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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선물
몇 번째의 자세姿勢 출판 기념 사진 두물머리 강바람 조각이불의 환생 빛의 눈물 숲속으로 들어간 사람들 새 하늘 새 땅 반려 식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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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좀 멍청해서 가짜가 진짜 같고 진짜가 가짜 같은 세상이라 진주를 잘 선별하지 못한 거 같아. 우아하고 영롱한 빛이 너무 아름다워 덥석 샀더니 인조진주였어.”
유진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인조진주란 말에 친구들의 얼굴에 검은 구름이 밀려든다. “너희들도 아까 그랬잖아? 이거 진짜 같아 보인다 안 했니?” 친구들은 말없이 입을 삐쭉거렸다. “근데 가짜가 더 아름다워 보이고 부담 없이 쓰기 편해서 괜찮은 거 같아. 그렇지 않니? 진짜로 사는 건 힘들고 불편해서 쓸데없는 짓이라며.” 유진은 왠지 해탈한 여인처럼 맑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보석은 진짜여야지.” 경희가 찌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구나! 보석만은 진짜여야 하는구나? 나는 삶이 진짜여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면 마네킹에다 진짜 진주 목걸이와 진짜 다이아로 장식해 놓은 것 같지 않겠니?” 유진은 의문의 달마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친구들은 똥 밟은 사람 같은 얼굴이 됐다. 참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 pp.27-28 「그녀의 선물」 중에서 “여긴 좁은 문이에요. 높고 험하지요? 절대 뒤돌아보지 마세요. 앞만 보고 올라가세요.” 소곤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삶의 길은 좁고 높아. 험하고 혼란스러운 길이야. 앞만 보고 걸어가야 돼.” 언젠가 미현이 하던 소리와 비슷한 것 같다. 별 관심 없이 대하던 그녀의 말이 사뭇 새삼스럽다. 두려움이 온몸을 오한으로 떨게 했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잡히는 그녀의 청첩장을 콱 움켜쥐었다. “네 말이 옳았어. 미현, 사랑해!” 그는 한 번도 입 밖에 내보지 않은 말을 속으로 크게 외쳤다. 온몸에서 진땀이 솟았다. 그는 돌아서서 자기가 올라온 시커먼 동굴 같은 계단을 한참 내려다본다. 자기가 벗어놓고 온 지난날들의 검은 허물이 큰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얼른 얼굴을 돌리고발길을 옮겼다. 교회 후원으로 가 아카시아 고목에 기대서 등대 불이 지나가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숨소리 같은 낮은 흐느낌이 품 안으로 가득 안겨든다. 이러한 밤엔 영혼이 맑아져 새로운 힘이 솟는다. 그는 이러한 밤을 사랑했다.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지난날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 pp.31-32 「몇 번째의 자세姿勢」 중에서 “그때 마침 출판사에서 책을 출시하려고 출판 기념 사진을 찍겠다고 했어요. 이를 해 넣을 시간이 없어서 그냥 찍기로 했죠. 형님은 사진을 찍어도 늘 입을 꾹 다물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니까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형제가 나란히 앉아 찍는 사진이 참 오래간만이었어요. 아니 처음일지도 몰라요. 그래선지 좀 긴장이 되었어요. 나는 형님 모습에 잘 어울리도록 점잖게 입을 다물고 찍었어요. 그런데 나온 사진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형님이 바보처럼 빠진 이를 검게 드러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형님 생각 또한 나하고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에요.” 그랬다. 동생 신부는 늘 환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데 자기가 입을 꾹 다물고 엄숙한 표정을 하면 동생이 좀 경박해 보일지도 모르고 잘 안 어울릴 것 같았다. 해서 같이 웃기로 했다. 이빨 빠진 모습이 보이겠지만 자신이 좀 우습게 보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p.124 「출판 기념 사진」 중에서 “엄마! 저 현이에요. 전에 주신 것으로 잘 지내고 있어요. 일찍 감사하단 말 못 드려 죄송합니다. 건강하세요.” 오랜만에 해 보는 엄마 소리다. 어색하고 벅차다. 조심하여 여러 번 가다듬어 놓고도 머뭇거리다 전송을 했다. 오래도록 내 가슴속에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끓어대던 용암 덩어리가 다 쏟아져 나간 것같이 시원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는가? 내가 그토록 숨기고 막으려 했던 그 어둡고 고통스럽던 것들이 척박한 땅을 썩히고 썩혀 좋은 토양이 되게 한 것이다. 좋은 토양에 양분이 되어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확실히 깨닫는다. --- pp.150-151 「쓰레기장의 현주소」 중에서 불안과 걱정 고통과 절망은 탄원의 기도 같은 것, 깊은 내면에서 외치는 기도 같은 것이다. 수는 자꾸자꾸 맴을 돈다. 말로 드러내지 못하는 가슴속 깊은 탄원의 기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독백 같은 그 기도를 꺼내 자꾸 맴을 돌린다. 빙빙 맴돌던 그 기도가 하늘에 다다른 듯 바람결에 응답 같은 소리가 퍼진다. “그래! 그래!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하늘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 고통과 절망 불안은 끊임없이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신호다. 기다리라는 신호등이다. 기다림은 희망이다. 기다림은 희망을 낚고 희망은 또 한세월을 낚는다. 그리고 끝내 보람을 낚아 올릴 것이다. 그리고 영원을 낚아 올릴 것이다, 수는 자꾸자꾸 맴을 돈다. 둥그런 원이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고통과 절망과 분노, 기도와 희망과 사랑, 모든 것을……. 원은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원은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든다. 원은 모든 것을 하나로 포용한다. 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힘이다. 사랑은 둥근 원이다. 수는 자꾸자꾸 맴을 돈다. 원을 그리며 자꾸자꾸 맴을 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