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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유품에 대한 예의 제1장 헤어질 시간하직이야 하직이로구나그녀의 이름은 영자동외리 694번지다시 만나자 엄마사진이 전하는 말전화번호부노랑나비조도 친구, 정자 이모우리 이모 허호심꽃밭아버지의 달력꿈의 대화대문을 닫으며제2장 청춘연가초상마을 외갓집사각모 쓴 이는 초상 허씨의동국민학교 졸업교복을 입고피리 부는 청년목연클럽불파마한 날옛날이야기화양연화제3장 세상 속으로뒤꼭지가 이뻐서혼서결혼하다창포리 112번지창포리 소년전축과 화투목화밭닻머리 삐비장수상과 효부상제4장 헛꽃 이야기태풍 속 하굣길아버지 학생증영어공부자취방의 동전커피 한 대접런던에서 받은 편지엄마의 시아버지의 편지일기를 쓰다부부싸움프라이팬장도 보고 굿도 보고사무엘의 기도엄마의 장바구니엄마의 레시피노란 고무줄택배 보내기택배와 쪽 메모기분 좋은 날마지막 일기헛꽃제5장 그때 그리고 지금라면 배달노인의 밥상능력자 아버지동화책나의 5.18과 아버지감꽃이 필 때홍시색동단 저고리도구통모란문 항아리명절 밤마실서화 수집〈가요무대〉는 월요일엄마의 노래버킷 리스트나가며: 나의 씻김굿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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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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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품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것: 우리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유물은 사실 누군가의 유품이다.미술사를 연구하는 저자는 주로 조선시대 회화가 제작된 시간과 공간, 사람의 역사와 의미망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백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을 뜯어보고 시대의 흔적을 하나씩 추적한다. 사실, 이렇게 연구에 활용하는 자료는 모두 누군가의 유품(遺品)이다. 그림은 화가와 주문자, 소장자와 얽혀 있고, 사서와 문집, 족보 같은 문자기록 역시 사람에 의해 생산되고 전승되었으니 모두 누군가의 유품이고 시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즉 저자는 유품을 연구하는 일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박물관에서 만나는 유물도 사실 누군가의 유품이다. 그림이든 서적이든 생활용품이든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진열된 예술가의 소지품, 메모지 앞에서도 감동한다. 그 주인공은 대개 역사 속 이름난 사람들이다. 그와 달린 ‘민속’이라는 이름이 붙은 박물관에서는 역시 누군가의 유품인 민간 생활용품을 다룬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유명인과 다수의 무명인이 남긴 유품의 집적체가 인류의 역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유품의 사정은 어떠한가.: 기억이라는 이름의 유품 정리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유품’은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다 남긴 물건’이다. 저자의 사정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다. 정신없이 장례를 마치고, 남은 일은 유품 정리였다. 엄마를 선산에 모시고 온 날부터 유품 정리에 돌입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엄마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뭔가에 떠밀리듯 엄마의 물건들을 죄다 꺼내 남길 것과 버릴 것으로 분류하고 정리했다. 그리고 자식들은 커다란 집에 홀로 남은 아버지를 뒤로 한 채 각자 도시로 귀환했다. 아버지마저 운명하신 후, 몇 차례 고향을 오가며 차근차근 정리하기로 했다. 50년 이상 이어진 가족사의 현장답게 본채와 행랑채로 이루어진 두 동의 건물 안팎에는 세월만큼 많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안방 서랍 속에서 처음 보는 자료들이 발견되어 놀랍기도 했다. 아버지가 60여 년 전에 작성한 혼서부터 졸업장ㆍ학생증ㆍ임명장ㆍ표창장 등 다양한 문건을 보관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이 남겨 두었던 엄마의 옷가지와 물품도 재분류해 정리하였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이름의 유품 정리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 망자의 생 앞에 경의를 표하고 유품에 대한 예의를 갖출 때, 비로소 떠난 이와 남은 이 모두의 인간다움이 온존하지 않을까.20세기 후반 이후 대가족 형태가 점차 해체되고 자손들이 독립된 세대로 분가하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지방의 경우 고향을 떠나 타지, 특히 수도권으로 이주한 자손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상장례 풍속의 변화도 수반되었다. 자식들은 장례식이 끝나면 각자 생업에 복귀하기 바쁘고 고향집은 방치되거나 처분된다. 살풍경한 유품 정리의 세태도 시대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둘러보건대 장례를 마치자마자 대용량 종량제 봉투를 이용해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유품 정리 방식이 당연시되어 가고 있다. 거기에는 예전에 비해 풍족해진 생활 여건과 죽은 사람의 물건을 기피하는 심리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누구도 값비싼 패물을 종량제 봉투에 넣지는 않는다. 서글프지만 유품을 대하는 우리 시대의 민낯이다. 누구든 지위와 명성, 재산의 유무를 떠나서 생과 사는 오롯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망자의 생 앞에 경의를 표하고 유품에 대한 예의를 갖출 때, 비로소 떠난 이와 남은 이 모두의 인간다움이 온존하지 않을까. 유형의 물건이든 무형의 기억이든 유품은 주어진 생을 온 몸으로 살아낸 이들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 유품에는 시간과 이야기가 녹아 있다.수년 동안 엄마의 유품을 정리해 온 여정은 저자만의 방식으로의 ‘씻김굿’이나 다름없었다. 이 책의 집필 작업은 망자의 옷을 태우고 굿판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저자가 당골이 되어 춤과 노래 대신 펜으로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저자 자신을 위무하고 거듭나기 위한 이별의식이었다. 인간이 생을 찬미하고 생에 집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죽음으로써 생명이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은 고인이 남긴 물건과 기억, 바로 유형 혹은 무형의 ‘유품’을 통해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한다. 그것이 우리가 숨 쉬는 실체적 역사라고 본다. 그게 누구든 엄연한 생과 사는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하고 모두가 옷깃을 여며야 하는 이유이다.2021년부터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멸실되거나 훼손될 위기에 있는 ‘근대기록문화조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미 대부분의 국ㆍ공립박물관이 근현대 생활 문화 관련 유물을 폭넓게 수집하고 있다. 누구든 유품 정리를 앞두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기증(기탁) 제도를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 역시 조만간 부모님의 유품을 적절한 기관에 맡기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굿바이, 영자 씨앞으로도 저자는 누군가의 유품을 연구하는 미술사학자로서 남은 날들을 채워갈 것이다. 정선과 김홍도처럼 잘 알려진 화가뿐 아니라 익명의 화공이 남긴 유품, 곧 그들의 그림을 끌어안고 밤을 지새우고 키보드를 두드릴 것이다. 먼 훗날 재회한 엄마에게서 “내 딸 애썼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잘 지낼 것이다. 그래야 일평생 헛꽃의 소명을 완수하는 데 진력했던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위대한 헛꽃으로 살며 역사를 떠받친 저자의 엄마, 아니 세상의 모든 ‘영자 씨’에게 바치는 헌사(獻詞)다. 굿바이 영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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