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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황금 티켓
2장 스코틀랜드의 사자 사냥 3장 삶의 알프스 산을 헐떡이며 오르다 4장 들끓는 요크셔 5장 오, 불의 뮤즈여 6장 정말로 프로이트 부록 : 이 책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가는 방법 역자 후기 더 읽기 |
Simon Gold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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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지만, 작가들과 그들의 물건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존 업다이크의 타자기나 솔 벨로의 아파트, 살만 루슈디의 바지를 왜 가서 봐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느니 그들이 쓴 책을 읽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35쪽)
나에게 스콧의 존재는 서재 의자의 엉덩이 자국이나 홀에 전시된 접힌 바지에서가 아니라 그가 한데 모아 놓은 물건들을 통해 표출되는 그의 사람됨에서, 자신을 공적인 인물로 보여주는 박물관에서 더 분명해 보였다. (77쪽) 워즈워스는 자신의 시 작업의 대부분을 제 삶의 여행을 복기하는 일에 썼다. 그러니 우리 역시 여행을 하면서 그의 시와 그의 삶, 시 속에 그려진 그의 삶, 시적 서사로서 그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120쪽) 빅토리아 시대 삶의 표면을 그린 책은 많았다. 하지만 『제인 에어』로 해서 우리는 비로소 문을 통과해 집 안으로, 커튼 뒤로, 그리고 여주인공의 정신과 마음속으로 안내를 받게 되었다. 하워스를 방문하는 일은 한 작가의 생활공간을 엿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여성의 정신을 한층 긴밀하게 탐험할 수 있는 초대이기도 하다. (128쪽) 자매들은 제임스 딘처럼 일찍 죽었다. 이곳은 낯설고 유명한 천재들의 요람이다. 브론테 자매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것이 하워스가 던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것은 언제나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상상하는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156쪽) 브론테 신화는 다른 모든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상상 속에 자리 잡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고, 하워스를 떠나면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158쪽) 어떤 저명한 현대 전기 작가는 “셰익스피어는 중심의 중심, 영국적인 것 자체의 핵심이자 원천”이라고 썼는데, 거기에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무반성적인 애국주의가 깃들어 있다. 그곳은 이제 영국의 천재가 탄생한 곳이 되었다. (167쪽) 스트랫퍼드에서 우리 모두는 시인의 탄생지가 작가 작가로서 그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믿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 나로서는 어떤 탄생지가 그런 마법을 부린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아마도 소년 시절 그는 구석에 앉아 재 안의 불티 한 점을 보면서 자신의 내부에서 날뛰는 상상력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177쪽) 프로이트는 고고학에 전율했고 고고학적 발견들에 매료되었으며 그것이 그의 사상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 그는 이런 비유를 거듭해서 사용한다. 정신분석가는 잃어버린 폐허를 발굴해서 “돌들이 말하도록” 하는 탐험가와 같다. 심리학자는 “발굴 작업을 하는 고고학자처럼 환자의 정신을 한 겹 한 겹 차례로 드러내야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소중한 보물에 이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자신을 정신의 고고학자로 생각했다. (211쪽) 프로이트의 작업은 오직 서재에 국한되었으며 집의 다른 공간을 침범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경계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프로이트로서는 결코 무심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프로이트의 집무실은 이 집의 무의식 같다. 부르주아 가정의 수상쩍은 다른 장소인 것이다. (226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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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생가, 워즈워스의 오두막, 브론테 자매의 목사관과 프로이트의 치료실
전설적인 공간들 속에 깃든 수많은 허위와 한 줌의 진실 19세기 문학의 성지로 떠난 21세기 인문학자의 불경스러운 순례기 모든 문학기행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직접 둘러보면 책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감동을 얻으리라는 것. 찾아가는 곳이 작가의 집일 경우 그런 기대는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작가가 태어났거나 머물렀거나 집필을 했던 곳에 가면 그가 그 글을 썼던(혹은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확연히 드러날 것이고, 문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옛 시인과 소설가들의 공간에 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의문이 들 법도 하다. 그 장소들은 정말로 작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일까? 셰익스피어의 생가는 진정 인류의 걸작을 탄생시킨 창작의 요람이었을까? 하워스의 목사관이 정녕 브론테 자매의 문학적 영감의 근원이었던 걸까? 아니, 그곳의 풍경이 실제로 폭풍의 언덕처럼 황량하긴 한 걸까? 이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근원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문학기행은 과연 그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도 좋을 만큼 가치 있는 행위인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글쓴이는 직접 길을 나선다. 역사상 최초의 스타 작가였던 월터 스콧의 저택, 시인 워즈워스의 신화가 깃든 오두막, 전 세계의 숭배자들을 불러들이는 셰익스피어의 생가, 브론테 자매의 삶과 죽음을 고스란히 지켜본 하워스의 목사관, 그리고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 전체의 혁명적 대전환을 가능케 했던 프로이트의 치료실. 빅토리아 시대에 출현했거나 재발견된 이 장소들은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않는 ‘문학적 성지’들이다. 옛 순례자들과의 교감을 위해 19세기 방식(도보와 기차)으로 여행을 떠난 글쓴이는 마치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탐정처럼 곳곳에서 정교한 문학적, 인문학적 현미경을 들이댄다. 거기에 비친 것은 문학영웅들의 성스러운 자취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날조의 흔적들이다. 덧칠된 기억과 조작된 이미지들, 그걸 부추겨 온 엉터리 기록자들과 싸구려 상업주의가 죄다 독설과 유머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이 문학기행 무용론으로 흐르지 않는 건 여행자가 진정으로 눈여겨봐야 할 것들을 꿰뚫는 탁월한 안목 덕분이다. 글쓴이의 여정과 눈길을 좇다 보면 독자들은 문학기행을 ‘왜’ 하는가에 대한 해답뿐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까지도 함께 발견하게 된다. 전설과 진실 구분하기, 혹은 신화로부터 역사 솎아내기! 이 책은 문학의 성지에 덧씌워진 베일을 벗겨 내는 불경스러운 순례기이며, 문학기행의 참된 가치와 방법을 알려 주는 충실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발명된 신전, 덧칠된 신화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를 읽은 독자들에게 하워스 들판은 브론테 자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으로 각인되어 있다. 파괴적 열정으로 들끓던 여주인공들을 탄생시킨, 히스로 뒤덮인 황량한 들판!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이미지는 누군가에 의해 각색된 것이다. “(브론테 자매의 전기 작가인 개스켈 부인은) 교회 마당에 서 있는 집의 이미지와 주변의 어두운 황야, 그리고 바람과 비가 이 자매들의 영혼을 병적인 슬픔으로 물들였다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하워스에 가면 바로 그런 것들을 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녀들의 삶에 깃든 비극성을 표현하기 위해 외부의 물리적 환경이 동원된 것이다. 하워스의 실제 풍경과 무관하게, 방문객들은 전기 작가의 안내에 따라 그곳에서 고독을 맛보거나 압도적 단조로움을 느껴야 한다. 자매의 문학적 천재성과 여성적 영혼의 산실이라는 하워스 목사관 또한 마찬가지다. 샬럿 브론테의 죽음을 알린 당시의 신문기사에는 그녀가 생전에 목사관 창밖으로 동생들(에밀리와 앤)의 무덤을 내다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정작 에밀리는 교회의 지하 묘지에 묻혀 있었고 앤의 무덤은 다른 도시에 있었다. 더 기괴한 건, 샬럿 또한 지하에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어느 시인이 바람에 흔들리는 샬럿 무덤가의 풀을 묘사했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사후에 ‘발명’되어 숱한 신화의 중심이 된 또 하나의 신전은 셰익스피어 생가다. 생전에 그닥 유명 작가가 아니었던 탓에 지도에도 등재되지 않았던 그 집은 18세기에 어느 배우가 주최한 희년 행사(실제로는 희년도 아니었다!)를 계기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행사 때 단 한 편의 작품도 공연되지 않았다(그곳엔 극장이 한 곳도 없었다!). 그를 되살린 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대영제국의 국민 시인이 필요했고, 과거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을 구현할 사당이 필요했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났다는 증거도 없고 설령 잠시 살았다 한들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 거의 틀림없는 그 집은 급기야 영국의 천재를 기리는 종교적 기념물이 되었다. 그곳의 풍경은 비극 전문 작가의 생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희극적이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났다는 방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유아용 침대가 있고 그 안에 인형이 누워 있는데, 아기라면 으레 이렇게 생겼으리라는 선입견에 충실한 모습이다. 부엌에는 플라스틱 닭 두 마리가 놓여 언제까지고 요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 불의 뮤즈여…….” 그래도 문학기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글쓴이가 여행 내내 독설로만 일관하는 건 아니다. 평생 문학을 연구해 온 문학교수답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짙은 애정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문학기행의 의미에 대한 성찰 또한 종종 눈에 띄는데, 출발 전에 품었던 의구심과의 대비가 특히 인상적이다. “내게 상상력의 세계, 정신의 세계를 열어젖힌 것은 책들이었다. 그런 위대한 장관으로 이르는 문을 닫아걸고 대신 폭 좁은 현실 속 장소와 물건을 좇을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브론테 자매의 목사관이나 셰익스피어의 출생지를 보는 것이 내가 아끼는 문학에 더 다가가게 만든다는 말인가?” (출발 전) “하워스는 우리로 하여금 진정 문화적 힘이 있는 몇몇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이곳이 순례의 장소로 구실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곳이 우리의 상상력을 끌어당기는 까닭은 진정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이야기들,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관심사를 촉발시키기 때문이다.”(여행 중) 워즈워스의 집에 다시 갈 것 같지는 않다고 짐짓 시니컬하게 말하면서도 그의 정원에서 나뭇잎 하나를 몰래 따 왔다고 고백하는 이 깐깐하면서도 인간적인 여행자의 진면목은 프로이트의 치료실에서 단연 빛을 발한다. 문학교수일 뿐 아니라 케임브리지 인문학 연구소장이기도 한 글쓴이의 내공과 통찰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에 대해 극히 긴장된 관계를 유지했고 아들에게 할례도 시키지 않았음을 환기시킨 뒤, 그는 이렇게 쓴다. “(입구 정면에 걸린 램브란트 그림은) 모세가 십계명 판을 높이 들어 올린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희열에 차서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 주는 것일까? 아니면 황금 송아지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던 백성들에게 화가 나서 그것을 바닥에 내던져 부서뜨리려는 것일까? (…) 프로이트의 집 현관에 있는 이 한 장의 유대교 관련 그림은 그의 격렬한 양가감정을 보여 준다. 자신의 종교를 세운 아버지를 (기독교도가) 그린 그림인데, 그나마도 규율을 깨려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대목은 온갖 오염에도 불구하고 문학기행이 여전히 소중하고 의미 있는 행위임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글쓴이가 훗날 또 문학기행을 떠난다면 그건 아마도 이 순간의 강렬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부재하는 현전에서 느끼는 감동! 그건 이 책의 독자들, 이효석 생가와 토지문학관과 그 밖의 여러 곳으로 떠날 한국의 독자들이 문학기행에서 추구해야 할 목적이기도 하다. 허위를 꿰뚫는 깐깐한 순례자가 되는 방법은 책 속에 충분히 담겨 있다. “프로이트의 서재에서 나는, 빅토리아 시대 순례자들처럼, 경탄에 사로잡혔으며 한 강력한 예술가가 살았던 물리적 공간에서 느껴지는 그의 부재하는 현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방은 언제나 이 모습으로 다시 꾸며지고 보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이 공간은 강력한 환기력을 지닌 장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