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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클래식’이란 경계를 가로질러 - 대중음악 신드롬
01 실험대에 오른 음악 02 만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Ⅱ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 비틀스의 결성 01 시대가 허락한 반란 02 무대라는 신성한 밥벌이 Ⅲ 세계를 장악한 보이 밴드 - 아이돌, 혹은 아이콘 01 ‘브리티시 인베이전’ 02 영원한 청년의 노래 Ⅳ 감각과 이성 너머 - 예술성의 정점 01 질서를 허물면 비로소 보이는 02 ‘안티’ 비틀스 03 사랑이 전부인 낙원으로 Ⅴ 고전이 된 신화 - 비틀스의 마지막, 그리고 01 헤어지는 중입니다. 02 현재 진행형 ‘라스트 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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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대중이라는 개념부터 음악의 심미성 그리고 영속성에 관한 문제까지 모든 게 흔들리는 오늘날엔 근본적으로 음악의 속성을 자로 재듯 나누는 게 의미가 없죠. 그럼 반대로 대중음악은 어떤가요? 몇몇 대중음악은 단순히 유행에 따라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가벼운 음악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끊임없이 소환되곤 하죠. 고전주의 시대의 클래
식 음악처럼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비틀스입니다. --- p.50, 「실험대에 오른 음악」 중에서 그래서 로큰롤을 얘기할 때 “혁명”이란 표현을 자주 써요. 하지만 이런 표현은 마치 로큰롤이 갑자기 출현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비판받기도 하죠. 엄연히 리듬앤드블루스가 있음에도 그 흔적을 지우고 새 음악이 등장한 것처럼요. 이런 문제의식은 곧 음악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장르의 이름을 붙이고 산업을 굴리는 주체가 어디까지나 백인이었다는 점으로 이어져요. 즉 흑인들의 정서와 언어를 존중해서 장르를 받아들였다기보다, 단지 유희의 대상으로 여기고 상업적 이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종적 맥락을 희석했다고 볼 수 있죠. --- p.123, 「시대가 허락한 반란」 중에서 아이들의 눈에는 기성세대가 전쟁을 비롯해 대학살, 인종차별, 경제 대공황 등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죠? 그러니 이런 비극과 작별하고 자신만의 새 시대를 바랄 수밖에요. 한마디로 로큰롤은 여러 음악적 융합과 확장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몸부림이자 환호성이었던 겁니다. 제자리에 머무를 수 없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은 강박적인 열정의 가장 뜨거운 표출, 이게 바로 로큰롤이에요. --- p.137, 「시대가 허락한 반란」 중에서 왁자지껄한 클럽에는 ‘진짜 음악’이 아니라 흥을 돋울 만한 배경음이 필요한 사람들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고성이 오가고 모두가 산만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지만 비틀스는 이런 최악의 공간에서 엄청난 소음을 뚫고 공연을 이어 갔어요. 시끄럽고 거친 환경이다 보니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격렬한 연주와 열정적인 무대매너를 선보였죠. … 비틀스는 척박한 환경에서 훈련된 덕분에 멤버 전원이 연주와 보컬을 모두 수준급으로 소화할 수 있게 되었죠. --- p.152, 「무대라는 신성한 밥벌이」 중에서 초창기 언론에선 비틀스만 나타나면 소리를 질러대는 팬들의 행동을 성적 흥분 상태의 히스테리라며 경악했어요. 그때만 해도 공공장소에서 어린 여성이 고함치거나 흐느끼는 건 여자답지 못한 행동이라 여겼거든요. 본인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열광하는 건 더더욱이 금기시되었죠. 하지만 소녀들은 스스로 비틀마니아가 되는 것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라 여겼어요. 이렇게 ‘어린’ ‘여성’ 즉 세대적, 젠더적 층위에서 가장 취약했던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면서 하나의 팬덤으로 가시화된 흐름은 분명 새로운 변화였죠. --- p.187, 「‘브리티시 인베이전’」 중에서 비틀스와 밥 딜런의 만남은 이들이 상대의 음악적 특징을 받아들인 것을 넘어 ‘영국의 노동계급 청년’과 ‘미국 중간계급 대학생’으로서 다른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던 그들의 팬덤이 만나는 순간이었죠. 반항적인 10대 문화와 지적인 저항 세력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사건이었고요. --- p.227, 「영원한 청년의 노래」 중에서 히피 문화에 심취한 청년들이 이상적 세계로 도달하는 데에 LSD를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다면, 예술가들 역시 이런 초월적 경험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어요. 특히 LSD 사용자들은 흔히 “소리를 보았다”거나 “색깔을 들을 수 있다”는 식의 경험을 얘기하는데, 이러한 감각의 뒤틀림은 현실 세계에서 보고 듣지 못하는 것들을 얻게 되는 셈이니 창작의 한계를 뛰어넘는 행위로 통했죠. 결정적으로 이 비정상적인 상태가 고스란히 예술에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사이키델릭 장르가 탄생했어요. --- p.253, 「질서를 허물면 비로소 보이는」 중에서 비틀스가 미운털이 박히게 된 데엔 몇 가지 계기가 있는데요. 먼저 비틀스가 인종차별에 관해 명확하게 반대 의사를 밝힌 게 화근이었죠. 1964년 9월, 한창 미국 투어를 돌고 있던 비틀스는 황당한 소식을 듣습니다.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그들의 콘서트장이 흑인과 백인을 나눈 좌석, 이른바 인종 분리석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이 부당함에 화가 난 비틀스는 관객석을 통합해야 무대에 서겠다고 버텨요. 그리고 이후 공연 계약서에는 그 어떤 인종차별도 허용하지 않음을 명기했고 이미 예약해놓은 호텔의 백인전용실도 취소해버리죠. --- p.285, 「‘안티’ 비틀스」 중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레논은 이 곡이 자신을 향한 노래처럼 들렸다고 해요. ‘Hey Jude’라는 가사가 자기 이름인 ‘John’이 아니냐면서 “넌 가서 그녀를 붙잡게 되어 있어”라는 가사가 요코와 자신을 의미한다고 했죠. 그러니까 이 가사를 언제나 친구로서, 그리고 동료로서 옆을 지킨 매카트니가 “자, 이제 나를 떠나”라는 것으로 받아들인 거죠. 비틀스 곡은 워낙 가사에서 속뜻을 발견하고자 열심히 추측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레논조차 나름대로 매카트니의 속마음을 짐작해봤다는 게 재밌죠. --- p.349, 「헤어지는 중입니다」 중에서 비틀스는 그저 팬들이 열광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시대가 닮고 싶어하는 존재였어요. 우리가 대중음악가를 아티스트라고 부르게 된 것도 비틀스 덕이 크죠. 무엇보다 히트를 거듭할수록 자기 스타일에 안주하기는커녕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는 게 바로 예술가적 정체성을 가졌다는 의미겠죠. 과거 매카트니는 비틀스를 두고 “우린 세상의 리더가 아닌 대변자일 뿐이다”라고 표현했는데요. 그만큼 비틀스는 음악이라는 언어로 세상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 p.385, 「현재 진행형 ‘라스트 댄스'」 중에서 이런 과정에서 음악은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고 음악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가를 시작으로 비틀스까지 강의하면서 정말 다양한 음악들을 만났는데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음악들도 인간이 끝없이 영위해온 것이라는 측면에서 그 줄기를 같이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 p.387, 「현재 진행형 ‘라스트 댄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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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 질은 높이고 배움의 문턱은 낮춘 『난처한 클래식 수업』의 마지막 강의
★ 대중의 노래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가 ─ 비틀스로 ‘현대의 클래식’을 논하다 ★ 폐허를 딛고 울린 해방의 선율 ─ 현대음악에서 로큰롤까지, 한 권으로 읽는 20세기 음악사 살아남은 음악의 가치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는 마지막 강의의 주인공으로 비틀스를 택했다. 클래식 음악학자가 클래식 교양서의 대미를 장식하며 ‘난데없이’ 대중가수를 탐구한 이유는 분명하다. 비틀스의 음악은 20세기가 남긴 가장 찬란하고 영향력 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비틀스는 단순히 성공한 아이돌 스타가 아니었다. 그들의 등장은 대중음악을 둘러싼 편견에 맞서는, 하나의 선언이자 혁명이었다. 당시 예술의 세계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철저히 구분했다. 클래식은 고급 예술로서 전통의 영역에 머물렀고, 대중음악은 사랑받을수록 가벼운 오락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비틀스는 이 경계를 과감히 넘어섰다. 그들은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 속에 실험적인 사운드와 철학적 가사를 녹여내며 음악의 지평을 끊임없이 확장했다. 예술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최초의 밴드로서 비틀스는 ‘대중음악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덕분에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음악이 잊히고 사라져도, 비틀스의 노래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번 10권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시간을 초월해 살아남은 음악이 클래식이 될 수는 없을까. 음악의 정의와 역할이 복잡하게 얽히는 오늘, 이러한 질문은 결국 클래식이라는 개념을 다시 짚어보는 시도가 된다. 그리고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비틀스의 음악은 결국 ‘살아남은 예술’이자, 현대의 클래식이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이 될 것이다. 비틀스를 길러낸 20세기라는 무대 비틀스는 어떻게 그 ‘비틀스’가 되었는가. 모두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작 세세히 알지 못하는 비틀스. 저자는 평범한 리버풀 청년들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문화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풀어낸다. 그들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대중의 욕망을 정확히 파악하는 감각, 새로운 녹음 기술과 악기를 과감히 도입한 실험정신, 그리고 급변하던 20세기 문화 환경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이 책은 비틀스가 걸어온 길을 살피면서 동시에 ‘그때 그 시절’이 어떻게 비틀스를 길러냈는지 조명한다. 20세기 음악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비틀스라는 현상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무엇을 이어받았는가를 탐색한다. 쇤베르크와 존 케이지로 이어지는 현대음악이 전통을 위반하고 새로운 음의 질서를 모색하던 시기, 흑인 노동요에서 비롯된 블루스가 리듬앤드블루스로 진화하며 로큰롤의 뿌리를 형성하던 시기?저자는 20세기 음악의 두 축이 된 그 흐름을 찬찬히 짚어본다. 그리고 이 두 갈래가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틀스와 다시 만난다. 대중의 감수성과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새로운 첫걸음, 그 역사적인 현장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청년이 주인공인 시대를 읽다 1960년대는 전쟁의 불안과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시대였다. 부모 세대의 과오를 보고 자란 청년들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기 시작했다. 기성의 질서에 맞서 자유를 외쳤고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며 거리로 나섰다. 그들의 이상과 열망을 가장 선명하게 담아낸 이름이 비틀스였다. 비틀스의 음악은 시대를 움직인 청년문화의 중심이자 목소리 그 자체였다. 이 책은 비틀스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읽는 작업 역시 놓치지 않는다. 아이돌이자 아이콘, 그 상징 뒤에 자리한 사회적 배경과 감정의 흐름을 통해 음악이 어떻게 대중의 감수성을 바꾸었고, 청년이 어떻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는지를 따라간다. 그렇게 비틀스를 다시 듣는 일은 곧 한 시대를 새롭게 이해하는 일이 된다. 『난처한 클래식 수업 10권』은 그 모든 리듬을 한 권의 강의에 담아냈다. 이 마지막 강의는 결국 하나의 선언을 완성하고 있다. 살아남은 예술은 ‘클래식’의 가능성을 품고 있고, 시대를 흔드는 목소리만이 살아남는다. 비틀스는 그 사실을 가장 거침없이 증명한 이름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비틀스를 말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의 음악은 이미 지난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를 움직이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질문을 가장 또렷하게 들려주는, 시리즈의 마지막 페이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