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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려
엘릭시르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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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변사 9
유령 55
쪽 85
모 139
거머리 167
부 199
봉안 233
보험 261

작가의 말 313
추천사 318

저자 소개 1

네 나라, 다섯 도시를 떠돌며 청춘을 보냈기에 마음이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늘 떠 있었다. 먹고 살 일을 결정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은행원에서 예능PD를 거쳐 라디오PD까지 직업을 널뛰듯 옮겨 다녔다. ‘제7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 당선된 데뷔작 『증발: 도깨비불』을 발표한 후부터 지금까지는, 다행히 진득하게 직업인으로서 글을 쓰며 살아간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340g | 128*188*30mm
ISBN13
9791141613440

책 속으로

“남편이 저기 버젓이 있으면, 아내는 무연고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남편이 아내의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겁니다.”
“예?”
의아함에 기준의 목소리가 커졌다.
“왜요?”
“돈이죠. 머니.”
채광이 씁쓸하게 덧붙였다.
“장례비 백만 원이 없어서 유족이 시신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러면 곽 대표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대신 장례를 치러주는 거죠.”
“그럼 장례식은 어떻게?”
“오기준 분석관은 순진한 구석이 있네요. 장례식이 어디 있어요. 강선자의 시신은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이동하는 무빈소 직장直葬을 한 겁니다.”
“……”
분명히 방금 전과 같은 뒷모습인데, 최길중의 등이 더 굽은 듯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 p.32

“그래? 좋아요. 그럼 오 분석관이 얘기해봐요. 강선자는 타살이에요? 자살이에요?”
“자살보다 타살에 무게가 실리지만 심증일 뿐이고, 증거를 더 모은다면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뻔한 원론을 당당하게 내뱉는 기준을 보자 채광은 전의를 상실하고 픽 웃었다. 예의 그 당돌한 조카를 보는 삼촌 같은 얼굴로.
“아휴, 그래. 그렇다 치자, 그렇다 쳐요. 아무튼 2안으로 빨리 옮겨갑시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을 경우요?”
“그렇죠. 상법 제659조에 따라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보험에 가입해 보장받는 사람)나 보험수익자(보험금을 받는 사람)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
흐리멍덩한 눈빛과 표정으로 일관하던 채광이 웬일로 법조항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바로 읊었다.
--- p.44

“사실 오 분석관은 내가 하려는 보험조사의 선진 기법인 ‘탐문’을 이해 못했어요. 우리가 지금 여기 왜 왔겠어요?”
“위스키에서 막걸리로 주종을 바꾸려나보죠.”
“대한민국 산은 높아질수록 CCTV가 잘 없어요. 정상 부근에 몇 개, 등산로에 몇 개. 왜냐? 공무원들이 관리하기 어렵거든. 또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그대로 사각지대예요. 그러니까 이름난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서 목을 매면 전경 부대 서너 개로도 시신을 찾는데 반나절이 넘게 걸리는 거거든요.”
“술꾼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술 마실 궁리만 한다더니.”
“에이, 진짜라니까.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겠어요? 바로 목격자야.”
채광은 능숙한 곁눈질로 계산대 뒤에 서 있는 우락부락한 가게 주인을 안 보는 척하며 슬쩍 쳐다봤다.
“주요 등산로 입구에 있는 이런 24시 해장국집 사장님만 한 목격자가 없다는 거지.”
“……진심입니까?”
“일주일 전에 경찰들이 왔을 때 유독 특별한 일이 없었느냐고 물어봐요.”
--- p.79

― 요샌 예전 같지 않고, 에구구 삭신이야.
― 그래서 난 어제 간단한 심사로 KS생명보험 가입했지.
― KS생명보험? 내가 지금 가입이 되려나?
― 물론 누구나 되지! 질병 있어도 오케이! 투약하고 있어도 오케이!
― 나이 들수록 그만한 안전망이 없네?
― 그럼! 한 개를 가입해도, 다섯 개를 가입해도 원하는 만큼 중복 보상해주는 생명보험이잖아.
― 아이쿠, 더 늦기 전에 KS생명보험에 가입하러 가야지.
가만히 듣고 있던 기준은 되지도 않는 광고 문구를 신경질적으로 비웃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생명보험의 수익자는 유족이기 때문에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생명보험에 가입하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었다. 많이 가입할수록 더 큰 보험금이 나오니 배우자와 자식을 생각한다면 생명보험에 드는 것이 똑똑한 방법이라고 은근히 부추기는 꼴이었다.
“전 이런 생명보험 광고가 신체사기를 부추기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요.”
“차량사기는 다른가?”
채광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자동차보험은 비례보상이잖아요. 보험금 한도가 정해져 있잖습니까. 하지만 생명보험은 아무리 많이 가입해도 중복 보상해주잖아요. 한 번만 완전범죄를 저지르면 로또보다 더 많은 보상이 있는 셈이죠. 설령 걸린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처벌도 엄청 약하잖습니까.”
--- pp.204-205

“나도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야. 백 살에 가까운 노인이었는데, 비누가 되어 있었어.”
“사람이 어떻게 비누가 됩니까?”
“실제로 비누가 되었다는 게 아니야. 시랍화가 된 상태였어. 왜 몇 가지 조건이 맞으면 시신이 마르면서 미라가 된다고 하잖아? 그 반대로 축축하고 공기 흐름이 차단되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시신 위로 이상한 기름막이 끼게 돼. 꼭 비누처럼. 그래서 비누화라고도 하지.”
“끄, 끔찍한 모습이었겠네요.”
“……그 반대였어. 노인의 모습은 완벽하게 보존된 밀랍인형처럼 보였어. 잠들어서 부르면 바로 일어날 것 같은 얼굴이었지.”
“예?”
“시랍화가 된 시신은 몸을 덮은 지방산이 방부제 역할을 해줘서 부패가 일어나지 않거든. 그 뒤로 술을 먹지 않으면 그날 의 그 비누가 되어버린 늙은 시체가 자꾸 떠올랐어. 죽었는데도 아들 때문에 편히 눈을 감지 못하는 늙은 아버지의 생생한 얼굴이……”
그날의 기억이 괴로운 건지, 술을 마시지 않아서 금단현상이 발현된 것인지 채광이 미세하게 손을 떨었다. 그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가 풀었다.
“그 기괴한 사무장 진짜 패륜적인 인간이네요. 아버지가 그 꼴인데 돈 때문에 방치하다니요.”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어쩌면 죽은 아비가 그걸 바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왜죠?”
“그 사무장 말이야. 그 나이 먹도록 제 손으로 돈 한 번 안 벌어본 ‘은둔형외톨이’였어. 흔히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라고 부르는 애들 있잖아. 게다가 외동아들에다가 늦둥이였어.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자랐겠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더라도 어느덧 ‘은둔 중년’이 되어버린 아들이 걱정되어서 뭐라도 더 해주고 싶었을지도 몰라.”

--- pp.214-215

출판사 리뷰

타고난 이야기꾼의 주목할 만한 신작

깐깐한 성격의 신입사원, 오기준은 알음알음 ‘또라이’로 불리는 안채광과 마찰하면서도 훌륭하게 보험조사를 진행해간다. 의심스러운 보험 지급 건 중에서도 특별히 의심스러운 사건을 조사해 보험사의 지급 의무가 없음을 밝혀내 회사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일을 하는 두 사람이지만, 이번 케이스인 ‘강순자 변사 사건’은 여러모로 녹록치 않다. 조금 팠을 때는 평범한 가정폭력 이후 아내의 사망보험금까지 노리려 드는 나쁜 남편이 벌인 비극인 것처럼 보였지만, 결말에 다가갈수록 사람이 너무나도 사람이라 일이 이 지경까지 왔구나, 탄식하게 되는 진상이 차차 베일을 벗는다.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전개와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만, 읽어내는 게 버거울까 긴장할 필요는 없다. 『중복 보상』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는 어두운 사정과 함께 자꾸만 보며 웃게 되는 매력적인 감칠맛이 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는 목표가 같아 특별보험조사관들과 협업하는 경찰들, 특히 김미영 팀장과 그 딸 배유경 양은 전직이 경찰이었다는 게 은근히 드러나는 안채광뿐 아니라 ‘안채광과 사이 나쁜 부사수’ 오기준과도 다채로운 상호작용을 보여주며 이야기에 한숨 돌릴 틈을 만들어준다. 각 등장인물이 지닌 ‘가족과 관련한 문제’는 결국 모두가 해답을 찾기 위해 질주하는 ‘강순자 변사 사건’과 어우러지고, 결국 ‘가족의 문제’라는 키워드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구성은 얼핏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상상 이상으로 깔끔하고 매력적으로 풀려나간다. 작가는 이에 더해 피해자인 강순자의 이야기마저 더 들어보고 싶도록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어, 더 읽어나가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공고히 증명해낸다.

‘촉탁살인’ 실화에서 비롯된, 따스한 보험 사기극

“민려 작가의 『중복 보상』은 법의학과 사회, 생명과 자본의 경계에서 그 해석의 윤리를 집요하게 묻는 작품이다.”
-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 추천사 중


『중복 보상』은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가 《미스테리아》 12호에 기고했던 논픽션 원고, 〈사랑을 위한 죽음일까〉의“앞선 두 (촉탁살인) 사례에서 부부가 마지막 순간 서로를 어떤 눈빛으로 마주보았을지, 또 죽어가는 순간에 어떤 마음을 품었을지 상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95p)”는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민려 작가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일이라고 여겨졌던 법의학자로서 이런 사건을 뜨겁고 감상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새로웠고 무언가 더 깊은 내막이 있을 것처럼 느꼈”고, 이 감상은 결국 『중복 보상』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새로이 탄생했다.

유성호 교수의 원고가 실린 잡지가 출간된 2017년과 민려 작가의 『중복 보상』이 출간된 2025년 사이에는 거의 십 년에 달하는 간극이 있지만, 민려 작가가 유성호 교수의 원고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듯, 반대 방향으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유성호 교수는 민려 작가의 글이 “현시대 물질문명의 세태를 냉철하게, 그러나 조금은 가슴 아프게 포착”하는 글임을 정확하게 알아보았다. 『중복 보상』에 나오는 범죄자들은 잔인하고 비인륜적인 언행을 보이지만, 그들의 인간성이 사악하진 않다. ‘하얀 거머리’로 불리며 높은 악명을 쌓아온 사채업자는 전쟁고아에 배운 거라곤 돈 받아먹는 기술뿐인 인생이고, 아버지의 시신이 비누처럼 변할 지경으로 방치한 아들은 방구석에서 나오질 않는 ‘히키코모리’였으며, 어머니의 목숨값으로 인생을 구제받은 아들은 주식 투자와 코인으로 모든 것을 날려먹고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 군상들을 얼핏 냉정한 시선으로 비추면서도 일말의 따스함을 잃지 않고 ‘이들도 결국 인간임’을 보여준다.
이 차갑지만은 않은 태도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막막한 세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여전히 믿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고, “헌신에 대한 감사”이다.

추천평

죽음은 침묵하지만, 그 침묵을 해석하는 일은 언제나 살아 있는 인간의 몫이다.

민려 작가의 『중복 보상』은 법의학과 사회, 생명과 자본의 경계에서 그 해석의 윤리를 집요하게 묻는 작품이다. 보험금을 둘러싼 한 노인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죽음을 계산하는 사회’의 초상으로 읽힌다. 부검의 기록과 조사관의 추리가 교차하는 서사 속에서 작가는 현시대 물질문명의 세태를 냉철하게, 그러나 조금은 가슴 아프게 포착한다. 법의학자로서, 나에게는 이 작품의 문장들 속에서 부검실의 냉기와 인간의 체온이 동시에 느껴졌다.

『중복 보상』은 차가운 기록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흔적’을 좇는다.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려 인간의 탐욕과 슬픔, 정의의 모호한 얼굴을 드러낸다. 과학의 언어로 죽음을 다루는 나에게, 이 소설은 문학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부검임을 일깨워주었다. 차가운 사건 속에서도 인간의 온도를 포착한, 묵직하고 정교한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재미있었다. - 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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