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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미술관을 순례하며 시작된 나만의 미술사
1장 르네상스를 꽃피운 힘: 비교와 경쟁의 미학, 파라고네 2장 르네상스식 ESG 경영: 코시모 데 메디치와 산 마르코 수도원 3장 피렌체 길모퉁이의 성모들: 그들은 왜 성모상에 집착했나 4장 새로운 예술 혁명의 발상지: 천재 화가 마사초의 유산, 브란카치 예배당 5장 레오나르도가 창조한 가상현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최후의 만찬〉 6장 그림 속에 인문학을 들여온 스토리텔러: 보티첼리와 신플라톤주의의 콜라보 7장 예술이 된 카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8장 초상화의 혁명: 거침없는 상남자 조르조네 9장 미완의 미스터리: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 피에타〉 10장 여성의 힘: 시저의 정신을 품은 여인, 아르테미시아 11장 가짜 혹은 대박: 뒤바뀐 작품의 운명 미주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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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의 성 바프 대성당에서 얀 판 에이크의 제단화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경이로움, 안트베르펜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는 루벤스의 제단화를 보며 진품일 리 없다고 반신반의한 순간, 칼레에서 오리지널 〈칼레의 시민들〉을 마주했을 때의 전율, 페르메이르가 그렸던 델프트의 실제 풍경을 찾겠다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달려간 끈질긴 발걸음까지, 그 모든 경험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진한 흔적을 남겼다. 브뤼셀에서 보낸 2년은 두서없고 혼자였지만, 나만의 미술사 탐험이 시작된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 p.6 나만의 미술사 탐험은 단순히 작품을 직관하는 경험을 넘어 작품이 놓인 공간 전체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일이었다. 그 순간 예술가는 더 이상 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살아 숨 쉬며 기뻐하고 괴로워한 한 인간으로 다가왔다. ‘인 시추’의 힘이 여기에 있다. --- p.9 이 책은 5, 6백 년 전의 작품과 사건을 다루지만, 나의 바람은 단순히 미술사적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작품을 마주할 때 그 시대의 상황과 예술가의 마음을 지금 우리의 삶에 비추어보는 것, 그래서 몇 세기를 가뿐히 뛰어넘어 그들이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듯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 p.11 피렌체의 외부 환경뿐만 아니라 내부 환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렌체에는 여러 유력 가문들과 뛰어난 개인들이 어깨를 겨루고 경쟁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발한 창의력과 끝 모르는 노력이 잇따른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p.17 파라고네라는 불가피하게 가열된 경쟁 속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는 숙련된 기량을 연마해야 했고, 남들과 다르기 위해서는 도발적이고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다. 앞으로 이 책에서 살펴보게 될 르네상스 미술 작품들과 작가들을 통해 당시 미술의 시각적 지향과 목표가 어떻게 발전되고 고도화되었는지를 눈여겨보면 좋겠다. --- p.47~48 코시모의 처신과 사회, 종교, 학문, 예술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보면, 오늘날 회사 경영의 중요 키워드인 ESG 경영 콘셉트를 그가 일찍부터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Environment), 사회 공헌(Social), 윤리 경영(Governance)을 통해 존경받는 기업 경영을 한다는 현대의 개념을 코시모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로 치환해보면, 그가 다양한 후원으로 대중들의 신뢰와 존경을 얻으려 했던 것과 딱 들어맞지 않는가? 또한 코시모가 애써 시간을 내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자주 기도하고 묵상했던 일면을 보면, 그가 ESG 콘셉트를 경영에서만 구현한 것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체현해 모범 시민의 면모를 보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랬던 코시모였기에 사후에 피렌체 정부는 그에게 ‘파테르 파트리아에’, 즉 ‘국부’라는 칭호를 헌사했던 것이다. --- p.76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기에 접어들며 번영을 구가한 시절에도 걸핏하면 유행하는 전염병과 쉴 새 없이 닥치는 전쟁 위협, 그리고 산모와 영유아의 높은 사망률, 길거리에서 허구한 날 벌어지는 폭력 등으로 인해 늘 불안에 떨어야 했던 피렌체 시민들은 특별한 보호와 은총이 필요했다. 그래서 교회와 집 안 구석구석은 물론 길거리에도 성모상을 걸어두고 어머니 같은 성모의 품에서 보호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를 올린 것이다. 경제와 문화는 나날이 번성했지만 여전히 폭력과 야만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길거리 성모상은 마치 도시 전체에 붙여놓은 수호의 표식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 p.80~81 마사초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브란카치 예배당만 한 곳도 없을 것이다. 그가 회화에서 이룩한 혁명적인 변화의 시작점을 충분히 확인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성취했을지도 모를 더 큰 혁명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 p.136 레페토리오에 첫발을 디딘 후,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본 〈최후의 만찬〉은 완벽한 가상현실 세계처럼 다가온다.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은 기존의 작품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지만, 인체와 사물의 윤곽선이 분명해 그림이라는 것이 여전히 티가 난다. 반면 광학에 관심이 깊었던 레오나르도는 사람의 눈에는 사물의 윤곽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스푸마토 기법을 활용해 훨씬 현실성을 증강시켰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림을 보고 있다기보다 식당의 내부가 예수와 사도들이 앉아 있는 공간으로 확장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수 뒤로 나 있는 창들 너머로 토스카나 지방의 들판이 펼쳐지고, 창을 통해 환한 빛이 들어와 식당 안을 밝혀주고 있는 듯한 착시가 일어난다. --- p.161 당시 작품을 주문한 고객이 작품의 내용을 디자인하고 세부적인 것까지 지정해주던 관행은 예술가들이 독창적인 작품으로 자신의 비전을 표현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위대한 예술가들은 창작 과정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도로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같은 장면을 그리더라도 누구의 작품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했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참신한 스타일이어야 했다. 보티첼리의 작품 앞에 서면, 그가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것은 새롭고 신선하며, 오직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회화 언어였다. --- p.188 이곳에서 마주한 카툰은 단지 검은 목탄으로 그려진 단색화지만 작품이 주는 감동은 대단했다. 바티칸에서 이 카툰으로 완성한 채색화를 봤을 때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전율이 등골을 타고 내려왔다. 라파엘로의 카툰 방을 나와 갤러리 투어의 마지막에 이르면 마침내 레오나르도의 〈음악가의 초상〉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라파엘로의 카툰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레오나르도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p.209 조르조네는 삼십 대 초반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고작 15년밖에 활동하지 못했고, 그래서 티치아노보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단순히 천재 화가라기보다 베네치아 예술계의 혁명가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일으킨 혁명은 시끌벅적하고 감정이 폭발하는 그런 혁명이 아니라 시적이고 목가적이며 동시에 매우 사적이고 내밀함을 담은 혁명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서양 회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이미지의 기틀을 잡은 사람이 조르조네였다고 한다면, 그가 서양 회화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 p.237 비록 조르조네가 활동한 기간은 짧았지만, 젊은 나이에도 그의 인기는 상당했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미술품 수집에 극성스러웠던 만토바의 후작부인 이사벨라 데스테는 서둘러 그의 작품을 손에 넣고자 했다. 그러나 베네치아의 지인에게서 받은 답은 “어떤 값을 쳐주어도 그의 작품을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마음은 안타까움에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또한 피렌체 중심주의에 빠져 있던 조르조 바사리가 1550년에 『미술가 열전』 초판을 출판할 때 베네치아의 화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다룬 화가가 조르조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사리조차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당시 예술계에서 그가 누린 명성이 대단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p.264~265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부러진 팔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리스도의 오른쪽 어깨를 유심히 보았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오른쪽 어깨에 팔이 멀쩡하게 있는 것이 아닌 가! 그럼 부러진 이 건장한 팔은 누구의 것인가? 작품을 실제로 보면 궁금증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오리무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정말 놀라운 형상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부러진 건장한 팔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조각상을 몇 번이나 꼼꼼하게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세밀히 살펴보던 중 괴이한 형상이 퍼뜩 눈에 들어왔다. 그리스도 뒤에 있는 성모의 등에 제3의 인물이 업혀 있는 듯한 형상을 얼핏 보게 된 것이다!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설마 내가 허깨비를 봤나? 아니다, 허깨비는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정말로 정면을 바라보는 성모의 옆머리에 조각된 또 다른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 p.279 아르테미시아의 대단함은 단지 남성들만의 회화 장르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스토리텔러로서 회화의 서사를 탁월하게 풀어냈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회화적 표현력, 풍부하게 색채를 다루는 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의 가장 큰 강점은 여성 화가로서 남성들은 보지 못하는, 여성들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관점과 미묘한 감정선을 기막히게 잡아내는 능력이었다. 그녀의 그림 속 여성들은 단지 눈으로 보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 눈을 마주치고, 말없이 저항하며, 가슴으로 관객과 교감한다. --- p.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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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놓여 있는 그 자리에서 본다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이 놓인 그 자리(in situ)’에서 직접 감상한 경험을 중심에 둔다는 것이다. 특히 르네상스의 예술은 대부분 공간과 분리될 수 없는 제단화·벽화·건축 장식이므로,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일은 각별한 통찰과 감동을 준다. 저자는 피렌체 온니산티 성당에서 기를란다요와 보티첼리가 서로 맞은편 벽에 그린 작품을 마주하며, 두 화가가 경쟁심에 사로잡혀 붓을 들었을 모습을 상상한다. 그 자리에서 느낀 짜릿한 흥분은, 마치 르네상스인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미완성작 〈론다니니 피에타〉 앞에서는 본체에서 떨어진 우람한 팔과 성모의 베일에 새겨진 또 하나의 형상에 의문을 가진다. 이후 그 비밀을 파헤치는 여정은 이 책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백미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림을 본다’는 것은 결국 ‘그림 앞에 선다는 것’이며,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감각적 통찰’에 이르는 것임을 알게 된다. 르네상스의 힘은 비교와 경쟁! 1504년 피렌체, 베키오 궁의 대회의실. 도시의 명운을 건 두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서로 마주한 벽 앞에서 세기의 대결을 벌인다. 레오나르도는 〈앙기아리의 전투〉를, 미켈란젤로는 〈카시나의 전투〉로 서로의 기량과 예술에 대한 신념을 증명하려 했다. 비록 두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그들의 대결은 예술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파라고네’로 불린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예술가들이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 기량을 연마하고, 남들과 다르기 위해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예술 후원의 경제학, 코시모 데 메디치의 ESG 경영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선 인물이 코시모 데 메디치다. 그는 산 마르코 수도원과 도서관, 두오모의 돔 등 피렌체의 핵심 시설을 건립하고, 동시에 인문학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그의 후원은 결국 피렌체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고, 메디치 가문이 향후 3백 년 동안이나 피렌체를 통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저자는 그가 건립한 산 마르코 수도원을 통해, 예술 후원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가장 오래된 경영 철학임을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연 두 천재, 마사초와 조르조네 피렌체의 마사초와 베네치아의 조르조네, 두 요절한 천재 화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르네상스 예술의 지형을 바꾸었다. 저자는 ‘초기 르네상스의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불리는 브란카치 예배당을 직접 방문해, 마사초가 그린 프레스코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피며 그가 일군 회화의 혁신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필리포 리피,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수많은 거장들이 이곳에서 그의 작품을 공부했지만, 브란카치 예배당을 이토록 세밀하게 다룬 책은 매우 드물다. 그만큼 이 대목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어떻게 회화의 기초가 새롭게 세워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조르조네는 늘 이름 앞에 ‘미스터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사실상 그는 베네치아 회화의 방향키를 돌린 혁명가였다. 저자는 그가 남긴 초상화를 통해, 개인의 내면과 순간적인 감정까지 담아내는 그의 그림이 어떻게 근대 회화의 씨앗으로 발아하는지를 추적해간다. 아르테미시아, 여성의 힘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경계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여성 예술가로서 당대의 편견과 억압을 정면으로 깨뜨렸다. 저자는 〈수산나와 장로들〉을 중심으로, 그녀가 어떻게 여성의 서사를 새롭게 써내려가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그림이 당대에도 21세기에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단지 걸출한 여성 화가라서가 아니라 ‘여성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시선과 권위’ 즉 ‘여성의 힘’을 그림으로 구현한 보기 드문 예술가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201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는 4억 5천30만 달러에 낙찰되며, 사상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곧 작품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의 중심에 선다. 저자는 이 사건을 출발점으로, 어느 날 위작에서 다시 진작으로 복권되거나 혹은 그 반대로 진작에서 위작으로 추락한 예술 작품의 운명을 추적한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와 라파엘로의 〈율리우스 2세의 초상〉, 그리고 2022년에 위작 판정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얀 페르메이르의 〈플루트를 든 소녀〉까지, 저자는 일련의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예술품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되묻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림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르네상스 미술은 더 이상 과거의 예술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에서 다시 시작되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