거쳐야 무식한 관료들 수령과 선정비 청백리와 탐관오리 징계와 유배 선례와 여론 당파 싸움 시대의 맞수들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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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와 서원
서울의 사학에 비길 수 있는 것이 지방의 향교다. 지방을 다니다 보면 교동이나 명륜동이란 지명이 많은데, 이것은 향교가 있는 동네를 의미한다. 그 주변을 둘러보면 향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향교의 건물 배치는 성균관과 같다. 대성전은 납작한 벽돌인 전돌을 깔고, 명륜당은 가운데 대청과 좌우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고, 기숙사는 대체로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지형에 따라 공간 배치가 달라지는데, 평지일 경우에 대성전은 앞에 있고, 구릉일 경우에는 뒤에 있다. 선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공부하는 공간보다 높은 곳에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나주향교는 평지에 세운 것으로 전묘후학前廟後學의 사례에 해당하고, 강릉향교는 구릉에 세운 것으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서원에서는 향교와 달리 평지에서건 구릉에서건 가장 안쪽에 사당을 둔다. 사당은 따로 담장을 둘러 출입을 제한하였다. 서원은 선비 정신에 따라 화려하지 않게 건물을 짓되, 사당에만 단청을 입혔다. --- p.41-42 금지된 책 우리나라는 문헌의 나라인데 서책을 어찌 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근래에 가지고 오는 책은 패관소품들이다. 요즘 사람들이 소품에 탐닉하여 이러한 것들을 사오니 어찌 엄히 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성경현전이라 하더라도 이미 사온 것으로 외우고 읽을 만하다. 이번의 사신 행차에서는 경서 이하 모든 책은 절대 사오지 마라. --- p.정조실록 18년(1794) 10월 29일 성인의 글을 경經이라 하고 현인의 글을 전傳이라 하므로 성경현전聖經賢傳은 공자, 주자 등의 글을 가리킨다. 또 패관소품稗官小品이란 중국에서 유행했던 패관소설稗官小說과 소품산문小品散文을 의미한다. 패관소설이란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고, 소품산문이란 자유롭게 쓴 짧은 문장이다. 순수한 고문古文을 고집했던 정조에게 이런 것은 이단적인 것이었다. --- p.128 좁은 등용문 과거시험은 조선시대에 와서 전형적으로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때에 없던 무과 시험을 신설하여 문과와 무과 양과를 두었고, 반면에 승려를 뽑던 승과는 없앴다. 하지만 과거제도는 어디까지나 무인보다는 문인이 지배하는 사회를 뒷받침하는 제도였기에 문과가 항상 중시되었다. 조선시대 문과 시험의 과정은 이러했다. 소과小科는 예비시험으로 진사시는 문장 짓기 능력을 시험하고, 생원시는 유교 경전의 이해를 시험하였다. ‘최진사댁 셋째딸’의 최진사도 소과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이고,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은 생원이라 불렀다. 두 시험을 합쳐서 생진과生進科 또는 사마시司馬試라 하고, 이들의 합격자 명단을 사마방목이라 한다. 이때의 합격을 입격入格 이라 하고, 이들에게는 합격증인 백패白牌를 주었다. 초시初試와 복시覆試의 두 단계 시험이 있었고, 단계마다 3일간 초장, 중장, 종장의 시험이 있었다. 초시는 각 지역에서 치르고, 이들을 서울에 모아서 복시를 치르기에 회시會試라고도 한다. 이렇게 해서 생원 100명, 진사 100명을 최종 선발하여, 성균관 입학 자격을 주었다. --- p.140-141 시험관과 짬짜미 세종 때부터 과거시험 장소를 두세 군데로 나누어 보아서 각각 1소, 2소 등으로 불렀다. 1소 시험관의 자제나 친척 등은 2소로 보내고, 2소의 경우에는 1소로 보내어 과거 공정성을 높이려는 제도적 장치였다. 부자지간에 시험을 볼 때에도 서로 실력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를 방지하고자 다른 장소에서 보게 하였다. 시험장에 따라 시험관도 다르고 문제도 달라서 공평성에서 문제는 있었다. 이를 분소법分所法 이라 한다. 지방에서는 수령이나 수령 자제는 다른 도에 가서 시험을 보게 하는 환도법換道法이 있었다. --- p.209 무식한 관료들 조회 시에 문관은 동쪽에 도열하고 무관은 서쪽에 도열하여 각각 동반, 서반이라고도 부른다. 고려시대에도 문무의 차별은 조선시대와 다르지 않았다. 사대부가 지배하는 문인 중심의 사회를 지향한 중국을 본받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중국의 정치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고려 이후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에 비해 고대는 혈통 중심의 신분제 사회로서 문무의 구별마저 뚜렷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사대부는 서민과 구별되는 세습적인 벼슬아치를 의미했지만, 송나라 때부터 과거제도가 정착되면서 시험을 통해서 관료가 된 계층을 가리키게 되었다. 과거시험을 치러야 했기에 사대부는 지식인층 또는 독서인을 의미하고 문인 관료를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이 ‘사대부사회’라고 한다면 고려와 조선은 흔히 ‘양반사회’라고 한다. 양반이란 원래 문관과 무관을 아우르는 현직 관료를 의미하지만, 조선시대에 점차 세습적이고 신분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하여 중국과 달리 다소 폐쇄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과거시험 응시도 실질적으로 양반 출신에게만 주어졌으니, 우리가 양반이라 하면 관료란 의미보다는 평민과 다른 특권 계층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면서 양반도 역시 문인을 중심에 둔 말이었다. --- p.261-263 당파 싸움 한정된 관직에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도 일리 있는 해석이다. 분파가 발생하면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싸우다 보면 그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지게 된다. 영조는 당파 싸움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동?서의 당은 전랑의 추천에서 불거졌고 노?소론은 회니懷尼의 싸움에서 비롯되었지만, 서로 혼인은 터서 정분을 통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가례원류家禮源流』가 한 번 나온 뒤로는 마침내 두절되어 신임辛壬 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게 되었다. _영조실록 40년(1764) 5월 17일 회니의 싸움이란 회덕懷德, 대전에 살던 송시열과 이성尼城, 논산 魯城에 살던 윤증,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다. 윤증이 아버지의 묘갈명을 송시열에게 부탁했다가 오히려 낭패를 당했고, 이 때문에 양자의 관계가 끊어져 송시열의 노론과 윤증의 소론으로 갈리는 빌미가 되었다. 『가례원류』를 간행하면서는 유계의 단독 집필이었냐 유계와 윤선거의 공동 집필이었냐를 두고 두 집안이 다투었으니, 이것은 노론과 소론의 싸움이기도 했다. 신임이란 신축년과 임인년에 벌어진 신임옥사로서 신임사화라고도 부른다. 이때에 왕세제왕위를 이어받을 왕의 아우 책봉을 둘러싼 논쟁에서 소론이 승리하여 노론을 대거 숙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써 노론 4대신이 죽임을 당한 것을 비롯해서 60여 명이 참혹한 변을 당했다. --- p.374-3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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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서의 역사, 에피소드로서의 역사,
당신과 나, 우리의 일상이 모여 역사가 되다 몇년 전 미국에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에 수많은 경제학자가 예측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면서 사람이 빠진 경제학이었음을 고백했다.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였고, 사람의 마음과 제도를 고려하지 않고 수학과 통계에 빠졌다는 자성이었다. 사실 우리 역사학도 논문을 위한 논문을 쓰고, 사람이 빠지고 기계적인 틀에 갇힌 학문이 되지 않았는지 자성해야 한다. 역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인간이 있는 역사와 인간이 빠진 역사. 우리가 지금껏 학교에서 배워온 역사는 후자에 해당한다. 역사의 발전이니 구조니 제도니 하는 골치 아픈 문제들을 논하는 사이, 우리는 정말 중요한 인간 그 자체를 놓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송기호 교수의 우리역사읽기〉는 이러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한다. 역사를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다! 어렸을 적 할머니가 해주던 옛날이야기는 지금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는 거기에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이야기 속 인물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도 바로 그러한 ‘이야기로서의 역사’, ‘에피소드로서의 역사’, ‘생활사로서의 역사’, ‘사료가 직접 말해주는 역사’, ‘사람의 역사’이다. 한국인의 생활이 그 자체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칠판에 필기된 내용만을 역사로 알고 이에 염증을 느끼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야담은 재미있는데 역사는 재미없다’는 인식을 바꾸고, 역사란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생활사의 관점에서 한국사 전체를 조망하며 우리에게 보여준다. 여기, 당신과 나의 일상이 역사가 되는 것을. 시간의 간극을 넘어 현재에서 과거를, 과거에서 ‘오늘’을 보다 이 책에는 저자의 어릴 적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터넷을 시작한 지 불과 20년 전임에도 이제는 인터넷이 없던 세상이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먼 일로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시험의 부정행위나 맞수들의 경쟁을 읽다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과거와의 간극이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다가도, 어는 순간에는 지금 이 순간이 과거와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 바로 ‘지금, 여기,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과거에서 ‘오늘’을 보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사소하고, 소외되고, 그저 변화한 것들의 역사를 보는, 종합사로서의 역사학을 지향하다 우리 역사학계는 발전을 찾는 데 너무 편향되어 있다. 발표되는 논문들은 우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찾는 데에만 진력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에는 발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쇠퇴도 있고 그저 변화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은 관심 밖에 던져져 있다. 또 반성의 역사를 쓰거나 부정적 평가를 담으면 무조건 식민주의 사관이라고 공격하여 입을 닫아버리게 한다. 이렇게 되면 자아도취의 역사에 빠져버리고 만다. 역사에는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과거와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현대인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덜 발전된 과거를 낮추어보는 편견이 개재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변화와 불변의 이중주를 보여주는 것도 생활사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발전이나 구조를 구명하려는 서양의 역사관과 도덕적 교훈을 얻으려는 동양의 전통적 역사관, 내재적 요인과 외래적 요인에 대한 인식의 조화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종합사로서의 역사학도 제 면목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