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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아트는 거리에 없다
김홍식
모요사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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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1. 스트리트 아트는 거리에 없다

스트리트 아트, 야망을 품은 낙서
캔버스, 사진, 모니터
그라피티 열차, 20세기의 개인 미디어
브랜딩, 스트리트 아트의 핵심 전략
뒤샹, 감춰진 계보

2. 거리의 영웅들

영웅의 조건
돈디 화이트

스테이 하이 149
푸투라 2000
카우스
셰퍼드 페어리

3. 스트리트 아트 품평 능력 기르기

그라피티의 유래에 관하여
안티, 거리의 시선
노마드, 효율과 속도의 미학
뱅크시, 키치의 그림자

4. 시대의 아이콘, 뱅크시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페르소나
비밀스러운 콤플렉스
그라피티의 미술사

5. 스트리트 컬처와 스트리트 아트

티셔츠, 길거리 갤러리
스니커, 스트리트 패션의 꽃
힙합, 컬처 믹서
갱,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증거
피부의 컬러, 글로벌 스트리트 컬처
음악, 스트리트 아트의 바이브

6. 스트리트 컬처를 알면 트렌드가 보인다

펑크, 마르지 않는 반항의 샘물
스투시와 슈프림-스트리트 컬처의 산업화
스트리트 브랜드와 명품, 문화의 설국열차
루이 비통, 컬래버레이션의 역사

7. 스트리트 아트의 미학

스프레이 페인트, 확성기 혹은 붓
샘플링, 믹스의 시대
쿨, 멋의 온도
스트리트 아트의 의미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홍익대학교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개인전으로 2024년 <관객 공모>(스페이스 유닛 4), 2017년 <벌기 위한 기도>(갤러리 토스트), 단체전으로 2025년 <스트리트 오브 섬머>(광주 신세계 갤러리), 2014년 <거리의 미술 ‘그래피티 아트’>(경기도 미술관) 등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스트리트 아트의 미술사적 맥락과 저변 문화에 대해 기술한 <스트리트 아트는 거리에 없다>(모요사,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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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76g | 145*190*20mm
ISBN13
9788997066865

책 속으로

엉터리 랩을 지껄이며 거리를 거닐던 1990년대의 10대 시절부터 몰래 낙서를 하고 도망치던 20대를 관통한 시간 동안 스트리트 컬처는 나의 인생이었고 자유의 원천이었다. 나는 그 희열을 이 책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내가 거리에서 얻은 것이 있듯이 이 책을 읽는 이들도 그러하길 바란다.
--- p.8

스트리트 아트는 그라피티의 ‘전술적 진화 형태’이다. 그러므로 모든 스트리트 아트는 크든 작든 부분적으로 그라피티의 특성을 지니지만, 모든 그라피티가 스트리트 아트일 수는 없다.
--- p.15

스트리트 아트와 어반 아트의 구분점은 행위자의 작업 방식에 있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는 거리에서의 실험과 그 기억을 작품에 담아낸다. 어반 아티스트의 경우에는 경험의 여부와 상관없이 ‘스트리트 컬처’라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이미지를 건져 올려 조합한다. 필요에 따라서 어떤 정보든지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시 스트리트 컬처적인 태도와 섞어낸다. 그라피티-스트리트 아트-어반 아트로 진행되는 진화의 화살이 그리는 궤적은 힙합이 브롱스라는 뉴욕의 한 지역에서 세계가 공유하는 문화로 발전한 양상과 매우 닮아 있다. 많은 래퍼들이 거리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그곳에 없는 것처럼 스트리트 아티스트들도 그렇다.
--- p.16

누가 뭐라 해도 그라피티의 황금기는 낙서로 도배된 열차가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 사이를 누비던 1970~1980년대 그 시절이었다. 시각적인 측면보다 상황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일단 편의를 위해 그라피티가 새겨진 열차를 ‘그라피티 열차’라고 부르겠다. 그라피티 열차는 라디오나 텔레비전과 같이 전기를 동력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다. 그라피티 열차를 보면 그린 이의 이름, 취향과 친구들의 별명 그리고 최근 동향과 가치관 등이 씌어 있다. 그라피티 열차는 2000년대의 유튜브보다 30여 년 앞선 ‘해적’ 개인 미디어라 할 수 있다.
--- p.35

과거 뉴욕의 그라피티 라이터들의 활동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부와 권력의 테두리 바깥에 위치한 개인이 스스로를 대표하는 상징을 기반으로 브랜딩을 실현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은 유명 기업의 광고 방식을 차용했다. 반복적인 상표의 노출과 이미지(혹은 콘셉트)의 선점이 그것이다. 그라피티는 기본적으로 ‘나’를 알리는 행위다. 나아가 나를 꾸미고 나의 비전을 공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라피티란 특별한 일들로 가득한 모험의 길이고, 스프레이 페인트는 용사의 검이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길거리에 남긴 작업을 기억한다는 것은 짜릿한 일이었다.
--- p.41~43

돈디 화이트가 ‘스타일의 대장’이라고 불렸다면, 씬은 ‘그라피티의 대부’로 불리는 사나이다. 멋이나 업적의 우위와 관계없이 좀 더 존재감이 크다고나 할까. 그는 라이팅의 기본적인 형식인 ‘태그, 스로업, 피스’의 유기적인 관계를 구성하는 데 교과서적인 존재라 할 만하다.
--- p.63

스테이 하이의 태그는 일개 아티스트의 서명이 아니다. 그라피티가 포스트 그라피티로 발전하게 되는 경로를 예언한 묵시록적인 작업이다. 마셜 매클루언의 화법으로 말하자면 텍스트의 시대가 아이콘의 시대로 변모해간 거대한 흐름의 징후라고도 볼 수 있다.
--- p.72

거리의 낙서를 두고 예술의 일환이라고 주장한 이들은 라이터들이 아니라 그 진가를 일찍이 알아챈 지식인들의 통찰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어차피 그라피티를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 따위란 없다. 있다면 거리의 삶을 이해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누리는 명성이 전부다. 정말로 그게 전부다. 스테이 하이는 아주 오래전에 이미 그것을 얻었으니 그의 ‘욕심 없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만족하는 자리에 머물 줄 아는 자존감에 탄복할 따름이다.
--- p.74

그라피티는 가상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영역 표시 방식이다. 최초에 이 행위를 시작한 주요 세력은 청소년들이었다. 성인이 아닌 존재, 사회에 진입할 수 없는 나이, 모든 선택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아이들.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목줄이 묶여 있다는 걸 누가 부인하겠는가.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기본적인 통제의 틀을 넘어 그라피티 문화를 이끈 뉴욕의 유색 인종 아이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았다. 번화가 광장에 모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게 쫓겨나는 일쯤은 일상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것을 표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때 뉴욕의 아이들에게 스프레이 페인트가 또르르 굴러들어 왔고, 그것을 집어 들어 세상을 가지려고 덤벼들자 ‘스타일 전쟁’이 시작됐다.
--- p.101

그라피티는 안티 정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하는 게임이다. 스트리트 컬처의 안티란 단순한 반항이라기보다 일반적인 도덕률에서 벗어난 길 위에서 창조성 혹은 재미를 길어 올리는 방식을 말한다.
--- p.107~108

누군가에게는 키치가 향기로울 수 있으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트리트 컬처의 분위기를 망치는 잡내로 인식되기도 한다.
--- p.121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쟁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소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작품을 남기는 행위는 중심부로 진입하기 위한 속물적 정치성이 아닌,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는 ‘진짜 정치’로 보아야 마땅하다. 지난 150여 년간 전위 미술의 선구자들이 “정치에 근거를 두고” 작품에 임했다면, 뱅크시는 정말로 정치를 ‘하고 있다’.
--- p.144

2008년에 그린 ‘토마스 기차(Thomas the Tank Engine)’ 작품은 뱅크시가 그라피티를 바라보는 시점의 근원을 추적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이 작품은 토마스 기차를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와 열차에 그라피티를 하는 다 큰 청년을 개념적으로 겹쳐 보이게 한다. 그라피티를 바라보는 뱅크시의 시선은 조롱이면서 동시에 자조다. 그라피티가 자아도취적인 문화임을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씁쓸한 미소가 엿보인다.
--- p.150

뱅크시의 작품들은 그라피티를 전유하는 그럴듯한 미술 작품으로 보일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할지 모르나, 환멸과 애증을 품을 정도로 그라피티에 인생을 바쳐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자괴감’이 쉽사리 발견되지 않도록 옅게 깔려 있다. 이 보이지 않는 레이어는 그가 어린 시절 그라피티의 기술적인 측면을 통한 경쟁에서 좌절한 경험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의 멸시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그라피티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했던 시절의 회한일 가능성도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어떤 진한 ‘개인적인 감정’이 녹아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뱅크시의 작품들은 지극히 정치적이기에 한편으로 키치적이다. 또한 그 반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뉴욕에 남긴 그의 은밀한 ‘감정’의 흔적은 더욱 의미가 있다. 그것은 여타의 뱅크시 작품에서 매번 강조되던 정치적 논조로 인하여 소외되어온 에고이스트적인 전통 그라피티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그라피티의 형식을 파괴함으로써 형식의 본질에 대한 담론의 단초를 이끌어냈다.
--- p.163

현재는 명품 브랜드가 앞다투어 스트리트 브랜드적인 색을 입히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스트리트 컬처의 위상이 한껏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거리를 떠나 백화점이나 클럽 그리고 정체 모를 파티에 정착한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재미를 추구한다기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느낌’을 구매하는 세태가 득세한 것이다. 이제 스트리트 브랜드의 티셔츠는 더 이상 값싸고 멋진 옷이 아니다. ‘가벼운 사치’의 영역으로 그 자리를 옮긴 지 오래다.
--- p.221

영어로 무언가가 멋지다고 생각될 때, 보통 ‘쿨(cool)’하다고 표현한다. 쿨은 ‘핫(hot)’의 자리를 밀어내고 득세한 말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시원한’, ‘차갑게 식히다’는 뜻이다. 핫에서 쿨로 멋지다는 의미의 주도권이 이동한 것은 ‘절대성’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에는 무언가를 만드는 이와 그것을 사용하는 이가 절대적(혹은 고정적)인 관계에 있었다. 각자 주어진 역할대로 행동해야 했다.
--- p.245

그라피티의 서명 활동에서 출발한 스트리트 아트는 아티스트 ‘개인’의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모든 시각적인 요소는 작가 자신의 위상이나 페르소나 혹은 세계관을 장식하고 물리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러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만들어내는 도상의 작업 의도가 상업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은 다분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이고, 최근 십여 년 전부터 성행한 어반 아트적인 경향의 확산(거리 기반이 아닌 갤러리와 상업 공간 중심의 스트리트 아트 혹은 ‘미스터 브레인워시 효과’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이후로는 더 이상 ‘편견’이라고만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성역과 금지의 개념을 무시하며 개입을 통해 발전해온 스트리트 아트가 역으로 세상으로부터 개입당한 것, 나는 어반 아트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 p.267~268

출판사 리뷰

스트리트 아트는 메시지가 담긴 미디어다!

그동안 그라피티 혹은 스트리트 아트에 관한 분석은 미술사학자, 저널리스트, 사회학자들에게 맡겨졌다. 저널리즘이나 사회학의 시선은 차갑고 건조하다. 미술사의 시선은 미술이라는 거대한 서사에 그라피티를 끼워 넣을 뿐이다.

저자는 과거의 그라피티가 뉴욕의 청소년 컬처나 힙합 문화와 함께 해석된 것처럼, 스트리트 아트 역시 스트리트 컬처와 함께 이해해야 할 문화 현상으로 바라본다. 마셜 매클루언이 “미디어가 곧 메시지다”라고 했듯이, 그는 그라피티와 스트리트 아트야말로 ‘메시지가 담긴 미디어’이며 우리 세계의 변화와 징후를 대변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통찰은 지금의 스트리트 아트를 바라보며 느끼는 슬픔에서 글을 시작한다. 책 제목인 ‘스트리트 아트는 거리에 없다’라는 선언적인 명제는 더 이상 거리의 문화가 거리에 없다는 향수 어린 애수와 함께 거리의 한계를 넘어 점차 주류화되고 있는 스트리트 아트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스트리트 아트는 과연 무엇이었고,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해 애정과 비판의 양날로 날카롭게 되묻는다.

“일평생 그림을 그린 내가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슬픔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거리 문화가 더 이상 거리에 없음에 대한 애수를 기록하고 싶었다. 거리(street)는 무협 소설 속의 ‘강호’처럼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남몰래 스프레이 페인트를 뿜어낼 때면 반드시 나타나는 상황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도시의 잉여 공간이 빠짐없이 ‘영업’의 공간으로 변모되면서 스트리트 아트는 환경 미화 활동 내지는 기업체 홍보 활동의 보조 수단으로 전락했다. ‘합법적’인 거리의 예술가들이 선발되었고 그것에 반대하는 이는 스스로 도태되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었고 그 변화가 나를 아프게 했다.” (서문 중에서)

그라피티 열차에서 뱅크시까지

이 책에서 저자는 그라피티 아트의 탄생을 알린 ‘그라피티 열차’에서 출발해 장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이라는 걸출한 아티스트의 출현,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라피티의 전설로 불리는 돈디 화이트, 씬, 스테이 하이 149, 푸투라 2000을 비롯해 카우스, 셰퍼드 페어리 등 그라피티와 스트리트 아트계의 계보를 훑어간다. 또한 이미 주류 미술계에서도 독보적인 아티스트로 떠오른 ‘뱅크시’라는 존재가 스트리트 아트에 끼친 영향, 그의 콤플렉스와 페르소나 그리고 ‘개입’의 전략을 분석하는 대목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뱅크시는 스트리트 아트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2000년대 중반, 뱅크시가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에 자신의 작품을 무단으로 전시한 사건이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다. 그때 국내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우리의 그라피티는 낙서고, 뱅크시가 하는 건 예술이야?” “스프레이를 사용하지 않은 그라피티가 스트리트 아트인가?”

저자는 뱅크시가 그라피티의 전통적인 행동 양식과 태도를 중시하면서도 의식적으로 그 핵심 요소인 태그-피스를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배제하는 양상을 통해 그가 그라피티에 대해 갖고 있는 양가 감정(애정과 애증) 혹은 콤플렉스를 파고든다.

특히 2013년 뉴욕에서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뱅크시가 남긴 그라피티 작품은 우리가 잘 몰랐던 뱅크시의 또 다른 이면을 드러낸다. 전 세게 곳곳에 남긴 뱅크시의 작품들은 그려지고 나서 일주일이 지나기 무섭게 벽이 통째로 도난당할 만큼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지만 뉴욕에서는 (현지의 그라피티 라이터로 추정되는 이들에 의해) 훼손되기 바빴다는 사실은 그라피티와 뱅크시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트리트 아트를 알면 컬처 트렌드가 보인다

스트리트 컬처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세 지류가 모여서 이룬 큰 강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힙합을 중심으로 한 뉴욕의 청소년 문화, 둘째는 만화-애니메이션과 게임 같은 서브컬처와 마니아 문화, 마지막으로 스케이트보드와 보드서핑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 문화와 펑크적 정서의 혼합이다. 힙합은 문화의 프로세스를, 만화나 게임은 소스를 제공한다면 익스트림 스포츠와 펑크적 정서는 스트리트 컬처의 정신적 세계관을 관장한다.

스트리트 아트는 스트리트 컬처의 다양성을 먹고 자란다. 이 책에서는 티셔츠, 스니커, 힙합, 그리고 가장 힙한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인 스투시와 슈트림에 이르기까지 스트리트 아트와 스트리트 컬처의 상호적인 관계를 통해 이들의 공통적인 바이브를 살펴본다. 특히 스투시와 슈프림은 스트리트 컬처의 마이너적인 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1990년대의 스트리트 아트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길거리의 문화가 고급 상품으로 전유되기 시작했고, 그 정점에 루이 비통이 등장한다.

왜 루이 비통, 샤넬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스트리트 아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 걸까? 저자는 미래 세대의 취향을 선점한 명품 브랜드의 브랜딩 전략을 살펴보면서, 지금의 컬처 트렌드를 비판적으로 리뷰한다.

이제 현대미술의 하위분야가 아니라 ‘스트리트 아트’라는 그 자체의 장르로 진화하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는 우리가 막연히 추측하고 있는 스트리트 아트와 스트리트 컬처의 ‘융합’이 거대한 물결로 주류 문화 속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스트리트 아트가 떠난 자리

이 책은 엉터리 랩을 지껄이며 거리를 거닐던 10대 시절, 거리의 한쪽 벽에 몰래 그라피티를 남기고 도망치던 20대 시절을 관통하면서 ‘스트리트 컬처는 곧 나의 인생이며 자유의 원천’이라고 외치던 한 아티스트의 애잔한 비망록이자 내부자의 시선으로 조망한 스트리트 아트의 역사이다.

과거 돈디 화이트는 인터뷰 중에 “언젠가는 우리가 만든 이 문화를 소비하는 시대가 올 거야”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직접' 하는 것이 ‘구매'하는 것보다 더 즐겁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을 따름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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