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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의 시학
이수명 시론집
이수명
난다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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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창작/이론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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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7

제1부
그러나 시를 쓴다는 것 15
그냥 무엇 24
시는 어디에 있는가-표면의 시학 32
시는 상상하지 않는다 43
현대시는 현대에 기대지 않는다 50
은유 없는 세계 은유 없는 시 54
반(反)묘사 60
메타시는 없다 68
어떤 시를 옹호해야 할 것인가-개척이냐 세련이냐 75
지향하지만 지향하지 않는 것 93
세상의 모든 노이즈를 경유하려는 듯이-섀넌, 정보, 시 102
시는 괜찮다-인공지능 시대의 시 111

제2부
내가 그녀임을 알았을 때-김구용의 『구곡』 123
한국 현대시의 네 가지 좌표 140
2000년대 시와 불교적 사유 164
시의 이미지는 어디서 오는가-최근 시의 이미지에 대하여 182

제3부
세계는 나비들로 이루어져 있다-이상의 「오감도 시 제10호 나비」 211
어떤 수금 의식-김구용의 「소인(消印)」 228
사건의 해산과 무관(無關)의 시학-김언의 『모두가 움직인다』 248
호모 트리스티스(homo tristis)-이준규의 『네모』 279
풍경에의 상상-이선욱의 『탁, 탁, 탁』 299
동시에 꿈을 꾼 것 같은-황인찬의 시 326

제4부
읽을 수 없는 숫자들-이상의 시와 타이포그래피 345
감옥에서 꺼내지는 언어들-앙리 마티스와 트리스탕 차라 351
미완성이 최고다-이브 본느프와 357
환대하는 것과 물리치는 것-로버트 브라우닝과 파울 첼란 361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앤디 워홀과의 가상 인터뷰 372

발표 지면 385
인명 찾아보기 389

저자 소개1

1994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2001년 [시와반시]에 「시론」을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물류창고』 『도시가스』, 연구서로 『김구용과 한국 현대시』, 시론집으로 『횡단』 『표면의 시학』, 비평집으로 『공습의 시대』 등을 펴냈다. 박인환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노작문학상, 이상시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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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472g | 135*205*30mm
ISBN13
9791188862122

책 속으로

시는 기억이 없다. 판단하지 않는다. 정보를 저장하려 하지 않는다. 무미건조하도록 아무것도 축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쓸모없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권력이 없는 것들에 본능적으로 다가간다. 지푸라기와 같이 쓰러지는 것을 시는 반긴다. 음성이 깃든 발화보다는 아무도 주우려 하지 않는 허사들, 차라리 소음과 함께 부대낀다. 부스럭거림, 삐걱거림, 펄럭임, 찰랑거림, 손을 내밀지 못하는 부스러기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선다. 내용 없는 것들, 잡을 수 없는 세계, 시는 시가 아닌 것으로 흘러간다. 시 안에서의 순환을 그만둔다. 그리고 시가 이렇게 시 밖으로 나가려 할 때, 허공으로 뛰어내릴 때, 시는 스스로 현기증이 된다. 말라르메는 시를 “위태로운 상태의 언어”라 했다.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근접한다. 언어는 사물을 표현하지 않는다. 사물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며 사물을 덮을 수도 없다. 언어는 권능적이지 않으며 반대로 흠이 많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무언가를 잘 포괄하지 못한다. 사물을 조이거나 건져내지 못한다. 언어의 부실함과 미숙함은 사물과 결합하지 못하게 하고, 사물에 한없이 다가서도록 만들 뿐이다. 그리하여 언어가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근접해가는 것이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물이 언어에 어른거린다. 언어가 너무 과격한 운동을 하면 어른거림이 흔들려 깨진다. 바로 시에서의 추상이다. 추상은 시인이 언어에 너무 많은 권능을 부여한 결과이다. 시인이 언어를 끌고 다닌 것이다. 시인이 한 발자국 물러서고, 사물의 어른거림을 유지하면서 언어가 아슬아슬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시다. ---「그러나 시를 쓴다는 것」중에서

이 무엇을 그냥 ‘무엇’이라고 놔두자. 아직은 무엇이다.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무엇이다. 우선 무엇은 아무것도 아닌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썼다. 하지만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른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어느 불성실한 미분의 세계를 떠올려본다. 어쩌면 무엇은 비존재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일 것이다. 얼굴 없는 도사림일 것이다.
나는 우선 무엇이라고 놔둔, 이 ‘그냥 무엇’의 흘러다님과 함께 있다. 나는 ‘그냥 무엇’을 비존재로 숨겨두지 않으며, 존재로 만져보지 않으려 한다. ‘그냥 무엇’은 부재의 심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재의 명랑한 감각 속에 있다. 존재의 슬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무지 속에 있다. 어디선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무심한 얼굴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나는 문득 ‘그냥 무엇’을 사랑한다고 느낀다. 아무 느낌도 없이 사랑을 느낀다. 김밥은 ‘그냥 무엇’인가? 그렇다. 굴러가는 깡통은 ‘그냥 무엇’인가? 그렇다. 깡통은 일그러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손에서 녹는 시간은 ‘그냥 무엇’인가? 그렇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그렇다.

---「그냥 무엇」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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