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책머리에
들어가는 글 문학으로, 문학을, 문학과 30년 1부 | 작가와 작품 | 그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오랜 침묵의 뿌리 _ 조세희, 《하얀 저고리》 그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_ 박완서 선생 추모의 글 기자가 쓴 소설들, 소설가가 그린 기자들 _ 김소진의 소설에 대하여 진이정을 괴롭힌 ‘세 허씨’는 누구? _ 진이정,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지난한 역사를 해원하는 형식으로서의 문학 _ 황석영, 《손님》 우주로 사라지는 흰 운명의 길 _ 김지하, 《흰 그늘의 길》 전봉준의 혁명에서 금강송의 나라로 _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인터뷰 1 보이는 것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다 _ 황현산 2부 | 쟁점과 인물 |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기 반세기의 의연함 _ 《현대문학》 600호에 부쳐 한국 소설, 장편으로 진화하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기_ 노벨문학상 생각 나는 왜 《악평》을 번역했나 _ 앙드레 버나드·빌 헨더슨, 《악평》 신경숙 표절의 기원과 행로 그리고 파장 유미리의 한국어 역사의식으로 포장된 하루키의 역사허무주의 _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인터뷰 2 결국 평생 한 가지 노래를 _ 최인훈 3부 | 칼럼 | 살 만한 세계 남북 ‘침묵의 영토’ 메운 백두산 소녀의 미소 비폭력 외친 시인을 짓밟다니 ‘혀’ 표절 논란의 진실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2017년 가을 창춘에서 《화산도》 완독기 김윤식 선생의 편지 문학관을 생각하며 옛날 잡지를 먼지의 시학 벌레에 관한 몇 가지 생각 박태순의 눈과 발 코로나 시대의 문학 소설을 생각한다 먼저 온 미래 옛글을 읽으며 인터뷰 3 인간의 힘을 믿는다는 것 _ 김종철 4부 | 서평 | 이야기는 오래 산다 박완서 문학의 원점 _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곡절 깊고 신산스러운 삶의 풍경 _ 김소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대화는 왜 중요한가 _ 이윤기, 《뿌리와 날개》 소설, 법 혹은 소, 설법 _ 박상륭, 《소설법》 말할 수 없고 알 수 없으나 _ 김연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이제 아이는 스스로 이야기하려 한다 _ 김애란, 《달려라, 아비》 저물어 스러지는 것들 _ 김훈, 《강산무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일 _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서정의 계급성 _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인간은 무엇인가 _ 한강, 《소년이 온다》 이제 꿈이 시작되는 건가요? _ 배수아, 《뱀과 물》 조문하듯 시를 쓴다 _ 이산하, 《악의 평범성》 한 실천적 인문학자의 믿음 _ 도정일,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 《만인의 인문학》 《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보이지 않는 가위손》 다시 일어설 사랑의 힘 _ 최은영, 《밝은 밤》 다른 감각의 존재들 _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죽음하다의 세계 _ 김혜순,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오래 품어온 사람과 사랑과 회한과 _ 조용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윤회하는 사랑 _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인터뷰 4 나를 통해 세상을 불타오르게 하라 _ 정유정 5부 | 부고 | 그가 멈춘 곳에서, 그를 잃고서, 그러나 그와 함께 김소진 박경리 이청준 박완서 최인호 최인훈 황현산 허수경 김지하 최일남 조세희 | 부록 | 북에서 만난 작가들 벽초 홍명희의 손자, 남한 문학상을 받다 _ 소설가 홍석중 1 통일 문학의 첫 줄 쓰겠다 _ 소설가 홍석중 2 남에 두고 온 어머니, 시로 녹여낸 사모곡 _ 시인 오영재 경쾌한 문체로 남녀사랑 ‘금기’ 깨다 _ 소설가 남대현 북쪽 인상 바꾼 탁월한 성취 _ 소설가 백남룡 시로 그리는 사상과 감정, 남쪽과는 다른 진화 _ 시인 박세옥·리호근 |
최재봉의 다른 상품
|
사진 속에서 선생님이 어딘가 우리들 머리 위를 가리키며 무슨 말씀을 하십니다. 저희의 시선은 일제히 선생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향해 있어요. 그중에서도 선생님 오른쪽에서 걷고 있던 제 눈이 가장 크게 부릅뜬 게 보이는군요.
그때 선생님이 무얼 가리키며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다만, 어쩐지 그 사진이 선생님과 저희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어리석고 아둔한 우리를 위해 먼저 찾아내신 무언가를 알려주셨던 것이죠. 우리는 선생님의 그 가리킴과 가르침 덕분에 그나마 더 현명하고 지혜로워졌을 겁니다. --- p.45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가난한 농촌과 도시 변두리에서 컸기에 늘 그런 현실에서 탈출하려 애썼지만 시민으로서 그런 현실을 모른다는 것은 바보라 생각한다. 또한 동시에 그 현실에 붙들려서 아무 전망도 세우지 못하는 것 역시 우둔한 짓이다. 나는 정치·사회 현실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문인을 경멸한다. 그렇지만 나는 젊은 작가들에게 결코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작품을 쓰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지닌 문학적 힘을 소진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구체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하지만, 작품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 함은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지만 오래 영향을 주어서 인간 자체를 바꿔 놓는 것을 말한다. 문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 p.103 이번 사태가 단순한 표절 논란에서 ‘문학권력’을 둘러싼 더 큰 논란으로 번지게 된 것도 신경숙 문학의 실질과 포장 사이의 이런 괴리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 p.151 도모히코가 목격하고 체험한 역사는 그 개인의 몫만은 아니다. 목격과 체험의 주체는 개인일 수 있어도 그 본질에 있어 역사는 어디까지나 공동체 성원과 인류 전체의 공동 책임이자 공동 자산이다.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위와 같은 ‘나’의 해석은 도모히코가 체험하고 표현한 역사를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환원하는 퇴행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우익의 반발을 샀다는 난징학살과 관련해서도, 소설에서 부각되는 것이 ‘가해자’인 쓰구히코 개인이 겪은 트라우마일 뿐 피해자인 중국 인민의 고통, 그리고 이 사건이 지니는 인류사적 의미와 맥락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비중이 할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우익의 하루키 비판은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 아닐까. --- p.171 물론 분단은 허구가 아니고 통일은 감상이 아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남북작가대회는 분명 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헤어짐의 슬픔이 아니라 만남의 기쁨을 노래할 것”이라고 황석영 씨는 평양 도착 성명에서 다짐했다. “오늘은 분단의 상처를 노래하지만 머지않은 날 우리는 통일의 기쁨을 노래할 것”이라고 홍석중 씨는 백두산정 연설에서 예고했다. 남과 북을 대표하는 두 소설가는 공동 창작을 하자는 약속을 공개했다. 문학적 통일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다. --- p.181 이 문장은 문학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문학은 발언이며 증언이고 추억이라는 것,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 p.218 그러나 김소진 문학은 어디까지나 생성 중이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고아떤 뺑덕어멈》 《자전거 도둑》 등 세 권의 단편집, 장편 《장석조네 사람들》과 《양파》, 콩트집 《바람 부는 쪽으로 가라》, 장편동화 《열한 살의 푸른 바다》로 갈무리된, 그리고 반쪽짜리 장편 《동물원》을 남겨둔 그의 문학은 미완의 상태에서 급정거했다. 작가로서 그가 성취한 바는 앞으로 성취할 바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점입가경, 그의 이야기는 바야흐로 흥미진진한 본론으로 접어들 참이었다. 그는 독자와 더불어 90년대를 넘어 21세기로 나아가야 했다. 그가 멈춘 곳에서, 그를 잃고서, 그러나 그와 함께, 세기말의 한국 소설은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 p.333 |
|
1990년대에서 2020년대까지,
서평과 칼럼, 인터뷰와 부고 기사로 읽는 한국문학 총결산 1992년 〈한겨레〉의 문학 담당 기자가 된 이래 서른 해 넘게 현역으로 활동해온 저자는 그 시간들을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고 회고한다. 작가와 문학의 사회적 지위가 막강했던 시절이 생생한 그에게 한국문학은 어떻게 가름될까. 문학의 융성과 쇠퇴를 현장에서 체감한 이로서, 그 면면을 기록해야 한다는 기자로서의 의무감 또한 있었음을 이 책은 짐작케 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남겼으나 끝내 침묵하다가 타계한 조세희 선생과의 인연, 한국문학계의 따사로운 어른 박완서 선생 추모의 글, 〈한겨레〉 기자 출신 소설가 김소진의 작품에 나타난 기자들의 모습까지 세세히 일별한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요절한 시인 진이정의 유고 시집론, 지난한 역사를 해원하는 형식으로서 문학적 의미를 조명한 황석영의 《손님》론, 안도현의 시선집에 수록한 해설까지, 작가와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을 선보인다. 유럽어에 (암묵적으로) 한정되어 번역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노벨문학상 비판론, 신경숙 표절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단 카르텔, 역사의식으로 포장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사허무주의에 대한 일침 등 핵심 쟁점에 관한 글들도 문제적이다. 시간순으로 정렬한 칼럼과 서평을 통해서는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살필 수 있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민족작가회의 풍경, 비폭력을 외친 시인을 진압하는 세태, 코로나 시대의 문학, 기후위기 시대, 오토픽션 논란으로 촉발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등이 그것이다. 김소진의 첫 소설집부터 김연수, 김애란, 한강, 최은영을 거쳐 김초엽의 신작까지, 한국문학의 거듭된 성취를 가늠해볼 장을 제공한다. 특히 별면 인터뷰와 문인들의 부고 기사는 그 자체로 한국문학사의 큰 줄기를 대변한다. 박경리, 이청준, 박완서, 최인호, 최인훈, 허수경, 김지하 등의 부고는 한 시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엄숙하고 비장한 문학적 풍경들이다. 그 풍경을 조감함으로써 “그가 멈춘 곳에서, 그를 잃고서, 그러나 그와 함께” 새롭게 시작될 한국문학의 미래 또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김소진 문학은 어디까지나 생성 중이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고아떤 뺑덕어멈》 《자전거 도둑》 등 세 권의 단편집, 장편 《장석조네 사람들》과 《양파》, 콩트집 《바람 부는 쪽으로 가라》, 장편동화 《열한 살의 푸른 바다》로 갈무리된, 그리고 반쪽짜리 장편 《동물원》을 남겨둔 그의 문학은 미완의 상태에서 급정거했다. 작가로서 그가 성취한 바는 앞으로 성취할 바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점입가경, 그의 이야기는 바야흐로 흥미진진한 본론으로 접어들 참이었다. 그는 독자와 더불어 90년대를 넘어 21세기로 나아가야 했다. 그가 멈춘 곳에서, 그를 잃고서, 그러나 그와 함께, 세기말의 한국 소설은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_김소진의 부고, 333쪽 인간은 이야기의 우주 속에 태어나 살아간다 문학의 본령을 꿰뚫는 한 기자의 묵직한 통찰 저자는 1988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2022년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신문사가 유일한 직장이자 평생직장이었다. 문학의 영토 안에서 작가와 독자를 잇는 가교인 기자로서의 본분에 사력을 다했을 것이다. 추문과 비아냥 속에서 한국문학이 길을 잃었을 때도 우리는 왜 소설을 쓰고 읽어야 하는지 작고한 평론가 김현의 말을 되새기면서 끝까지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세계인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224쪽). 소설은 비록 더럽고 비참한 상황을 그리더라도 그 안에는 유토피아를 향한 소망이 오롯이 간직되어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문학과 문학이 향해야 하는 바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굳건했던 한 기자의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통찰이 《이야기는 오래 산다》에 남아 독자에게 면면히 이어지길 바라본다. 이 책에서도 소개한 나의 스승 도정일 선생의 인문 에세이에 따르면, 인간이란 이야기의 우주 속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물, “이야기하는 원숭이”다. 이야기는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고, 그런 이야기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문학사가 쓰이기 전에도 문학은 엄연히 존재해왔다. 내가 문학 기자를 하기 전에도 면면히 이어졌듯이, 나의 퇴직 이후에도 이야기는, 문학은 오래도록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이 문학의 그런 유구한 생명력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되기를 바란다. _‘책머리에’에서 |
|
최재봉 기자는 기자 인생의 대부분을 문학 담당으로 살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존재가 또렷해졌다. 이 책은 문학에 애정이 깊고, 직업인으로서도 긴 시간 성실했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책 제목 ‘이야기는 오래 산다’ 덕에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오래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우리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관심사다. 우리는 손을 자주 씻고 비타민을 챙겨 먹고 건강검진을 받고 운동을 하면서 가능하면 오래 살려고 노력한다. 여기에 이야기라는 단어가 붙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끝없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붙잡고 씨름하고 자신 외에 다른 많은 것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으려 애쓴다. 끝없는 이야기 속에는 우리 몫의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오래 사는 이유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에 거듭거듭 생명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작가들은 자신이 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다. 최재봉 기자도 그 일,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는 그 일을 해냈다. - 정혜윤 (CBS PD, 《삶의 발명》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