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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 아무도 모르는 바깥의 유령아 청소 시간 이건 영화가 아니야 오버타임 우리가 좀비가 아니라고? 비가 질문을 들을 때 광장에서 2부 | 내일은 더 산산조각으로 내가 간절해지면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심해어 엄마의 독서법 염소의 눈 마주침 다락방 친구 나는 끝내 듣고 말았다 3부 | 빛나는 것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어요 기다리는 사람 무화과 익는 정원 류와 앵두 동거 뭉개지는 사람 두더지 따라 하기 별이 목에 걸려서 재개발 4부 | 이번에 내가 유령 물과 구름 유발자 눈오리 가모장 모르는 소녀들의 이름 광주천 구름집 탐험 일지 5부 | 심장에 박힌 작은 초록 창문을 닫은 이유 나는 줄 밖에 있었다 웃는 사람 불씨 금이 간 접시의 마음 겨울, 버찌 지구가 버티는 한 6부 | 구름 그림자 아래서 너를 기다릴게 소화불량의 문명들 단성생식 9 언어를 가진 적이 없다 해설 | 번역 불가능한 체온의 문장 | 최진석(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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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막에 앉아 있어. 천막 주위로 사람들이 무심히 오고가네. 우리는 파도에 떠밀려 여기 왔어. 우리는 힘이 없으니까. 우리를 반작용이라 부를까. 우리는 하나의 외투를 함께 걸치고, 추위를 버티지.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근데 여기 또 누가 있지 않았어? 점점 가장자리가 투명해지네. 대형 버스가 한 무리씩 뭉텅이로 이동시키고 있어. (…) 버스 창이 더운 숨으로 꽉 차 불투명하더라. 더이상 안이 보이질 않았어. 그들에게 우리도 그렇겠지. 우리를 두고 따뜻함을 얻었네. 그리고 우리는 추운 외투를 얻었고. 우리도 이 천막을 나서야 하지 않을까. 히치하이킹 같은 거라도 해보는 건 어때? 유령에게라도.
---「광장에서」중에서 밖에서 아직 너희의 이름을 부르고 있어. 내 부풀어오르는 몸을 흔들어 너희를 깨울게. 심해의 지층이 뒤집힌다. 부유물. 유실물. 이제 돌아가야지. ---「심해어」중에서 아침에 일어나 무엇이 달라진지 너는 모른다. 지하방에 빛이 새어들고. 나는 네 방에 살지 않는다. 빛을 따라 사람들이 걷는다. 너의 배를 만지며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따뜻한 것이 너의 등이었는지. 나의 가슴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너는 사람들을 따라 걷는다. 외투를 털며 멀리. ---「마주침」중에서 아무나 조각을 이어붙이진 못할 거야. 다시 나는 너에게 손을 내밀고. 너에게서 내게로 물결의 파동이 밀려온다. 나는 부서지고, 우리는 서로가 눈이 부셔서 웃는다. ---「다락방 친구」중에서 그녀의 등은 이목구비가 없지만 표정이 있어서 나는 머리카락을 떼어주려다 멈춘다. 울지 않으려는 사람을 곧 울릴 것만 같아 머리에서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 흘러버린 머리카락 한 가닥 떨어질 때마다 땅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그녀 발끝 뒤 아슬아슬하게 뚫린 싱크홀도 모르고 그녀는 걷는다.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로 흘러내리는 흙더미를 본다. 더는 가지 마, 기다리지 말아. 그녀가 가는 방향을 따라 싱크홀은 깊어지고 구멍 안의 흙은 흘러내리는 것일까 이제 한숨을 놓는 것일까. 목적지에 도착해 엉엉 울어버리고 마는 그녀를 기어코 상상한다. ---「기다리는 사람」중에서 나는 좀비 오리. 술래 오리. 밤새워 놀고 땀을 흘리고 눈이 다 녹도록. 새벽이 들고 아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매립지에 숨어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이번엔 내가 유령. 날 잡아줘. 날 찾아줘. 더 깊이 묻힌 것들은 눈이 되어 내린다. ---「눈오리」중에서 그 끝에 소녀들이 모여 있었다 “이게 뭐야” 속삭이듯 터지는 분노 손에 휴지를 쥐고 서로에게 건넸다 그 말이 싸움이 되지 않고 다정이 되는 순간 (…) 내가 그 줄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손에 쥔 것도, 내밀 것도 없었다 서 있는 자리조차 조금은 먼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언어도 갖지 못한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나는 줄 밖에 있었다」중에서 불은 강 너머 민가를 덮치고 며칠을 더 태웠다. 불 사이로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강 쪽을 향해 앉아 너는 불구경을 했다. 불이 물속에서 살아 있어. 타는 집을 타게 두고 그런 말들을 나누었다. 그 강 위로 우리도 타고 있었다. ---「불씨」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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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를 나와 다시 지하일지라도”
세상의 가장자리에 머무는 소녀들 이 시집에는 낮고 좁고 깊은 공간들이 자주 등장한다. 지하상가, 술집 구석, 구덩이, 심해, 매립지 등 주로 약자로 칭해지는 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곳에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소녀’의 모습을 한 여성들이다. 이들은 “울음 속에 우리들은 서로를 안고 여자 아닌 소녀로 멈추기를 기도”(「우리가 좀비가 아니라고?」)하는 존재이자, 광장에 모여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서로에게 휴지를 건네는(「나는 줄 밖에 있었다」) 다정의 주체이다.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억압, 폭행과 책임은 이 시집에서 일종의 ‘지층’처럼 쌓여 공간의 압력으로 형상화된다. 쌓이고 눌린 세계에서 이들은 부서진 신체와 파괴된 마음을 서로에게 기대며 겨우 존재한다. 시인은 무심히 지나칠 법한 그곳에 바람을 불어 모래를 걷어내고, 물이 빠지고 드러난 자리에 남은 흔적을 시라는 언어로 건져올린다. “아무런 언어도 갖지 못한 사람처럼” 언어가 실패한 자리, 온기의 형식들 송하얀의 시에서 감정은 추상이 아니라 물성이다. 심장은 갈라지고, 박히고, 녹는다. 마음은 설명되지 않고 신체의 이미지로 치환된다. 최진석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시인은 언어가 실패한 자리에서 가장 정확한 감각을 찾는다”라고 썼다. 송하얀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해 몸의 이미지와 공간의 압력으로 정서를 구축한다. 이 시집에서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은 감각이다. 『그 책은 내 빈 심장에 끼워둘게』는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이어붙여 원상복구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붕괴 이후에도 계속되는 감각의 연대에 관한 기록이다. 비록 조각나버렸을지라도 부서진 조각들이 어떻게 서로를 지탱하며 세계를 유지하는지, 나약한 개인이 ‘우리’가 되었을 때 발산하는 온기를 독자의 심장에 각인시키는 시집이다. 나는 그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들이 잃지 않기를 그 온기가 쉽게 꺼지지 않기를 나는 천막이 되고 이불이 되고 작은 바람막이가 되고 나는 조용히, 그리고 멀리 소녀들 곁에 있었다 _「나는 줄 밖에 있었다」 시인의 말 나의 타투이스트와 나는 바늘로, 언어로. 피와 잉크가 섞이는 냄새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녀의 손이 내 팔을 따라 움직인다. 밑그림의 선이 살을 따라 열린다. 고통은 문장의 윤곽이 된다. 코끼리, 두 눈, 재규어 몸이라는 문자.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는 숨을 고른다. 기계가 멎고, 방안이 천천히 기운다. 문장을 새긴다. |