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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왜, 다시 종교인가?
1부. 탈종교의 고고학·현상학 중세라는 용광로 탈종교의 기원으로서의 근대 20세기 신학, 세속화의 도전과 응전 탈종교 시대, but 탈세속화된 인간 팬데믹 이후의 종교: 탈종교의 묵시록 (1) 포스트휴머니즘과 종교: 탈종교의 묵시록 (2) 그들은 진정 극우적인가?: 탈종교 시대, 오늘의 한국 개신교 읽기 보론 1 21세기 에큐메니컬 운동의 전환: ‘주변부로부터의 선교’와 ‘마음의 에큐메니즘’ 2부. 경계를 넘는 신학적 상상들 발터 벤야민: ‘약한 메시아적 힘’ 에마뉘엘 레비나스: ‘무한의 종말론과 메시아론’ 자크 데리다: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 슬라보예 지젝: ‘유물론적 신학’ 테드 제닝스: ‘기독교 이후의 신학’ 여해 강원용: ‘사이·너머에 계시는 하느님’ 숨밭 김경재: ‘대승적 그리스도교, 대승적 민중신학’ 보론 2 강원용과 안병무의 대화(對話): 안병무의 ‘민중신학’ 대 강원용의 ‘크리스찬아카데미 운동’ 보론 3 민중신학 50년 회고: 세대론으로 바라본 민중신학의 계보학 3부. 오늘의 종교·문화 비평 ‘종교적인 것’에 관한 열 가지 단상(斷想), 혹은 연상(聯想) 전광훈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 개신교 극우주의’ 읽기 물신의 시대, ‘종교적인 것’을 다시 사유하다: 영화 「기생충」 읽기 실패해서 성공한 종교 텍스트: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읽기 유령의 시선, 말하는 주검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읽기 (1) 진실의 윤리학과 증상으로서의 신학: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읽기 (2) 양심이란 무엇인가?: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 양심의 문제 중동의 평화를 위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잔혹사 동성애 혐오에 반(反)하다: ‘소돔과 고모라’ 전복적 읽기 에필로그 안온 무해한 시대, 응원봉 세대에게 띄우는 전태일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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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탈종교의 고고학·현상학”은 근대 이후 전개된 세속 사회의 도래와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등장한 탈세속화의 지형을 따라가면서 종교가 어떤 부침을 겪었는지 말한다. 특히 팬데믹(코로나19)의 출현과 포스트휴머니즘의 등장은 ‘종교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다. 이 두 사건은 앞으로 종교가 나가야 할 바를 숙고하게 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1부의 마지막 글에서는 탈종교 시대에 극우주의라는 혐의를 받는 한국 개신교에 대해, 수년간 추적해 온 개신교인의 인식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 개신교가 진정 극우적인지를 합리적으로 의심한다. 2부 “경계를 넘는 신학적 상상들”에서는 현대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개념들이 어떻게 신학적 상상력과 연루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발터 벤야민, 에마뉘엘 레비나스, 자크 데리다 3인은 메시아론으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3인은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갈라지는 대목도 있다. 바로 그 차이로 인한 상상이 새로운 신학적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신학적 사유에 있어서도 탁월함을 드러내는데, 특별히 그리스도의 괴물성을 논하면서 역사적 그리스도교가 걸어왔던 도착성에 대한 비판과 본래 그리스도교가 지녔던 전복성으로 복귀를 기대한다. 테드 제닝스는 좌파 철학자들의 신학적 논의들에 반응하고 응답했던 21세기 미국 진보 신학의 자존심이다. 필자는 그의 신학 사상을 그의 대표적인 두 저작 『무법적 정의』와 『데리다를 읽는다/바울을 생각한다』를 중심으로 다루면서, 시카고에서 만나고 경험했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잘 보여 주고 있다. 2부의 후반부는 한국 신학의 급진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한국 진보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운동가인 여해 강원용과 심원 안병무이다. ‘중간 집단 운동’과 ‘민중신학’으로 대변되는 양자의 업적과 사상을 복기하는 가운데 실추한 한국 신학의 명예와 자부심을 곧추세우고자 한다. 이어서 대승적 그리스도교를 말하면서 닫힌 종교가 아닌 열린 개신교 운동을 전개했던 신학자 숨밭 김경재의 신학 사상을 다루고 있다. 3부 “오늘의 종교·문화 비평”은 ‘종교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다차원적인 글쓰기를 모은 것이다. “종교적인 것에 관한 열 가지 단상 혹은 연상”은 이 책을 대변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 「기생충」,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드러난 윤리성과 종교성에 대한 이야기가 중간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있다. 전광훈 현상과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단순한 종교적 이상 현상을 넘어 파시즘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땅에서 전개되었던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의 역사와 현실을 소개한 후에 근본적으로 ‘양심’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정신 분석학적인 측면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하는 글도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래된 갈등과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를 복기하면서 ‘종교란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숙고하고, 동성애 혐오의 가장 강력한 텍스트인 구약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전복적 읽기를 시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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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신학적 글쓰기
‘인문-신학’이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일찍이 막스 베버(Max Weber)가 ‘근대를 주술로부터 세계를 해방시킨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했을 때, 주술은 고대나 중세 시절 신앙의 언어를 의미했고, 해방과 자유는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된 근대 인문 정신의 총아였다. 양자 간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몰락한 인문학과 신학을 소환하여 ‘인문-신학’이라는 합성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이고, 그것을 통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저자는 2018년에 출간한 책에서 ‘인문-신학’이 아닌 ‘인문/신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그가 이전에 전개한 ‘인문/신학’은 인문학과 신학을 대립되는 둘의 관계로 상정하였다. 이는 인문학으로 신학을 재단하거나 신학적 도그마 안으로 인문학을 가두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구조다. 물론 겉으로는 서로 대화 소통하면서 이루어 낸 결실이라고 하겠지만 슬래시가 갖는 경계와 단절의 기호는 틈과 사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인문’과 ‘신학’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상호 반영적이고 대화적이어야 함을 드러내기 위한 숙고의 과정을 거쳐 ‘인문/신학’에서 ‘인문-신학’으로의 전이를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인문-신학’에서 인문과 신학 사이에 있는 ‘하이픈(-)’은 인문학과 신학 ‘사이(between)’를 의미한다. ‘사이’는 공백이고, 나머지이고, 잉여다. 부연하면 ‘인문-신학’은 인문학과 신학 사이에서 서성거림, 방황하기, 사이(between) 너머(beyond)로 탈주하기라 말할 수 있다. 그런 ‘인문-신학’은 정합적인 체계와 이론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기보다는 세상 속에 개입해서 현실이 감추고 있는 진리의 틈을 드러내는 것, 그리하여 세계 자체가 전부가 아니고(not-all) 현재가 아님(not-yet)을 선언하는 것이다. 인문-신학의 방법론으로서 유령론 유령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 출판 이후라 할 수 있다. 데리다는 대문자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구천을 떠도는 유령들로부터 은폐된 과거의 진실을 청취하고 미래에 대한 조언을 간구한다는 취지로 유령론을 제안하였다. 저자는 이것을 존재론에서 유령론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요한 사건으로 본다. 데리다는 체제와 권력에 의해 주도되는 상징 질서에 틈을 내기 위해서는 살아 있으나 죽은, 혹은 죽었으나 죽을 수 없는 존재들에 주목하였다. 상징 질서 내로 편입되지 못하고 대문자 역사 밖에서 떠도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상징계로 출몰하는 존재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 유령론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유령론으로서의 ‘인문-신학’은 무엇일까. 본래 인문학과 신학의 언어는 유령의 언어들이었다. 현실에 있지만 현재가 지나온 과거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주목하기에 그렇고, 현실의 쾌락보다는 현실이 누리지 못하는 불쾌를 발견하는 일, 현실의 원칙보다는 상징 질서 밖 실재(the Real)로 시선이 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인문-신학’의 역할이 있다면 상징 질서를 떠도는 유령들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말 못한 사연을 듣고서 현전을 축복하는 일이다. 그 틈으로 진리가 개입하고, 불가능이 가능성으로 변하고, 공적인 것이 다시 귀환할 것이다. ‘인문-신학’은 그곳에서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고, 죽은 신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언하며, ‘법 밖의 정의’가 진실로 정의였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포스트휴먼 사회와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 탈종교 현상 탈종교는 근대 이후 시대를 달리하면서 변형되어 왔던 익숙하고도 오래된 주제였다. 19세기에 등장했던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니체,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은 본격적인 탈종교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고,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만개한 비종교화 논쟁, 세속화 논쟁은 탈종교의 구체적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신 죽음의 신학(사신 신학)’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21세기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 곁으로 다가온 포스트휴먼 논쟁과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세상에 대한 염려는 탈종교 현상이 묵시적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징후적 사건이었다. 인공 지능, 사이보그, 유전자 조작 등으로 상징되는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를 지향한다. 그럴 경우 오래된 종교적 주제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통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이고, 신이란 누구인가를 둘러싼 물음은 이전의 종교적 관습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탈종교적 주제가 된다. 코로나19 현상은 모든 분야에서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구분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되었다. 특별히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보자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비대면 예배의 일상화는 교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탈종교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는 성육신이다. 초월했던 신이 인간 세계로 내재한 사건, 즉 언택트했던 신이 택트한 사건이 성육신의 핵심이었고, 교회는 이러한 교리에 입각해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루어지는 친교, 몸으로 하는 봉사를 강조하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교회의 모든 작용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극한적인 탈종교 현상은 ‘종교적인 것’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게 한다.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과 신학 사이의 대화 근래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과 신학 사이의 대화도 중요한 탈종교 현상이다. 20세기에 있었던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자 좌파 사상가들은 신학적 상상력을 현실의 변혁을 위한 도구로 끌어왔다. 사상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었던 유물론자들에 의해, 즉 신학 외부의 요인에 의해 신학은 교회를 위하고 봉사하는 범위를 넘어서 유물론자들의 신학, 유물론자들을 위한 신학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도 기존 신학의 테두리와 한계를 넘어 신학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세속적 주제와 대결하고 대화한다는 측면에서 탈종교의 중요한 증상이라 할 수 있다. 탈종교 시대에 종교적인 것의 귀환 탈종교에서 ‘탈(Post-)’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탈종교의 메시지는 달라진다. 종교 이후(after)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종교 밖(Ex-), 혹은 종교 아님의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종교 이후이든 종교 밖의 논의든 탈종교는 기존 종교에 대한 부정, 잉여, 균열을 의미한다는 취지에서 ‘인문-신학’과 어울리는 짝패일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원고들은 지금 활발히 이야기되고 있는 탈종교의 징후적 사건들을 검토하면서 탈종교 시대에 걸맞게 신학적 언어와 논의들을 각색하고, 탈종교 시대를 맞아 변화하는 윤리적 테제들을 재음미한다. 이런 논의들을 총칭하여 저자는 ‘종교적인 것의 귀환’이라 이름 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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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이슈와 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상철 원장의 글을 통해 우리는 대화하는 신학, 신학적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 이 책을 통해 이 원장이 추구하는 것은 게토화 되어 버린 신학이 아닌 대화하는 신학이다. 타 학문과 이웃 종교에게 열려 있는 신학, 시대의 사건과 고민 한가운데서 대화하는 신학!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신학의 본질이다. 이상철의 작업은 잊고 지냈던 신학의 포용성과 개방성, 그리고 신학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값지다. - 강대인 (배곳 바람과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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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에서 붙들고 씨름하는 ‘인문-신학’은 오늘도 그 효용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신학 운동이자 인문학적 사유의 체계이다. 자본으로 재편된 세계 질서 속에서, 극우주의가 득세하는 현실에서 대안적 삶의 질서와 새로운 종교적 상상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상철의 메시지는 큰 울림을 준다. - 강성영 (한신대 총장, 한국기독교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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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로서 저자의 미덕은 이런 복잡한 현실을 해석하는 지식들에 대하여 간명하면서도 명쾌하게 소개해 준다는 데 있다. 하나 더, 그는 정보의 전달만이 아니라, 그 정보들과 함께 생각의 놀이 속으로 초대하는 글을 쓰는 작가다. 원고를 읽으면서 나는 벌써 그에게 홀려 버렸다. 생각하게 하는 마력에…. - 김진호 (작가,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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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은 기존 종교의 제도와 권위가 해체되는 ‘탈종교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도처에서 확산되고 있는 ‘종교적인 것의 귀환’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정치와 종교의 결탁, 극단주의, 무지와 광기의 확산을 목도하며 그는 묻는다. “그렇다면 ‘종교적인 것의 귀환’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어떤 함의를 지니는가?” 그의 질문은 “신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신을 말하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이다. -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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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이 고대 그리스 철학, 중세와 현대의 그리스도교 신학, 동시대의 전복적 철학과 신학과 윤리학과 문학의 사유를 넘나들며 생성하는 인문-신학은, 종교의 과잉에 질려 버린 이들, 종교의 부재에 지쳐 버린 이들, 종교에 대한 환멸과 환멸 사이에서 비틀거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길을 찾아 걸어가는 이들에게, 지성과 영성과 윤리의 지도(map)가 되어 줄 것이다. - 정경일 (심도학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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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박사는 ‘종교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고 외치는 아스팔트 극우 개신교인들에게, ‘종교는 이미 죽은 제도 종교의 유령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종교적인 것의 귀환’을 외친다. ‘종교적인 것의 귀환’이 제도 종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철저한 자국 중심주의로 분열되고 강퍅해지는 세계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채수일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 前 한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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