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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줄루 전쟁 | 1879
에스파냐-미국 전쟁 | 1898 러시아-일본 전쟁 | 1904~1905 멕시코 혁명 | 1910~1920 제1차 세계 대전 | 1914~1918 러시아 내전 | 1918~1921 중국 내전 | 1927~1949 에스파냐 내전 | 1936~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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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루 족은 첼름스퍼드 경이 기대한 대로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자, 첼름스퍼드 경은 기병대에 명령을 내렸다. 말을 타고 가서 다가오는 적에게 근접해 총을 쏘고는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줄루 족을 자극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영국군 방진에 있던 병사들은 멀리서 쿵쿵거리는 온갖 소리의 향연을 들을 수 있었다. 줄루 족이 가죽 방패에 대고 창을 두드리는 소리, 그들이 점점 빨리 달려오며 지면을 박차는 소리,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줄루 족이 내지른 전투 함성! “우수투(Usuthu)!” 바로 “죽여라!”였다. (‘영국-줄루 전쟁’ 중에서)
하지만 40마일 64km 가량 떨어져 있는 전선으로 이들 추가 병력을 보낼 방법이 없었다. 트럭은 부족하고 철도는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때 갈리에니는 파리의 총알택시를 떠올렸다. 독일군이 천천히 파리 북쪽과 동쪽을 흐르는 마른 강 쪽으로 퇴각하면서 전투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갈리에니는 병사들을 파리 전역으로 보내 모든 택시를 세우고 승객을 내쫓은 다음 택시 운전사들을 앵발리드 광장에 모이게 하라고 지시했다. 광장에 도착한 갈리에니는 택시 1대에 병사 5명씩 태운 다음 그들을 멀리 떨어진 최전방으로 보냈다. 운전사들이 누가 돈을 낼 거냐고 묻자 갈리에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가 지급할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포화가 두려운가?” 택시들이 광장을 떠나자 수백 명의 프랑스 시민이 환호했다. 이런 식으로 전쟁터에 도착한 프랑스군은 겨우 6,000명이라 실질적으로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웅적인 파리택시의 전설은 이후의 긴 전쟁에서 프랑스 인의 사기를 높이는 촉매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서) ‘우리는 권력이 총부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오쩌둥은 당시에 이렇게 적었다. 그가 총이라면, 중국 인민은 총알이었다. 수많은 고난에도, 국민당군보다 병력이나 화력에서 열세임에도, 마오쩌둥과 그의 동료는 계속해서 싸우고 목숨을 부지하고 또 싸웠다. 대장정과 장제스의 납치로 대표되는 내전 1단계에서, 마오쩌둥은 힘겨운 승리를 얻어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료와 함께 시작된 내전 2단계는 사실상 일본과의 전쟁 중에 승패가 갈린 셈이었다. 그는 장제스처럼 맹렬한 싸움을 벌이지 않고, 중국 산간벽지에서 게릴라전을 벌여 일본군을 괴롭히면서 병력을 보존했다. 1949년, 마오쩌둥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장제스보다 지략과 전투력 면에서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에 미국이 중재했으나 결국 실패한 평화 회담 당시 칵테일파티에서 장제스는 마오쩌둥을 가리키며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보게, 개천에서 용 난 격 아닌가?” 그러나 결국 그 ‘개천에서 난 용’이 중국 전체를 차지했다. (‘중국 내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