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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보
추천의 말_김경재 개정판에 붙이는 글 책머리에 감사의 말 용어 설명 시작하는 말 사자섬 아이에서 ‘생각하는’ 기독 청년으로 (1901~1923) 평안북도에서의 어린 시절 3/1운동에 기독 청년으로 오산학교에서 ‘감방 대학’에서 노자를 만나다 (1923~1945) 일본에서의 생활 역사 교사, 그리고 『성서조선』 조선사편수회 함석헌의 고민, 시대의 고민, 그리고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 민족주의자, 동양적 농사꾼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더 위대하다 (1945~1961) 해방, 그리고 문교부장으로 해방된 남한에서 광야의 소리로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1961~1989) 군사 정변과 퀘이커리즘 『씨알의 소리』와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이 남긴 것 한국 민주주의와 함석헌 서구 기독교와 동양 철학의 융합 마치는 말 :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 쓰고 나서 주석 함석헌 생애 연표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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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 년간 이 책으로 인해 참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다. 찾아온 분들의 유형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분들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무언가를 추구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서 나도 많이 배웠고 지금도 영감을 받고 있다. 그분들은 내게 정말 '씨알의 소리'가 무엇인지 삶의 매 순간에,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잔잔하게 들려주었다. 함석헌에 대한 강의를 이곳저곳에서 할 기회도 많았다. 심지어 외국인들과 외국 학생들에게도 영어로 함석헌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함석헌 사상의 보편성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가졌는가?」 등 그의 시 몇 편을 영어로 번역했고, 외국인들로부터 호응도 좋았다. "문화와 언어를 넘어서 훌륭한 생각은 어느 하늘 아래서나 통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사이 함석헌의 위상도 더욱 분명해졌다. 한국조폐공사에서 "비폭력 인권운동으로 민주화 실현에 앞장선 사상가 함석헌"을 한국의 인물 시리즈 메달로 선정했고, "건국 후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운동가"로 함석헌이 1위(77퍼센트)로 선정되었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 도서에, 아시아 명저 100권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함석헌의 사상적 저력이 놀라울 뿐이다.
--- p.34~35 함석헌은 한국 역사를 씨알의 입장에서 보았다. 기득권자나 가진 자의 통치 논리가 아닌 소외된 서민, 소수자, 패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시선을 갖고 고난에 찬 삶을 살았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나? 함석헌의 추종자들 또한 최소한 기득권자나 "부자의 대변자"가 아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줄 모르는 서민, 씨알의 대변자, 즉 '씨알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팽배한 극단적 양극화와 혐오의 분위기 속에서도 함석헌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강자 독식과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이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함석헌이 주장한 '같이살기운동'의 정신은 더욱 절실하다. 이른바 '작은 정부'의 구호 아래 강자가 약자를 유린할 때 '중립'이라는 미명으로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은 결코 함석헌이 걸었던 길이 아니다. --- p.37~38 1928년 봄, 함석헌은 동경사범에서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귀국과 동시에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역사, 일반 윤리 등을 강의하기 시작한다. 이즈음 함석헌은 타고르와 간디의 책들을 흥미롭게 읽는 한편 계간지 『성서조선』을 편집하고 여기에 글을 실었다. 『성서조선』은 함석헌의 오랜 친구인 김교신이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1927년 7월에 창간한 잡지였다. 김교신은 함석헌보다 약 1년 먼저 귀국하여 오산학교에서 지리학과 자연사를 강의하는 틈틈이 『성서조선』을 만들고 있었다. 우치무라가 예수와 일본을 동시에 중시했듯이 김교신 역시 '성서' 와 '조선'을 그렇겝앗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곧 잡지 『성서조선』의 성격과 방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김교신은 지도력이 뛰어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 p.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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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평화주의자, 바보새 함석헌
함석헌(1901∼1989)은 때로는 종교 사상가였고 때로는 인권 운동가였고, 또 때로는 언론인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그를 “한국의 간디”, “종교적 다원주의의 선구자”, “싸우는 평화주의자”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기독교를 비롯해 유교, 불교와 관련된 글을 쓰고 강연을 했으며, 독재 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에 거리낌 없이 나섰고, 『씨알의 소리』를 창간해 이름 없는 씨알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힘썼던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은 모두 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름 앞에 붙는 수식만큼이나 다채로웠던 삶의 여정 때문인지 함석헌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런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을 맞아 출간한 『함석헌 평전』은 함석헌에 대한 최초의 인물 평전으로 영국에서 함석헌을 공부한 지은이의 박사학위 논문을 초고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굳이 인물 비평서의 범주에 맞춰 분류를 하자면 생애사적 전기라기보다 사회사적 전기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상황에 따른 사상적 변이에 초점을 맞춰 서술된 평전이다. 박사학위를 기초해 만든 책이라 읽기 어려울 거라는 걱정이 있을 수 있으나, 누구나 편하게 읽도록 쉽게 쓰여진 이 책은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한국 근현대사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책은 초판 출간 이후 24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두 차례의 개정 작업을 통해 출간된 개정판이다.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1930년대 민족주의자 기독교인 함석헌이 왜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세계주의자와 좀 더 인도주의와 보편주의를 강조한 기독교인으로 변모했는지를 조명했다. 또한 함석헌이 퀘이커 교도로 그 생애를 마감한 것을 마음에 두고 한국인에게 생소한 퀘이커란 무엇인가를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은이는 함석헌과 퀘이커와의 관계를 더 살펴보기도 했다. 종교인의 사회 참여를 강조한 그였기에 함석헌은 한때 야당 당수로 입문해 달라는 제의를 받지만 왜 그 제의를 단호하게 고사했는지도 밝혔고, 재야 대통령 장준하와의 관계도 설명했다. 전태일 열사에 대한 함석헌의 존경심과 애정, 가족사로 고민하는 그의 연약한 모습, 그리고 아내 황득순과의 관계도 냉정하게 그리고자 노력했다. 더욱이 생애 말기에 함석헌은 가장 가까웠던 민중신학자 안병무와 정치 현실 문제에 대해 약간의 갈등을 보이는데 이 문제도 짚고 넘어갔다. 특별히 지은이는 함석헌의 ‘러브 스토리’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고, 장시간의 단독 대담을 통해서 그 여성의 입장을 담은 목소리를 생생하게 실었다. 함석헌의 어린 시절 및 일본 유학 생활과 오산학교 역사 교사 시절에 대해서도 충실히 소개했고, 함석헌의 처녀작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와 일본 식민 정권이 조선의 식민지 작업을 사상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발족한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와의 관계를 비교하여 기술했다. 아울러 식민지 역사 교사로서 함석헌의 고민과 그가 왜 그렇게 만주 땅에 연연했는지를 조망했다. 또한 시인 함석헌의 면모와 그의 사상의 보편성을 확인해 보기 위해 지은이는 함석헌의 시 몇 편을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했다. 특히 책 앞부분에 소개한 20쪽 분량의 사진자료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축약한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줄 것이다. 함석헌, 자유로운 씨알 이 책에서 주목되는 점은 함석헌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기존의 해석이나 평가에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삶에서 치명적인 오류로 회자되는 1988년 서울평화올림픽의 위원장을 맡았던 일을 거론하는 지은이는 이 ‘사건’을 함석헌의 평화관과 관련지어 해석하고 있어 함석헌의 사상과 행적에 대한 재고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그의 사상, 혹은 종교 사상의 변이를 함석헌이 살았던 조선과 북한, 그리고 남한의 정치 상황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너무나 폭넓어서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웠던 “함석헌 사상”에 대한 유기적인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함석헌의 인생 여정과 그의 사상 변화를 총괄적으로 다루었다. 20세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운동의 기수로서 함석헌의 역할과 혁신적인 그의 종교관을 분석했다. 함석헌은 개인의 영적 완성의 추구와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을 상호 연관된 것으로 보았다.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인간의 가치를 도덕의 가치로 보았다. 더불어 그는 절대자 혹은 신을 우주 위의 초월적 존재일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양심과 자연의 어느 곳에나 내재해 있는 존재로 보았다. 이런 시각에서 이 책은, 동양과 서양 그리고 역사의 패자와 승자 사이의 매개자로서의 함석헌의 역할을 분석하고, 어떻게 그가 그 시대의 역사적 도전에 대응하고 사상을 정립해 나갔는지를 평가하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