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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클링조어루이카레노 소풍 클링조어가 에디트에게몰락의 음악8월의 저녁클링조어가 잔인한 사람 루이에게 편지를 쓰다 클링조어가 친구 두보에게 시 한 편을 보내다 ―그가 자화상을 그리던 나날들에 쓴 것자화상해설 | 탐미적 술꾼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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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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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 집념, 몰입과 광기…… 스러져가는 생에 다시금 지피는 불꽃마흔두 살의 화가 클링조어가 사망했음을 알리며 시작하는 이 소설은, 그가 죽기 전에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그렸고,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따라간다. 그는 격앙된 감정으로 친구들 만나거나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을 샅샅이 뒤지고, 술을 들이붓고, 강박적으로 그림에 매달린다.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찬미한다. 이렇게 마지막 작품 ‘자화상’을 완성하려 하는데……. 창작해야 한다는 강박. 이 강박을 달콤하게 느끼는 중독. 동시에 이런 행동이 모두 헛되며 지는 태양과 함께 어둠에 파묻힐 거라는 깨달음. 우리는 여기서 ‘시간의 중지’, 즉 예술로 생의 허망함에 저항하고자 했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작품 속 아르메니아 마법사는 클링조어에게 “자넨 시간을 중지시켰나?”라고 묻는데, 이 질문은 “예술로 우리 삶의 허망함에 맞설 수 있는가?”로 바꿀 수 있다.자네가 그 가방에 집어넣은 7월의 그림은 자네에게 충분한가? 자넨 시간을 중지시켰나? 아무 두려움 없이 가을을, 겨울을 맞이할 수 있나?”(78쪽)《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은 《데미안》과 같은 해에 발표되었다. 당시 헤세는 아내의 정신병원 입원, 아들의 중병, 아버지의 사망 등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정신적 쇠진을 치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위스 남부 루가노 일대를 배회하는 화가 클링조어는 헤세이며, 클링조어가 여름 동안 폭발적으로 그린 그림은 헤세가 1919년 여름 한 달 동안 써 내려간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인 것이다. 헤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정신의 죽음에 저항했고, 예술을 향한 열망에 다시 불을 지폈으며,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스웨덴 한림원은 헤세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개인의 정신적 탐구와 성장을 다룬 작품”을 꼽았는데,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완전히 종말로 가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두렵고도 불가사의하게 아름다운 이 그림은 저 여름의 작업 끝, 전례 없이 작열하던 저 광적인 작업 기간 마지막에, 그 시기의 정점이자 왕관으로서 나타난 것이다.(103쪽)“우린 몰락하는 거야, 친구들, 그렇게 우리 운명이 정해졌다네”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열풍에 동참하지 않았고 배척된다. 1914년에는 취리히 신문에 〈오, 친구들, 이런 말은 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전쟁은 헤세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을까. 그는 1919년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년간 작가로서 성과에 만족해왔지만 이제 완전히 새롭게 검토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한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에도 이런 태도가 잘 드러나는데, 클링조어는 자신의 얼굴 안에다가 “멸망하는 자, 몰락하는 자, 자신의 몰락에 합의한 자의 얼굴”을, “죽어가는, 죽기를 바라는 유럽의 인간”을 그려 넣는다. 자신의 자화상이자 시대의 자화상인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미래가 불확실성으로 치닫는 오늘날 우리는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통해 나의 자화상과 세계의 자화상을 그려볼 수 있다. 오늘날의 우리가 우리의 무엇을 죽여야 할지, 무엇으로 재탄생해야 할지 “우리 자신의 것이던 모든 게 죽었지”라고 토로하던 클링조어와 함께 고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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