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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중독녀의 최후(2024 『계간 문장21』 봄여름호)
휴가(2023 『계간 문장21』 가을호) 아수라 하우스 이사 가는 날 비둘기 날다 졸혼(2024 『계간 문장21』 가을겨울호) 비만 클리닉 화장실 소동(2023 『계간 문장21』 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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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이 팔을 휘두르며 마구 떠들었다. 그렇게 떠든 지 5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얼마 안 있어 소리는 다시 나기 시작했다. 민경은 머리를 양손으로 감쌌다. 미치지 않고서야 하루가 멀다 하고 한 번씩 이런 환청에 시달릴 수는 없었다. 요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더니 정신이 나가버린 걸까? 민경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 p.10 나는 대나무를 찌기 위해 면장갑을 끼고 낫을 챙겨 대나무가 우거진 빈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따라오려 했지만,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이 대나무 숲으로 뒤바뀐 곳이라 음산하기도 하고 모기 소굴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설득해 집에 있게 했다. 이곳 모기들은 도시 모기의 세 배가 넘는 크기였다. 그런 모기에 아이들이 물리기라도 한다면 정신을 잃을 것처럼 무시무시해 보였다. --- p.51 이 집에서 13년을 넘게 주눅 들어 산 세월만 생각하면 나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밖에 생기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지, 뒤로 굽지는 않는 법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을 나는 후회했다. 시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을 위해서 나에게 내 딸, 내 딸 하며 위하는 척했지만,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딸이 아니라 며느리였고 타인이었다. --- p.94 정말 새끼 비둘기가 날마다 꿈꾸던 자유 비행이 기정사실이라면, 훨훨 날아 어미가 있는 무리 속으로 합류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바라던 상황이지만, 새끼 비둘기의 날개는 아직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 p.138 나는 삐딱선 타고 있는 횟집 아들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웃었다. 나에게는, 아내에게 뺏기지 않은 다른 비자금이 딱 300만 원 있어서였다.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는 건지, 내가 운이 좋은 건지 알 길은 없지만 300만 원으로 해결이 된다면 기꺼이 주고 말아야 하는 판이었다. --- p.179 줄 없는 줄넘기를 돌릴 때마다 어색하고, 뛸 때마다 자신도 불구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어 그만하고 싶었지만,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 기구 중 이만한 것도 없겠다 싶어 쉬지 않고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고 있는데 옆 건물 미용실에서 음료수와 치킨 몇 조각을 가지고 왔다. 다이어트 중이어서 먹지 않겠다고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기어이 카운터 위에 놓고 갔다. 튀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구수한 치킨 냄새가 승희의 코를 자극했다. --- p.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