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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01 9080 1. 1992년 “미행당하고 있어” 9년 만에 드러난 청년 박태순의 의문사 2. 1990년 사고사로 믿기 어려운 정황들 수석 입학생 김용갑의 짧은 삶 3. 1988년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대학생 안치웅 23년 만의 장례식을 치르다 4. 1984년 죽음으로 몰린 청춘 ‘통일의 꽃’ 임수경 오빠 임용준의 의문의 죽음 5. 1984년 “허원근은 타살됐다” 미국 전문가들은 사진에서 무엇을 봤는가? 6. 1983년 “형의 머리를 저주한다” 스물한 살 청년 한영현의 슬픈 최후 7. 1983년 고려대생 김두황의 이상한 죽음 그리고 조작된 정보들 8. 1983년 청년 이윤성을 죽인 녹화사업의 비밀 “노무현 대통령이 와도 보여 줄 수 없다” 9. 1982년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대학생 정성희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10. 1981년 위암 환자까지 고문한 이근안 고문 끝에 옥사한 이재문 02 7060 11. 1975년 26년생 김희숙, 26년생 김종필 겨우 연명한 독립운동가 가족과 죽어서도 추켜세워진 쿠데타 주역 12. 1973년 “호소한다, 나의 형은 이렇게 죽었다” 박정희 정권 의문사 1호 최종길과 동생 최종선 13. 1972년 ‘유럽간첩단’ 박노수의 억울한 죽음과 김종필 측근을 사형시킨 박정희 14. 1969년 태영호와 지성호의 선배 탈북자 이수근 그리고 그의 처조카 배경옥의 기구한 삶 15. 1963년 특사인가 첩자인가 어둠 속에 묻힌 황태성 사건의 진실 03 5040 16. 1950년 11월 갓난아기들도 낙인 찍어 사살 한국전쟁 속 벌어진 함평 11사단 사건 17. 1950년 9월 ‘월미도에서 사라진 마을’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실향민과 그날의 참상 18. 1950년 7월 민간인을 학살한 아버지, 속죄하며 진실을 파헤친 딸 제주 예비 검속 사건의 비극 19. 1950년 7월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 학살 ‘사형당했는데 무죄’ 마산·창원·진해 국민보도연맹 사건 20. 1950년 6월 청주형무소 학살 사건과 약산 김원봉 동생들의 비운의 운명 21. 1948년 지옥과 같았던 그날, 여수·순천사건 진실위에 기록된 한 맺힌 증언들 편집자 해제 한국 현대사에 새겨진 비극들과 폭력의 기원을 찾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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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은 1992년 8월 29일 오후 6시 30분경 수영기계에서 일을 마치고 공장 사무실에서 약 두 시간 동안 직원들과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밤 9시경에 직원과 함께 걸어서 역곡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통과했다. 그는 혼자 구로역에 내려 수원행 1호선 전철로 갈아탄 후 9시 31분경~47분경 시흥역에 내려 역 구내에서 약 10분 동안 머문 것으로 보인다. 이어 밤 9시 55분경 시흥역 경부 하행선 서울 기점 17.1㎞ 지점 저상 홈 선로변에 있다가 서울발 광주행 열차의 앞부분 왼쪽 승강대 손잡이에 부딪혀 선로 좌측으로 튕겨나가 두개골 파열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경찰은 사고 현장 감식 후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며 박태순을 신원 미상의 변사자로 처리했다. 이 때문에 박태순은 내가 2000년대 초반에 몸담았던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가 밝혀낼 때까지 8년 넘게 행방불명 처리되었다.
--- p.16~17 2013년 8월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판사 강민구)는 2심 선고에서 “M16 소총으로 흉부에 두 발, 머리에 한 발을 쏴 자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며 “같은 총상으로 자살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이며 허원근 일병 사건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이런 강민구 판사의 판결을 읽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판사님이 군대는 갔다 오셨나?’ 허 일병이 돌격소총인 M16을 자신의 우측 가슴에 한 발 쏘고, 그래도 안 죽자 다시 좌측 가슴에 한 발 쏘고, 또 그래도 안 죽자 세 번째로 다시 머리에 한 발을 쏘고 죽었다? 그래서 자살이다? 그러면 국방부는 이렇게 화력이 안 좋은 M16을 당장 교체해야 한다.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세 발이나 발사해도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총을 어떻게 우리 군인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겠는가? --- p.67 박정희는 5·16쿠데타 직후 「사상계」 사무실에 군인을 보냈다. 박정희가 수하를 통해 수표를 전달하고자 함이었다. 남편은 그 수표를 눈앞에서 찢어 버리고는 군인의 뺨을 후려쳤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출신인 것을 남편은 경멸했다. 박정희는 김대중·김영삼을 정적으로 생각했지만, 남편은 사상을 넘어 정통성까지도 박정희의 가장 아픈 치부를 꿰뚫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박정희는 남편의 뿌리, 자손까지 없애 버리고 싶어 했다. 그녀는 「사상계」가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시절에도, 남편이 국회의원이 됐던 시절에도 궁핍하게 생활했다. 1962년 8월, 남편이 필리핀 정부로부터 막사이사이상 언론문학상을 받고 서울 신촌에 집을 지어 석 달간 살아본 게 그녀에게 ‘내 집’의 전부였다. 박정희 정권이 「사상계」에 세금을 강요하여 빚을 지고 그 집에서 쫓겨난 뒤로 3남 2녀를 둔 그녀와 남편은 월셋방을 전전했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녀는 봉투 붙이는 일과 삯바느질 등으로 연명했다. --- p.138~139 1950년 12월 월야 지서 토벌 중대장이었던 오정인은 “당시 중대장은 권준옥이었으며, 작전회의에는 세 번 정도 참석했습니다. 월야와 삼서면 경계 지역 작전회의에 참석했는데, 대대에서 내려온 공문을 보고 중대장이 공산주의자라고 인정된 사람과 부역한 사람은 무조건 50명씩 죽이라고 했는데, 결국은 덮어놓고 죽이라는 얘기였습니다”라고 2006년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5중대 화기소대원이었던 김공원은 2007년 진실위에서 “당시 마을에 가면 도망가는 사람이 많이 있죠. 그러면 도망가는 사람을 불러요. 불러서 돌아오면 살려 주고, 도망하는 사람은 총으로 쏘았어요”라고 회상했다. 진실위 조사 결과 함평 지역에서 이렇게 무차별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학살 사건의 가해 부대는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로 확인되었다. --- p.22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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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위와 의문사위를 통해 진행된 진실의 추적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진실들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2000년대가 되어서야 저 감춰졌던 문제들을 직시하고자 하는 제도권의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었고 이 두 기관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묻혀졌던 문제들을 다시 꺼내 관계자들을 조사하고 정황을 재구성하고 증거 자료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이 상당수 다시 조망되었고 사라졌던 이들이 다시 나타나기도 했고 억울하게 죽음을 맞아야 했던 이들이 복권되기도 했습니다. 본서 『폭력의 역사』의 저자 김성수는 그 의문사위와 진실위 모두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접한 ‘폭력의 역사’를, 그 수많은 비극들의 생생한 내막을 들춰 봅니다. 그 비극들은 조금 더 나아간 성과를 거둔 된 것도 있고, 개중에는 법원과 정부의 사과를 받을 정도의 성과를 얻은 것도 있지만 관계 기관과 사건 관련자들의 비협조, 조작과 왜곡 등을 통해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것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여전히 후자의 경우가 더 압도적입니다. 책임지지 않고 심판받지 않은 ‘폭력의 역사’ 거꾸로 가는 역사를 막기 위한 노력 그렇기에 우리는 ‘폭력의 역사’를 다시금 목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서 『폭력의 역사』는 궁극적으로는 풀리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 책임과 심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그럼으로써 그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역사의 시스템이 되어 사회를 운영한 힘의 근원이 됐던 폭력의 주체와 그 관계된 무언가들이 여전히 사회 저변에 자리하고 있기에 역사는 언제든 거꾸로 되돌아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역사』는 우리 역사 속 숨겨진 비극들을 복기함으로써 그 비극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탐구이자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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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사업, 조작 간첩 등 의문사 사건 관련자들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끔찍하다. 군사 정권과 한국 국가 권력의 민낯은 이들 희생자들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필자가 의문사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 직원으로 일하면서 직접 대면했던 사건들을 인터뷰 등과 곁들여서 생생하게 재현했다. 구체적인 사건과 피해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이해하기 쉽다.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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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이 죽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누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만, 한국 현대사에는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 너무도 많았다. 가 버린 사람도, 남은 이들도 도대체 영문을 알 길 없는 죽음들,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고, 설혹 알았다 해도 입도 뻥끗 못 하고 숨죽여 지내야 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했다. 그런 무기력과 무책임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젊은 넋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이태원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가는 상황을 만들어 냈던 것은 아닐까?남은 사람들은 그 죽음 앞에 무엇을 해야
할까.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