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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 떠남은 진실로 돌아오기 위한 길이다 5
1부 시 버클리 시편 버클리 교정에서 14 순간 - 월넛 크릭에서 16 모국어 18 평창순두부 20 비행기의 무덤 22 식구 24 나팔꽃의 꿈 25 샌안토니오의 심 시인 26 귀국 전날 28 10년 만 - 봉준호 감독 30 영역시 별 32 엄마 36 뻐꾹새 한 마리 산을 깨울 때 38 아버지가 되어 42 동백꽃 44 서해 낙조 48 외로워하지 마라 52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56 물꽃 너머 60 2부 김완하의 버클리 통신 떠남은 진실로 돌아오기 위한 길이다 67 캘리포니아의 별 77 버클리의 겨울 87 2010년 캘리포니아의 희망 97 미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유진 오닐 109 버클리에서 맞은 봄 120 제28회 샌프란시스코 국제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제 130 미국의 동부로 가다 141 버클리에 피어난 모국어의 꽃 154 존 스타인벡의 문학 현장을 찾아서 164 알래스카와 로키산맥으로 가다 175 UC 버클리를 떠나며 186 두 개의 여름 사이 196 3부 미주문학의 현장 버클리문학 205 버클리를 다시 찾아서 217 『버클리문학』 창간 기념식 229 버클리문학아카데미 - 두 번째 연구년 240 미주기독문인협회 특강 252 버클리대에서 열린 『버클리문학』 3호 출간 기념식 261 제13회 LA 민족시인 문학의 밤에서 267 시와정신국제화 시카고 문학 심포지엄 277 버클리문학 10년을 돌아보며 292 제1회·제2회 시와정신해외문학상 시상식 315 버클리문학 14년과 함께 330 시와정신 글로벌센터 337 김완하의 버클리통신 주요 연보 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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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은 진실로 돌아오기 위한 길이다
UC 버클리에 와서 나는 캘리포니아의 버클리에서 충돌하는 두 세계의 간극 사이에서 가늘고 섬세하게 떨고 있다. 한국 시인으로서의 심성과 감성과 언어를 가지고 나는 1년 동안 미국이라는 사회적 시스템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문득 한국인으로서 낯선 이역 세계의 풍경 앞에 노출될 때 색다른 이미지가 일깨우는 시상詩想을 향해서 모국어가 달려오고 있다. 연구년 1년을 UC 버클리에서 보내며, 나는 낯선 세계 속으로 과감히 걸어 들어가는 경험 속에 나를 부려두려 한다. 떠남만이 진정한 길일 때가 있다. 떠남으로써 비로소 자기에게 돌아가 깊이 닿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 그러므로 떠남은 진실로 돌아오기 위한 길이다. 어떤 면에서 떠남은 시간과 공간의 초월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간은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의 망각에 의지해서 과거와 현재를 구분 짓는다. 그러나 공간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만으로 시간의 변화 없이도 이전과 이후를 확연히 구분 짓게 한다. 그러기에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에게 한국과 한국에서의 일들은 아주 머나먼 과거처럼 여겨지고 그리워지기도 한다. 1년간 가족들과 함께 묵게 될 월넛 크릭의 파크레이크에 도착하자 한국에서 계약해 놓은 아파트 한 채가 텅 빈 채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이제 이 아파트에 하나하나 물건을 장만하고 채워나가며 새로운 생을 펼쳐야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 가족들이 생활하기 위한 기본 필수품들이 너무 절실히 다가온다. 때로는 풍요가 창조를 낳는 게 아니라, 궁핍이야말로 창조의 어머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어떤 면에서 풍요는 부패를 낳을지도 모른다. 먼 거리의 비행과 시차적응의 어려움, 첫 밤의 낯섦으로 잠을 설치는 것은 통과의례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다음 날 아침 주변을 산책하니 온통 붉은 꽃과 흰 꽃들이 피어 있다. 우리가 세를 든 아파트는 나무들과 작은 도랑이 감싸 안고 있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다. 이렇게 생의 주변이 너무 아름다우면 그 주변을 묘사하는 데만 우리 생을 다 바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고행의 철학이 나오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아름다움이나 그 배경은 단지 외양이 아닌,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사회와 역사적인 맥락이나 관계 위에서만 가치 있는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을 넘어서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습관이다. 모처럼 만에 가족들이 오붓하게 둘러앉은 식탁, 거기에 앉는 위치는 이곳에 와서도 바뀌지 않았다. 바로 각자의 그 자리에 앉아 입맛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우리의 습관이 곧 문화일 것이다.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가족은 하나의 식구다. 하나의 지붕을 쓰고 하나의 울타리를 두를지라도 함께하는 이 아침의 거룩한 공양이 없다면 절실하게 생을 나누는 식구는 아닐 터이다. 연구년을 맞아 온 가족이 이곳으로 올 때의 준비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것이 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나중에야 결정이 되었다. 그 이유는 누군가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야만 내가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집은 바로 누군가 머물다 떠난 곳이다. 그러기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누군가 머물 수 있는 곳이고 머물고 싶어하는 공간이다. 바로 그곳에 내가 머물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통의 문제 멀고 먼 비행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막 도착해서 휴대전화를 로밍하자,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것은 스팸과 문자 메시지였다. 벌떼처럼 끈질기게 이곳까지 쫓아와 액정화면에 얼굴을 들이미는 문자들, 그것은 바로 낯익은 모국어들이었다. 그것들은 질긴 생명력으로 나를 휘감으며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귀가 중요하다. 귀가 열려야 입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에 와서 느낀다. 한국에서도 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것은 주변의 잡다한 말이나 다양한 말들 가운데 그 뜻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단 내 귀는 아직 영어를 능숙하게 알아듣지 못하니까 나의 입도 닫혀 있는 것이다. 영어에 아직은 내가 유아적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당분간 나의 귀도 유아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 와서 나에게 귀는 절대적인 운명이다. 잘 새겨서 듣는 귀, 말귀를 잘 알아듣는 귀가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CKS(한국학연구소)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에 옆방의 CCS(중국학연구소), CJS(일본학연구소)에서 방문학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도 아직은 내가 분명히 그 뜻을 새겨듣지 못하니까 전혀 소음으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대화에 흐르는 리듬감이나 두 사람 대화의 호응이 신선하게 들리기도 하였다. 아울러 영어와 중국어와 일본어들이 섞이면서 묘한 느낌도 일깨워 주었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랑그와 파롤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의 언어인 랑그와 그것을 표현하는 파롤의 관계에서, 결국은 파롤이 랑그를 이끄는 게 아닌가 한다. 심지어 랑그를 끌어내는 게 파롤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행동과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은 느낌으로만 머물 것이다. 식료품을 사기 위해 가족과 근처의 세이프웨이에 걸어갔다 오면서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이어지는 주택가를 보았다. 집 앞까지 난 반듯한 길과 거기까지 닿는 승용차가 이곳의 교통수단이다. 차가 없다면 발도 묶이고 만다. 길옆의 나무를 따라 올라가고 있는 나팔꽃을 보았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나무를 감고 오르는 강렬한 힘으로 꽃을 피워 보여주었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자취를 하며 시를 쓰던 창가에 피었던 바로 그 꽃이었다. 그때처럼 나는 이곳에서도 더욱 더 절실한 모국어의 그리움으로 시를 써야 한다. 한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문제가 핵심이다. 생각의 소통이 언어에 의한다면, 사람과의 소통은 교통에 의한다. 이동 거리가 크고 넓은 미국에서는 교통수단이 더 중요하다. 이곳의 다운타운을 걷다 보면 차는 차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흐른다. 그 가운데 모든 흐름의 우선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전체를 장악하고 주도해 간다. 미국의 교통체계는 사람이 먼저이고 상대 차량에 대한 양보와 배려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왜 그동안 한국에서 길을 건너려 차에 쫓기고 허둥대며 살아왔던가. 러시아워 시간에 줄지어 선 차량 사이로 차를 들이밀기 위해서 악다구니를 해왔던가 하는 아쉬움이 컸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다양한 교통수단이 눈에 띄었다.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공존하고 다양한 방식이 결합되어 있다. 시내버스 앞에는 승객의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선반을 달고 다닌다. 두 대나 세 대의 버스가 이어진 기다란 버스도 있다. 바트(Bart) 안에는 자전거를 가지고 타는 승객도 자주 볼 수 있다. 고속도로인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면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자주 만났다. 하이웨이라는 명칭의 고속도로는 규모가 크고 프리웨이는 그보다 작지만 편도 4차선에 평균 시속 110~120km를 달리기도 하였다. 교통의 속도와 흐름이 매우 빨랐다. 달리는 차들도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독일, 스위스제 등 다양했다. 가끔 한국 차도 있어서 그야말로 세계 각국의 자동차들이 경쟁하는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또한 모양도 폭스바겐의 작은 방게처럼 생긴 차부터 아주 오래된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차나 세단, 벤, 지프 등으로 가지각색이었다. 그러기에 다양한 방식과 형식들이 섞여 하나의 조화를 이룬 게 바로 미국의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자유와 자율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것들 사이의 작은 질서가 견고하게 지켜지며 전체를 밀고 나간다는 생각이다. 기초 질서랄까, 상식이나 원칙 등이 대단히 엄격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정신이 존중되는 사회가 이곳이다. 반면에 한국은 큰 틀의 질서가 작은 사회를 이끌고 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큰 힘에 의해서 부분은 무시되고 작은 것들이 소외되는 느낌이다. 한국 사회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존중되며 그것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게 아니라, 힘과 권력 등 큰 것에 의해 작은 것이 도외시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다가왔다. 바트 타기 UC 버클리에 가기 위해서는 플레젠트힐에서 바트를 타고 다운타운 버클리에서 내려야 했다. 그곳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30분이다. 플레젠트힐에서 다섯 번째인 맥아더역에서 내려 리치몬드행으로 갈아탄다. 그리고 두 번째 역이 다운타운 버클리이다. 출근 시간의 인파에 휩싸여서 바트역을 빠져나오면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하루의 일상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지상으로 올라와 오른쪽으로 돌아 작은 길을 두 개 건너고, 길가를 따라서 동쪽으로 200여 미터를 올라가면 바로 UC 버클리 서쪽 문이 보인다. 그곳에는 양편으로 울창한 침엽수들이 서 있다. 작은 사거리를 건너서 남쪽으로 길가를 따라 150여 미터 정도 내려가면 길가에 있는 6층 건물의 5층이 CKS 사무실이다. 그 앞을 달리는 길이 힐튼 거리이고, 그 길과 왼쪽에서 내려와 코너에서 만나는 길이 뱅크르푸트 거리이다. 삼나무 숲으로 싸인 UC 버클리 건물들은 14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길을 따라 많은 학생들이 분주히 오고 간다. 강렬한 땡볕은 잔디밭에 가득히 깔려 있었다. 뜨거운 여름날에 개학하고 1학기를 시작하니 대학 캠퍼스가 분주하며 숲이 울창하고 잔디가 새파래도 새 학기의 활력을 느끼기엔 부족하다. 캠퍼스 군데군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큰 나무들이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학생들은 벤치나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하고 책 읽기에 몰두해 있다. 이따금 눕거나 앉았거나 혼자의 세계에 빠져 있고, 두 사람이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더러는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햇빛을 쪼이며 낮잠을 즐긴다. 바트는 한국의 지하철과 KTX를 결합해 놓은 것과 같다. 빠른 속도로 지하와 지상을 이어서 달린다. 한국의 KTX는 가운데 동반석이 있어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중앙을 향해서 마주 보며 양쪽으로 멀어져 간다. 그러기에 반은 순방향이고 나머지는 역방향이다. 바트 또한 순방향과 역방향이 있다. 그런데 중앙에서 서로 등을 돌린 채 양쪽으로 멀어져 가기에 반대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이런 것 또한 문화의 한 측면인 듯하였다. 한국의 사랑방 문화와 미국의 개인주의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바트는 순간 출발이 빠르고 속도는 급상승한다. 빠른 속도로 소음이 심하다. 더욱이 지하로 들어서면 그 소리는 거의 정미소 안에 있는 느낌이다. 제트기 같은 소음으로 바트 안을 휘저어 놓기도 한다. 지상으로 올라오면 소음이 줄어든다.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열심히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자신의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미국인들은 소음에 대해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듯했다. 미국 냉장고는 가끔 항공모함 소리를 내고, 미국인들은 크기는 작고 엔진소리가 큰 자동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바트를 타고 밖을 내다보면 빠른 속도로 주변의 정경들이 펼쳐졌다 사라진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의 산동네는 달동네라 해서 빈민촌을 의미하지만 미국에서는 전적으로 다르다. 며칠 전에 산 중고차를 몰고 달리다 길을 잃고 들어가 본 산동네는 길이 아주 넓고 집들도 화려한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산동네야말로 아래를 넓게 멀리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부의 상징이라고 했다. 오후 6시경에 돌아오기 위해서 버클리에서 바트를 타면 앉을 자리가 없었다. 바트 안은 인종의 전시장이다. 미국은 그야말로 백인종의 나라인 것이다. 바트가 오클랜드에 정지했다 출발하면서 자리가 났다. 빈자리에 앉자 옆에는 히잡을 쓴 아랍계 여인이 무릎 위의 갈색 가죽가방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창을 통해 들어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는 저녁노을은 장엄하였다. 샌프란시스코만 위로 쏟아지는 햇빛은 강렬하고 아름답다. 이곳의 뜨는 해와 지는 해는 너무 강렬해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저녁노을 속으로 질주하는 바트의 금속성에도 히잡을 쓴 검은 옷의 무슬림 여인은 엄숙했다. 플레젠트힐에 닿을 무렵 그녀가 손을 펴자 양쪽 손가락에 낀 반지가 번쩍하며 빛을 반사한다. 여인의 검은 옷과 양쪽 손가락에서 반짝거리는 반지는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눈빛 속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무슬림 여성은 눈과 손을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가려야 한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서 쓴 히잡과 손가락에 집중되는 주변의 시선을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히잡으로 다 가릴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반짝대는 빛은 전속력으로 치닫는 바트를 차고 나가 문명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뜨거운 하루가 가고 어둠이 왔다. 또 하늘엔 하나 둘 별이 솟기 시작한다. (『문학사상』 2009.10.) ---pp.67-76 버클리에서 맞은 봄 UC 버클리의 한국학 UC 버클리에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올버니(Albany)는 날씨가 따듯하고 평온한 분위기로 넘치고 있었다. 2월 9일 오후 1시의 약속 장소로 차를 달리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사정없이 눈길을 끌어당겼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운전 중에 한눈팔지 말기를 경고하는 조항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아주 밝은 햇살 아래 펼쳐지는 짙푸른 풀빛과 여기저기 흰빛과 분홍빛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경치는 한국의 아주 좋은 봄날을 연상시켰다. 이미 버클리에는 봄이 무르익은 것이다. 나는 올버니의 The Sunny Side Cafe에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UC 버클리의 한국학연구소(CKS) 소장을 지냈던 클레어 유(Clare You, 한국 이름 임정빈) 선생을 만나기 위해 차를 달렸다. CKS(Center for Korean Studies)는 UC 버클리의 동아시아연구소(IEAS)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학연구소이다. 2009년은 UC 버클리에 CKS가 1979년 문을 연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는 많은 행사가 있었다. 그 가운데 나는 9월 16일(수) 오후 7시 30분에 캠퍼스의 휠러홀에서 열린 “한국의 소리-고전과 현대의 대화”라는 축하공연에 참석하였다. 공연에는 한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외국인들의 관심도 컸다. 행사는 가야금 독주, 가야금과 장구의 협연 그리고 짧은 휴식과 판소리로 이어졌는데 참석한 외국인들도 “좋다, 얼씨구” 등의 추임새를 함께 하면서 흥을 돋우었다. 공연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정적인 분위기였으나 차차 역동적으로 맞물리면서 뒷부분으로 가면서는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절정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도 그동안 CKS가 UC 버클리에서 일궈낸 한국학의 파급효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UC 버클리에는 동양어문학과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중국, 일본, 한국, 불교 등 네 분야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중국의 입지가 제일 강한 듯했다. 모든 면에서 중국 영역이 더 크게 다뤄지는 느낌이었다. 동양어문학과에는 중국 전공과 일본 전공은 있는데, 아직 한국 전공은 없고 부전공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거기에 최근의 경제상황으로 한국 전공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곳에 한국학 관련 교수는 고전문학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 1명뿐이었다. 클레어 유 전 소장도 이곳에서 많은 한국어 강의를 했으며 강의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고 전하였다. 학생들의 열기가 대단하고 또한 교수들의 열정이 큰 것이 UC 버클리의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도 했다. 그는 한국 전공이 되기 위해서는 문학, 역사 등의 전공 교수가 3명은 더 필요하다고 하면서 최근의 경제상황으로 분야 간에 경쟁이 심하고, 대학에서도 교수 충원을 공학이나 컴퓨터 분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며 대단히 아쉬워했다. 내가 UC 버클리 한인 학생들을 만나면 그들은 먼저 한국 전공이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역력히 토로하고 있었다. 그것이 UC 버클리에서 한국 학생들의 위상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버클리에는 한국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으로 ‘한국학위원회’가 있어 매주 1회씩 모여 공동 관심사를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한국의 정치 쪽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들이 펼친 활동 중에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국제적 홍보와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의 국장 기간 이곳에 설치한 분향소가 그것을 말해 주었다. 그 외에 한국 학생들의 동아리로는 한인 자녀들을 위해 무료로 과외활동을 하는 모임이 있어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한국의 대산문화재단은 2006년부터 UC 버클리와 공동으로 ‘대산-UC 버클리 한국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의 젊고 유망한 작가나 시인 중에서 해마다 한 명씩 이곳으로 보내서 3개월간 버클리에서 지내게 함으로써, 이곳의 독특한 문화와 개성을 체험하게 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유용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되었다. 최근에 이곳을 다녀간 젊은 작가들로는 시인으로 김기택, 함성호가 있고 소설가로는 김연수, 조경란이 있다. 올해는 소설가 정영문이 온다고 클레어 유 선생이 일러 주었다. CKS가 30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UC 버클리에 한국 전공이 없다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서 국가 위상의 제고라는 차원에서도 대단히 절실한 사안이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선결되어야 할 과제라고 판단되었다. 클레어 유 전 소장은 깊은 인생의 경륜만치나 한국학이나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도 깊어 보였다. 그는 그동안 고은 시인의 시를 번역하는 등 한국의 여러 작가 작품의 해외 소개에도 큰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노력이 버클리의 CKS와 한국학을 지켜오는 데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결과로 클레어 유 전 소장은 한국 문화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북가주의 한국학교 재미 한국학교 북가주 협의회는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의 관할지역으로 대략 48개의 한국학교가 등록되어 있었다. 2월로 들어서며 북가주의 한국학교들이 봄 학기 개학을 시작하였다. 2월 6일(토)에는 산 호세(San Jose) 지역에 있는 한국학교가 개학을 하였고, 2월 13일(토)에는 새크라멘토(Sacramento)에서 한국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이곳에 있는 한국학교들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육성한다는 교육이념 아래, 한인 2세들의 한민족의 기초적 정체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한글 교육을 통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이 충만한 자녀들로 자라도록 한다는 의지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한국어의 교육과 인성교육, 리더십, 발표력을 키우며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2월 13일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한국학교 입학식에 참석하였다. 그곳은 1981년에 초대 유재근(정치인) 이사장이 문을 연 뒤에 2009년부터는 제14대 박익수 이사장과 신점이 교장이 이끌고 있었다. 당일의 입학식에는 8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하였고, 이번 학기에는 전체 110명이 신청을 하였다고 하였다. 학생들은 주로 4세부터 대학교 입학 전까지의 학생들이 오는데 이들은 SAT와 한국어반에 참여하고 있었다. 또한 성인을 위한 회화반과 영어작문반 그리고 서예반이 있어 이 학교는 전체가 11개의 반으로 짜여 운영되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공작반, 태권도반, 미술반, 동요반, 한국무용반, 뜨개질반, 사물놀이반, 전래동화반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기도 하였다.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건물에는 커다란 간판이 붙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교장실이자 교무실 문밖 왼쪽 벽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버클리에 와서 일상에 젖다 보니 이곳이 어느새 미국인지 한국인지 모르다가 나란히 걸려 있는 두 나라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서야 이곳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교장실 벽 위에는 태극기와 교훈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마치 한국의 1970년대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정감 있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박익수 이사장은 그것이 일본식이라 하더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교훈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자”였다. 그리고 교장실의 왼편에는 성조기가 서 있고 오른편에는 교기와 태극기가 서 있었다. 교장실의 분위기가 마치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처럼 숙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학부모나 일반인들이 자연스레 드나들고 있었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서 열린 개학식 겸 입학식에는 이곳에 와 있는 임석진(고려대 박사) 선생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단상의 왼편에 성조기가 오른편에 태극기와 교기가 세워져 있었다. 풍금 소리에 맞추어 애국가를 부르는데 애국가는 사회자 혼자 부르는 격이었다. 알고 보니 학생들이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4~5년은 배워야 겨우 우리말을 이해한다고 이사장은 말했다. 학생들 가운데는 외국인도 앉아 있는데 그들은 혼혈인과 외국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에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기 위해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번 학기는 월남인 2명, 라오스인 2명 그리고 미국인 2명 등이 입학하였다고 했다. 봄 학기는 3주간의 겨울방학을 마치고 시작하는 것이었다. 2월 13일 봄 학기 개강으로부터 6월 12일 종강을 거쳐서 긴 여름방학으로 들어간다. 주로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수업을 하고 있으며 수업료는 강좌당 한 학기에 160불이나 250불을 내는데 그 안에는 간식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박익수 이사장은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며 연 1회 후원금 모금을 위한 골프대회를 열고 한인들의 후원금 등으로 1년에 8만 불 정도가 소요되는 운영비를 충당한다고 하였다. 교사들에게는 시간당 20불 정도의 적은 여비가 지급된다고 했다. 입학식장에 모여선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뛰지 말자”, “인사를 잘 하자”, “열심히 공부하자”를 크게 따라 외치게 하는 사회자. 이렇게라도 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익히고 한국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일깨워,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를 극복해보려는 노력은 실로 눈물겨운 풍경들이었다. 버클리의 창작 강좌 내가 이곳에 와서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이제 미국 내의 한국 문인들이 좀 더 넓은 차원에서 한국문학 활동의 장으로 편입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것은 이곳의 문인들이 너무 한국문학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한국에서 대단히 먼 곳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글로벌 지구촌으로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조차도 이곳이 너무 한국의 문단으로부터 변방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한국에 포화상태로까지 비쳐지는 많은 문예지들의 지면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문인들에게는 철저히 그 문호가 닫혀 있는 것이 단적인 예였다. 최근에는 경희대학교나 비평가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동포문학상 등이 있으나 그것으로는 이 지역 전체의 문학 활성화를 꾀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었다. 또한 활발하던 문학모임도 이곳의 경제상황으로 4~5년 전부터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그것을 서로가 느끼고 있으면서도 색다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점이 실로 안타깝게 여겨졌다. 이곳의 문인들을 만나보면 개인적으로는 다 열의가 있고 문학에 목말라 하면서도 문학의 장에 대한 서로의 활성화에는 좀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로들 간에는 거리가 있기도 하였다. 이는 이민 사회가 갖는 특수성에 의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한인들 간에는 서로가 쉽게 화합할 수 없는 어떤 면들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이곳에도 미주한국문인협회, 국제PEN미국협회, 재미시인협회, 시조협회, 수필가협회 등이 있었다. 또한 독서회 등 소모임도 있고 최근에는 한국학교를 물질적으로도 후원하는 한글사랑회 등의 활동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이곳의 문학적 활동을 모색하거나 새로운 활력을 일깨우기에는 부족한 듯했다. 몇몇 문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러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새로운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난 연말 샌프란시스코 송년 문학모임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글사랑’과 ‘글마을’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수필가 김희봉, 시인 강학희, 유봉희, 정은숙 등이 추진하여 버클리의 창작 강좌를 열게 된 것이었다. 첫 모임은 2010년 1월 25일(월)에 이곳 문인들 14명이 참여하였다. 격주로 이어지는 강좌는 오클랜드에 있는 한국식당 [수라]에서 모여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 2층 회의실에서 실시되었다. UC 버클리에 방문학자로 온 내가 1차 과정 3개월 7회, 2차 과정 3개월 7회로 전체 2차의 과정으로 진행했던 것이다. 2월 8일의 두 번째 강좌에는 무려 18명이 참석하여 뜨거운 관심과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 강의는 시정신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내가 “창작체험에서 얻은 생의 통찰”이라는 강의를 했는데, 모두들 열중하였으며 강의를 마치자 큰 박수로 화답하며 좋아하였다. 둘째 강의는 좀 더 미시적인 부분으로서 “상상력과 시적 형상화”라는 주제로 시 창작 일반에 대한 설명과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상상력을 훈련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습을 하니 모두 성실하게 참여하여 강의가 한결 활기를 띠었다. 2차에 걸친 창작 강좌가 모두 끝나면 함께 조촐한 시화전과 시낭송회도 열고 작은 문집도 만들자는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면 이것을 계기로 이곳의 문학모임이 다소나마 활기를 띠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강좌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의 나이가 50대 이후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이 60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곳의 젊은 세대들의 문학에 대한 무관심과 언어의 장벽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앞으로 이곳의 문학은 젊은 세대의 활동에 대한 지원에 관심을 모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국에는 지금 넘쳐나는 문예지들이 문학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여러 문예지의 지면을 이곳의 문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작품 활동의 기회를 부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여 이곳의 문학이 활성화를 꾀하도록 하고 한국문학을 밖으로 끌어내어 세계 속으로 밀고 가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2010년 봄호 『시와정신』에서는 “미국 서부 시단 특집”을 마련하였다. 밤 9시 30분경에 강의를 마치고 나와 인근의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를 향해 가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 문학공부를 하고 늦게 돌아가면서도 힘들어하지 않는 분들을 떠올려 보았다. 미국 사회로 와서 20년이나 30년 동안 정착하며 자녀들을 키우고 살아오는 동안 잊고 지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일깨우며 기뻐하는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졌다. 어둠을 뚫고 680 프리웨이를 달려오는 길도 나에게는 힘이 들지 않았다. (『문학사상』 2010.3.) ---pp.12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