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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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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명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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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탁상달력을 사용한다. 사람들을 만나서 일정을 메모할 때 폰을 이용하지만 집에서는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달력에 기입한다. 그것도 주로 연필로 적는다. 연필과 종이의 만남을 지속하는 방법이다. 몇 자 적는 짧은 순간의 정서가 마음을 다독인다. 그날 기분에 따라서 글씨의 크기와 필체와 흘림이 모두 다르다. 나중에 잘 못 알아보는 것들도 있다. 내 글씨가 아닌 것 같은 글자들이다.
--- 「2025년 1월 일기, 6」 중에서 발화되지 않은 것들, 언어에 접촉되지 않은 무한 세계의 우둔함 속에 몸을 맡기고 앉아 있다. 나는 그 우둔함 속에서 우둔해지고, 거친 힘 속에서 약화되며, 무한의 흐름 속에 상실된다. 이는 매우 간명한 과정이다. 무한은 명령이고 속삭임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 채 편안하다. 언어의 옆길에 있는 물을 마신다. 언어가 알지 못하는 물을 마신다. 꾸밀 수 없는 물이다. 나는 그냥 물을 바라본다. 발화하지 않는 것을 발화되지 않게 한다. --- 「2025년 3월 일기, 8」 중에서 녹이 스는 것에 사로잡힌다. 녹이 슬고 멈추어진 세계에서 어떤 말 못할 불가피함을 목도한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접어든 것이다. 녹의 색은 형언하기 어렵다. 청록이나 청회색 비슷한, 그러면서 포괄적으로 검은색이다. 시간이 색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시간이 쓰러지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초월과 우월을 내려놓고 시간이 색으로 흐느끼는 중이다. 이런 색을 어디에선가 또 본 느낌이다. 어두워질 때의 짙푸른 색이 그렇다. 이맘때, 가까이 도로로 엄습해오는 어둠뿐 아니라 멀리 산의 어두워지는 형체가 모두 청흑색을 띤다. 녹이 슬 때, 그리고 어두워질 때, 시간은 엇갈린 참회를 하는 것일까. 너무 늦었다고, 너무 빠르다고. --- 「2025년 6월 일기, 5」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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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명의 ‘날짜 없는 일기’
날것의 반형식, 반문학적인 쓰기 시를 버리고 지상에 도달하는 언어들 시를 쓰는 사람이 맞닥뜨린 언어의 편린들을 주워올린 일종의 문학 일기. 1년 동안 쓴 일기를 한 권에 묶고 날짜를 쓰지 않고 월별로만 장을 나누었다. 문학화시킬 필요가 없는 평평한 순간들에 대한 기록, 문학의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날것의 글쓰기이자 어떠한 의미도 들어서지 않는 평이한 순간을 유지하려는 시도이다. 시인 이수명은 시에 대한 생각 옆에 무심하게 펼쳐진 시공간과 일상, 사물과 현상을 이리저리 스케치해나가며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경계, 시어와 시어 아닌 것의 차이가 흐려지는 순간을 포착해보려 한다. 1. 내가 없는 쓰기 2. 정적과 소음 3. 흰 컵의 휴식 4. 5.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이 날짜 없는 일기의 세번째 책을 내게 되었다. 1월부터 12월까지 24년 한 해 동안 쓴 일기이다. 처음 무엇을 시작하면 희미한 길 하나가 생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른 길과 통하든 통하지 않든 길이란 생겨나면 계속되기도 한다. 자생적 생기라 할까. 처음 시작할 때 의식하지 못했던 이 글의 성격 같은 것에 대해 지금도 한마디로 이야기하기가 망설여지지만, 짧은 날것의 언어 호흡이 내 글쓰기의 한쪽에 어느덧 자리를 잡게 된 느낌이다. 계속하는 것의 묘미이다. 연속물의 뜻은 아무래도 이 ‘계속’에 있을 것 같다. 이 일기는 일종의 사생에 가깝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마주치는 장면을 특별한 압력을 빌리지 않고 사생하듯 스케치해보려 한 것이다. 물론 사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미덥지는 않다. 보는 자가 있기에 보이는 것이 그대로 그려지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사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생 지향이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또한 사생이 가능하게 된다. 사물과 상황의 사생을 위주로 구도나 배치가 없는 글을 써보는 것이다. 지금 튀어나온 사생이라는 말만 제외하면, 신경써서 구성하지 않는 편안함에 기대어 있는 글 말이다. 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입구와 출구가 딱히 필요 없는 글이다. 이를 흘러가는 대로 쓴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독자로부터 일기도 시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사생성을 떠올린 것이 아닐까 싶다. 말로 그림을 그리려 한다는 점에서 일기가 시와 비슷해 보일 수 있고, 하지만 또 말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그 얘기를 듣고 아직 멀었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당신의 일기는 시와 아주 달라요, 이런 말을 기대하는 것일까. 일기든 다른 글이든, 어떻게 써도 시처럼 보일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시를 쓰는 사람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일기니까, 시처럼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는 잠깐씩, 또다른 시를 흉내 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다시 빠져나오는 반복 말이다. 어느 쪽이든, 시든 일기든, 그 어디로 들어가기보다 사생성에 힘입어 나오려는 쪽으로 움직인 글이다. 이번에도 대략 2~3일에 한 번씩 쓴 짧은 메모이다. 방향과 배치가 없어서 글들이 모두 조각이다. 이어진 글들이 아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태도에 따라서, 말의 색과 톤이 다르다. 깊이 내려앉는 어조가 있고 무심하고 시니컬한 말이 앞서서 정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다. 글이 짧게 토막 나기도 하고, 나름 구불구불하게 돌아나가기도 한다. 높이와 위치, 명암도 다 다르다. 어떤 것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 글을 쓰는 1년 동안 불충분하게나마 다른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일기가 1년을 단위로 월별로 모여 있어 그런지 계절감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원고를 정리하면서 새삼스럽게 계절이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계절이 늘 최고로 선명하고 극단적이어서, 이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한 해의 많은 모험을 충당한다. 다른 무엇도 이보다 더 드라마틱하지는 않을 것 같다.내가 늘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계절 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 원고도 흔쾌히 책으로 나오게 해준 난다의 김민정 대표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원고를 살피고 검토해준 유성원님, 한결같은 감사를 전한다. 2025년 9월 이수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