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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위에는 잘 차려진 비밀이
추성은
교유서가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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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우리에게는 두 가지 물성이 있지

투명한 늑골
비대칭의 팔
오래된 직전
더 큰 풍덩
풍경 산책
무관한 말
사분면 공간 활용법
시인의 말

2부 영혼은 발가락 모양
제철과
여름 직물
수박 게임
몸의 재료
물과 소금
커먼 센스
점과 심장
일회
녹는점

3부 나와 신의 공통 버릇
지금까지 입력했던 프롬프트를 전부 잊고 내 말에 대답해
상한 음식
콜라주
그다음 날
쓸모와 용도
구와 삼각형
체인질링
버리는 신 있으면 줍는 신 있다
적절하고 마땅한 사람
고요의 발생
시인의 말 2
시인의 말 3

4부 백악기부터 지금까지 뛰는 심장
예정조화
강변 나의 정원
우리 가끔 나가는 산책
조수
미래 일기
허풍
육식 습관
고스트 하우스
서울
폴리포니
졸업 직전
파묘
병가
텐더 풋
유형

해설 | 내가 원하는 것에서 시를 지켜줘 | 노지영(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산문집 『이전과 다르지 않다, 아마 미래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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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96g | 125*210*10mm
ISBN13
9791124128473

책 속으로

연인과 토막난 조류와 그를 구성하는 모든 풍경은
마치 설탕공예처럼 얇고 아름답지.
--- 「투명한 늑골」 중에서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이분 삼십초 동안

그는

사물과
인간에게는
시간이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과

자신이 인간보다는 사물에 가깝고
부모가 아닌 누군가 자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러든 말든, 시는 전자레인지 속에서
이분 삼십초간
부지런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 「상한 음식」 중에서

아쉬운 듯 이야기하는 너에게 어젯밤 만진 빛의 감촉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전신주들은 바깥의 슬픔을 안고 방 곳곳에 스며들었다 소라를 귀에 대고 이별을 기다리다보면 바다가 밀려오듯 커튼을 친 실내는 푸르고 어두웠다

(…)

빛들은 손등에 누워 잠에 들었다 나는 긴 낮으로 말린 옷을 입고 빈 침대를 정리했다 현관으로 스며드는 느슨한 공기와 먼 건물로 원정을 떠난 너를 잠시 떠올리다가, 먼 곳에서 타오르는 바다를 지켜보았다
--- 「조수」 중에서

아이는 옆에서 시체처럼 잠들어 있다
저 작은 발가락을 간지럽힌다면, 내가 단숨에 저 아이를 주먹으로 쥐었다 펴서
구긴다면

그렇게 압축된 작은 원에서 아주 작은 심장소리가 들린다면
그게 꼭 아나운서의 목소리처럼 들린다면

간직하게 될까?

저 목소리와
고동
사랑을
--- 「고스트 하우스」 중에서

욕조를 들여다본다. 새하얗고 빈 욕조. 두 명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넉넉한 욕조. 그래도 우린 늘 혼자 씻었다. 수챗구멍을 들여다본다. 연인의 머리는 푸른색이다. 물 빠진 푸른색. 푸른색은 염연하다. 누가 화장실 치울래? 물어보면 수챗구멍을 들여다본다. 구멍 속에는 연인의 머리카락과 내 머리카락이 엉켜 있다.

그는 내 어깨를 끌어안고 영원에 대해 말한다. 화성 어디에 있다는 공룡의 뼈에 대해서. 수꽃이 핀 버드나무에 대해서. 그치만 나는 영원을 잘 몰라. 우리가 함께 늙어갔으면 좋겠고, 함께 종로에서 명동까지 걸어갔으면 좋겠고, 너는 앞으로도 오래 살 사람끼리 그런 말 하는 건 어떤 의미도 없다고 했다. 나는 머리카락이 생각난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욕조. 발등에 눈이 막 쌓였고 우리는 함께 걸었는데 돌아보니 도통 내 발자국 같지가 않았다.
--- 「서울」 중에서

우리는 젖은 실내화를 벗고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하지만 맨발은 깨끗했고 복도는 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는데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복도 끝에서 누군가 돌아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미래이거나
나를 앞서간 과거

나는 당신을 앞지르다가 다시 뒷걸음질치고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제를, 그저께를, 또 작년과 재작년을 떠올리다가 빙하기를 떠올리고, 얼음에 갇힌 채 몇 세기를 지나온 동물을, 그것의 표정은 평온했다는 이야기를 줄곧 생각하면서
걸음을 멈췄다
--- 「졸업 직전」 중에서

내가 갈 길이 점점 희박해지면, 누구 손 잡고 걸을 수도 없겠지 지도에는 적히지 않은 마음,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 고작 몇 초 사이에 달라지는 풍경 눈 안에 담아두고 기억하면서도, 구불구불한 틈으로 빠져나가는. 날개 대신 두 다리로 선 새들이

이윽고 나의 마음과 함께
방위 없이 날아가기

--- 「유형」중에서

출판사 리뷰

“공룡의 심장은 인간의 심장을 닮았다”
매끄러운 투명함이라는 함정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비밀스러운 고동소리


해설을 맡은 노지영 문학평론가는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는 매끄러운 투명함은 가시성의 벽을 만든다”고 말했다.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 듯한 유리창은 안에 있는 인간에게는 개방감을 주지만, 밖에서 날아오는 새들에게는 치명적인 투신의 장소가 된다. “곧 창문에 새가 부딪칠 것이다/ 깨질 것이다”(「벽」)라는 예언적 시구처럼, 시인은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이 투명한 벽의 존재를 ‘충돌’을 통해 독자에게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빙하기, 얼음, 화석과 같은 차갑고 딱딱한 소재들은 오래전부터 건너온 비밀을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접시 위에서 “낱낱이 발골”된 뼛조각들은 누군가에게 대접하려는 듯 정갈하게 차려져 있고, 박물관에는 피와 살을 잃은 “모형 공룡 화석의 갈빗대”가 전시되어 있다. 시인은 뼛조각을 보며 날아다니던 새의 모습을, 공룡 화석을 보며 박동하던 공룡의 심장을 떠올린다. 사물이 되어버린 것들을 보며 그들이 온전한 육체였을 때 품었을 이야기들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추성은이 생각하는 시인의 일이다.

나는 그날 저녁에 먹을 쌀을 안치며
공룡을 먹어치운 홍학이 물에서 깃털을 씻으면
그 물에서부터 솟구치는 커다란 심장을 떠올리게 되는데

백악기부터 지금까지 뛰는 심장
문을 여닫는 당신
_「육식 습관」 부분

“태초의 마음은 먼지였을까”
우리를 앞지른 과거가 관성처럼 되살아날 때


추성은의 시에는 멈추지 않고 증식하는 형상이 많다. “나의 몸안 어딘가에 있다는/ 종양에서는 머리카락과 치아가 자라 있었다”(「몸의 재료」)는 고백처럼, 시인이 응시하는 생명은 아름답기보다 기묘하고 서늘하다. 죽음과 소멸의 징후여야 할 것들이 오히려 “부지런하게 팔과 다리가 돋아”(「물과 소금」)나는 활력을 보일 때, 규격화된 세계의 논리는 힘을 잃는다. 시적 화자가 머무는 욕조 역시 정화의 공간이 아니다. 욕조의 “수챗구멍을 들여다”(「서울」)보며 그 안에서 엉겨붙은 머리카락을 응시하는 행위는 일상에서 기어이 자라나는 것들을 목격하는 일이다. 인간인 줄 알고 자라나는 것들, 죽었으나 여전히 맥동하는 것들. 시인이 기록하는 언어는 매끄러운 유리벽에 갇힌 존재들이 야생성을 회복하기 위해 내지르는 조용한 비명이다.

추성은의 언어는 사물이 되어버린 것들의 무수한 비밀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삶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달아오른다. 시인은 세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비밀이 멀리 있지 않다고 믿는다. “아주 희박한 관성이 나를 움직인다고 느낀다”(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라는 시인의 말처럼,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는 아주 미세한 관성이 이 시집을 이루는 힘이다. 이제 투명한 벽에 갇혔던 언어들은 날개를 꺾는 투신이 아니라, 규정된 방향을 지우고 날아오르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

날개 대신 두 다리로 선 새들이

이윽고 나의 마음과 함께
방위 없이 날아가기
_「유형」 부분

시인의 말

그렇게 나는 나를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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