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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아이도 따라 하기 쉬운 우울증 레시피1부 비로소 죽음이 삶이 되었다수월한 농담 | 슬프도록 서늘한 | 돌봄이라는 봄 | 의상실과 팔레트 | 마땅한 욕망 |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 비생산적인 시간이 남긴 것 | 엄마를 쓰다가 | 삶의 재발명 | 아주 깊은 잠 | 죽고 싶은 마음 곁에서 | 비로소 죽음이 삶이 되었다 | 해방 전선에서2부 대책 없는 감각이 파도가 되어유일한 실감 | 현실을 사는 방법 | 부산에 가면 | 나를 낳은 사람 | Have it your way, mama | 진심과 최선 사이 | 801호에서 | 슈퍼 J의 흔치 않은 장례식 | 남은 삶3부 엄마 곁에서 삶을 아끼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르고 고른 마음 | 우리만의 사랑의 방식 | 계집과 빨간 매니큐어 | 시간을 절이는 방법 | 어느 날의 편지 | 장면의 이면 | 취향의 역사 | 남자 벗기 | 차마 못한 말 | 엄마 말은 틀리지 않았다 | 기도 같은 믿음 | 몸, 무게 | 슬픔이 데려온 의심 앞에서 | 쓰는 일나오며 - “그래라, 그건 네 버전의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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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잃는 과정이 이토록 치열하게 당신을 읽고 쓰는 태도라는 사실을 배운다.”_ 홍승은(작가) “이들의 투병과 돌봄은 예정된 죽음을 향한 행진과 에스코트에 가깝다. 어떤 상실이 상상만으로 내 삶을 집어삼킬 듯 거대하다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직면뿐이다.”_ 곽민지(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 “송강원은 상실의 빈자리에 글로 몸을 만들고 옷을 지어 입힌다. 생활의 갈피마다 애도를 끼워 넣으며 엄마의 부재를 감당한다. 산뜻한 슬픔의 안쪽에 살아내려는 그의 안간힘이 포개져 있다.”_ 장일호(시사IN 기자)죽고 싶은 마음과 곁에 두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가장 선명한 삶이 시작되었다나의 엄마 옥은 자신을 맨 뒤에 두는 것이 익숙한 사람. 병실에 입원해서도 간호사에게 매번 부탁하는 것조차 미안해하는 사람. 주변에 걱정을 끼치는 걸, 누군가에게 짐이 되기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자신을 향한 애정에 대해서는 고마움보다는 어쩐지 미안함이 앞서는 사람. ‘너 좋을 대로 해’에서 주어를 ‘나’로 바꾸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웠던 사람. 자신을 닮은 아들을 발견할 때마다 씁쓸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참고 또 참고 숨기고 또 숨겨도 내 슬픔을 단번에 알아차리는 사람. 나라는 존재를 누구보다 반가워했던 사람. 기뻐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나는 이런 엄마가 자주 슬펐던 아들. 당신을 엄마라 부르는 유일한 사람. 아프고 나서야 엄마를 곁에 둘 명분이 생겨서 진심으로 좋은 사람.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편한 표정으로 잠을 자는 엄마를 보며 ‘편표잠’이라 일지에 기록하는 사람. 어렸을 적 디자이너였던 엄마가 주인공이었던 의상실이라는 무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 생에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을 처음 맞닥뜨리고 당황할 수밖에 없는 사람. 이제 슬프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닳도록 닮은 나였다. 엄마에게 우울증을 고백하니, 나를 가졌을 때 올려다본 푸른 하늘에서 캄캄한 우물 아래로 곤두박질치던 그 시절 이야기가 돌아온다. 내가 죽고 싶은 마음과 싸우면서도 죽을 수 없는 건 엄마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앞에서 이제 엄마는 죽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죽고 싶어 하는 엄마가 내 곁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살아있다. 스스로를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라며 죽음을 이야기할 때, 엄마에게서 생기(生氣)가 느껴진다.“엄마…… 실망이 크제? 이왕 눈 뜬 거 오늘 내랑 잘 지내보자.”죽음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엄마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그는 농담을 건넨다. 기다리던 비행기가 지연되었다고,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보자고. 공항에서 머무는 게 불편하겠지만, 심심하지 않게 내가 같이 있어주겠다고.무엇보다 나의 행복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하는 사람, 옥평생 애써온 삶에서 ‘엄마’라는 이름표마저 떼어주고 싶은 사람, 강원언젠가 복잡한 얼굴로 당신의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말했을 때 엄마는 “니가 행복하기만 하면, 그게 제일 중요하다”며 단순하게 대답했다. 그 지지 기반으로 지금껏 자신을 더 꺼내고 나누는 방식으로 그는 살 수 있었다. 지난한 20대를 지나오며 7년간 촬영한 다큐 「퀴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혼자라고 굳게 믿었던 시절에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우쳤으므로. 삶을 살아가는 건 서로 기대는 것이 전부였다.자신답게 살게 해준 엄마에게 필요한 건 그다운 삶의 마무리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엄마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다만 그 이후에 닥친 슬픔은 상상 이상이었다. 분명히 있었던 유일한 한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현실을 다시 살아내는 일.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견디는 일. 대책 없는 슬픔의 파도는 온몸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있었던 슬픔을 모두 끌어안고 ‘슬픔’ 그 자체가 되어버린 엄마를 오래오래 그리워하는 것만이 자신의 일일 거라고 송강원은 꾹꾹 눌러 적는다.조금씩 파도가 잦아들 때면 비로소 엄마가 남긴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은 송강원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타고난 감각과 의상디자이너였던 안목으로 ‘기가 맥히게’ 발견한 가방과 옷 등을 사다주며 취향을 키워주었고, 아들의 친구들 이름 앞에 ‘우리’를 붙여 부르며 먹이고 재워준 엄마 덕분에 지금 그는 친구들에게 기꺼이 치대고 기대어 살아간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삶을 나누면서. “니는 본 기 많아서 잘하고 잘 살 끼다.” 외쳤던 옥의 말 그대로다.“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마주하고, 슬픔 가운데, 어느 때보다 살아있다고 느꼈던 순간은 결코 모순이 아니었다. 내게 생명을 주고 죽음까지 가르쳐준 엄마 곁에서 나는 삶을 아끼지 않는 법을 배웠다.”_ 「쓰는 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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