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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안되고 있어요.'
그에게 말했다. '내일이면 나아질 겁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작업을 조금만 더 합시다. 이 상태로 놓아둘 수는 없어요.' '좋습니다. 하지만 곧 어두워질 것 같은데요.' 나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다시 작업해서 싫으세요?' '아니오' ' 내가 밉죠?' 그가 물었다. '바보 같은 소리를 하네요. 내가 왜 그렇겠어요?' '당신을 이렇게 힘들게 하니까 그렇지요.' '그런 소리 마세요.' --- p. 89, -- 작업을 포기하려는 자코메티와 힘을 북돋워주는 로드의 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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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셋째 주로 접어들었지만 날씨는 아직 칠월 중순 같았다. 나는 아침에 가끔 수영하러 갔다가 점심을 사 먹고 작업실로 갔다. 오후 날씨는 맑고 연푸른색으로 빛났는데 전형적인 파리의 오후였다. 그러나 날씨로 인해 들떴던 기분은 그런 중요하지 않은 일과는 무관한 회색빛 작업실로 들어서면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자코메티는 작업실을 비울 때면 어디에 있는지 꼭 문에다 쪽지를 남긴다. 쪽지에는 거의 매번 '디도(Didot) 거리에 위치한 카페에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9월 22일 오후에도 그는 거기에 있었다. 뒤쪽 테이블에 앉아서 늘 하던 대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는데 웬지 우울해 보였다. "즐거워 보이지 않네요." 그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전날 샤갈이 새로 제작한 천장 벽화를 보러 오페라 극장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흥미로워했다. 직접 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사실 그는 이미 다음날 있을 개막식에 참석하라는 초청을 받은 상태였다. "가서 작업합시다." 그도 그런다고 해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는 따라 나오질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안에 앉아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밖에서 오 분 정도 기다리자 마침내 그가 나왔다. 그리고는 아카시아 나뭇잎이 햇빛 속에 나부끼는 달레시아 거리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워." --- p.8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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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코메티가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모델이 되었던 제임스 로드가 18일 동안의 작업과정을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한 점의 초상화를 완성할 때까지의 화가의 창조적 열정과 고뇌, 그리고 작업실의 풍경을 소설적 구성으로 면밀하고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제임스 로드는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지를 자코메티의 작업과정을 담은 이 글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가만히 앉아 모델을 서는 일보다도 회의하고 고뇌하는 화가로서의 자코메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더욱 괴로운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코메티는 작업을 하면서 보이는 것은 절대로 그려낼 수가 없다는 절망에 찬 말을 한다. 눈앞에 있는 것을 한 번만이라도 그대로 그려낸다면 언제라도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둘 수 있을 거라며, 자신은 그 일을 해낼 수 없으니 다른 누구라도 해내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거라고 말한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그리라고 준 사과를 관찰하면서 사과는 그릴 수 있으나 사과라는 것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실재하는 대상과 작품 속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져 준다. 여러가지 모습이 내재되어 있는 하나의 사물에서 대상의 본질을 포착해 내는 것이 화가에게 있어 얼마나 어렵고도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워준다. 또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대상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실재하는 대상의 본질을 그리기 위해 18일 동안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그의 모습에서 화가로서의 고통과 작업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될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화가로서의 모습과 자세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하며,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우리에게 삶을 관조하고 성찰하게 하는 양서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