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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천안의 본
2장 고양이 탐정 3장 천안역지하도상가 4장 불구단과 삐에로 5장 핑크 부대 6장 불구단거리 7장 특수 열차의 좌표 8장 다시 기억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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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뭐에 씐 것처럼 사고가 벌어진 이유를 찾아 헤맸죠.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았어요. 새롭게 이유를 찾아낼 때마다 사람들은 잠깐 희망을 맛보았다가 더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사고 원인이 늘어날수록 책임자 개개인의 죄의 무게는 줄어들었죠. 어느덧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수보다 많은 사람이 심판을 받기 위한 명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심판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지우고 단두대의 스위치를 눌러댔죠. 그러고는 놀라우리만큼 빠른 시간 만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잊었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을 향해 남아 있는 앙금마저 모조리 쏟아내고는 유유히 앞서갔어요. 그게 삶이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 p.55 “너무 걱정 마. 죽지는 않아. 그리고 죽지만 않으면 인생은 제 길을 찾기 마련이지.” --- p.81 “넌 정말 궁금한 게 많구나. 당연히 알고 있지. 우리 능구회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개 같은 세상은 다치고 병든 사람들한텐 그런 게 없다는 듯 굴지. 하지만 우리한테도 그런 게 있어. 그걸 증명하기 위해 능구회가 있는 거야.” 남자가 제 다리를 들어 손바닥으로 착 하고 내려칩니다. “이게 있으면 의심하지 않아. 우리한테도 의미가 있다는 걸.” 그렇다면 능구회는 일종의 사이보그 철거 용역 집단쯤 되는 것 같군요.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다치거나 병들어서 사회에서 내몰렸다가 사이보그가 되어 다시 한번 사회에 편입하려는 자들입니다. --- p.87 많은 사람이 차연과 차연이 이끄는 불구단을 향해 비난, 조롱 그리고 혐오를 주저 없이 퍼붓는다. 이들을 향한 야만성은 어느새 일종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못 알아차렸을 뿐 증오는 언제나 인간의 연장통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직접 연장을 손에 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것도 진보라고 할 수 있다면, 다시 손에 연장을 든 사람들이 나타난 지금은 퇴보라고 보아야 할까? --- pp.152-153 “불구단에서 활동하다 보면 정말이지 머리 빠개질 정도로 다양한 장벽을 마주한다. 사소하게는 바퀴로 지나갈 수 없는 길을 만난다거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누군가가 그날 상태가 안 좋거나. 공권력과 극우파 등의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 요인만으로도 불구단은 셀 수 없이 많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게 불구단이다. 나는 그쪽의 장벽도 넘는다.” --- p.168 애슐리. 정확히는 애슐리 치료였어요. 언뜻 듣기엔 테라피 같은 이름이지만 알고 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는 치료예요. 그건, 성장억제술을 부르는 일종의 은어예요. 수애나 그 애처럼 중증의 장애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대상으로 호르몬을 써서 강제로 성장을 늦추는 거죠. 게다가 아이가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면 유방을 절제하고 난소도 들어낸대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아주 안 가지는 않아요. --- p.214 천안의 불법 개조 현황과 사이보그에 의한 강력범죄 추이 등이 보고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지지만 귀담아듣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도일 정도나 기자회견에 대한 악의적인 반응을 양산하는 데 열을 올릴 뿐 대체로 익숙한 무력감에 젖어 있을 뿐이다. 범죄자 취급, 불법적인 존재 취급,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는 경험은 최소한 불구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질리도록. 그렇다고 타격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억울할 정도로. --- p.272 “오, 러브레이스, 튜링, 노이만, 그 밖의 많은 시대 불구적 선구자들이시여! 이곳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당신들을 조롱이라도 할 기세로 시대를 역행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과 무관히 앞서는 비범함, 반대로 감히 엔트로피의 역전을 꿈꾸는 야만. 둘 중 어느 것이 진정한 불구의 정신입니까. 저, 마빈은,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이야기 속 어느 등장인물처럼, 차라리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정체 속에서 무한히 살고 싶습니다. 소비자의 변덕도 없고, 제조사와 보증 기간도 없고, 배터리와 베어링의 노화도 없고, 따라서 불안과 걱정, 불편과 통증, 결정적으로 폐기 처분이 없는 세계에서 있고 싶습니다. 존재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이다지도 어려울 일인가요?” --- p.273 “난 패배주의 좋아해. 이긴다는 건 너무 성가신 일이야.” --- p.417 공사 인부들과 출근을 위해 역사로 향하는 사람들이 붐비는 천안역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이상한 미래’인 2045년의 천안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작가의 말을 쓰는 시점에 그 삶에서 빠져나왔느냐 하면 사실 아니다. 오히려 가장 높은 확률로 그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기억과 정체성을 잃은 질문자로서, 비겁한 작가적 관찰자로서, 반사회적인 외계인으로서, 병적인 도덕성의 칼날을 쥔 결정권자로서, 그리고 그런 자들이 연주하는 선율을 들으며 살아내야만 하는 시민으로서. 물론 장애가 있는 시민 말이다. --- p.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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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이다지도 어려울 일인가요?” 장애를 탐험하는 소설가 최의택 신작 장편소설 참사와 장애 그리고 장벽 너머로 질주하는 SF 사이보그 누아르! ★ 문윤성 SF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 SF 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 수상 작가 “기술을 통한 격리와 배제에 대한 문제의식”(김초엽 소설가)을 끌로 삼아 장애, 소수자를 위한 상상의 세계를 조각해내며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문윤성 SF문학상, SF 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최의택 작가의 장편소설 《비욘드》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된다. 장애인권 활동가이자 장애 가시화 프로젝트의 창립자인 고(故) ‘앨리스 웡’은 자신을 ‘크립턴(Cripton)’ 행성에서 온 뮤턴트라고 밝힌다. 지구에서 중증 장애인으로 살려면 온몸에 기계를 매단 ‘사이보그’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는 그와 같이, 선천성 근이영양증이 있는 최의택 작가는 《비욘드》를 통해 “기술이 장애를 가진 인물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사”하는지(이다혜 작가), 그 가능성이 내포하는 기시감과 이질감은 무엇인지를 더욱 과감하게 선보인다.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땅이었지만 어느새 폐허가 되어버린 천안, 아무도 살지 않을 것만 같은 그 폐허 속에도 사람이 산다. 그것도 가장 급진적인 기술력을 갖춘 사람들, 사이보그들이. 붕괴된 기차역, 파묻힌 열차, 반복되는 참사 2045년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땅’ 천안에서 펼쳐지는 버려진 자들의 투쟁기 2036년, 천안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역’이라는 문장에 걸맞도록 ‘이동’에 취약한 중증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천안에서 서울까지 ‘무장애 여행’을 제공하는 차세대 열차를 만든다. 열차 개통식 당일. 새롭게 시작될 미래를 맞으리라는 꿈에 부푼 사람들이 열차에 오르고, 걱정과 설렘이 교차하는 미묘한 공기를 뒤로한 채 출발 신호가 떨어진다. 그러나 장엄한 경적과 동시에 역사는 무너져 내리고 열차와 승객들은 한순간에 잔해에 묻히고 마는데……. ‘천안역 붕괴 참사 9주기를 앞두고 찾아온 정체불명의 나그네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은 길게 접힌 쪽지를 받아 들고 멍하니 장벽을 올려다봅니다. 당신이 찾는 천안역은 이제 없습니다. 없어져버렸습니다. _21쪽 2045년,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천안에서 눈을 뜬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모르는 그의 머릿속에서 좌표처럼 울리는 목소리는 그에게 ‘천안역’으로 향하라고 한다. 기억을 되찾기 위해 천안역 쪽으로 걷던 그는 철거라는 형을 선고받은 건물의 잔해 사이로 날카롭게 벼려진 손과 발, 장갑차처럼 우렁찬 소리를 내는 휠체어, 온몸에서 증기를 뿜어내는 사람들…… 사이보그를 만난다. 폭주족 차림을 한 두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게 보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의 다리를 보세요. 저건, 기계입니다! 예, 그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저들의 두 다리는 최창민의 왼손처럼 금속으로 되어 있지만 최창민의 이질감 없는 손에 비하면 너무 노골적입니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저들의 다리가 금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심지어 그냥 금속성 의족도 아닙니다. 중세의 갑옷 같은 두 다리에는 증기를 내뿜는 관이 달려 있습니다. _79쪽 쓸모를 위해 살아 있는 증기기관이 된 사이보그 용역 능구회 VS. 생존을 위해 불법 의체를 단 사이보그 시민단체 불구단 국가는 쓰러져가는 천안을 ‘청소’하고 신천안을 건립하는 것을 큰 과제로 삼는다. 그리고 그 시기, 신천안 사업을 빠르고 확실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나라에서 고용한 용역 단체 능구회와 지금처럼만이라도 버티며 살기 위해 몸에 기계를 달 수밖에 없던 시민단체 불구단의 사투가 시작된다. 영화 〈벤허〉에 나오는 전차와 같이 거대한 앞바퀴로 지면을 가르는 휠체어, 인간의 몸에서 증기를 내뿜으며 폭주하는 쇠 다리, 웨딩 장갑처럼 우아하고 날카롭게 번뜩이는 금속성 손날 등. ‘편안한 땅’의 사각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쇠 튀기는’ 폭력과 분쟁, 반목과 모순은 가히 새로운 누아르의 탄생을 예고한다. 이 세상에 놓인 거대한 장벽, 그 너머의 이야기 수백, 수만 명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 참사는 대책도 없이 반복된다. 2007년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근 10년이 되도록 통과되지 않았다. 때론 약자의 방패가 되기도 강자의 무기가 되기도 하는 차별은 우직하고 유연하기에 쉬이 부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그 자체로 사람의 인지 체계를 뒤흔들”고, 이 세계에서 “얼마를 살았건 이곳이 낯설어지”게 만드는 거대한 장벽이 된다. 앨리스 웡의 ‘크립톤’ 행성은 불구를 뜻하는 ‘crip’에서 파생되었다. 마찬가지로 최의택 작가는 살아 있는 사이보그들을 ‘불구단’이라 부른다. 그는 “우리에 대한 멸칭을 하나둘 빼앗아옴으로써, 앞으로 몇십 년 뒤에 휠체어를 타고(물론 꼭 휠체어를 탈 필요는 없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단순히 용어일 뿐인 것을 듣고 위축되는 경험을 덜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호명에 말미암아 《비욘드》의 불구단 대표 박차연은 응답한다. 불구단에서 활동하다 보면 정말이지 머리 빠개질 정도로 다양한 장벽을 마주한다. 사소하게는 바퀴로 지나갈 수 없는 길을 만난다거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누군가가 그날 상태가 안 좋거나. 공권력과 극우파 등의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 요인만으로도 불구단은 셀 수 없이 많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게 불구단이다. 나는 그쪽의 장벽도 넘는다. _168쪽 비록 사이보그가 판치는 이상한 미래일지라도 《비욘드》 너머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 너머로의 한 발자국이 여느 백 걸음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조금 저리게 깨달아야 한다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