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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동만의 실종
II. 케니를 찾아서 III. 두리안 콤플렉스 |
Yogi H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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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뒤통수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을 때는 무언가가 내게 동만이 영원히 가 버린 거라 말하고 있었다. --- p.9 뭔가 흉한 걸 보게 되는 건 아닐까? 실체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현관에 발을 들여놓고 구두를 벗었다. 사무실에서처럼 물컵 하나 함부로 돌아다니는 물건 없고, 바닥과 모든 가구가 반복적으로 닦인 듯 반들반들했다. 눈앞은 거실이었고, 창 앞으로 다가가자 밖에는 P시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 p.13 난 스틸씨병(Still’s Disease) 환자다. 처음엔 피부병인 줄 알았고, 좀 지나선 간염이라 생각했다. 10대 중반부터 발열에 온몸 통증, 흉한 붉은색 발진이 있었는데, 서울의 5대 종합병원에서 진단 결과가 다 달랐다. 이름조차 생소한 스틸씨병임을 알게 된 것은 P시에 와서 같은 문제로 고통받다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를 알게 되면서였다. --- p.20 ‘세렌디피티(serendipity).’ 앱을 여는 것이 자위기구를 사는 일처럼 부끄럽고 망설여진다. 어쩌면 노골적으로 발정 난 남녀들이 서로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활용하는 플랫폼에 운명적인 로맨스를 암시하는 이름을 지어 붙인 것도 역설적이고.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수억 명이 이용하는 앱이라니 이왕 21세기 문명의 신세를 질 바에야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것이 맞다는 생각까지 든다. --- p.23 일주일 동안 수십 명의 남자들과 온라인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 있는 예닐곱 명에게는 내 진짜 사진도 보여 줬고, 심지어 한두 명은 P시 부근에 있는 다른 도시에서 만나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호감을 느꼈던 남자들이 하나같이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결혼 생활도 해 본 나지만. 잊어버린 걸까 아님 이번엔 다를 거라고 여전히 기대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설렘 자체에 한이 맺혔던 걸까? --- p.34 케니와 나는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든다. 그는 젓가락질이 서툴다. 일부러 포크 따위 놓지 않은 나는 회를 한 점 집어 와사비 간장에 찍은 뒤 그의 입에 넣어 준다. 왠지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걸 본 내 얼굴도. 와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갔을까? 아니면 진도가 너무 빠른 건가? 그렇게 한두 점 먹고 난 뒤 그는 와인을 오픈한다. 병을 쥔 그의 팔뚝이 열두 갈래로 갈라지고 두 개의 굵은 힘줄이 돋는다. 얼굴에 오른 열이 내리질 않는다. 발열은 항상 통증이 따르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열 나는 게 좋은 느낌이긴 처음이다. --- p.41 내 삶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매 순간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케니에게 내 일상을 이야기하고 또 그의 일상을 들어 주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와의 대화 내용을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다음 대화를 기다린다. 그에 대해 상상한다. 처음엔 클레이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 적지 않은 대화를 통해 그를 알아 갈수록 클레이에 비해 좀 더 강인하고 현실적이면서도 또한 여리다는 걸 깨닫는다. --- p.43 꼭 병 때문만도 아니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나는 포기하고 삶의 방향을 바꿨던 반면, 그는 자신의 구성화를 흔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임상 심리 전문가 자격을 득하고 S병원에 자리를 구했던 것이 결정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안쓰러워하면서도 나로 인해 자신들의 계획이 망가짐에 열받아야 했고, 동시에 그런 자신들을 혐오하며 자책했다. --- p.64 독점욕을 버리는 건 힘든 일이다.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대상이 사람일 때 공유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니가 말한 대로 사랑은 그 대상이 사람이라기보다는 내 마음속에 숨어 있는 감정이기에 그것을 확인한 이상 굳이 사람의 독점에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오히려 결혼이라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제약을 가볍게 무시하고 내 안의 사랑을 찾기 위해 케니의 숨은 연인이 되는 건 생각만으로 스릴 있고 흥미롭다. --- p.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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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심리 묘사로 인간 내면의 고독과 결핍을 파헤친 심리 스릴러
요기 허 작가님의 참 에이전시 공모전 수상작 『세렌디피티』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심리 전문가가 가장 비이성적인 사랑에 빠져드는 아이러니를 통해, 인간 내면의 고독과 허무를 날카롭게 파헤친 심리 스릴러입니다. 주인공 심동만은 내담자들에게는 냉철한 조언을 건네는 20년 경력의 임상 심리 상담 전문가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이혼의 상처와 희귀병인 ‘스틸씨병’의 만성 통증으로 곪아 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이성과 지식으로 채울 수 없는 근원적인 결핍을 파고들며, 데이팅 앱을 통해 화면 너머의 낯선 타인에게 정서적으로 깊이 의존해 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 줍니다. 이 소설은 최근 뉴스 사회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동남아 무법 지대에서의 실종 및 납치 사건’들을 연상케 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작품으로, 태국과 미얀마 국경의 깊은 정글 속 외부와 단절된 거대한 요새에 대한 묘사는 단순한 픽션을 넘어선 서늘한 공포를 선사합니다. 독자는 몸값이 든 배낭을 메고 폭우가 쏟아지는 정글을 뚫고 가는 동만의 여정을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그녀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사랑’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까지 예측불허의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소설 『세렌디피티』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