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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김영사 200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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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top100 7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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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흔들리는 주자학의 나라에서
어찌 감히 농민들이 사대부를 넘보랴

2.인조반정. 그 비극의 뿌리
서인들의 쿠데타. 인조반정이 낳은 비극들
소현세자. 그 진보성과 개방성의 좌절

3.북벌의 시대. 대동법의 시대
북벌. 말인가 실천인가?
농민을 잃을지언정 사대부를 잃을 수는 없다
숭무주의자 효종과 숭문주의자 송시열
스러진 북벌의 꿈

4.왕위에 올랐다고 가통까지 이은 것은 아니다-예송논쟁
임금이라도 차자가 아닌가?
적자라는 호칭은 임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종통과 적통이 어찌 다르랴
어찌 감히 주자와 달리 해석하랴
온양 행궁에서 벌어진 싸움
왜 15년 전과 다르단 말인가

5.국익보다는 당익이 앞선다
스승만 알고 임금은 알지 못하는구나
아버지가 중한가 스승이 중한가
정권을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남인들의 원한을 어찌 풀겠는가?
남인 소생 왕자가 어찌 임금이
숙종의 분노

저자 소개 1

작가한마디
송시열에게 대학자이자 대정치가라고 호칭해 야 마땅하다. 여기에 `대(大)'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이유는 그의 학문이 그만큼 고 명하고 그의 정치가 그만큼 고결했다는 뜻은 아니다. `대'라는 접두사를 붙일 만큼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다.

李德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객관적 사료와 논쟁적인 주제로 새로운 역사 해석의 선두에 서 있는 우리 시대 대표적 역사학자이다. 풍부하고 고증된 사료를 근거로 우리 역사의 숨겨진 이면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누가 왕을 죽였는가』 『조선 왕을 말하다』 『조선 왕 독살 사건』1·2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등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5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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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97쪽 | 700g | 148*210*30mm
ISBN13
9788934905028

책 속으로

우리나라는 국사와 국어 교과서에 한해서는 국정교과서 체제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은 '북벌=송시열'이라는 조작된 도식을 그대로 외워야만 하는 것이다. 실제적 북벌론자 윤휴가 죽은 후 송시열의 당인 노론은 윤휴가 아닌 송시열을 북벌론자로 추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정권을 잡음에 따라, 그리고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에도 상당한 세력을 온존함에 따라 '송시열=북벌'이라는 진실과 동떨어진 논리를 반복적으로 주입시킨 것이고, 여기에 일부 역사학자들이 놀아남에 따라 오늘날 국사교과서에까지 실린 '역사적 진실'이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역사가가 선택해 기술하는 사실이 역사가 된다는 서양의 역사가 카(E.H.Carr)의 말이 실현된 것이라고 한다면 합당한 해석일지 모르겠다.

--- p.308

농업생산과 상업의 발달, 그리고 수공업과 화폐 경제의 발달은 신분제를 변화시켰다. 농민들은 전주와 전호, 그리고 임금노동자로 분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전주-전호 사이의 대립을 격화시켜 항조(抗租)운동이 일어나게 했으며, 때로는 민란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부농으로 성장한 일부 양민들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노비들은 양반이나 양인으로 신분 성장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공명첩(空名帖)·납속책(納粟策) 등을 통해 양반과 양인의 신분을 획득했으며, 이 외에도 박지원의 양반전에 나오는 족보 매매 등으로 호적을 고쳐 조상을 바꾸거나 유학(幼學)·진사(進士)를 사칭하기도 했다.

서얼(庶孼)이나 중인들도 소통(疏通)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들은 무관(武官)을 중심으로 관계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부모 양쪽 중 어느 한쪽이 천인이면 천인이 되던 양천제(兩賤制)가 예송논쟁의 와중인 현종 10년에 어머니의 신분에 따르는 종모법(從母法)으로 바뀐 것도 신분제 변화의 하나였다.

양반들도 이런 변화의 물결에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일부 양반들은 거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벌열(閥閱)이 되어갔으나 다른 양반들은 몰락해 일반 농민들과 비슷한 처지에 떨어졌다. 농민 사회가 내부 분화한 것처럼 양반 사회도 내부 분화한 것이다. 이 모두가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변화 때문이었다.

--- p. 394

그가 동지에게 받은 무수한 찬사와 적에게 받은 무수한 저주는 내게 그 시대를 바라보고 평가하게 해 주는 자료이자, 그가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현재의 영향을 평가하게 해 주는 자료일 뿐이다. 그는 한 시대를 이끈 인물인 만큼 그 시대에 미친 그의 영향력의 긍,부정은 엄격히 평가받아야 한다. 또한 현 시대는 앞 시대를 이어받아 이루어졌으므로 그가 현재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의 긍,부정도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 p.20

출판사 리뷰

한국사의 최대 금기, 송시열 신화의 가면을 벗겨낸 문제작

한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란의 대상(신돈이나 정도전, 혹은 정여립 같은 이들을 꼽기도 하지만 생전이나 죽은 후에 송시열에 집중되었던 논란의 비중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언급된 조선최대의 당쟁가, 송시열. 저자가 우암 송시열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지인(知人)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쓸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저자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310여 년 전에 죽은 그는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마시고 사사 당했다. 숙종 때를 제외하고는 역모가 아닌 경우 대신을 사형시킨 예가 없고 국문도 하지 않을 만큼 대신을 우대한 조선에서 그는 '죄인들의 수괴'라는 애매한 죄목으로 사사 당했다. 그러나 그는 죽고 난 이후 다시 노론의 재집권과 함께 유학자로서의 최대 영광인 성균관 문묘에 공자와 함께 배향되고, 공자 맹자 주자처럼 송자로 불리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신화가 되어 있다. 대부분의 신화들이 과장되어 있거나 상당부분 조작되어 있듯이 송시열도 마찬가지다.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는 노론 쪽에서는 송시열을 성인의 자리에 그대로 두려 했다. 좋든 싫든 한 시대를 책임졌던 사람으로써 그 시대에 대한 공적과 과오가 병존하는 일반적인 정치가로 끌어내리려는 모든 정치적·학문적 시도에 대해 노론 계열은 감정적으로 대응해 왔다. 조선 후기 이후 성인 송시열을 비판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위험한 일이었다. 그 위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는 동안 송시열은 하나의 신화가 되어 왔다. 그리고 조선이 멸망한 이후에도 노론은 멸망하지 않았고, 세력을 유지해 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동안 접근조차 금지되어 있던 한 정치가에 대한 300년 신화의 가면을 벗겨 냈다. 극단 적 찬사와 극단적 저주가 공존하는 조선 역사상 가장 치열한 당쟁의 시대에 온 몸을 내던진 인물, 송시열. 그 동안 그는 완전한 인물처럼 왜곡되어 왔고, 그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은 금기처럼 되어 있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았던 송시열에 대한 글들처럼 그를 성인으로 만드는, 그럼으로써 서로가 좋고 좋은 그런 류의 글이 아닌 그를 인간의 자리,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파탄에 대한 부채를 지녀야 하는 한 정치가의 자리로 끌어내려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논쟁작이다.


시대의 요구와 역사의 변화를 거부한 한 정치가에 대한 공허한 찬사의 진실

송시열이 살았던 당시 조선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었다. 조선의 신분질서로는 더 이상 이런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다. 양반의 특권은 폐지되어야 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들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주자학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주자학은 주희가 남송(南宋)에서 사대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맘든 것이었다. 송시열이 활동할 무렵 주자학은 조선에서 그 기능을 다한 학문이었다. 송시열은 "다행히 주자 뒤에 나서 학문이 어긋남이 없다"고까지 말했지만 주자학을 정치에 어긋나게 적용한 것이 송시열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이는 조선 전체의 비극을 잉태했다.

송시열은 주자학의 의리론을 조선으로 가져오는 것, 즉 소중화(小中華) 사상을 주자학의 조선화로 생각했지만, 시대착오적인 소중화라는 명분론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에 맞게 학문을 변화시켜야 했다.

유학의 진정한 조선화를 위해 사대부 중심의 중세유학을 일반 양인 중심의 근세유학으로 바꾸어야 했다. 그 속에서 신분제의 변화를 수용해야 했다. 그러나 송시열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대부라는 계급의 이익이었고, 서인·노론이라는 당의 이익이었다. 이를 위해 농민과 여성들은 억압받아야 했고, 심지어 송시열은 본관이 다르더라도 동성(同姓) 간에는 결혼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 책은 송시열이 무덤 속에서도 화려하게 부활하여 전국 23개의 서원에 제향되었고, 국비로 『송자대전(宋子大典)』도 간행되었지만, 그에 대한 찬사는 그릇된 것임을 밝혀냈다. 이는 집권 노론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노론이 재집권함에 따라 그는 송자라는 성현의 일컬음을 받았지만, 그 찬사는 공허한 것임을 역사가는 증명하고 있다.

저자는 시대의 변화 요구를 실현하는 데 목숨을 걸었다면 송시열은 진정한 성인으로 많은 백성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송시열은 사대부 계급의 이익과 노론의 당익(黨益)을 지키는 데 목숨을 걸었다. 결국 그의 당인 노론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정권을 잡았으나 이는 백성들의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나라에 불과했다.


지역감정이나 비이성적 당쟁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현 정치현실에 대한 반성의 계기

경제·사회적으로 격변기의 한 가운데 있던 송시열과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들은 당과 계급의 이익을 위해 역사의 변화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송시열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송시열은 그를 추종하는 노론에 의해 성인으로 추앙되었고, 노론은 조선이 멸망한 이후에도 망하지 않고 세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감추어진 그의 이면에는 악마와 저주라는 별칭이 따라다니고 있다.

오늘날 지역감정에 기초한 정당의 지도자들은 그 실체의 진실 여부를 떠나 위인과 악마라는 양극단에 서 있다. 극심한 당쟁에 기초한 지역감정은 인물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조차 힘들게 하고 있다. 시대의 요구나 사회적인 변화와 관계없이 당의 이익에 우선하는 세태는 이후에 어떤 결과를 잉태하는지, 그리고 이것은 결국 역사에 의해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합당한지를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송시열과 그들의 이익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어야 했던 한 시대와 인물에 대한 조명을 통해 이 책은 지역감정이나 비이성적인 당쟁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현 시대의 저급한 정치 인식에 하나의 역사적 반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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