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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들어가며ㅣ _ 9
1장 이미지 _ 15 2장 내파 _ 31 3장 초월 감각_ 47 4장 초월 신경증 _ 59 5장 전환_ 71 6장 훈련 _ 83 7장 촉각 _ 97 8장 태도 _ 111 9장 문 _ 127 추기 _ 145 ㅣ나가며ㅣ _ 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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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미디어는 잠재된 이미지를 끌어내는 샘플러다. 예술 작품과 유튜브의 쇼츠는 샘플러로서 동등하다. 예술 작품은 결과물을 매우 느리게, 하지만 지속적으로 산출한다. 실제로 그것이 작동하는지조차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의 잠재의식 어딘가에 기거하며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 이렇게 확보된 여유로움 안에서 우리는 이 샘플러의 피치를 조정할 시간을 얻게 되며, 그 조절 값은 특정 행동이나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예술 작품이 선사하는 서사와 감각에는 빈 공간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쇼츠의 경우에는 짧은 시간 안에 서사와 감각을 자동으로 산출한 뒤, 다음 차례의 쇼츠에 자리를 넘기고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감각마저도 가상의 것이 되어버린다.
샘플러의 습득, 잠재된 이미지가 샘플러를 거쳐 산출된 이미지 값과 이 과정이 반복되는 속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반영한 새로운 샘플러의 생산을 다른 말로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 스테이블 디퓨전의 작업창에 자리한 샘플러 노드는 인간의 내맡겨진 상상력이다. 우린 이제 운명을 운운하며 삶에 대한 변명을 이어 나갈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운명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인공 지능이 계산할 수 있는 노선에 대한 새로운 용어가 그 자리에서 득세한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 〈매트릭스〉는 이미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용되는 감각 측면에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처참하다. 매트릭스에는 이미지(샘플러)가 통제되는 세상이지만 뇌의 전기신호로 구동되는 삶이 있다. 뇌가 인지하는 감각 그 자체만은 진짜인 것이다. 감각은 삶의 열매다. 우리는 이것을 먹고 산다.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감각의 지각마저 시뮬레이션에 위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경은 다소 어둡고 흐릿하긴 하나, 매클루언이 언급했던 미디어를 통한 의식의 확장이 야기하는 ‘감각 마비’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 「1장 ‘이미지’」 중에서 ― “‘개선 가능성’과 ‘영원성의 가치’는 접착되어 있지 않을 때 서로 조화롭다. 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압축, 즉 빈 공간 사이를 기술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잡아당겨 이어버린다. 그리고 이것은 거대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초월 감각, 그러니까 신적인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착각이 그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초월 감각이 인간의 창조적 발상의 원동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 진보의 관성 유지와 재화 획득을 위한 잉여 가치 확보에 가담하여 상상력의 잠재 공간에 남겨두어야 할 ‘여백의 미’를 폐기하는 공정을 개발해 내고야 말았다. 스테이블 디퓨전 콤피유아이의 기본 회로에는 ‘엠프티 레이턴트 이미지’ 노드가 있다. 이것은 빈 캔버스 같은 역할을 한다. 생성 중인 이미지가 이 공정에서 이미지의 규격과 형태를 갖춘다. 여러 톱니바퀴의 조합과도 같은 스테이블 디퓨전의 작업 회로의 각 공정 중에 엠프티 레이턴트 이미지 노드는 가장 짧은 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이다. 연산된 데이터는 숙성의 시간을 거칠 필요 없이 이미지화된다. 꽤 미학적인 이름짓기임은 틀림없지만, 그 이름(비어 있는empty, 잠재된latent)에 상응하는 공간과 시간을 부여받지는 못한 것이다. 디지털은 상상력의 숙성을 아직 모른다. ” --- 「3장 ‘초월 감각’」 중에서 ― “이와 같은 형식의 ‘관계의 미학’은 전기의 특성에서도 어렴풋이 솟아 있다. 전기는 전자의 활동 에너지다. 전자는 보거나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한다. 원자의 부분 단위인 이것은 옮겨 다니는 힘을 가졌다. 우리는 그것을 전신電信이라는 관계망을 통해 느낀다. 인간의 의식과 신체활동도 전자 이동의 일환이다. 시각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전자의 존재를 느낀다. 마치 ‘혼’, ‘기’, ‘영성’, ‘정신’이 그런 것처럼. 그렇다면 전자란 우주적 정신의 질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이 추론이 영적 에너지의 실체에 최소한의 물질적 단서가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 신경 체계의 특성이기도 한 전기 커뮤니케이션”은 관계가 이어지는 모든 것에 다가갈 기회를 준다. 전기 미디어가 “상호 작용의 장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장소는 촉발하는 세계, 즉 시뮬레이션이다. 결국 초감각에 다가가기 위한 길은 시뮬레이션상에서 ‘제3의 생명’을 감지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 능력 대부분을 대체하였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태도뿐이리라. 다소 모호하고 불투명할지라도 우리는 촉발하는 생명을 붙잡아 의식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낯선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 「7장 ‘촉각’」 중에서 ― “과거만큼이나 미래에 중독된 우리 시대는 과학자들의 입이 벙긋거리기만을 기다린다. 숫자를 사랑하는 이 음유시인들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노래한다. 그러나 공짜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해방에 대한 대가로, 내부의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 고용을 창출해 내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위협을 갑자기 받게 되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는 필연적인 운명처럼 보인다.” 사진과 글의 조합을 업로드하는 SNS와 개인이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게 해주는 유튜브는 성큼 다가온 운명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핸드폰을 들어 터치하고 쓸어 넘기면 ‘만약’과 ‘가능성’이란 이름의 자동문이 계속해서 열린다. 프랑스의 예술 비평가 이브 미쇼Yves Michaud는 “아우라도 없고 미학적인 감정의 힘도 없는 생산물들의 고삐 풀린 회전 앞에서, 복제물들의 인플레이션 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는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며 현대 미술의 위기를 논했지만, 이 말은 이제 예술계의 울타리를 한참 벗어나 현대인 누구에게나 적용될 만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일찍이, 르네상스 회화론의 기초를 정립한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의 〈회화론De pictura〉(1435)은 화가와 대상 사이에 ‘열린 창문’이 있다고 간주하고 관찰할 것을 권한 바 있다. 아카데미 안에서 미학을 다루는 이들에게 ‘열린 창문’은 재현의 굴레를 벗어나 의식의 모험의 문으로서 화폭을 대해야 한다는 명분의 접착제로 인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회화의 기능을 함축하는 이 말은 초월 신경증의 시대인 지금에 이르러 그 유효기간이 다 된 듯하다. 우리에게 정말 간절한 것은 초월 감각에 중독된 의식을 현실로 호출할, ‘돌아오는 문’이다. 따라서 초월 신경증에 대응하는 예술이란 자동화에 위임된 감각을 되찾아 오는 일이어야만 할 것이다.” --- 「9장 ‘문’」 중에서 ― “초월 신경증은 콘텐츠나 플랫폼 사이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월 감각의 착각과 좌절의 반복이다. 디지털 공간은 개입의 경험을 선사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짜여있는 맵 위의 경우의 수 안에 제한을 걸어 둔다. 디지털 기술이 무한대에 가까운 시뮬레이션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계산 가능한 범주만을 포섭한다. 그렇게 우리의 상상력과 육체는 숫자에 종속된다. 의식의 무한함과 경우의 수의 대결, 이것이 초월 신경증 시대의 당면 과제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 중대한 역사적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 의식의 확장을 통해 또 한 번의 커다란 도약을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초월 감각의 착각 속에서 안주할 것인가. (…) 매체론의 선구자 마셜 매클루언은 첫 저서인 〈기계신부〉(1951)의 서문에서 자신의 이론이 “예술비평의 방법을 사회에 대한 비판적 평가 방법으로 적용”하는 시도임을 밝힌 바 있다. 본 논고는 그의 방식을 거꾸로 실행하는 것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논점을 끌어내는 형식에 있어서는 〈미디어의 이해〉에서 매클루언이 매체에서 발췌한 내용의 일부를 우화적 시선으로 편집하여 또 다른 매체에 적용하는 프로세스를 따랐다. 그리고 기술로 인한 시대의 변혁을 감지하는 레이더로서 예술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의 목소리 볼륨을 부각한 시각 예술론적인 화법을 추가하였다. “지난 3000년 동안 세분화와 기계화의 기술을 통한 외파 끝에, 서구 세계는 내파하고 있다”던 매클루언의 말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내파의 목적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시뮬레이션일 것이다. 나는 불규칙적으로 증폭되는 내파의 속도와 운동의 궤적을 그려내고 싶었다. ‘초월 신경증’이 임의로 명명된 시대적 현상이라면, 이 책은 그것의 풍경화일 것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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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b의 새로운 시리즈: b-SIDE
도서출판 b는 지난 6월, 신우승의 〈보르헤스와 열한 개의 우물〉을 필두로 새로운 문고판 시리즈인 ‘b-SIDE’를 내놓았다. 이 시리즈는 (나이가 아니라) 생각이 젊은 작가(비평가, 연구자, 에세이스트, 번역가 등 누구나)가 자신이 천착하고 관심을 가진 주제를 많이 길지 않은 호흡으로 펼쳐놓는 저서 시리즈다. 그동안 한국의 인문학 저서 시장은 대학교수들이 중심이 된 ‘학술’ 분야가 한 편, 대중적 지식 커뮤니케이션이 중심이 된 ‘대중 교양’ 분야가 한 편을 이뤄왔다. 하지만 이 새로운 시리즈는 ‘학술’이면서도 난해하지 않고, 논문 형식을 피한, ‘대중 교양’이면서도 학문적 바탕이 탄탄하고, 도발적이면서 혁신적인 저서를 지향한다. 누구나에게 쉽게 말을 걸고 있지만, 그 내용은 소화 잘되는 ‘쉬운 인문학’이 아닌, 지금껏 흔히 본 적 없는 주장을 담은, 작가의 인장이 박힌, 주류 학계에서 출판되기 쉽지 않을 수 있는, 하지만 글의 깊이는 수준급인, 그런 글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시리즈의 저자들은 대학과 텔레비전과 유튜브에서 ‘잘 나가는’ 명사들은 아닐 수 있지만, 자기 분야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작가들이다. 첫 번째 작품인 〈보르헤스와 열한 개의 우물〉에 뒤이어 이번에 출간한 김홍식의 〈초월 신경증〉에 이어서, 늦가을에는 세 번째 작품으로 언어학자 나익주의 〈세상은 은유〉가 발간 예정이다. 고심해서 지은 이 시리즈의 이름은 ‘b-SIDE’이다. ‘b-SIDE’는 레코드나 테이프의 뒷면이다. 주력하는 히트곡은 주로 A-SIDE에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b-SIDE에 담긴, 알려지지 않은 명곡, 모두가 흥얼거리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는 주옥같은 노래에 주목하고 싶다. b-SIDE는 영어 단어 ‘beside’의 발음과도 같다. ‘beside’는 ‘옆으로 비켜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는 중심보다는 주변, 주류보다는 비주류, 메인스트림보다는 언더독의 목소리와 시선과 사유를 담고 싶은 이 시리즈와도 통한다. 그래서 다시, 이 ‘b-SIDE’ 시리즈는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형식, 자신의 내용을 맘껏 발산하고 싶은 모든 작가들에게 열려 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