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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서문
쟁점 / 현대의 규범적 역설 현대의 규범적 역설: 하나의 연구 관점 - 악셀 호네트, 페르디난트 주터뤼티 오늘날 부부관계의 역설들 - 카이-올라프 마이발트 탈경계화된 노동의 역설들 - 슈테판 포스빙켈 종족 평등의 역설적 결과 - 페르디난트 주터뤼티 논단 삶의 형식으로서 유럽 도시 - 칼 슐뢰겔 음악이 왜 사회학적으로 문제가 되는가?- 윌리엄 로이, 티모시 다우드 한국판 특집 / 무의식의 정치학 전이의 정치학 - 맹정현 라캉과 버틀러, 위반과 전복의 담론 - 박선영 라캉 정신분석과 정치적 주체성: ‘환상’과 ‘향락’ - 이만우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이웃사랑 계명에 대한 고찰 - 홍준기 베스텐트 독일판 차례 저역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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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단지 이상적 규범과 불의한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넘어서 이상적 규범의 실현과정 자체에서 발생하는 역설적 효과들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는 정의와 부정의 사이의 단순 대립에 의거한 사회비판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라는 규범적 목표의 실현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발생하는 불의한 결과들에 대해 보다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사회비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원식, 「한국판 서문」, 8쪽)
오늘날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유지되었던 규범적 이념들이 여전히 수행적 현실성을 갖고 있지만, 그 근저에서는 해방적 의미를 상실하거나 그 의미가 변질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념들은 많은 곳에서 새로운 단계의 자본주의 확장을 단순히 정당화하는 개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변질된, 그리고 파악해내기 어려운 규범적 발전 형태를 이번 호의 주제로 설정했으며, 이를 파라독스(Paradox)라는 틀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 파라독스란 지난 수십 년간 성공적으로 제도화된 원칙들이 사회적 상황 때문에 탈연대적이고 무기력한 통합의 규범적 수단이 됨으로써 오늘날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독특한 사실을 말한다. (악셀 호네트, 「현대의 규범적 역설」, 16쪽) 인사권자들은 고유성을 가진 구직자를 그저 채용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리에 적합한 정도만큼의 고유성을 가진 구직자를 원한다. 여기서 구직자에게 하나의 역설적 상황, 딜레마적 행위 상황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기대하는 만큼의 고유성을 가져라.’ 여기서 우리는 시장지향과 고유성이 어떻게 서로 합치하는지를 볼 수 있다. 즉 개인들은 시장의 수요에 맞게 스스로 그렇게 되고자 열망한다. 구직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기능적 고유성”이다. (슈테판 포스빙켈, 「탈경계화된 노동의 역설들」, 68쪽) 다음과 같은 역설이 존재한다. 즉 평등 원리의 실현이 그 혜택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평가절하와 배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이미 다음과 같은 클라우스 오페의 질문에도 담겨 있다. 과연 원거주민들은 다른 종족 집단들이 법적이고 정치적인 평등을 누리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 요구되는 추상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회의적 견해는 현대화 과정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고 신분 하락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평등은 특별히 “과도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관찰에 기초한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자연주의적인 “차이의 확보”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이러한 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주자들이 경제생활에 참여하고 정치적 권리를 가지게 되고 나아가 그것을 행사하게 되면 새로운 배제의 시도가 나타나게 되며, 이는 종족 간의 평등한 교류를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다. (페르디난트 주터뤼티, 「종족 평등의 역설적 결과」, 87쪽) 무의식의 정치학은 단순히 어떻게 한 인간의 무의식이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 집단형성이나 문명과 죄의식의 내밀한 관계를 탐구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부터 시작해, 심리내적인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관계들까지 포괄해서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네 가지 담화”라는 관점에서 이론화한 라캉주의로 완성되는 “집단심리학”으로서의 정신분석, 다시 말해 “정치적인 것의 무의식”에 대한 탐구로서의 정신분석의 역사가 있다. 요컨대 무의식의 정치학은 무의식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테제를 넘어, 근본적으로 모든 정치적인 것은 또한 무의식적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가족, 사회, 국가를 관통하는 모든 관계들의 근원에는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또한 모든 정치적인 관계의 핵심은 무의식적이라고 공식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맹정현, 「무의식의 정치학」, 186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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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대 사회는 새로운 야만에 빠지고 있는가?
오늘의 사회 문제에 대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진단과 대안 2012년 첫 호가 출간되면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프랑크푸르트학파 공식 저널 『베스텐트』 한국판 3호가 출간되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비판적 철학자, 사회학자들의 모임인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베스텐트’(WestEnd, ‘서구적 근대의 종언’을 뜻함)라는 잡지명이 말해주듯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병리현상들에 메스를 들이대어 사회적 문제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을 펼쳐오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베스텐트 2014』는 옳다고 여겨진 규범적 가치(민주주의, 성평등, 인종평등 등)의 추구가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오는 ‘규범적 역설’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왜 그 어느 때보다 민주화가 진행된 현대 사회에서 극우 집단이나 테러 집단이 다시 등장하고 있을까? 표현의 자유라는 이념이 타인을 혐오할 자유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평등의 제도화가 어째서 역설적으로 남녀 간 불평등을 조장하게 되는 것일까? 이처럼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규범적 가치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오히려 불평등, 차별, 혐오를 유발하는 역설적 현상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는 중이다. 오늘날 나타나는 이러한 역설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며 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책 『베스텐트 2014』는 ‘새로운 야만’에 대한 사례 연구를 통해 그 구체적 원인을 제시하는 동시에 ‘역설’ 현상을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화의 역설, 어째서 자유와 평등을 위한 진보가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유발하는가? 진보와 퇴보의 역설적인 뒤얽힘 오늘날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역설적 상황은 결코 간단치가 않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산업화의 진보는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고 있으며, 자유와 평등을 위한 민주화의 추구는 양극화된 경제적 현실로 귀결되고 있다. 이는 비단 거시적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종이나 남녀 문제, 부부관계와 같은 미시적 차원에서 추구되는 평등의 이념 역시 오히려 새로운 차별과 혐오를 유발하고 있다. ‘일베’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보다 더욱 민주화된 사회에서 극심한 혐오표현이나 인종차별 문제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진보가 도리어 퇴보를 유발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가 혼란스러워지는 이런 역설적 현상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베스텐트 2014』에서는 이처럼 자유와 정의라는 규범적 목표의 실현과정 자체에서 발생하는 불의한 결과들과 역설적 효과들에 주목한다. 첫 번째 논문 「현대의 규범적 역설」에서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와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주터뤼티는 ‘규범적 역설’(파라독스)이라는 새로운 연구 관점 및 이론적 틀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단순히 정의와 불의를 대비시키거나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기존의 사고방식 또는 연구방법으로는 자유와 평등의 추구가 오히려 자유와 평등의 자기파괴로 귀결되는 역설적 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늘날 노동의 유연화는 한편으로 노동자들을 과거 관료화된 조직과 업무 형태에서 해방시키는 진보적 역할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인의 자기 책임성이라는 미명 하에 불안정성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현상은 자유라는 규범적 가치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설로 이해할 때만 그 실체가 파악될 수 있다. 이를 진보나 퇴보라는 한 가지 측면으로만 이해한다면 진보와 퇴보가 뒤얽혀 있는 사태의 복잡성을 단순화시키고, 그에 대해 잘못된 해법을 적용하게 됨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복합적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저자들은 역설의 형태를 네 가지로 구분한다. 규범적 역설은 한 집단의 진보가 다른 집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 규범적 가치가 그 자체로 왜곡되는 것, 규범적 가치가 맥락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낳는 것, 그리고 규범적 가치가 이상화됨에 따라 오히려 현실의 불평등을 인식하는 데 장애가 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를 강화하게 되는 것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저자들은 이러한 역설을 민감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진보라는 미명 하에 사회 문제를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역설에 대한 이러한 이론화를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의 부부관계, 노동, 인종관계 문제에서 발생하는 규범적 역설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전개된다. 사회학자 카이-올라프 마이발트는 「오늘날 부부관계의 역설들」에서 성평등 규범이 일반화되었음에도 부부관계에서 여전히 가사노동 분담이 불평등한 현실에 주목한다. 실상 오늘날 부부관계는 겉으로는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전통적인 남녀 구분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잠재적 구조로 인해 평등한 부부관계에서조차 여자들이 가사노동을 더 많이 전담하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불평등은 형식적인 남녀평등이라는 사실로 인해 ‘보이지 않게’ 됨으로써 실질적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역설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슈테판 포스빙켈은 「탈경계화된 노동의 역설들」에서 노동자들이 과거보다 더 자유로워질수록 오히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소진시키게 되는 자기소진 현상이나 우울증 등이 더 많이 보고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탈경계화되고 유연화된 노동이 한편으로 자유를 가져왔지만 이는 노동자들을 개인화시키고 고립된 경쟁적 주체로 만듦으로써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질병을 은폐하거나 취업을 위해 기능적인 인격성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역설적인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주터뤼티는 「종족 평등의 역설적 결과」에서 인종 간 평등 원칙을 파괴하는 ‘인종주의’의 귀환에 주목한다. 겉으로는 인종 간, 종족 간 평등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다른 인종 집단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반응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친족관계에 대한 상징적 믿음이 평등 원칙과 충돌함으로써 형식적 평등이 도리어 다른 인종에 대한 평가절하와 배제를 낳게 되는 메커니즘을 현장 연구를 통해 밝혀낸다. 결국 상대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을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평등 원칙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감정적인 차별과 혐오를 유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무의식의 정치학, “모든 정치적인 것은 무의식적이다!” 사회적 환상을 넘어서 이웃사랑으로 이러한 역설의 문제는 ‘무의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식적인 평등 원칙이나 자유의 추구가 도리어 불평등한 현실로 귀결되는 것은 잠재적이고 무의식적인 구조를 무시한 채 단순히 규범적 가치만을 강조한 데 있기 때문이다. 의식 이면에 있는 상징적 구조의 힘을 무시하지 않고, 무의식의 정치적 작용 방식을 문제시하려는 것이 바로 ‘무의식의 정치학’, 곧 정신분석학적 비판이다. 이번 『베스텐트 2014』 ‘한국판 특집’에서는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제시한 ‘규범적 역설’의 문제의식에 상응하는 ‘무의식의 정치학’을 주제로 삼고 있다. 가족, 사회, 국가를 관통하는 모든 관계의 근원에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면 또한 모든 정치적 관계의 핵심은 무의식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결국 규범적 역설의 문제 역시 무의식의 틀로 재해석될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환상’, ‘오인’ 등의 문제의식을 다시 생각해봄으로써 사회적 병리현상을 인식,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을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정신분석가 맹정현은 「전이의 정치학」에서 정신분석이 제시하는 정치성이 어떤 지점에서 기존의 정치 담화와 차별되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정신분석을 비판하며 무정부주의적 정치를 내세운 들뢰즈와 가타리의 분열분석이다. 이러한 급진적인 ‘유토피아적’ 정치는 타자의 현실적 욕망 또는 주체성을 ‘곧바로’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의 규범이 역설적으로 왜곡될 수 있듯이 유토피아 정치 역시 사회와 주체의 무의식적 구조를 간과한다면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 결국 무의식을 변화시키는 ‘전이 하의 실천’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주장이나 규범도 ‘말뿐인 실천’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동심리학자 박선영은 「라캉과 버틀러, 위반과 전복의 담론」에서 성적 정체성 구성과 관련된 라캉과 버틀러의 차이를 논의한다. 저자는 이성애와 동성애의 정체성 구성에 대해 주디스 버틀러가 갖고 있는 ‘문화주의적’ 인식이 실상 또 다른 근본주의임을 폭로하고, 라캉의 성정체성 이론에 대한 근본주의적 이해가 오류임을 보여준다. 그런 주장과 달리 실제 라캉의 무의식 이론은 무의식의 고정성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무의식적 구조를 다른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이만우는 「라캉 정신분석과 정치적 주체성」에서 ‘환상’과 ‘향락’의 개념을 사회정치연구의 핵심 범주로 위치시키면서 정치적 행위의 본질을 정신분석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실증주의적인 연구와는 달리 라캉주의적 사회정치연구는 주체가 갖고 있는 환상과 향락의 구조를 고려함으로써 규범적 역설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정치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기존 사회과학 연구에서 활용된 여러 실례들과 비교 분석함으로써 환상과 향략 개념이 실제 사회 현상에 적용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철학자이면서 정신분석가인 홍준기는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에서 이웃사랑 계명을 정치신학적, 정신분석학적으로 독해함으로써 도시 공동체에서 이웃사랑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모색한다. 공리주의적 윤리나 자유주의적 정치와는 달리 이웃사랑의 원리는 주체와 타자 간의 존중과 비폭력적인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적 윤리이자 정치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도시 공동체의 진정한 근거가 바로 이웃사랑에 있다는 점을 정신분석학적, 정치신학적 연구를 통해 명쾌히 보여주면서 오늘날의 개인주의적 실태를 벗어날 수 있는 사회적 근거를 발견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보여주는 학제 간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 도시의 정치학에서 음악의 사회학까지 『베스텐트 2014』의 독특한 점은 다른 학문분과별 학술 잡지와는 달리 학제적 사회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이번 호에서는 ‘규범적 역설’이라는 새로운 이론적 관점을 바탕에 두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인류학적, 사회학적 연구 작업을 통해 이론의 구체화 또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이론화가 어떻게 가능한지의 실례를 보여준다. 여기에 도시의 정치학에 대한 역사학자의 글과 음악사회학에 대한 논문이 더해지며 또 다른 사회 비판의 영역들이 드러난다. ‘학제 간 연구’라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의 설립 이념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학자 칼 슐뢰겔은 ‘논단’에 실린 「삶의 형식으로서 유럽 도시」에서 도시를 한 사회의 모순이 나타나는 무대로 보고 유럽의 도시를 상세히 분석한다. 도시에서 사회의 온갖 모순을 관찰할 수 있다면, 오늘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시험대 역시 도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는 동유럽 여러 도시들의 변화 과정을 관찰하면서 도시에 대한 기존의 음울한 전망들을 비판하고 도시가 갖고 있는 생명력과 재생력의 차원을 구체적으로 탐색한다. 1989년 동유럽 도시의 대전환이 보여주었듯이 도시는 그 종말에 이른 때에도 새로운 정치적 공공성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윌리엄 로이와 티모시 다우드는 「음악이 왜 사회학적으로 문제가 되는가?」에서 음악의 사회학적 차원에 대한 여러 연구를 종합하여 소개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음악을 연구하는 여러 흐름들이 서로 상충하는 동시에 상호 보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들은 음악이 하나의 사회적 개입 행위이자 정치적 구별과 관련된 복합적인 양상을 지니고 있음에 주목한다. 따라서 음악사회학은 사회적 삶의 다양한 차원들이 연결되는 방식을 탐구함으로써 단순히 취향으로서의 음악을 넘어 사회적으로 재구성되는 음악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에 간과된 현대 문화의 차원을 재발굴하는 이 글은 다른 사회 연구에도 많은 영감을 주는 새로운 논의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