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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우리는 왜 정세권을 기억해야 하는가정세권 소개_조선 최초의 디벨로퍼이자 민족운동가1장. 근대적 디벨로퍼의 출현, 토지 전쟁의 서막이 오르다경성이 어찌 조선사람의 경성인가 사람은 몰려드는데 살 집이 없다 암울한 시대, 북촌에 일본의 그림자가 짙어지다 기어코 이 지역만큼은 일본인에게 내주지 않겠다 2장. 조선이 낳은 천재, 건축왕 되다경성 땅을 지킨 근대적 디벨로퍼들북촌 한옥마을이 탄생한 이유 거대한 꿈을 품은 경성의 건축왕 기회의 땅 북촌에 터를 잡다전방위적 부동산 거대 기업을 일구다건축왕의 놀라운 불황 타개 전략80년 전의 대규모 기업형 주택임대사업더 위생적이고 더 실용적이고 더 경제적인 주택 개발을 위한 노력건양사 경성 개발의 빛나는 가치일제의 뉴타운 개발에 맞선 왕십리 토지 전쟁3장. 우리 집, 우리 말을 지켜낸 민족운동가 정세권을 기억하라신흥 민족 자본가와 민족 언론인의 연대 조선물산장려운동의 황금기를 열다 “백난중분투하는 정세권 씨에게 감사하라” 회사를 희생하면서까지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지원했는데도 낙원동 300번지 붉은 벽돌집의 추억 대자본가의 위험한 독립운동일제가 고문을 하고 재산을 앗아가니한국 사람은 한국 문화로 더 밝아지게 건축왕은 가고 아름다운 한옥마을만 남아에필로그_기농 정세권을 기리며참고문헌 및 자료 출처 그림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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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3대왕 ‘유통왕, 광산왕, 건축왕’ 중 ‘건축왕’이라 불리던 위대한 경영인 ‘정세권의 발견’일제강점기, 한옥으로 민족을 지킨 디벨로퍼의 삶을 복원하다서울 북촌과 익선동은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관광지로, 매년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고즈넉한 한옥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마을 풍경은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민족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 한 인물이 꿈꾸고 실현한 ‘역사적 현장’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근대식 한옥단지’를 최초로 개발한 디벨로퍼이자, 독립운동가 정세권(鄭世權)이다.정세권은 1920~30년대 경성에서 주택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의 목적은 단순한 자산 증식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경성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북촌과 익선동의 대규모 땅을 매입해 한옥단지를 조성했다. 좁은 대지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살 수 있도록 ‘소형 한옥’을 계획적으로 설계하고 지은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도시주택 개발 방식이었다. 그 덕분에 경제력이 약한 조선 사람들도 경성을 떠나지 않고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북촌을 사들여 개발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북촌은 일본 적산가옥의 거리로 남았을 것이다.암울한 근대사 속에서 잊힌 영웅,“백난중분투하는 정세권 씨에게 감사하라”_만해 한용운정세권은 사업으로 얻은 자산을 민족운동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조선 사람은 조선 물건을 써야 한다’는 정신으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을 후원하고, 직접 운영에도 참여했다. 나아가 조선어학회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데 헌신했다. 그러나 대자본가가 독립운동에 참여한 대가는 가혹했다. 그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고, 일제는 그의 재산을 몰수했으며 개발사업의 길도 막아섰다. 결국 그의 건양사는 쇠락했고, 정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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