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 9
작가의 말 215 |
Eric Fottorino
|
결코 순수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수해지기를 갈망하는 것.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였다. 그리고 바로 그 실패가, 그 시도를 아름답게 만들었다.
--- p.32 “(...) 예술은 꼭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 의미가 있어야 하지. 둘은 다른 거잖아.” --- p.42 이 퍼포먼스를 통해 나는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파괴하고 싶었다. 나는 예술은 혼란을 야기하고, 질문을 던지고, 심지어 미래에 관한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예술은 정치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예술은 단 하루만 의미 있는 신문지에 불과하다. 다음 날이면 바로 버려지니까. --- p.43 그 세르비아인 예술가는 내 안에,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제 다른 방식으로 눈을 떠야 했다. --- p.59 나는 이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다른 이미지로 현실을 해체하는 행위가 아닐까. --- p.61 나는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스스로를 내맡긴 적이 있는가. 물론 내가 예술 작품은 될 수 없겠지만, 위험이나 두려움, 혹은 사실은 피하고 싶었던 약속 앞에 책임감 있는 존재로서 나 자신을 내맡긴 적이 있는가. 내면의 목소리는 말했다. ‘너는 때로는 강인했고, 때로는 나약했고, 대체적으로 비겁했어.’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돈을 받고 하는 아이들 치료 외에, 인생에서 잘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 p.96 너는 타인이다. 너는 타인을 혐오한다. 과연 나는 한 시간만이라도 맞은편 인도의 노숙자와 입장을 바꿀 수 있을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 p.134 격렬한 키스, 심장을 겨눈 화살, 서로 묶인 신체는 사랑과 타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상징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주고받은 시선을 통해 두 사람 사이의 간격에는 다정함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매번 신체를 내걸었다. 위험에 노출되고, 발가벗겨지고, 위협당하고, 짓밟히다가, 다시 옷 입혀지고 멀리 치워지고, 보호받고, 지켜졌다. 마리나 A가 혼란과 호기심을 일으켰다면, 그건 그녀의 삶의 궤적이 우리, 그리고 나의 삶의 궤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충격은 더 깊은 곳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pp.155-156 그녀의 예술에선 모든 것이 육체적이었고, 삶과 죽음의 문제였으며, 타인과의 유대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그녀는 홀로 있었다. --- p.159 예술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고, 예술은 내 이성이 닿을 수 없는, 접근 불가능한 낯선 세계였다. 규칙을 따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직업들을 하나로 묶으며, 트럭 운전사나 건축가, 혹은 보험업자처럼 눈에 명확하게 보이는 일을 하는 것에 비해 예술은 무가치하고 근거도 개연성도 없는 영역이라고 믿었다. 나에게 예술이란 제약과 의무의 반의어였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헛된 것은 나 자신이면서, 예술이 헛되다고. --- p.210 마리나 A는 자신도 모르게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리고 내 안의, 깊이 파묻혀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데 평생이 요구되는 감각을 파헤쳐 냈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의심하는 것이 스스로를 마주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무방비 상태의 영혼과 육체를 마주한 나의 깊은 감정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빈손이든 치료 도구를 들고 있든, 혹은 한 조각의 케이크를 들고 있든 상관없이, 타인의 나약함에 손을 내밀기 위해서라면. --- p.210 |
|
예술은 삶을 바꿀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프랑스 작가 에릭 포토리노의 소설 『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를 관통한다.
외과의사 폴 가셰는 평생 규칙과 질서, 실용과 합리만을 좇아 살아온 인물이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그의 세계에는 예술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예술은 그에게 쓸모없는 것, 비합리적인 것, 삶의 곁길에 불과했다. 그러나 가족과 피렌체로 떠난 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는 그의 내면을 뒤흔든다. 불과 얼음, 침묵과 시선, 관객의 폭력 앞에 자신을 내맡기는 예술가의 몸짓은 그에게 하나의 균열을 일으킨다. 그 균열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빛이 스며드는 틈이 되었고,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한다. 이 변화는 곧 팬데믹이 불러온 고립과 불안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생존의 조건이 되어버린 시대, 폴은 마리나의 퍼포먼스가 예언처럼 되살아남을 느낀다.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연결될 수 있는 관계’, ‘침묵 속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는 행위’. 폴은 철학자 레비나스의 사유, 곧 타자를 향한 응시와 책임을 떠올리며, 예술이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임을 깨닫는다.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포토리노는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한 단계 확장한다. 현실의 비극과 예술의 신비를 잇는 이 소설은, 그가 평생 써온 기사와 리포트의 언어가 문학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는 아브라모비치의 예술을 단순히 해설하거나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개인의 시선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흔들고 사회적 상상력을 열어젖히는지를 섬세하게 증언한다. 이 작품은 예술을 통해 삶이 변화하는 순간을 기록한 소설이자,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성찰의 책이다.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을 하며, 팬데믹의 시대를 건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예술은 삶을 바꿀 수 있는가? 포토리노는 이 소설 전체로 대답한다. 그렇다, 예술은 인간의 감각과 윤리, 그리고 사랑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작가의 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나를 불길처럼 관통했다. 2018년 겨울, 피렌체 거리에서 그녀의 압도적인 이미지를 마주한 순간, 나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 경험은 너무 강렬해, 결국 소설로 옮겨 적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의 예술은 말 없는 언어였다. 몸과 몸이 부딪히고, 때로는 스스로를 상하게 하며, 마침내 거리를 두고 맺는 대화. 나는 그 언어를 번역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마리나는 자신을 작품으로, 그저 하나의 대상으로 내맡겼다. 때로는 목숨을 건 위험 속에서도 관객에게 진실을 드러내려 했다. 나는 예술이 숨겨진 진실을 낳는 힘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즉각적으로는 알 수 없고, 또 보지 못하는 진실을. (에릭 포토리노 언론 인터뷰에서) |
|
“에릭 포토리노의 소설은 단순히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을 설명하거나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예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외면해온 사회적 문제들과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무엇보다 『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는 독자의 시선을 바꾸어놓는다. 나 역시 이 소설을 통해, 그냥 스쳐 지나칠 수 있었던 것들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질문을 던질 힘을 얻게 되었으며, 세상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책은 독자를 흔들고, 마침내 변화시킨다.” - 슬기 (레드벨벳)
|
|
신비롭고 매혹적이다. - [롭스]
|
|
포토리노는 퍼포먼스 예술가를 우리 각자의 약점을 드러내는 거울로 내세운다. - [르 피가로 리테레르]
|
|
아브라모비치의 예술을 소설이라는 장르로 이토록 탁월하게 풀어낸 평론은 지금까지 없었다. - [텔레라마]
|
|
포토리노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극한적 퍼포먼스를 매개로, 인간성과 그 미래를 성찰한다. - [르 피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