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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후기 207 볼테르/칼라스 사건 연보 212 도움받은 자료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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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양반, 국왕참사회의 심판이 언제쯤 열린다고 하던가요?”
“지금 막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조급한 손님의 모습이 이내 무리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들은 세상일에 무감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렇게 왕궁 앞에 몰려든 이유였다. 비록 이들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었지만, 권력이 이들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무리와 같은 시간을 사는 지식인들은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불순한 자들’, 바로 계몽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주체들이었다. --- p.14 바람은 궁의 가운데로 몰려들어 와 드넓은 정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바람은 줄지어 서 있는 나무를 어지럽히고 호수를 출렁이게 하며, 흙먼지를 일으켜 세운다. 세상은 그 바람에 의해 그토록 세차게 흔들린다. 하지만 그걸 견딜 때에야 비로소 살아갈 기운과 생명을 부여받는다. 세상의 일들은 모순적이고 진실은 그 안에 담겨 있다. --- p.17 “아버지가 아들을 교살했을지도 몰라.” 군중심리에 휩싸인 사람들이 이 마지막 주장을 듣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비속 살인이라는 패륜은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그 자체로 너무나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반인륜적인 사건은 그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뒤이어 이 엽기적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 없는 추측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주장들이 모여 추론이 되었고 추론들이 반복되면서 진실로 변하고 있었다. --- p.33~34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그렇기 때문에 무책임할 수밖에 없는 주장들과 추론들이 연기처럼 끝없이 퍼져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근거가 박약한 그 상상적 추론들이 한데 모여 있는 군중 무리를 휘감아 돌며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익명의 정보를 나누어 가진 무리는 집단적 확신도 공유했다. 이제 마르크앙투안의 죽음은 종교적 적대가 만든 가족적 비극이 되었고, 살아남은 가족도 마땅히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점점 비등해졌다. --- p.35 여론의 광기에 사로잡힌 행정관 보드리그는 자신의 주관적 확신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를 물고 늘어지려 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갖고 있던 행정관은 명확한 증거도 없이 그들을 체포해 구금해 버렸다. 보드리그의 손에 두 사법적 권한이 놓여 있었기에, 사건은 객관적이고 엄밀한 수사 여부와 무관하게 사법적 심판 대상이 될 운명이었다. --- p.39 ‘자비로운’ 집행관이 그에게 다가왔고, 무표정한 얼굴로 칼라스의 목을 졸랐다. 칼라스의 목숨이 끊어졌다. 하지만 처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집행관에 의해 칼라스의 시신이 불에 타 연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아야 종결될 것이었다. 당대의 이 엄청난 비극적 드라마는 이렇게 끝이 났다. 종교적 편견의 강고한 담장으로 둘러싸인 곳, 남부 도시 툴루즈는 그렇게 극단적인 악마적 열정으로 뜨거워져 갔다. 그리고 툴루즈에서 또다시 축제가 열렸다. 악마를 물리친 정의의 사도들이 신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였다. --- p.51~52 바스티유에서 보낸 근 2년의 세월 동안, 프랑수아마리는 위대한 문학가가 되기 위한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1718년 4월, 자유를 되찾은 24세의 청년 문학인은 본명 ‘프랑수아마리’를 버리고 ‘볼테르’로 개명했다. 권력에 맞서 싸울 인류의 위대한 지식인, 찬란한 문인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 p.65 “집안의 가장을 극형에 처하고, 그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사법적 결정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만장일치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전대미문의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증거라면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확실해야 하지 않나요? 압도적인 여론에 밀려 한 사람이 수레바퀴에 묶여 처형되었다면 그보다 더 취약하고 불완전한 판결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 p.96 신앙과 믿음의 차원에서 의심은 불경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서 그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방법이다. --- p.103 칼라스와 그의 가족들이 유죄라는 어떠한 증거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무죄라고 확증할 단계도 아니라는 가치중립의 위치에서 출발해야 했다. 인내와 끈기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의 필요성도 인식했다.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지금처럼 진실을 가리고 있는 덮개가 공권력, 사법적 권위, 편견으로 가득 찬, 종교라는 너무나도 무겁고 두터운 대상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볼테르 또한 인간적인 본능을 지녔기에 두려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려면 예상하지 못한 적들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선택의 길은 매우 위험한 것일지도 몰랐다. --- p.106 볼테르 또한 공교롭게도 칼라스와 같은 68세였다. 볼테르는 일흔에 다다른 노구를 이끌고 어떻게 다양한 정보를 얻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파리와 페르네를 오갈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앞에서 이성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 또한 여느 사람처럼 약하디약한 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근대는 말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진리를 향할 때 초월적인 능력을 보여 주는 존재임을. 그 가르침에 따라 볼테르는 근대라는 진보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기로 마음먹었다. --- p.108~109 볼테르는 생각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실천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도덕적 당위가 실천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실천의 방법은 또 다른 문제였다. 잘못된 방법으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칼라스 사건을 다시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볼테르는 판단했다. 그러지 않고는 참과 거짓, 진실과 허구, 정의와 불의가 세상에 드러나고, 선이 찬양받고 악이 심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 p.119~120 “참사회 심판관 40명은 만장일치로 장 칼라스 씨의 무죄를 선고한다. 또한 칼라스 씨와 공모했다는 혐의로 유죄를 받은 다른 네 명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를 선고한다.” 이 선고에 이어 참사회 의장은 잘못된 재판으로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에 대한 국가배상을 결정했다. --- p.20 지난 사건들의 파노라마, 그 끝에서 한 가지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칼라스 사건은 단순히 프랑스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건이 아니지 않은가?’ 그에게 칼라스 사건이란 반복되어 온 종교적 광기와 박해의 오랜 역사가 18세기 프랑스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 비극은 현상적으로는 이례적이고 특별한 사례 같지만, 사실은 인류사의 차원에서 조명하고 해석하며 답을 찾아가야 할 보편적 사건이었다. …… 그는 생각했다. ‘칼라스 사건에는 인류에 적용될 보편 규범과 원칙이 들어 있지 않을까? 인류를 다툼 없이 살아가게 할 도덕을, 적대와 혐오를 넘어 공존과 평화를 만들 윤리를 담고 있지 않을까?’ 그 물음 앞에서 볼테르는 ‘관용’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 p.154~155 다음 날 치를 장례를 위해 인부들이 볼테르의 관 주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나무로 짜인 관의 정면과 측면이 다음과 같은 문구로 채워졌다. “볼테르의 영혼에게 의회는 1791년 5월 30일, 그가 위대한 인물의 명예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공표하노라. 그는 무신론자와 광신론자에 맞서 싸웠도다. 그는 관용에 영감을 부여했도다. 그는 봉건적 예속에 맞서 인간의 권리를 외쳤도다.” --- p.199~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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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762년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의 칼라스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
ㆍ종교적 편견과 광신이 사법 권력과 결탁해 은폐하고 왜곡하려 했던 진실 ㆍ무고한 한 가족을 구하기 위해, 펜 하나로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운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의 드라마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대화식 구성, 계몽사상의 현실적 개입을 보이는 볼테르에 대한 치밀한 탐구와 유려한 문장력 등 이 작품은 세계 지성사에서 알려진 칼라스 사건의 전모를 재구성한 일종의 ‘사고실험’으로서 논픽션의 지평을 심화 확산시킨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합리적 이성에 기반한 이성과 양심의 덕목 그 실천의 중요성을 성찰하듯, 작금 한국 사회의 정치-사법적 정의의 실종에 대한 반면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현재적 의미는 각별하다.” ― 2024년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심사평 타자를 향한 절멸의 욕망이 실현된 뒤에 남는 것은 파국이다. 역사 속에서 확인되는 고통스러운 교훈이 무색하게도 이 욕망은 거침없이 반복된다. 인류는 자신들과 인종, 종교, 정치, 문화 등에서 다른 존재에 대한 두터운 편견에 사로잡혀 그들을 향한 이디오진크라시(자신과 다른 모습의 존재를, 이질적이기 때문에 피하려 하고 더 나아가 혐오스러워하기까지 하는 본능적 의지와 욕구)를 자행해 왔다. 신체가 다른 인간에 대한 경멸, 신앙이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 상이한 가치를 지닌 이들에 대한 적대, 다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폄훼 위에서 불행한 인류사가 이어지고 있다. 『칼라스 재판과 볼테르』는 ‘소설 같은 논픽션’이라고 평가받으며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정치학, 사회학, 철학을 아우른 연구자가 논문이나 학술서 대신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할 법한 형식으로 쓴 이 책은, 관용(톨레랑스)이라는 개념의 창시자 볼테르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칼라스의 재판’을 배경으로 한다. ‘절멸의 욕망’ 앞에 파괴되는 사회의 잔혹한 풍경 속에 우리를 초대하고는, 그 폐허에서 일어나려면 어떤 가치를 움켜쥐어야 할지를 묻는다. 결국 이는 우리의 확신이 정의인지 광신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가톨릭이 국교였던 18세기 프랑스에서 개신교(위그노)는 오랜 박해를 겪고 있었다. 1761년 10월 13일 밤, 가톨릭 광신주의가 특히 강했던 툴루즈 지역의 개신교 상인 장 칼라스의 아들 마르크앙투안이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다. 툴루즈 시민들 사이에서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한 아들을 독실한 개신교도인 아버지가 살해했다는 뜬소문과 광신적인 편견이 퍼져 나갔고, 이런 여론에 휩쓸린 툴루즈 고등법원은 명확한 증거 없이 장 칼라스를 유죄로 선고했다. 이듬해 장 칼라스는 극형에 처해졌고 재산은 몰수됐으며 남은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칼라스 사건’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종교적 광신과 편견이 ‘사법 살인’을 초래한 비극적인 오심 사건이자,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의 사회 참여를 촉발한 역사적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믿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맹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혐오. 300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21세기 한국 사회가 겹쳐 보이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한 ‘편견과 광신의 사회적 참상’에 대해 철학자 볼테르가 던진 묵직한 질문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몽의 사도’ 볼테르는 상식과 진리의 이름으로 반문명적 야만과 반인륜적 폭력을 고발했고, 이로부터 해방된 문명을 향한 꿈으로 ‘관용’이라는 도덕규범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관념의 차원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양심이라는 보편 명령을 외면할 수 없었고, 진리를 향한 의지와 정동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결의에 찬 지식인이 가톨릭과 사법이라는 당대의 기득권과 맞서 싸운 결과였다. 우리도 근대국가 수립의 출발에서부터 ‘칼라스의 비극’을 경험했다. 제주 4·3 사건은 근대국가 한국이 앞으로 이념의 차이에 기인하는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임을 말해 주는 역사적 지표였다. 18세기 프랑스의 개신교도가 그러했듯이, 20세기 한국에서 ‘빨갱이들’은 인간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했다. ‘빨갱이들’은 마땅히 추방하거나 죽여야 한다는 이념은 1960, 70년대의 어두운 터널을 거쳐, 1980년 5·18이라는 야만의 드라마에서 정점에 올랐다. 게다가 우리는 그 극단의 세계에서 아직 자유롭지 않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기치 아래 정치적 상대를 악마화하는 극우 파시즘의 광풍이 여전히 매섭기 때문이다. 치밀한 고증에 기반한 이 책은 객관적인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수준에서 가공의 상황과 심리와 대화를 포함함으로써, 딱딱한 역사 서술 대신 마치 법정 드라마나 추리소설처럼 구성된 18세기 프랑스로 독자들을 이끈다. 평범했던 칼라스 가족에게 닥친 비극, 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힌 군중과 사법부의 광기, 그리고 이를 뒤집으려는 볼테르의 치열한 전략이 생동감 있게 펼쳐지고, 특히 칼라스 사건에 개입해 사후 무죄 선고를 이끈 볼테르가 판테온에 안장되기까지의 과정은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인류사적 보편성을 찾겠다는 바람”으로 집필된 이 책을 읽는 일은 국가 폭력의 상흔이 여전하고 ‘차이와 다름’에 대한 혐오가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를, 멀리 떨어져서 더 가깝게 들여다보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