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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_ 무궁화꽃의 비밀_11
2부_ 미셸 아당송_73 3부_ 마람_73 4부_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_275 옮긴이의 말 |
David Di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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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그들은 왕실 정원의 커다란 온실 속 오솔길을 함께 달리곤 했다. 이른 아침, 손목에 시계를 찬 것도 아닌데, 무궁화과 꽃들이 종과는 상관없이 일제히 꽃봉오리를 열어, 아침 햇살을 맞이하는 놀라운 동시성에 아글라에는 감탄하곤 했다. 이후에 그녀는 아버지 덕에 며칠이고 몸을 숙여 꽃을 관찰하는 법을, 꽃의 길지 않은 생이 지닌 비밀들을 알아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 pp.24-25 「1부 - 무궁화꽃의 비밀」 중에서 미셸 아당송은 그들을 ‘예의 바른 개구리들’이라 불렀다. 아글라에는 아버지가 이 세 마리 양서류 중 하나에게 “게타르, 안녕하신가?”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서 ‘예의 바른 개구리들’의 야릇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게타르는 아버지의 파리 왕실 과학 아카데미 시절 동료 중 최고의 적수였다.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며, 그는 그녀가 알 수 없는 악의를 띤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녀석은 아마존 숲에 사는 제 사촌만큼 독을 갖고 있진 않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어떤 인간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독살하고도 남을 만한 독을 품고 있었지.” --- p.48 「1부 - 무궁화꽃의 비밀」 중에서 우리는 늘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들이 돌로 된 궁전을 짓지 않은 것은 그들은 그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고대 왕들의 위대함을 증명할 고유의 방법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본 적이 있는가? 유럽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궁전, 성, 대성당 등은 부자들을 위해 - 그들의 오막살이 살림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 수세대에 걸쳐 가난한 사람들이 바친 피와 땀의 결과다. 세네갈 흑인들의 역사적 유물들은 그들의 역사가이자 이야기꾼이며 가수인 그리오(Griot-아프리카 전통의 구송 시인)들을 통해, 또 서사시, 덕담, 민화들을 통해 세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 --- p.77 「2부 - 미셸 아당송」 중에서 소르 마을의 별빛 아래, 바바 섹이 들려주는 마람의 미스터리한 실종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는 문득 지구별이 지닌 수많은 미스터리를 다 이해하기엔 내 인생이 충분히 길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사막의 모래알 하나, 대양 속의 물 한 방울보다 나을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은 나를 슬프게 하기보다 흥분시켰다. 나의 정신은 그것이 비록 아주 작을지라도, 이 무한한 우주 속에 나를 존재하게 할 힘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지닌 한계에 대한 인식은 내게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무한한 직관을 가지고 우주 속을 떠도는 생각하는 먼지였다. --- p.89 「2부 - 미셸 아당송」 중에서 “… 백인들에 의해 아메리카에 노예로 팔려 갔다가 여기 세네갈 집으로 돌아온다고? 그건 할례(포경수술)를 받은 음경에 다시 포피가 생겨나는 것 만큼 불가능한 일이야!” 당시 15살이었던 은디악은 생루이 섬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노예로 팔려 갔다가 돌아온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농담을 지껄이는 걸 잊지 않았다. 이 얘기는 바바 섹이 지어낸 거다. 당신은 두고두고 마을 사람들의 놀림감이 될 것이다. 미셸 아당송이라는 그 백인은 꾸며낸 얘기에 홀딱 속아 넘어갔다고. 잘하면 이 동네의 전설이 될지도 모른다고. --- p.92 「2부 - 미셸 아당송」 중에서 벤 마을의 대표는 사자와 하이에나가 나란히 나타나 말린 생선을 훔쳐 간다는 희한한 얘기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은디악은 말해주었다. 그는 오히려 그들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모두가 함께 도우며 살아야죠.” 그는 내가 들것에 실려 온 것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우리 마을의 치유사가 나한테 벌써 알려줬거든요. 외부인들이 오늘 그녀를 찾아올 거라고요. 저를 따라오세요. 제가 여러분들을 그녀에게 안내 해 드리죠.” --- pp.158-159 「3부 - 마람」 중에서 은디악은 자신은 물론, 경험 많은 세이두 가디오까지도 그 놀라운 치유사 앞에서 벌벌 떨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자개가 박힌 붉은 가죽으로 덮인 긴 막대에 기대서 있었는데, 커다란 뱀 가죽으로 만든 일종의 두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두건 외에도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뱀 가죽은 살아있는 외투처럼 발밑까지 내려와 출렁거렸다. 흑단같이 검은 바탕에 옅은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그 뱀 가죽은 윤기와 광택이 돋보였다. 치유사가 자신의 오두막으로 들어가기 위해 절름거리며 뒤돌아섰을 때, 그녀는 은디악에게 반은 사람, 반은 뱀처럼 보이는 정의하기 힘든 존재라는 인상을 남겼다. --- p.162 「3부 - 마람」 중에서 이러한 나의 종교적 원칙과 이토록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부터 멀찌감치 거리를 두어온 나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벗은 몸으로 빗물이 가득 채워졌는지 보려 모든 항아리를 하나하나 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마람을, 그녀를 향한 내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그녀는 비에 젖어 움직임을 방해하는 옷을 던져 놓고, 마치 신이 아직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지 않은 검은 이브처럼, 완전한 나신으로 자유롭고 아름답게 움직이고 있었다. --- pp.176-177 「3부 - 마람」 중에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가슴 아픈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노래가 나에겐 소중하게 느껴졌다. 감옥에 갇혀 이 노래를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마람과 나를 이 노래가 이어줄 것이라 느꼈다. 비록 그녀가 이 노래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고, 생장이 우리 사이에 놓은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녀를 구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선원들의 노래 가사에 담긴 것처럼, 자신의 나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노예들의 여행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나는 마람을 사랑했고, 나는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져, 저 수평선에 의해 삼켜지고 미국 땅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란 얘기를 믿을 수 없었다. --- pp.284-285 「4부 -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 중에서 우리가 함께 달렸던 그 몇 초의 시간 동안, 나는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내 손을 꽉 잡은 마람의 따뜻한 손은, 그 어떤 사랑의 말, 감미로운 시선 혹은 열정적인 포옹보다도 격한 감정을 내 마음 속에 불러 일으켰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흔히 묘사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나의 정신은 지난 모든 삶의 기억들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대신, 그녀와 함께하는 행복한 상상의 시간에 머물렀다. 꽃피우지 못한 강렬한 희열의 순간에 대한 순간적 애착이랄까. 차이를 증오하는 세상이 우리의 사랑을 향해 던질 환멸과 쓰라림으로부터 자유로운 결합을 나는 잠시 꿈꿨다. 마람과 나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을 막 통과했다. --- pp.288-290 「4부 -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 중에서 지옥으로 내려온 오르페우스가 유리디스를 바라보지도 않자, 그를 원망하며 탄식하는 유리디스의 심정을 소프라노 가수가 노래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너져 내렸다. 연주하고 있는 음악가들 뒤편으로 나는 마들렌의 초상화를 볼 수 있었고, 상상이 불러일으킨 착란에 의해서 난, 마치 마람이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를 빌려 그녀를 지옥에 던져 버리고 잊고 사는 날 원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람은 아직도 내게 멀면서도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초상화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람은 마침내 오르페우스가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행복해하다가, 죽음이 다시 그녀를 데려가려는 순간, 오르페우스가 연기한 무관심의 이유를 깨달은 유리디스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삶과 죽음 사이에 매달려 있던 그 시간을 나는 마람과 함께 경험했다. 나는 그녀의 오르페우스였고, 그녀는 나의 유리디스였다. 그러나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글루크의 오페라와는 달리, 난, 마람을 완전히 잃었다. --- pp.338-339 「4부 -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 중에서 마들렌은 자신의 초상화를 싫어했다. 그녀는 초상화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초상화가 자기의 남은 인생에서 왠지 불운을 가져올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 초상화를 본 남자들은 뚫어져라 그것을 바라보거나 급기야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싶어 했다. --- p.342 「4부 -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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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작별 너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먼저 “아당송과 마람의 사랑”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에선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적인 사랑이 연상된다. 마람이 노예로 팔려 갔다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와 ‘돌아온 여인’으로 불렸던 점, 아당송이 막지 못한 마람의 두 번째 죽음 그리고 마람의 수호 신랑이 보아뱀이었던 점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가 등장한다. 아당송은 우연히 ‘돌아온 여인’에 대한 소문만 듣고 무작정 길을 떠나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극적으로 마람을 만나게 된다. 마람은 소문만 듣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백인 아당송을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 아당송을 치료해주면서 신뢰하게 되고, 마람은 아당송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왜 늙은 치유사로 변장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소녀 마람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역정을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제가 당신에게 저의 정체를 드러내고 당신 앞에선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이 대목에서 마람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다시 이어갔다. “당신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느껴졌어요. 백인 중에서뿐 아니라 제 종족의 남자들과 비교해서도요.”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식물학자인 아당송과 아프리카의 자연 속에서 살아온 마람은 자연과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막의 열병으로 죽을 뻔한 아당송을 치료해 준 것도 식물 치유사로 살아온 마람의 자연에 대한 해박한 지식 덕분이었다. 마람이 이 빛을 발하는 소금물을 가져다, 밤에 그녀의 오두막을 밝히는 불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녀에 대한 나의 애틋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나는 그녀가 표현하는 방식의 세계관을 갖지 않았고, 그녀가 말하는 수호천사의 존재도,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는 고대 종교의 반인 반수의 존재도 믿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쓸모 없는 것일지라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같은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중간생략) 마람과 나는 또한 자연의 신비에 대해서도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의 존재들과 자신을 일치시키려 했고, 나는 자연을 꿰뚫어 보고 세세히 파악하고자 했다. 이성과 사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면, 내가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된 이성적 이유는 이것이었다.(pp.205~206) 아당송이 식물학자로서 세네갈에서 자신이 하려는 일을 설명하자, 마람은 그 일이 결국 세네갈을 죽이는 일이며 백인 노예 사냥꾼들을 돕는 거라고 반박한다. 나를 예외적인 인물로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나는, 세네갈 조계지에서 일하는 자들과 나는 완전히 다른 부류이며 그들과는 그저 형식적인 관계만 맺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순수하게 세네갈의 야수들과 식물군을 관찰하고 조사하러 온 것이라고 그녀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반박했다. “당신이 남긴 모든 기록들은 분명 조계지 상인들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사용할 거라는 걸 모르시나요. 순진한 건가요, 아님 모른 척하는 건가요?” (p.170)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애틋한 감정을 나누던 아당송과 마람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조카 마람을 죽이려 찾아온 삼촌 바바섹은 마람이 길들이던 보아뱀에게 끔찍한 죽임을 당하고, 이로 인해 마람은 다시 노예로 팔려 갈 운명에 처한다. 아당송은 목숨을 던져서라도 마람이 팔려가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강력한 노예제도는 마람의 죽음을 불러온다.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을 향해 달려간 순간 운명의 신은 마람을 죽음으로, 아당송은 삶으로 귀환시킨다.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유리디스의 비극처럼 ‘돌아온 여인’ 마람은 결국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눈앞에서 마람을 잃은 아당송은 허탈한 심정으로 방황하다가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 마람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는 유칼립투스 나뭇잎 타는 냄새를 없애려고 한 해변의 숲을 모두 태워버리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프랑스로 귀국해 모든 걸 잊고 식물 연구에만 매진하던 어느 날, 아당송은 어느 초대된 파티에서 마람을 닮은 초상화를 마주하게 된다.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오페라가 한 대목이 연주되는데,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마치 마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지옥으로 내려온 오르페우스가 유리디스를 바라보지도 않자, 그를 원망하며 탄식하는 유리디스의 심정을 소프라노 가수가 노래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너져 내렸다. 연주하고 있는 음악가들 뒤편으로 나는 마들렌의 초상화를 볼 수 있었고, 상상이 불러일으킨 착란에 의해서 난, 마치 마람이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를 빌려 그녀를 지옥에 던져 버리고 잊고 사는 날 원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람은 아직도 내게 멀면서도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초상화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람은 마침내 오르페우스가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행복해하다가, 죽음이 다시 그녀를 데려가려는 순간, 오르페우스가 연기한 무관심의 이유를 깨달은 유리디스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삶과 죽음 사이에 매달려 있던 그 시간을 나는 마람과 함께 경험했 다. 나는 그녀의 오르페우스였고, 그녀는 나의 유리디스였다. 그러나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글루크의 오페라와는 달 리, 난, 마람을 완전히 잃었다. (pp.338~339) 마들렌의 초상화가 의미하는 것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신화가 복선처럼 깔려있지만, 소설 《작별 너머》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있다. 18세기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이 배경이고, 세네갈을 여행했던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알게 되는 세네갈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서 유럽의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비극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비극은 당대에 끝나지 않고 후대를 이어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소설 말미에 짧게 등장하는 ‘마들렌’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작가는 노예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고통과 혼란을 이야기한다. ‘마들렌’이라는 젊은 여인은 외모는 마람과 닮았지만 마람과는 상당히 달라 보인다.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 온 마들렌은 아프리카에 대한 기억이 없다. 고향에 대한 향수도 아무런 기억도 없는 자신에게 누군가의 애절한 사연도 고향에 대한 이야기도 선물도 그냥 싫고 부담스러울 뿐, 그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들렌은 자신의 초상화가 불운을 가져오는 것만 같다. 마들렌은 자신의 초상화를 싫어했다. 그녀는 초상화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초상화가 자기의 남은 인생에서 왠지 불운을 가져올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 초상화를 본 남자들은 뚫어져라 그것을 바라보거나 급기야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싶어 했다.(p.342)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연주를 들으면서 마들렌의 초상화를 본 아당송은 마치 마람이 자신을 찾아와 크게 원망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마들렌의 초상화를 보고 회한에 잠겼던 아당송은 딸 아글라에에게 마들렌이란 인물을 찾아 몇 가지 선물을 전달해 달라는 유지를 남긴다. 그런데 마들렌은 아글라에가 찾아와 건넨 선물을 기겁하며 거절한다. 아당송이 마람을 닮은 마들렌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은, 마들렌에겐 수상쩍은 사람이 건네는 한낱 “싸구려 목걸이와 금화 하나”에 불과했다. 전날에는 어떤 한 여인이 찾아왔다. 아프리카산 싸구려 목걸이와 금화 하나를 주면서 미셸 당송…인가? 뭐, 그런 이름을 가진 죽은 사람을 위해 이걸로 술이나 한잔 사 마시라고 했다. 그녀는 그 싸구려 목걸이와 금화를 거절했다. 그녀 자신은 더 이상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존재였다. 게다가 거래는 이미 끝난지 오래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브누아스트-카베이 가문에 속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pp.342~343) 마들렌은 ‘빨간 머리의 백인 악마’ 때문에 노예로 납치됐다고 넋두리하는 노인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도 슬픈 망상이라며 웃어넘길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지만, 나 마들렌은 그들처럼 웃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오르페우스의 슬픈 망상에 울지 않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미소 지었다.(p.344) 소설 속에서 ‘오르페우스’란 이름은 서로 다른 뉘앙스로 등장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주인공 아당송은 자신을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오르페우스라고 생각하고 마람을 유리디스라고 감정이입하며 슬퍼한다. 그런데 또 다른 오르페우스는 “백인 악마 때문에 노예로 납치”됐다고 넋두리하는 노인의 이름이다. 노인은 소설 속에서 아당송이 어떤 마을에 들렸을 때 우연히 만났던 남자아이로 추정되는데, 이 노인 오르페우스에게 저주를 불러온 그 백인 악마가 바로 미셸 아당송이란 사실이 우연의 일치일까? 그녀의 고향 카페스테르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한 노인을 알고 있다. 그는 늙은 오르페우스였다. 우리는 그를 놀리기 위해, 그가 플렌테이션 농장에 도착했을 때 브누아스트의 아버지가 지어준 오르페우스라는 이름 대신 마쿠 라풀이라 불렀다. 그는 언제나 술에 취할 때면, 그가 어릴 때 만난 백인 악마의 나쁜 눈 때문에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마쿠는 그가 아기였을 때, 하늘에서 아프리카 마을에 떨어진 백인의 머리카락을 심하게 잡아당겼기 때문에 그와 누이가 납치되었다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p.344) 《작별 너머》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 시대적 아쉬움과 회한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빛나는 업적을 남긴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왜 극악무도한 노예제도에는 침묵하고 방관했는지, 유럽 열강들은 왜 아프리카의 자연과 동물들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포획했는지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미셸 아당송이란 식물학자가 남긴 여행기 한 자락으로 마술적 서사를 이루게 만든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작별 너머》는 어쩌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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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바벨탑 위에 떨궈진 신성한 새의 깃털
《작별 너머》는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2022)로 한국 독자들을 만난 바 있는 다비드 디옵의 세 번째 소설이다. 단 세 권의 소설로 다비드 디옵이 프랑스 문단에서 이룬 성과는 놀랍다. 전작으로 〈고교생 공쿠르상〉과 〈부커 인터내셔날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존재감을 키운 데 이어, 이번 소설은 출간 즉시 언론의 각별한 주목 속에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아프리카와 프랑스 사이에 놓인 작가의 문학적 탐구의 밀도를 입증했다. 아당송이 구하지 못했던 마람, 끝내 이룰 수 없었던 전율같은 사랑에 대한 회한은 아프리카가 그에게 건넨 통찰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만든 자신의 한계, 그 어리석음에 대한 통한이기도 하다. 공적 기록이 비워둔 여백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워낸 작가 특유의 마술적 서사는 이성과 지식의 허무한 바벨탑을 쌓던 유럽 지식인들 머리 위에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신성한 새의 깃털을 떨군다. 디옵의 문학은 두 대륙 사이에서 다시 한번 날갯짓하며 도약한다. - 목수정 (문화정책연구자,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