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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시작과 미로 · 5 1부 낮은 곳으로 기우는 눈물 씨앗 · 15 장소성이라는 것 · 18 결손 예언 · 23 종이배 접기 · 27 이전과 다르지 않다, 아마 미래도 · 29 어떤 저주 · 32 외로움과 마주앉은 것 · 34 낮은 곳으로 기우는 눈물 · 37 혼자이기에 얻은 것 · 45 가짜 · 50 정해진 일 · 54 어중간한 마음 · 56 천사는 내게 때리는 법을 알려주었지 · 59 그것은 같지만 이것은 다르다 · 63 아적세계 · 66 변방으로 빗나가는 일 · 70 문 여닫기와 이름 짓기 · 75 상실 후에 만나는 것 · 79 2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87 세탁하기: 제습과 회복 · 90 가끔 찾아오는 의심과 믿음 · 93 불면 일기 · 97 호와 불호 · 100 나를 부끄러워하는 나 · 102 두 가지의 얼굴 · 104 뒤돌아보지 않는 · 107 신발끈 묶어주는 마음 · 111 나의 도시 · 114 서울이라는 도시 · 117 위장법 · 120 시동 걸기 · 124 두 개의 소음 · 127 접붙이기 · 130 분실물 · 133 3부 내게 영원히 관념적일 것 사람이기, 고유하기 · 139 테이블에 앉은 글 · 142 시선과 조우하는 시선 · 144 제철 마음 · 147 선물 · 150 빚지기 · 153 향기 · 155 절망해도 좋을 신의 도시 · 158 불면의 친구 · 161 내게 영원히 관념일 것 · 164 사랑과 사람 · 166 아무에게 · 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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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전혀 다른 곳에서 자랐다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여전히 글을 쓸까. 쓰지 않았을까. 내가 자라온 환경이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기에 그 장소성이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언제나 의문스럽다.
어떤 과정이 있었든, 지금의 나는 쓰는 존재가 되었구나. 그런 사실이 안심이 되기도, 슬프기도 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좀 슬픈 사람이니까. 슬프지만 춤추고 노래하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 「장소성이라는 것」 중에서 내가 시를 쓰는 건, 내가 시인이 된 건. 세상 어디에서, 시를 쓰는 사람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건. 어쩌면 자기 자신을 비워내는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나도 모르는 커다란 스푼이 나의 마음을 크게 한 숟가락 떠서 나의 한 구석이 강제로 비워진 것 아닐까. 아니면 길거리를 쏘다니며 어딘가에 나 자신의 영혼이 발 빠지는 줄도 모르고 흘려버리고 돌아온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마음의 결손.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단지 나의 사라진 부분에 대해 자꾸, 거듭해서 말하게 되는데. 어째서인지 그 상실이. 단순히 ‘나의 없음’이, 미래에 가서도 똑같은 일이 되어서. 그러니 예언이 되어 고장난 카세트 테이프처럼 되풀이 되는 거다. 그렇게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세상 어딘가에서 반복될 우리의 슬픔. 그게 예언이 될 거라는 점이. 나는 어쩐지 두렵다. --- 「결손 예언」 중에서 나는 내가 느낀 슬픔의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아마도 과거의 내 모습을 타인으로 바라본 게 아닐까 싶다. 그 어린 날의 자신이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일을 짐작하고,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면서 화해를 한 순간 눈물을 터트리게 된 게 아닐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좀 더 정확하게 내 슬픔을 독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의 슬픔을 잘라내서 무대 위에 올려둔다면, 누군가는 그 이유에 대해 짐작할 수도 있겠지. 그게 바로 문학의 쓸모라는 것일 테고. --- 「낮은 곳으로 기우는 눈물」 중에서 나는 시의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밀하게 연결된 스승이 마땅히 없었고, 서로 간에 시를 면밀하게 봐주는 가까운 지인도 없었다. 대학에 가기를 성공하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으니까. 그러니 나의 글은 온전히 나만이 스승이 되어야 했고, 온전히 나만이 글을 첨예하게 바라볼 시선을 지녀야 했다. 어떻게 보면 분명 고이고 있었다. 한 바닥도 되지 않는 우물 안에서, 내 우물을 들여다보는 건 아무도 없었으니까. 단순히 나는 나를 믿었고, 나의 글쓰기를 애정했고, 나의 일상을 가만히 즐겼다. 그냥 그러면 될 일이라고. 어차피 등단을 하든, 하지 못 하든 일찍이 계속해서 시를 쓰기로 결정했으니까. 그러니 나의 반려는 길고 긴 남루함. 자극보다는 정적인 무언가가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 --- 「혼자이기에 얻은 것」 중에서 왜 사람에게는 마음이라는 게 있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없었더라면 슬픔 따위 모르는 채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먼 과거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을 아예 도려내는 수술을 했다는데. 가끔 모두가 감정이 없다면 더 나은 세계가 되었을까, 상상하곤 한다. 모두가 이성만이 있는 세계. 그건 얼마나 황홀한 지옥일까? 끓는 용암과 지옥불만 없을 뿐, 모두가 악마와 같은 마음을 가진 세계. --- 「상실 후에 만나는 것」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