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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강철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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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석
한겨레출판 20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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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강철 무지개

해설: 빵과 서커스로 통치되는 세계에 맞서는 아나키스트의 존재학 - 홍기돈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崔仁碩

소설가, 희곡작가. 195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79년 희곡 「내가 잃어버린 당나귀」가 계간 『연극평론』에 게재되면서 등단했다. 1980년 희곡 「벽과 창」으로 한국문학사 신인상 수상하고, 이후 희곡 「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로 대한민국 문학상과 영희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 〈칠수와 만수〉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1986년 『소설문학』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소설집 『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 제18회 박영준 문학상을 수상했다. 창작집으로 『인형만들기』, 『내 영혼의 우물』, 『혼돈을 향하여
소설가, 희곡작가. 195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79년 희곡 「내가 잃어버린 당나귀」가 계간 『연극평론』에 게재되면서 등단했다. 1980년 희곡 「벽과 창」으로 한국문학사 신인상 수상하고, 이후 희곡 「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로 대한민국 문학상과 영희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 〈칠수와 만수〉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1986년 『소설문학』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소설집 『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 제18회 박영준 문학상을 수상했다. 창작집으로 『인형만들기』, 『내 영혼의 우물』,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나를 사랑한 폐인』, 『구렁이들의 집』 등 다수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잠과 늪』, 『새떼』,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 『안에서 바깥에서』 연작장편 『아름다운 나의 귀신』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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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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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UB(DRM) | 19.39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5.3만자, 약 7.9만 단어, A4 약 159쪽 ?
ISBN13
9788984318847

책 속으로

SS 울트라마켓은 9층 건물 크기의 정연한 기계였고, 그들은 그 속으로 들어가 일부는 잠깐 사이 무엇인가를 소모하고, 혹은 소모당하고 빠져나왔고, 또 다른 일부는 하루 가운데 대부분을 그 가운데에서 소모하고, 또는 소모당하고 빠져나왔다. 소모하는 것은 소모당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모당하면서 소비한다고 믿었고, 소비하면서 소모당한다고 불평했다. 또는 자랑스러워했다. 섭취와 배설이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생리적 과정이라면, SS 울트라마켓에서 벌어지는 진지하고 기계적인 행사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락시킬 수 없는 사회적?기계적 과정이었다. (13쪽)

카드예요, 현금이에요? 지니가 물었다. 돌연 장난기가 발동한 탓이었다. 자신에게도 낯선 그런 장난기는 적어도 일부는 제임스 탓이었다. 그의 무엇인가가 지니를 자꾸 가볍게, 유쾌하게 만들었다. 제임스의 느린, 무거운 움직임과 반응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 자꾸 그녀를 간질이는 것 같았다. 그는 이번에도 지나치게 오래 지니를 쳐다보았다. 낯선 지방의 지도를 읽기 위해 애쓰는 듯한 얼굴이었으나 그 얼굴에 대고 지니는 다시 말했다. 일시불이에요, 할부예요? 곧 제임스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신속배달 안전보장입니다. 두 사람은 곧 알아들었다. 이 여자는 계산원이다. 이 남자는 배달기사다. 그들의 말은 그들이 입는 제복 같았다. (31쪽)

그들에게 허용된 삶의 방식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그들 자신도, 삶도 부정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삶이 없는 삶, 이를테면 캄캄한 삶, 삶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삶을 버려야만, 그들 스스로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비로소 아슬아슬 생존이라는 밧줄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그들 자신을 긍정하려 들면 세계가 그들을 부정했다. 그들 자신이 존재할 틈이 없었다. 세계에는 그들의 삶이 포함될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세계에 버림받았고, 세계에 매달려 있는 사이 그들 자신에게서도 버림받았다. 그들 자신을, 삶을 긍정하는 유일한 길은 이 세계를, 그곳에서의 생존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생존의 밧줄을 놓아버리는 길뿐이었다. 기묘한 일이지만 명백한 사실이었다. (135쪽)

오직 그들만이 존재했다. 자신의 전 존재를 온전히,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 의식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것도 가능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안다는 것,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온 세계가 그들을 축복하고, 온 세계가 그들을 질투하는 것 같았다. 그 축복과 질투 가운데 그들은 외롭고 동시에 행복했다. 그 외로움마저 충만의 원인이 되었다. (143쪽)

“만일 신이 있다면, 그가 이 세계를 만들고, 또 지옥을 만들었다면, 그가 만든 세계는 여기가 아닐 겁니다. 여기는 그가 만든 지옥이에요.” (198쪽)

옛날 당신은 종이 인형 같았어, 하고 브라운이 말한 적이 있었다. SS 울트라마켓 시절의 얘기였다. 구겨진 작은 종이 인형처럼 그녀에게서는 생명의 부피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중략) SS 울트라마켓 시절의 그는 잘 다려진 바지의 날 같았다. 살아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그렇게 날카롭게 각을 잡고 세워진 사물 같은, 쇼윈도에 그렇게 서 있는 것 자체가 목적인 그런 존재. (226-227쪽)

그때 지니는 그것을 발견했다. 서가 꼭대기에 반짝이는 작은 물체, 카메라였다. 저 너머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고개를 젖혀 찾기 시작하자 무수한 카메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가 꼭대기, 천장, 모서리, 창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무수한 카메라들이 디지털의 눈과 귀를 번득이고 있을 것이다. 공원도 숲도 사라지고, QR코드와 카메라, 그리고 그 아래 여지없이 적발당한 피사체가 남았다. (268쪽)

백스터는 아직도 혼이 나간 듯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우나 오라, 우나 오라. 구스만이 떠들어댔다.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한 시간일 뿐이었다는 것을 백스터는 믿을 수 없었다.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그는 알 것 같았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과 삶 사이에는 하나의 수조가 있을 뿐이었다. 묵직한 리모컨으로 그 수조가 열리고 닫히는 사이, 그 잠시가 존재할 뿐이었다. (349-350쪽)

천만에. 지니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에너지돔을 파괴할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부터, 그녀가 조직을 만나기 전부터 그녀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녀 개인의 죽음 같은 것은 그 목표와 견주면 하찮았다. 그녀의 삶은 언제나 이미 죽음 못지않았다. 매일 매 순간이 거듭되는 죽음, 새로운 죽음, 더 고통스러워지는 죽음이었다. 아무리 살기 위해 발버둥 쳐도 죽음의 덫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371-372쪽)

카지모도는 지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게다가 이런 일이 너무나 흔합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사연입니다. 이걸 누군가 체계적, 지속적 살인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완전히 틀린 주장일까요? 어떤 자들이 선전포고 없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향해 이미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면 그게 많이 잘못된 주장일까요?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얼마나 비열한 전쟁입니까? 얼마나 잔인한 전쟁입니까?

---본문 중에서

줄거리

특수화물 수송업체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에서 한 달짜리 노동자로 고용된 재선과 SS울트라 마켓의 계산원인 지연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기계처럼 일만 해야 하는 세계에서 그들은 서로를 만날 시간도 없다. 둘은 이 세계를 벗어나 20년 전쯤 핵폐기물 선박 침몰 사고로 폐허가 된 바닷가 마을로 숨어든다. 그 행복도 잠시, 중일전쟁 발발로 다시 지겨운 세계로 돌아오게 되고, 둘은 헤어진다.
한편,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 회장인 한창수는 자신의 간 이식 수술을 위해 직원들과 담당의사와 간호사를 대동하고 멕시코로 향한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간호사 아이리스가 실종된 채 돌아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회장은 아이리스를 찾는 괴한의 습격을 받는데…….

출판사 리뷰

괴물 같은 세계, 2105년의 대한민국. 생생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다
“우린 작은 나라를 만들어야 해.
당신이 눈물 한 방울 흘리면 홍수가 지는 나라.”
대산문학상 수상작가 최인석의 새로운 미래소설!

“세계를 떠난 뒤 그들은 비로소 삶을 발견했다.”
최선을 다해 희망을 찾아가는 최인석 작가의 열두 번째 장편소설


“비참한 삶 가운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슬픔과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삶, 감당해내야 하는 세계, 그런 자세.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난 시시포스나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를 본다.”
_ 작가 인터뷰 중에서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견고한 작품 세계를 축적해온 중견작가 최인석의 열두 번째 장편소설 《강철 무지개》가 출간되었다. 2013년 10월부터 6개월간 한겨레출판 문학웹진 〈한판〉에 연재했던 《강철 무지개》는 SS 울트라마켓의 계산원 ‘지니(차지연)’와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의 화물 배달기사 ‘제임스(윤재선)’, 세상을 바닥부터 경험하며 분노와 복수로 살아온 ‘멜라니(안영희)’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간호사 ‘아이리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2105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기계의 연장이 되어 쳇바퀴를 돌듯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누군가의 삶을 진술하는 동시에, 언제든 해고로 몰릴 수 있는 불안정한 고용 현실, 편리를 가장한 ‘감시’ 기술과 체제의 발전, 대체 에너지를 둘러싼 기업의 경쟁 등 예측 가능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디스토피아적 사회상을 그려나간다.
문학평론가 홍기돈은 “작가는 인간의 존재 형식이란 큰 그림을 제시하면서 그 안에 2014년의 실태를 2095년의 상황 위에 겹쳐놓았고, 이로써 현실의 중력을 《강철 무지개》에 담아내고 있다”며, “현재의 사실에 허구의 미래를 덧붙여서 암울한 세계를 실감 나게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세상은 가장 약한 자들을 향해 소리 없는 전쟁 중이다!
야만적인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가치를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나아가는 소설

SS 울트라마켓의 계산원 지니(차지연)는 언제든지 작업카드를 뺏기고 폐기처분될 수 있는 일상 속에서 기계처럼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럽에서 제임스(윤재선)을 만난다. 그는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 배달기사였고, 둘은 곧 사랑에 빠졌다.

카드예요, 현금이에요? 지니가 물었다. 돌연 장난기가 발동한 탓이었다. 자신에게도 낯선 그런 장난기는 적어도 일부는 제임스 탓이었다. 그의 무엇인가가 지니를 자꾸 가볍게, 유쾌하게 만들었다. 제임스의 느린, 무거운 움직임과 반응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 자꾸 그녀를 간질이는 것 같았다. 그는 이번에도 지나치게 오래 지니를 쳐다보았다. 낯선 지방의 지도를 읽기 위해 애쓰는 듯한 얼굴이었으나 그 얼굴에 대고 지니는 다시 말했다. 일시불이에요, 할부예요? 곧 제임스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신속배달 안전보장입니다. 두 사람은 곧 알아들었다. 이 여자는 계산원이다. 이 남자는 배달기사다. 그들의 말은 그들이 입는 제복 같았다. (31쪽)

그러나 현실은 연인을 행복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두 사람은 쉴 틈 없이 일해야 했고, 둘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이 세계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두 사람은 행복할 수 없었다. 재선과 지연은 모든 것을 팔아치우고 서울을 떠나 사람이 없는 바다, 서해에 도착했다. 이 폐허는 핵폐기물이 오염시킨 땅이었다. 2075년 5월 17일, 서해에서 중국의 팔천 톤급 컨테이너 화물선 인줘 호의 침몰사고가 있었다. 핵폐기물을 싣고 있던 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그날은 대재앙의 날로 기록되었다. 이 폐허 안에서 둘은 잠시나마 유토피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둘의 행복도 잠시, 무장 군인들이 서해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중일 전쟁이 났다고 했다. 둘은 더 이상 이곳에서 머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괴물 같은 세계로 돌아오면서 지연은 재선과 헤어졌다. 이후 지연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져준다는 SS 울트라돔으로 들어갔다.

에너지돔 소유 기업은 정부로부터 갖가지 지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언제든지 임의로 처분, 이동시킬 수 있는 안정적인 노동력을, 조직도 파업도 없는 복종적인 노동력을 확보했으며, 더불어 그들 노동력을 통제할 수 있는 기초적 행정권과 사법권을 양도받았다. 에너지돔 주민의 일인당 지엔피가 언제나 국가 평균 일인당 지엔피의 100퍼센트 이상 초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정부 당국은 관여하지 않았고, 기업은 발표하지 않았다. 정부는 20만, 많게는 100만 이상의 인구를 기업에 양도하면서 그와 더불어 복지와 의료, 교육과 치안 등의 문제까지 떠넘겨놓고 안심했으나, 기업이 손해나는 짓을 할 리 없었다. 50만 인구를 데리고 살건, 100만 인구를 먹여 살리건, 그들은 사기업이었고, 이윤은 그들을 추동하는 유일한 엔진이었다. (233-234쪽)

SS 울트라의 에너지돔이라는 집합거주지구는 견고한 성채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불안정한 삶을 버리고 이곳으로 들어가면 ‘의식주 무상, 교육 무상, 직장 보장, 의료 보장, 세금이 없는’ 세계가 기다린다. 대신 자유와 자치가 없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노동력과 안락한 생활을 교환한다. 그 생활은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은 채 만들어진 시스템에 순응할 때, 감옥과도 같은 철저한 감시와 언론의 통제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곳에서 지연은 아무도 모르게 세계를 변화시킬, 재선과 함께 꾸었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맨다.
한편, 지연과 헤어진 뒤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로 복귀한 재선은 어느 날, 막 고용된 멜라니(안영희)를 만난다. 멜라니는 길바닥에서 오래 생활한 티가 역력했다. 사실 멜라니는 무당의 식모살이를 하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열한 살부터 길에서 살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역 앞에서 에스더(아이리스)를 만나고 그녀의 따뜻한 손에 이끌려 ‘예수님 사랑의 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운 대로 세상을 심판할 예수의 재림을 믿는 에스더(아이리스)와 언제 올지 모르는 구원보다 현실에 앞서 적극적으로 맞서 생존하고자 하는 멜라니의 운명의 길은 갈라지고 만다.
재선과 멜라니는 화물을 운송하는 임무를 맡아 하산(중국, 러시아, 한국의 국경이 접한 국제자유공업단지)으로 향한다. 그 길목에서 멜라니는 재선에게 자신의 연인을 찾으러 잠시 평양에 다녀오겠다며 회사에 보고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재선은 간절히 연인을 찾으려는 멜라니를 보면서 몇 년 전 헤어진 지연을 떠올린다. 나는 왜 끝까지 찾지 않았던가. 왜 그녀를 잊고 지냈던가. 폐허였던 그곳을 떠나오며 나는 어떤 각오로 이 세상에 돌아왔던가. 재선은 회사에 보고할 전화를 잠시 미루기로 한다.

하나의 세계에 불을 질러야 한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인간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계를 위하여

《강철 무지개》 속 인물들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순응하지 않는 것, 가만히 있지 않는 선택을 하고 주체적으로 고군분투한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차지연에서 지니로, 윤재선에서 제임스로, 에스더에서 아이리스로, 안영희에서 마릴린 - 나오미 - 미스터 프랭크 - 나탈리 - 멜라니로 이름이 바뀐다. “모든 인간은 단독자로서 존엄하며 그 가치를 존중받아야(466쪽)”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인간을 언제든 교환 가능한, 교체 가능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기에 우리는 “갑옷처럼 두터운 위명(僞名)이 요구되는(466쪽)”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최인석은 《강철 무지개》를 통해 악몽을 꾸듯 생생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 태워버리고 싶은 세계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본다. 지연과 재선이 이 세계를 탈출해 잠시 맛보았던 유토피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우린 작은 나라를 만들어야 해.”
지연은 말했다. 작은 나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작은 나라가 있다면 큰 나라가 밟아 차지할 것이요, 그렇게 하여 더 큰 나라가 될 것이다. 작은 나라 같은 것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너와 나만이 사는 작은 나라?”
만들 수 있을까. 하나의 태도가 하나의 나라가 되는 세상. 누구나 하나의 생각으로, 이를테면 월요일이 없는 나라, 그런 생각으로 월요일이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세상. 나에겐 나의 태도, 너에겐 너의 태도, 오늘은 오늘의 태도, 내일은 내일의 태도, 그렇게. 우리 팔에 올가미를 들이밀고, 우리 다리에 차꼬나 채우는 나라가 아니라, 그럴 힘도 없는 나라.
(중략)
“이를테면, 내가 기침 한번 하면 깜짝 놀라 병원에 입원하는 나라, 당신이 눈물 한 방울 흘리면 그만 슬퍼서 홍수가 지는 나라.”
오늘은 이 나라, 내일은 저 나라, 내키는 대로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 나라. 그렇게 임의로 바꿀 수 있는 나라. (423-424쪽)

지금처럼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삶, 소비 방식으로만 사는 삶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삶,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터무니없고 이뤄질 리 만무한 꿈이더라도, 계속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오직 꿈만이 줄 수 있는 위안(424쪽)이 필요하므로.

추천평

자신의 사상이랄까, 이념을 가지고 현실과 대결해나가는 소설을 읽은 건 오랜만이다. 현실과 대결하려는 작가가 줄어들었고, 자신의 웅숭깊은 사상으로써 대결 의지를 가다듬을 수 있는 작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현실과의 팽팽한 길항이 벼리고 벼린 사상을 나침반으로 삼아 소설적 형상화의 성공에까지 이르렀다면 문학사에 등재될 만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강철 무지개》는 그러한 평가를 부여하기에 인색할 필요가 전혀 없는 수작(秀作)이다.
홍기돈(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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