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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대표수필선

책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4
축하의 글 6
작품해설 195

제1부 달밤의 단상

달밤의 단상 19
내 마음의 풍경 23
깨가 쏟아지던 날 27
숨을 곳을 찾고 싶다 31
옛날 장마가 그리울 줄이야 35
사람과 사람 사이 39

제2부 땅은 생명의 고향

절기와 농사 47
땅은 생명의 고향 52
녹색 파도 속에서 56
바랭이풀과 나의 여름 61
쌀밥이 지켜준 날들 65
시래기의 맛 69

제3부 인생의 열매

인생의 열매 75
내 마음의 보물 찾기 79
비에 젖은 꽃잎, 다시 피어나다 83
정원이 나를 품던 날 88
서리맞은 무의 기적 93
방앗간의 향기 97

제4부 봄 숲은 희망이다

봄 숲은 희망이다 103
여름밤의 풍경 107
내 삶을 바꾸는 작은 약속 112
금혼을 맞이하는 당신에게 116
느릅나무 121
가을의 추억 125

제5부 숨결 속으로 부르는 인생

추억 속의 겨울 131
숨결로 부르는 인생 136
몽돌 해수욕장의 추억 140
섬을 품은 푸른 길 145
책 읽기, 나를 치유하다 150
만지도 155

제6부 비우는 노년의 삶

아름다운 동행 163
비우는 노년의 삶 169
삶의 의미와 죽음 173
인생 시계가 가리키는 곳 177
먼 듯 가까운 죽음 181
이 세상 꽃밭을 거닐고 186

저자 소개 1

- 초등교사 퇴임 -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 푸른솔문학 신인상으로 등단(수필) - 푸른솔문학회, 청솔문학작가회 회원 - 수상- 충북대학교 수필문학상, 효동문학상, 카페문학상 - 저서- 수필집 《조각보》, 《내 마음의 풍경》 공저 《삶의 향기》, 《사색을 굽다》, 《목욕》외 다수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150*220*20mm
ISBN13
9788958245278

책 속으로

오랜만에 달을 올려다보니, 몇 해 전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생각이 아스라이 밀려온다.
당뇨로 고생하던 내 모습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 검은 물병을 조심스레 건네셨다. 오래 묵은 똥바가지를 어렵게 구해 깨끗이 씻어 삶은 물을 담아 오신 것이었다. “이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사람이 있다더라. 한번 먹어보렴.”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그보다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어머니의 간절함이었다. 얼마나 마음 졸이셨으면 이토록 정성을 다하셨을까. 그 미음에 가슴이 미어져, 어머니를 끌어안고 목 놓아 울던 기억이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적신다.
(중략)
요양원에 계시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 와 한두 달이라도 곁에서 정성껏 보살펴드리고 싶었다. 휠체어를 밀며 옛 고향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음에, 나중에”라며 늘 미루셨다.
(중략)
‘달빛 아래에서 기억을 더듬으면, 잊힌 시간들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그리움은 어린 날의 고향 풍경과 맞닿아 있다. 어머니가 읍내 오일장에 가시던 날이면, 학교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장터로 달려갔다. 아침에도 뵈었건만 다시 안기게 되는 어머니의 품은 언제나 따뜻했다.
--- 「달밤의 단상」 중에서

젊은 나이에 혼자 되시고 외로움의 무게 때문에 치매라는 못된 마술에 걸리신 걸까, 자신만이 굴레 속에서 허우적거리시는 모습에 마음이 찢어진다. 어머님의 모습에 연민의 정을 느끼며 치료제는 ‘사랑’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매일 치매 어머니를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해달라며 기도드렸다. 저지레를 해도 화내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듬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일상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라, 그게 인생이다. 기쁨은 거기서 시작된다.”는 괴테의 말이 늘 머리를 맴돌았다. 사랑이 없으면 인생이 시시하고 지겹다. 사랑은 삶이 주는 선물이고 생이 내리는 숭고한 명령이라고 한다. 사랑해야지만 인생이 기쁨으로 충만해짐을 느낀다. 세상은 언제나 내가 두렵게 그 앞에 섰던 큰 강물 같았다. 그 두려움을 이기며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어떤 강인들 못 건너겠는가.
--- 「인생의 열매」 중에서

흙은 생명이자 고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 명 중 아홉이 도시에 사는 시대, 우리는 흙과 단절된 땅 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흙이 사라진 대지는 물을 품지 못하고, 비가 내리면 갈 곳을 잃은 물이 홍수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우리가 빼앗은 땅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흙은 생명이 움트고 꽃피며 열매 맺는 자리, 수많은 생명과 미생물이 서로 얽혀 작은 우주를 이루는 공간이다. 흙 한 줌에 지구 인구보다 많은 생명체가 산다 하니, 그 신비로움 앞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땅은 어머니를 닮았다. 더러운 것마저 품어 깨끗함으로 되돌려 보내고, 생명을 길러내는 너른 품을 지녔다. 땅은 생명의 근원이자 마음이 쉬어가는 포근한 고향이다.
(중략)
좋은 흙과 거름으로 식물을 돌보는 시간은 치유이자 힘의 회복이었다. 텃밭 농사는 이웃과의 나눔으로 이어졌다. 논둑에 심어둔 호박은 덩굴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붙잡으며 ‘친구가 되자.’고 속삭이는 듯했다. 폭우와 뜨거운 볕을 견뎌낸 호박들은 주렁주렁 매달려 노랗게 익었다. 그것을 무료 급식소에 가져다드리자 “올겨울은 따뜻하게 지내겠다.”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셨다. 그 미소를 떠올리며 나는 더욱 정성스레 농사를 지었다. 겨울이 오면 잘 익은 늙은 호박으로 죽을 끓여 경로당 할머님들께 나누었다.
--- 「땅은 생명의 고향」 중에서

자연의 변화처럼 나이가 들며 몸과 마음도 함께 달라진다. 몸은 눈에 띄게 쇠퇴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여유를 배워간다. 젊음에는 패기가 있고, 늙음에는 지혜가 깃든다는 말이 실감 난다. 기억력과 상상력은 예전만 못해도, 판단력은 잘 익은 과일처럼 더 깊고 향기로워진다. 젊은 날의 마음 풍경이 짙은 원색으로 가득한 자기중심의 세계였다면, 지금의 마음은 훨씬 은은하고 조화로운 빛을 띤다.
(중략)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택할 것인지는 결국 자신의 결단에서 비롯된다. 직업도, 사랑도, 결혼도…,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아름다운 육체에는 쾌락이 필요하고, 아름다운 영혼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지나온 삶이 늘 즐거웠던 것은 아니지만, 고통과 행복이 켜켜이 쌓이며 지금의 나를 이뤄냈다.
이제는 그 모든 색이 어우러진 삶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본다. 무엇과도 잘 어울리는 빛깔, 어디에도 지나치지 않은 단정하고 단촐한 사람의 길을 다시 그려보며.
--- 「내 마음의 풍경」 중에서

봄이 숲에 닿으면, 숲은 거대한 변화 속으로 들어선다. 봄의 숲은 생명과 희망으로 가득 차 우리에게 기쁨과 탄성을 주는 동시에, 경외와 겸손을 일깨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존귀함과 다시 살아갈 용기를 배운다. 봄꽃이 한꺼번에 피어오르면 산과 들은 화려한 물결을 이루고, 숲속에서 마주하는 산벚꽃의 향연은 메말랐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한다. 연녹색 새싹이 돋아나는 이 계절, 온 산은 부드러운 초록으로 출렁이며 생명을 노래한다.
--- 「봄 숲은 희망이다」 중에서

내가 떠난 뒤, 내가 머물던 공간이 조금은 깨끗하기를 바란다. 지나친 욕망의 그림자만은 남기지 않기를. 노년의 불안을 솔직히 꺼내 보이면서도, ‘치매가 오기 전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이 묵직한 깨달음이 오래도록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울림으로 머문다.
--- 「비우는 노년의 삶」 중에서

우리는 숨 가쁘게 살아오면서 정작 ‘숨’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하모니카는 내 숨을 음악으로 바꿔 준다. 들숨에는 희망이, 날숨에는 슬픔이 실리고, 그 둘이 함께 선율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모니카를 들고 작은 연못가에 섰다. 입김이 흐르며 맑은 소리가 퍼지면, 듣는 이는 없어도 내 마음속의 관객은 언제나 자리를 채운다. 산천초목과 하루를 견딘 나 자신, 자식들, 형제들, 오래된 친구들, 그리고 마음속 깊이 남은 이들에게 나는 정성스레 한 곡을 바친다.

--- 「숨결로 부르는 인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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