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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날 믿고 다시 광야로 나갈 수 있니?
STEP 1. 편하게 예수 믿고 싶었다 사랑한다면서 제게 왜 이러세요? ‘왜’냐고 묻고 싶은 순간들이 일상을 찾아온다 그래도, 내 ‘주린 배’ 채우자고 ‘은혜’를 팔지 말자 오늘 당신이 붙든 희망의 정체는 무엇인가 STEP 2. 광야 한복판에 하나님 말씀이 들리다 똥은 내려놓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 어떤 행복을 향해 달음질하는가 시간이 저절로 사랑을 낳지 않는다 원망하는 기도라도, 기도해야 산다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지가 보인다 STEP 3. 말씀 앞에서 내가 죽다 인간 죄성은 강하다, 예수 피는 더 강하다 지금보다 더 아프고 싶다면, 끝까지 복수하라 목사도 사람이다, 용서받은 죄인이다 STEP 4. 광야에서도 행진하라 혼자 걷던 걸음이 ‘행진’으로 바뀌다 당신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라 인도하시는 곳에 공급도 하신다 당신이 지나간 자리마다 생명이 남는가 ‘외롭던 광야’가 ‘더불어 먹는 만찬장’이 되다 STEP 5. 말씀 따라 머물고 말씀 따라 떠나라 내가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말씀하실 때 움직이자 ‘두려움을 심는 것’이 사탄의 주종목이다 ‘그날’까지 ‘예스’(Yes)로 응답해 보자 지금까지 또 영원히 함께하신다 에필로그. 웰컴 투 광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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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나님…. 도와주세요. 제가 이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가 절로 나왔다. 당시 내가 간절히 드린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거창하게 열방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사랑하는 내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남자가 되는 것을 소원했다. 착한 아내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찾아 줄 수만 있다면 그게 하나님 나라의 일 같았다. --- p.44-45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자주 떠들지만 실상 그 은혜를 이루는 과정에 자기 야망이 너무도 많이 묻어 있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 이야기하다 보니 과정이 묻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러나 과정에 은혜가 있었다면 현상적인 결과가 안 좋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바른 은혜일 것이다. 은혜의 결과에는 반드시 은혜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잠은 안 오고, 눈을 감고 ‘과연 하나님이 그러셨을까’를 계속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과거에 나를 화나게 했던 그 부흥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내 모습이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그때 마음속에서 한 음성이 들렸다. ‘네가 지금 도적질을 하고 있구나. 네가 남의 돈을 가지고 사기를 치고 은혜를 핑계로 도적질을 하는구나.’ --- p.54 처음 쪽방 사역으로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나는 두려워서 거절했다. 세상의 모든 배설물들이 좋았던 시기였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두려웠다. ‘나도 목회자로서 세상적으로 잘나가고 싶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개똥 같은 생각이다. ‘나도 명절 때 대접받고 싶다.’ 개똥 같은 마음이다. 나는 세상 것들이 다 좋았다. 같은 목회를 해도 가난하게 살기보다는 부하게 살고 싶었고, 작은 시골 교회 목사보다는 대형 교회 목사로 더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싶었다. 하나님께 어쩔 수 없이 끌려와서 이곳에서 쪽방 사역을 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좋아 보였던 내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다. ‘똥이야, 똥이야’라고 속으로 수없이 외쳐 보았지만 그것이 정말 똥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세상과 하나님 나라 둘을 동경하며 양다리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 p.76-77 그 이야기를 들은 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에 마음과 생각으로 장로님을 수만 번 때리고 골탕 먹이는 것을 반복하느라고 바빠서 잠이 오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장로로서 그게 할 말인가? 교회에 사표를 내고 확 들이받아?’ 그날 이후 거의 매일 밤 아무도 보지 않는 나만의 생각 안에서 그 장로님에게 마음껏 화를 냈다. 생각으로라도 복수를 하면 통쾌했다. 그런데 복수혈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끝나면 언제나 새벽이었다. 억울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 결국 불면증에 걸려 버렸다. 복수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졌다. 너무 힘든 기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는 미움과 분노로 인한 불면증으로 괴로워 밤새 뒤척이며 상상 속에서 장로님과 싸우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지옥에 떨어졌다. 그런데 꿈이 아니라 진짜 지옥인 것처럼 생생했다. --- p.164-165 성적인 유혹 앞에서 자신을 믿고 교만하면 바로 죽는다. 예외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난 그들과 공통점이 있다. 나도 그들처럼 나를 믿는다. 그런데 내게는 그들처럼 ‘나는 영적으로 성적인 유혹을 지켜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나는 매번 성적 유혹에 넘어갈 놈’이라는 확신이 있다. …(중략) … 적어도 나는 자매를 멀리하는 시스템을 미리 만들어 둔 것이다. 아내 없이 나는 여자 성도들을 심방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내와 공유한다. 아내는 심심하면 내 메일을 들여다보고, 내 SNS를 본다. 도저히 내게는 바람피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남자에게도 숨기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내 안에 죄성을 다스리는 시스템을 두는 것이 더 좋다. 게다가 아내에게 난 걸어 다니는 거울처럼 투명해서 내가 무슨 다른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면 바로 걸려서 혼난다. 그런 식으로 나는 스스로를 보호한다. --- p.183-184 그때 우리를 보고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도 생겼다. 장사라…. 맞다. 우리는 장사하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장사다. 우리는 이들에게 장사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개인의 배만 불리는 장사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살아갈 수 있는 장사. 이런 장사를 구물리라 주민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고, 이 장사가 가난한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확신했다. 요셉 프로젝트는 유통을 통한 시장 경제를 알려 주는 프로젝트였고 이들은 우리의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 p.251 내가 만들었고 내가 시작한 열매나눔재단. 그 재단을 더 크고 더 멋있게 만들려는 욕심이 내 안에 충만해 있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일을 했다. 일은 중독성이 있다. 하면 할수록 일이 몰려왔고 몰려오는 대로 일하다 보니 내 영과 육은 피폐해져 갔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모든 것들이 헌신이고 선교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내 욕심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욕심으로 풀이된다. 높은뜻 정신을 이 땅에 실현하려고 지난 11년간 김동호 목사님을 모시고 뛰어다녔는데, 그것도 욕심인 것 같았다. 열매나눔재단의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조심했건만 어느덧 김범석이, 김동호 목사님이, 높은뜻교회가 재단의 주인이 된 것 같았다. ‘욕심이 더 커지면 죄가 되는데….’ --- p.278 어린 시절 아버지 앞에서 형하고 크게 싸운 적이 있다. 막말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서로 주먹질하고 싸우다가 엄한 우리 아버지에게 걸려서 엄청나게 맞았다. 그 뒤 아버지 앞에서는 형과 싸우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서워서 형과 싸우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 앞에서 마치 그분이 없다는 듯이 그냥 교회 안에서 다투고 싸우고 욕하고 저주하고 막말한다. 아버지 앞에서 형제가 싸우면 옛말에 후레아들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간혹 그런 후레아들이 될 때가 있다. 나는 갑자기 하나님께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홀로 있을 때 마치 아무도 없다는 듯이 죄를 저지른 것을 회개했다. --- p.313-314 어린 나이에 나는 프랜치스 치셤 신부의 삶을 꿈꾸었다. 그 뒤 내 인생에서는 안셀모가 추구한 사도의 권세보다 치셤이 추구한 사도의 책임이 중요하게 되었다. ‘하나님, 치셤과 같이 사도의 책임을 다하는 목사가 되게 해 주십시오.’ 나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은 날 정말 사랑하셨나 보다. 내 기도에 정확하게 응답해 주셨다. 헌데 이상하다. 나는 치셤과 같은 목사가 되겠다고 기도한 적은 있어도 광야를 걷고 싶다고 기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바보가 괴로움과 아픔을 구하는 기도를 한단 말인가? 그런데 하나님은 고난과 고통이 있는 광야로 나를 몰아가셨다. 그리고 광야 길 위에서 내게 말씀해 주셨다. ‘범석아, 그 기도가 그 기도란다.’ 내게 있어 광야는 기도의 응답이었다. 내 기도를 받아 주신 것이다. --- p.320-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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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도 광야에 있습니까?
개인적, 공동체적, 시대적 광야를 걷는 우리를 향한 김범석 목사의 뭉클하고, 찔리고, 따뜻한 고백록 아무리 보지 않으려 해도 어딜 가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먼저 보이고, 그들을 마음에 품게 된다는 하나님 나라의 행동대장 김범석 목사.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 사각지대를 돕고 살리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새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세상 약자들의 친구다. 첫 책 《역전》(두란노, 2012)에서 좁은 길에서 만난 ‘역전의 하나님’을 힘 있게 증언했던 그가, 이번에는 긴 인생 광야의 한 길목에 잠시 서서, 지금 어디선가 홀로 광야를 걷고 있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응원한다. 쪽방촌, 노숙자, 새터민(탈북자) 사역, 해외 비즈니스 미션 등의 잇단 성공으로 교회와 세상에 주목 받으면서 한창 바쁜 사역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날 믿고 다시 광야로 나갈 수 있니?’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해 모든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 척박한 광야 생활기를 솔직하게 써 내린 《하나님의 마음이 머문 곳, 광야를 걷다》. 광야 길이 힘에 부치는 이 세대를 위한 책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적, 시대적으로 황량한 광야를 걷고 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누구나 푸른 초장이 펼쳐질 거라 기대하지, 드넓은 광야로 들어서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광야 같은 인생은 내 스토리는 아니고, 누군가에게 듣는 간증 정도였으면 하는 것이 많은 크리스천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죄가 들어온 이후 세상은 항상 광야였다. 이 책은 ‘내 광야’를 걷느라 지쳐 ‘사랑한다면서 도대체 왜? 사랑하는 자식을 왜 고난과 고통이 있는 광야로 내모시는가?’ 하고 투정 부리는 우리를 ‘하나님의 광야’로 초대한다. 하나님의 광야는 설령 걷다가 마라의 쓴 물, 이리와 승냥이를 만난다 해도 주님이 함께하시기에 ‘시온의 대로’가 되며, 하나님만 찾을 수밖에 없어 부르짖는 이들을 기꺼이 만나 주시는 은혜의 ‘지성소’다. 김범석 목사는 자신의 내면과 삶, 사역이 걸어 온 발자취를 투명하게 보이면서, 광야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피하고 싶은 장소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선명하고 가까이 들리며, 고난과 고통받는 이에게 언제나 사랑과 보호하심으로 함께하신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외롭고 황량한 광야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 앉아 있는 이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 정의, 용서, 사랑, 순종’ 같은 개념이 우리 실제 삶의 현장에서 어떤 구현되는지 보여 주고,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 적용하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힘든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나 자신에게만 매몰된 시선을 들어 하나님을 보게 하고, 당장 내가 오늘 순종할 말씀에 순종하도록 마음을 이끄는 책이다. 광야의 나그네들인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걸을 때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행진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 따라, 오직 하나님 명령 따라 머물고 떠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광야를 통과했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